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Psychology of the Great War(1915)
지은이: 귀스타프 르 봉 Gustave Le Bon
옮긴이: 정명진
출판사: 부글북스
출판년: 2020년 3월 20일 초판 1쇄 발행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모두가 전쟁을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전쟁(1차 세계대전)은 발발했다.
거기엔 심리적 원인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이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문구이다.
처음 서평단을 신청할 때는, '엄청난 사상자를 낸 제 1차 세계대전도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상이나 망상을 위해 인류가 겪얶던 그 많은 전쟁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소개문이 눈길을 끌었다.
학창 시절 세계사를 배우던 어렴풋한 기억에 따르면, 제 1차대전은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했고, 거기까지가 끝이었던 그 당시의 교육에 그럼 세계대전은 일종의 나비효과로 일어난 건가? 라고 생각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좀 더 커서 배운 바에 따르면, 세게대전은 추축국의 실리적 이유에 따라 발발했다고 했고, 나는 그 말에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계대전급의 커다란, 전 유럽을 넘어 지구의 대부분이 휘말릴 정도의 전쟁이라면 당연히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계획되고 시작되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이성적인 판단과 요소는 전쟁 발발에 있어 결정적 동기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중대한 갈들의 근본적인 요소들은 3가지 종류의 원인, 즉 생물학적 원인과 정서적 원인, 신비주의적 원인과 연결된다. <p.32> |
여기서 말하는 생물학적 원인은 인간의 욕망과 필요를 뜻하고, 정서적 요인은 증오와 욕심 같은 요소를 말한다, 신비주의적 요소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신념'을 뜻한다.
르 봉은 이 '신념'이 전쟁의 직접적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르 봉이 뒤에서도 서술하듯, 이 신념은 인간에게 죽음도 불사하는 용기를 불어 넣을 뿐 아니라, 맹목적이 되도록 눈을 가린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주의, 혹은 신념은 군중 속에 퍼져 있을 때 더욱 강력하다.
군중의 감정은 치열하고 변덕스럽다. 따라서 군중은 숭배 분위기에 빠졌다가 돌연 증오 분위기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군중이 실질적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군중의 중요한 영양소는 희망이다. 군중 속으로 스며든 신비주의는 군중을 현혹시키고 있는 지도자와, 군중의 욕망을 통합시키고 있는 단순한 구호에 마법적인 힘을 부여한다. 정신적 전염은 집단뿐만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있는 개인들에게도 작용하지만, 집단이 이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전염은 집단 속에서 특히 더 기승을 부리게 된다. <p.24> |
독일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군중을 세뇌했다. 학자들, 언론, 정치를 통해 국민들의 머릿속에 군국주의를 심고 선민주의적 사상을 심었으며, 강자가 권력을 행사하고 이익을 추구하며 가능한 탐욕스럽게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라는 생각을 심었다.
이와 동시에 군대를 키웠고 군의 우수성을 홍보했다.
당시에 독일이 주장하던 내용들은 지금 보기에는 '제정신인가?' 싶으면서 고작 100여 년 전까지도 저런 말을 하는 국가가 있었다니, 하는 생각에 인간의 양심과 선량함에 조금 절망하게 된다.
국가들 사이의 유일한 법은 강자의 법이기 때문에, 작은 나라는 저항의 힘을 근거로 존재하는 외에 별도로 존재의 권이 같은 것은 절대로 누리지 못한다. 모든 조약에도 불구하고, 보다 약한 나라는 보다 강한 나라가 권력을 행사하길 원할 때마다 강한 나라의 먹잇감이 된다. 이 같은 상황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도덕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p.73> |
심지어 독일은 강자는 모든 법을 무시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제정신인가?
아무튼 그런 신념은 독일 국민을, 군부를 사로잡았고 결국 사라예보 사건이 터진 후 급박한 일주일 동안 각국 정상들 그 누구도, 심지어 독일마저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독일은 국민의 신념의 압박을 등에 업고 전쟁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르 봉의 이런 주장은 비교적 납득이 간다. 독일이 처음으로 선전포고를 하던 그 순간에는, 그 누구에게도 전쟁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심지어 저자의 말에 따르면 독일은 굳이 전쟁을 벌여 수백만의 목숨과 물자를 희생하지 않아도 소위 '존버'만 하면 얼마든 더 큰 이득을 보며 순조롭게 유럽을 장악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간 쌓여온 여러가지 심리적 요인들이 사라예보 사건을 기폭제로 결국 끓는 냄비처럼 넘쳐버렸고 전 세계를 전쟁에 휩쓸리게 한 것이었다.
