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사와무라 이치
번역: 이선희
출판사: (주)북이십일 아르테
출판년: 2018년 10월 28일 1판 1쇄 발행
미희가 빌려줘서 본 책.
미희가 도서관에서 빌린 걸 다시 빌려준 거라 펭토고무 모임이 있는 12일 화요일에는 다시 돌려줘야 헀기에 빨리빨리 읽었다.
사실상 빌린 당일에 다 읽었고, 그만큼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긴 했지만 기대가 커서 그런지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소설.
책 뒷표지에 적힌 '숨도 쉴 수 없는 극한의 공포가 온다!'거나 '제 2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수상작'같은 문구에 너무 기대를 크게 한 탓일까.
사실 호러 소설을 보고 크게 무서웠던 적이 없는 나였기에 (그나마 무섭다고 기억되는 건 처음으로 접한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었던 노조키메 뿐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호러는 상상력이 풍푸해야 즐길 수 있는 장르 같기도 하다.
상상력이 부족해 안 무서운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예전에 러브 크래프트 소설을 읽을 때는 열심히 상상하며 읽느라 좀 무서웠던 것 같은데, 그 공포는 사실상 호러 소설의 공포라기보다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보았을 때 같은 숨막히고 신경을 긁는 종류의 공포였다. 그야말로 코즈믹 호러.
아무튼 <보기왕이 온다> 역시 미쓰다 신조랑 궤를 같이 하는 민속오컬트였는데, 역시나 미쓰다 신조와 마찬가지로 결말부가 약하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느끼기에 마치 오픈북 추리소설 같았는데, 2편에서 드러날 반전을 1편에서 너무 많이 티를 냈고 3편에서 드러날 해결부를 2편에서 너무 많이 티를 냈기 때문이다.
추리(라고 할 것도 없지만)가 들어맞는 걸 보는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반전을 느끼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었고.
해결부는 좀 용두사미 같은 감이 없잖아 있다. 호러물의 문제는 이거다.
해결부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
차라리 알기 쉽게 귀신이나 유령이 나오고, 거기에는 어떤 원한 서린 사건이 있었다, 정도라면 흔해빠졌지만 괜찮은데 뭔가 불가해한 현상이 일어나고 거기서 잔뜩 공포를 불러 일으켰는데 마지막에 그 불가해한 현상을 설명해버리면 그간 쌓여온 공포가 단숨에 시들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게 해결되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그야말로 푸쉬쉬하고 꺼진다.
아무튼 이 보기왕에서는 1부에서 주인공처럼 등장한 남편을 가차없이 죽여버리고
2부에서 죽었거나 미쳤을 거라 생각한 모녀는 아무렇지 않게 3부 끝 무렵에 돌아온다.
물론 딸에게는 여전히 보기왕의 잔재가 남아있는 모습을 보여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기는 하지만.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은 가정을 위해 헌신한다고 여기는 남자를 2부에서 부인의 시각으로 낱낱이 파헤치는 것은 재미있긴 했고,
보기왕의 정체가 끝까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대충 '비밀리에 숨기고 있는 원한(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나쁜 감정)'에 의해 불려오는 무언가 정도로 추측될 뿐이라 여전히 미스테리함이 남아있다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해결사들의 캐릭터가 너무.... 만화같았다.
분홍빛 머리의 체구가 작은 여자와 그 옆의 냉랭한 미남자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그 여자의 엄청난 파워를 가진 무녀 언니가 등장하면서부터 모든 긴장감과 무게는 박살이 나버린다.
차라리 그 언니 이야기만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1부의 화자였던 남편이 죽고 나서 2부에서 보기왕이 또다시 나타나는 이유도, 단순히 남편을 잃은 부인이 자기에게 기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남자 때문이었다는 게 참 어찌보면 현실적이면서도 보기왕이라는 게 겨우 그 정도에 불려다니는 존재인가 싶기도 했다.
뭐 한 번 열린 틈으로 좀 더 드나들기 쉬워졌다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긴 하지만.
일본 오컬트를 담고 있는데도 보기왕 속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한국에서도 많이 듣던 것이다.
특히 '간코가 온다'는 건 어릴 때 듣던 '망태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하고, 보기왕이 왔을 때 부르는 소리에 답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저승사자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면 안 된다고 하는 전승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간코는 망태 할아버지보다 더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존재이며 (적어도 망태 할아버지는 망태를 든 할아버지가 와서 애를 망태에 담아간다는 것까지는 명확하지만 간코는 이름을 통해 여성이 아닐까 추측하는 것 외에는 연령도, 와서 무엇을 하는지도, 왜 무서워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보기왕에 비해 저승 사자는 세 번만 부르고 그동안 대답을 안 하면 그냥 가버리는 무척이나 형식적인 공무원 같은 태도를 취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서로 다른 나라와 다른 지역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전승들은 참 흥미롭다.
일본은 미쓰다 신조도 그렇고 이 사와무라 이치도 그렇고, 오노 후유미나 좀 더 현실적(현실적인 게 무엇인가라는 현학적 물음은 차치하고)인 미야베 미유키, 그리고 오컬트의 탈을 뒤집어 쓴 교고쿠 나츠히코 등 이런 전승을 소재로 쓰는 작가군이 상당 수 있다는 게 상당히 부럽다.
어쨌든 이 작가의 다른 책이 나오면 몇 번은 더 읽어볼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