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올리버 푀치
번역: 김승욱
출판사: (주)문예출판사
출판년: 2013년 12월 20일 제 1판 1쇄
왠지 모르겠지만 이 시리즈의 2편인 '검은 수도사'가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1편부터 빌렸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었다.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액션 스릴러에 가까우려나.
하지만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사형집행인의 딸이 아니라 사형집행인이 주인공이었다.
주인공 야콥 퀴슬은 대대로 사형집행인 업으로 먹고 사는 집안의 외아들로 중간에 방황을 하긴 했으나 결국 아버지의 뒤를 이은 사형집행인이 된다.
그리고 그가 있는 마을에서 어느 날 소년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 소년의 몸에 있는 표식이 마녀의 표시라는 주장이 제기되며 마을의 산파가 옥에 갇힌다.
이 소설은, 마을의 평안, 혹은 이익,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쫓는 마을 내 지도자 무리와 산파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야콥과 그 딸인 막달레나 퀴슬의 연인, 그리고 예전부터 산파로 인해 아내가 죽었다는 앙심을 품고 아들의 죽음을 산파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남자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고아인 아이들을 차례차례 죽여나가는 용병 등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상당수가 역겨운 인물들이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여성 캐릭터들이 꽤나 눈에 띄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 중 뭔가 대단한 일을 해 내는 사람은 없다.
조피도 막달레나도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용감하고 기지가 넘치며 똑똑하거나 현명한 건 알 수 있지만, 커다란 역할을 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막달레나가 막판에 선방했을 뿐.
아무튼, 이 책에 나오는 선역은 의사의 아들이자 그 자신도 의사인 막달레나의 연인 외에 다른 사람들이 (대체로 야곱과 막달레나 퀴슬이지만) 악역을 죽이는 데 있어 별로 망설임이 없다는 데 의외성이 있다. 직업이 죽음과 가까운 것을 넘어 사람을 죽이는 사형집행인 집안이라 그런 걸까.
그렇게 악인을 죽이는 데 거침없는 인물들 덕에 책을 보면서 결말부에 답답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야콥 퀴슬은 크게 말이 많거나 엄청나게 머리가 좋은 인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진중함과 차분함, 현명함과 배려심이 느껴져서 야콥이 나오면 보는 나도 뭔가 안심이 되고 든든해진다.
이런 인물을 창조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바로 야콥 퀴슬과 그 딸 막달레나 퀴슬 등등 책에 나오는 사형집행인 집안이 다 실존인물이고 저자의 실제 조상이라는 것이다. 이름 또한 변형을 거치지 않은 실존 인물들의 이름 그대로이다. 물론 소설 속 사건이야 저자가 말했듯 픽션이지만.
어쨌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형집행인 가문이 모두 약 400년 전에 살았던 실존인물들이라는 사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묘한 느낌이다. 그들의 가업이 다른 직업이었으면 그냥 그렇구나 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형집행인이라는 점이 특히 더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내가 퀴슬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틀림없이 대여섯 살 무렵, 할머니가 내게 처음으로 의문이 담긴 시선을 보내셨다. 할머니는 요즘도 스무 명이 넘는 자손들을 퀴슬과 퀴슬이 아닌 사람들로 분류하는 일에 몰두하실 때면 그때와 똑같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으신다. 당시 나는 퀴슬이 좋은 이름인지 나쁜 이름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이름은 이를테면 보기 드문 머리 색처럼 어떤 특징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았다. 내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형용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휘어진 코, 짙고 강렬한 눈썹, 운동선수 같은 몸, 숱 많은 머리카락 같은 외적인 특징들은 우리 집안에서 오랫동안 퀴슬의 특징으로 여겨졌다. 음악이나 예술 방면의 재능, 감수성이 예민하다 못해 거의 신경질적인 기질도 마찬가지였다. 후자의 경우에는 내성적인 성격, 알코올 의존증 경향, 우울한 성격 등도 포함된다. 열정적인 아마추어 계보학자였던 할머니의 사촌이 남기신 퀴슬에 관한 설명에는 다른 특징들도 묘사되어 있다. "굽은 손톱(짐승의 발톱 같다)." "눈물을 잘 흘리는 감상적인 성격과 가끔 드러나는 잔인성." 다 합쳐보면 딱히 공감이 가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차피 가족을 마음대로 고를 수는 없는 법이니....훨씬 나중에 내게 사형집행인이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 소개해준 분도 바로 그 할머니의 사촌이었다. 20대 초반의 어느 날 나는 우리 집의 탁자 위에서 누렇게 변해가는 종이 더미를 발견했다. 너덜너덜하게 해어진 종이에는 타자기로 친 글이 가득했다. 그랏은 프리츠 퀴슬이라는 이름의 할머니 사촌이 우리 조상들에 관해 수집한 자세한 정보였다. 그 문서들과 함께 고문 도구와 사형집행인 퀴슬의 검(1970년대에 숀가우 시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을 찍은 흑백사진들도 있었다. 200년 전 우리 조상이자 숀가우의 마지막 사형집행인이던 요한 미하엘 퀴슬에게 발행된 장인 증서, 신문 기사를 타자로 쳐서 옮겨놓은 것, 손으로 그린 몇 피트 길이의 가계도도 있었다. 나는 먼 조상인 외르크 아브리엘과 그의 주문서(지금도 바바리아 주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사형집행인 퀴슬의 가문이 바바리아의 그런 가문들 중 가장 유명한 축에 속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589년 숀가우 마녀재판 때만 따져도 피로 얼룩진 내 조상이 60건 이상의 사형을 집행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집안의 역사에 대해 흥미를 잃어본 적이 없다. 몇 년 전 프리츠 퀴슬이 세상을 떠나자, 그분의 부인인 리타가 내게 그분의 지성소 중의 지성소인 작은 서재에 들어가도 좋다고 허락해주었다. 사형집행인에 관한 낡은 책과 먼지 쌓인 문서들이 천장까지 가득 쌓여 있는 방이었다. 가계도, 교회 기록부 사본 들이 가득 찬 상자들도 있었다. 