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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촌을 한지 딱 일년이 되었다. 나야 주말에만 집에 가는지라 완전한 귀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매주 집에 가는 시간이 조금은 기다려지기도 한다. 농작물이야 집사람이 알아서 심고, 나야 이런 저런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할 일은 많다. 시골생활이라는 것이 일이 하기 싫으면 할 일이 없지만, 무언가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이것 저것 눈에 띄는 것이 많아서이다. 또한 집사람도 조금 힘이 들다 싶으면 전부 나한테 미루어 놓기 때문에 주말마다 할 일은 쌓여가기만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날은 비가 오는 것이 그렇게도 반갑더라는..

 

  고추나무가 이제 다 시들었다. 고추나무를 뽑아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내년 봄에 뽑으면 된다고 한다. 지금 뽑으면 힘이 드니 내년 봄에 뽑으라고 동네사람들이 그랬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게 하지 하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일단은 고추나무 옆에 세워 놓았던 지지대를 뽑으면서 고추나무 하나를 잡아당기니 그냥 쑥 뽑힌다. 그래서 마음먹고 고추나무를 뽑기 시작했다. 내년 봄에 뽑는다고 누가 대신 뽑아주는 것도 아닌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먼저 지지대를 뽑아서 한쪽으로 모아 놓고 고추나무를 뽑기 시작했는데, 뿌리에 달려 나오는 흙을 털어내고 볕에 마르도록 널어 놓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나중에 아궁이에 불 땔 때 불쏘시개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다. 고추나무를 다 뽑고 밑에 깔았던 비닐까지 걷어내니 완전히 방전된 것 같다.

 

  한나절에 걸쳐서 일을 하고 샤워까지 마치니 온 몸이 노곤하다. 한숨 잘까 했는데 잠이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들었지만 글씨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일을 하면서 아무런 잡념이 들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인해 생각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역시 생각이 복잡할 때는 단순노동이 약이라는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몸은 조금 힘들지 모르지만 생각은 단순해지고 머릿속은 깨끗해지니 말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근심, 걱정의 대부분이 걱정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걱정한다는 것의 대부분이 조금 더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비롯되고, 그것을 그저 습관처럼 생각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주에 읽은 공지영작가의 [시인의 밥상]이란 수필집의 내용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녀가 말 한대로 삶이 단순하면 그만큼 풍요로워 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좀 더 풍요로운 삶,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를 위해서 귀촌을 한 건데..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삶 전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제는 노동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노동 말이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고도 풍요롭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풍요라는 것이 조금 더 소비하는 것의 다른 말이 아닐까 싶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하기 싫은 노동을 단지 그것 때문에 지속해야 한다는 것에 조급한 마음마저 든다. 작가를 위해 시인이 차려주었던 밥상은 그런 소비 없이도 가능했던 밥상이었듯이 말이다. 지난 일년을 돌아보니 매주 집에 가는 주말이 행복했던 것 같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일하고 땀을 흘린다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싸주는 집사람의 손길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는 농사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집사람 말에 그냥 웃고 말았지만 지금의 마음이 변치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더 이상 나의 삶이 허접한 것들에 눈이 팔려 비루해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보다 단순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하루 종일 마음속을 헤집은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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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토끼

    어제는 오랜만에 부산하게 보냈어요. 나름 늦지 않게 일어났고 세끼 밥을 다 제대로 먹었고 계속 몸을 움직이며 보냈죠. 어쩐지 뿌듯하더라고요. 몸을 움직이며 보낸 하루 일 뿐이었는데.. 못쉬었다 피곤하다는 마음도 안들고요. 초보님이 귀촌하신지 몰랐어요 ^^ 제가 참 오래 뜸 했었나봐요~

    2016.11.07 13:4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이루

    한나절에 걸쳐서 하셨다니.. 초보님 고생하셨습니다! 몸은 노곤하지만 내년 봄에 할 일을 미리 하셨으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셨으리라 짐작합니다~^^

    2016.11.08 20:4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march

    잡념을 사라지게 하는 비법이죠.단순 노동~깨운하시죠?
    벌써 1년이 되었나요? 조금씩 고쳐나가던 사진들이 생각납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서 벗어난다면 삶이 참 가벼워질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조금씩 일을 하다가 이번 8월에 모두 정리가 되었는데 섭섭하기도 하고,후련하기도 해요.
    마음의 풍요를 위해 단순한 삶...좋네요^^ 철학자 초보님.

    2016.11.09 10:10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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