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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 살면 겨울에는 할 일이 없다. 한해 동안 했던 일들을 정리하고 그저 쉬는 것이 전부이다. 그래서일까? 매주 집에 가면 심심하다. 뭔가 하긴 해야 될 것 같은데 마땅히 할 것도 없고 하니 이것 저것 치우는 게 일이다. 그러다 보면 하루 해가 가지만 말이다. 지난주에는 날씨도 겨울답지 않고 햇볕도 따스한지라 마음먹고 밭을 정리하기로 했다. 뽑아놓은 고추대가 다 말라서 널 부러져 있다. 모두 태워 없애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에 넣고 태우기로 했다.

 

불을 붙이고 고추대 하나하나를 구덩이에 던져 넣으며 태우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분다. 구덩이 주위에 마른 풀이 많아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조심하며 태웠다. 그런데 순간 언덕 위 마른 풀로 불이 옮겨 붙었다. 급히 발로 끄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옆으로, 옆으로 옮겨간다. 윗도리를 벗어 끄려 했지만 꺼졌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불은 대나무 숲 쪽을 향해 번져갔다. 어느 순간 내 힘으로 끌 수 없는 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119에 신고를 하려 하는데, 언덕 끝 대나무 숲과 만나는 지점에서 불길이 머뭇거렸다. 이때다 싶어 정신 없이 불을 끄고 나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불을 끄면서 아무리 소리쳐도 집안에까지 들리지 않는지라 아무도 나오지 않아 혼자서 생 난리를 친 것이다. 발이 쓰려 장화와 양말을 벗어보니 물집이 커다랗게 잡혀있다. 병원 응급실에 가니 2도화상이란다. 쓰리고 욱씬욱씬 거리는 발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값진 경험을 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쉰다. 불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겪었으니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게 될 것 같아서다.

 

시꺼멓게 그을린 부분이 불에 탄 곳이다. 대나무 숲으로 옮겨 붙었다면 아마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몸이 오싹해진다.

 

   작년에는 감나무에서 감이 얼마 열리지가 않았다. 그나마도 여름철 폭염이 끝난 후 내린 비로 다 떨어져 버렸다. 그저 그대로 두면 알아서 열리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올해는 있는 감나무나마 제대로 키워보고자 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전지를 했다. 전지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맡겨 그들이 하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내년에는 아마 내가 해도 될 성 싶다. 거름도 주는 것이 좋다고 해서 유기농 비료를 구입하여 감나무 밑에 가져다 놓았다. 날 잡아 뿌려줘야겠다. 나중에 감나무 꽃이 피고 나서 떨어질 즈음 약을 쳐야 한다고 주위 분들은 얘기하지만 알겠다고 대답만 했다. 농약은 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지만 구태여 사람들에게 얘기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다. 감나무들 뒤로 보이는 곳이 지난주 불로 태워버릴 뻔한 대나무 숲이다. 겨울에도 푸른 것이 황량함을 덜 느끼게 하지만 자꾸 대나무들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애물단지 이기도 하다. 작년 봄에는 이사와 처음으로 맞이한 봄인지라 대나무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도 감나무 바로 아래까지 대나무 뿌리가 와 있다. 올 봄에도 아마 또 한번 전쟁을 해야 될 것 같다.

 

 

  이곳으로 이사와 일년이 훌쩍 지났다. 이사를 늦가을에 왔기 때문에 두 번째 맞이하는 겨울이지만 이제서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귀촌을 한다고는 했지만 과연 잘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은 없어진다. 땅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간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자만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이곳에 살면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았지만 아마 앞으로도 그러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겪어보지 못한 큰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기만을 기원해본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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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날이

    오랜만에 귀촌일기를 대하는 듯합니다. 겨울의 농촌이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초보님 혼자 힘들었을 불과의 전쟁,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뭔가 태우는 것은 정말 조심해얄 듯합니다. 감나무, 약을 쳐주지 않으면 열매가 거의 떨어져 버린다고 하던데......물어서 그때만이라도 약을 쳐주시는 것이. 밭이 잘 가꾸어져 보기가 좋습니다.

    2017.02.04 16:1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시골 사람들이 밭둑 태우다 불내는 경험을 하셨군요. 화상치료 잘 하시고요...

    감나무를 애지중지 위하는 어떤 부부가 있는데, 집안에 있다더군요. 한약재료를 얻어다 밑에 준다는데 이 감이 당도가 끝내줍니다. 작년말고 몇 년 동안은 사먹기도 했어요...

    2017.02.04 20:5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의도치 않는 화재, 뭔가 아찔한 장면이 스쳐지나가는 듯 합니다.
    2. 初步님, 화상치료 잘 하시길...

    2017.02.04 20:59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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