교회 기록부 중 일부는 16세기의 것이었다. 벽에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조상들의 빛바랜 사진들과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프리츠 퀴슬은 수천 장이나 되는 색인 카드에 그들의 이름, 직업, 생년월일과 사망년월일을 기록해두었다...... 그중에는 내 이름이 적힌 색인 카드도, 내 아들 이름이 적힌 색인 카드도 있었다. 내 아들은 태어난 지 겨우 1년 밖에 되지 않은 아기였는데도. 리타 퀴슬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남편 이름의 색인 카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대가 끊겼음.' 이런 것들을 보다 보니 전율이 일었다. 동시에 소속감도 느껴졌다. 커다란 공동체가 나를 품어준 것 같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계보학 연구의 인기가 점점 높아졌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우리가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 좀 더 소박하고 이해하기 쉬운 장소를 마련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대가족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소외감을 느끼며, 자신이 사라져도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갈 것이라는 삶의 덧없음을 느끼고 있다. 계보학은 마치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개인은 죽더라도 가문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일곱 살이 된 아들에게 우리의 놀라운 조상들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유혈이 낭자한 부분을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아이에게 우리 조상들은 기사와도 같다. 사형집행인이라는 말보다는 기사가 더 근사하게 들리는 법이다). 아이의 방에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조상들, 즉 증조부모, 고조부모, 그분들의 이모, 고모, 삼촌, 조카 등의 사진으로 만든 콜라주가 걸려 있다. 밤에 아이가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때가 가끔 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아는 것들을 이야기해준다, 행복한 이야기, 슬픈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아이에게 가족은 안전한 안식처이며, 자신과 사랑을 주고받는 많은 사람과 자신을 묶어주는 연결고리다. 전에 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알고 보면 아주, 아주 먼 친척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왠지 마음에 위안이 되는 말이다. 이 책은 락문적인 논문이 아니라 소설이다. 나는 최대한 사실을 고수하려고 노력했지만, 극적인 연출을 위해 이야기를 단순화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 잔인하던 시절에도 죄수를 고문하려면 공식적인 서류들이 소설에 묘사된 것보다 좀 더 ㅁ낳이 필요했으며, 숀가우 시가 요한 레흐너처럼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법원 서기를 그냥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도시를 다스린 사람은 선거후의 대리인이 아니라 시의원들과 시장이었다. 이른바 난쟁이 굴 도는 트롤의 굴(Schrazelloecher, 소설 속에서 아이들이 은신처로 삼은 굴을 말한다)은 숀가우 일대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하지만 바바리아의 다른 지역에는 그런 굴이 많이 존재한다. 이런 굴을 만든 목적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의사인 지몬 프론비저와 달리 요한 야콥 퀴슬은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이다. 그의 아내인 안나 마리아, 자녀들인 막달레나, 게오르크, 바르바라도 마찬가지다. 퀴슬 가문에는 박식하다고 알려진 사람이 많았으며, 그들은 치유사로서도 시 경계 너머까지 알려져 있었다. 의학적인 훈련을 받은 의사들이 항상 그들의 일에 간섭하고 당국에 신고하려고 했던 것은 십중팔구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 조상 중 한 명은 편지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학 시험을 치를 기회를 허락해주지 않는다고 씁쓸하게 불평했다. 그런 기회만 주어졌다면 그가 대하을 다닌 돌팔이들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 금방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에서 사형집행인이 하는 일에 대한 묘사는 모두 최신 연구 성과를 참고한 것이다. 우리 조상이 자신이 고문했던 산파를 돕겠다고 나선 일이 과연 실제로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나도 감히 의심을 품고 있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어쨌든 그는 나의 먼 할아버지이며, 모두 알다시피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을 의심하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준비하는 데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었다. 특히 내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준, 숀가우 지역 역사가들 모임의 간사인 헬무트 슈미트바우어에게 감사하고 싶다. 숀가우 박물관의 프란츠 그룬트너, 독일 의학사 박물관의 크티스타 하브리히 교수, 남편의 서재에 들어가도 좋다고 내게 호의를 베풀어준 리타 퀴슬, 처음 편집을 맡아준 편집자이자 친구이자 지지자인 내 형제 마리안, 의학적인 문제와 라틴어에 관해 조언해준 아버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녁에 이 책의 원고를 용감하게 읽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젊은 시절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생계를 책임져준 아내 카트린에게도 감사한다. 2007년 5월 올리버 푀치 <p.570-574> | |
그리고 또 하나, 책 뒷표지 소개문구가 신경쓰인다. 1650년대면 중세가 아니야... 중세는 로마 멸망인 476년부터 콘스탄티노플 함락인 1453년까지라고... 17세기 중반을 중세라고 하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은가 싶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근대 이전을 다 퉁쳐서 중세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