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조금은 많다 싶게 내리고 있다. 비가 오니 아침에 일어나서도 할 일이 없다. 농부들이야 이 비를
맞으면서도 수확하기 위하여 몸이 바쁘지만, 나야 할 일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고구마를 캐는 일인데 비를 맞으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지라.. ㅎ~
잠시 비가 그치길래 마당을 어슬렁 거리는 데 못 보던 꽃이 눈에 들어온다. 선인장에 꽃이 피었다. 새벽에 피어서 한 낮이 되면 지는지라, 꽃이 피어도 잘 보질 못하는데 오늘은 내 눈에 딱 걸렸다. 화사하게 피어난 꽃이 계절을 잊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선인장 뿐만이 아니라 요즘은 꽃들도 제 철을 잊은 것 같다. 피었다 지기를 몇 번씩 하고 있다.
선인장 꽃은 종류에 따라 피는 시기와 피어 있는 시간이 다르다고
한다. 5개의 선인장에서 언제, 어떤 꽃이 피어날지 나도
잘 모른다. 지난 5월에도 그리고 6월에도 피었다는데, 아쉽게도 나는 보지 못했다. 새벽녘에 피어났다가 오전 중에 져 버리기 때문에 당시 집을 떠나 잇던 나로서는 볼 재간이 없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태어나 영롱한 햇살에 잠시 몸을 맡긴 후 미련없이 떠나가는 것이 게으르지 않은 자만이 나를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꽃 역시 점심 무렵이 되자 부끄럽다는 듯이 봉우리를 닫았다. 꽃들도 저러한데 사람들은 왜 나가고 물러섬을 잘 하지 못하는지에 생각이 미치자 조금은 안타깝기만 하다.
명절이 끼어 있는 긴 연휴이지만 이 비가 그치면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고구마도 마저 캐야 하고, 고구마 잎 줄기나
깻잎도 따서 다듬어야 한단다. 배추도 감싸서 묶어주고, 열무도
속아내야 한다고 하는데, 난 여름내내 깔아 둔 부직포와 비닐을 걷어내야 할 것 같다. 잡초 때문에 깐 것들이지만 땅에는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내년
봄에 그것들을 다시 깔지 어쩔지는 생각해 봐야겠다.
주위가 고요하다. 비 오는 소리만이 들린다. 항상 그렇지만 오늘따라 경운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너무 조용하다. 지붕위로 감 떨어지는 소리가 가을이 깊어 가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한 계절이 익어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