이런 신념은 비단 독일 국민만 사로잡은 것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특이 상황 속에, 각국의 사람들은 저마다 광신과도 같은 신념에 사로잡힌다. 전쟁으로부터 오랜 세월 떨어진 내가 보기엔 광신같아도, 당시에는 숭고한 정신이었겠지만.
농민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살면서 유일하게 하는 일이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느끼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전쟁이 그들에게 삶의 진정한 이유를 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진정한 목적이 죽음에서 발견된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인에게 전쟁터로 나간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를 제단에 제물로 바친다는 뜻이다. 그리고 러시아 군인이 적을 향해 돌진할 때 보이는 그 장엄한 열정에서, 사람들의 희열을 진정으로 느낀다. 그 옛날에 순교자들이 영광에 흠뻑 빠진 상태에서 죽음을 끌어안을 때 가슴 벅차게 만들던 그런 희열이다. <p.241, 위즈와Wizewa를 인용> |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대학 시절 읽고 토론했던 장 뒤비뇨의 <축제와 문명>이 떠올랐다. 축제를 문명의 전복이자 파괴를 통한 재생으로 보았던 뒤비뇨의 이론에 따르면, 전쟁 또한 축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일상의 단절, 문명의 전복, 개인으로서의 이성과 자아를 잃고 더 거대한 집단에 빠져 무아지경이 되는 순간, 종교적 신념과도 같은 격정과 열의.
내가 이 책을 볼 때 주목했던 부분은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있다.
1. 책의 주제인 '제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심리적 요인'
2. 외교 서신 인용문. 사실 나는 이 책의 앞부분은 조금 지루했었다. 그러다가 3장으로 넘어가면서 재미있어졌는데, 옐로북, 블루북 등 각국의 외교 서신이 공개되며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3. 1900년대 초반 유럽인들의 사상 혹은 생각
이 책을 보면서 식민지배를 당한 과거가 있는 국가에서 태어난 동양인인 나는 좀 심적 거리감을 두게 되는 포인트가 몇몇 있었다. 사실 르 봉은 상당히 객관적이고자 노력했고 통찰력도 어느 정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한계점이 보인다.
우선, 르 봉 자체가 1900년대 프랑스인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마침(?) 얼마 전 벨기에의 콩고 식민지배 이야기를 보게 된 나는 초반부터 벨기에를 작지만 영웅적인 면모가 있는 나라로 묘사하며 끝까지 선량하지만 위대한 기개가 있는 피해자처럼 말하는 게 상당히 거슬렸다.
투명도 50% 정도로 계속해서 콩고에서 착취당한 피해자들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독일이 얼마나 잔학하게 벨기에를 유린했는지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심지어 빈정마저 상했을 정도이다.
또한 약간의 인종차별적인 시선도 보이며, 무엇보다 독일에게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특히 주관적으로 감정이 나쁠 수 밖에 없는 프랑스인이라 그런지 독일에 대해 묘사하는 중에 종종 좀 흥분한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로이드 조지의 말을 인용하며
독일인들은 복수를 이해하고, 패권을 노린 싸움을 이해하고, 영토 야욕을 위한 싸움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위대한 제국이 자국 방어를 추구하는 한 작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국의 자원과 힘과 제국의 자식들의 생명과 제국 자체의 존립을 거는 것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p.207> |
와 같은 논조로 독일인을 일반화하고 있다는 점 등.
하지만 뭐, 저 시기의 정신나간 독일은 그랬을 수도 있겠거니 하는 심정이긴 하다.
그리고 그는 분명 통찰력이 있고 상황을 깊게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러시아 황제(니콜라이 2세)는 분명히 우리 시대의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막강하다. <p.247> |
고작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그 가장 막강한 독재자 일가는 모두 처형되고 로마노프 왕가가 사라졌으니.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전쟁의 기저에 깔린 심리보다는 오히려, 문명과 야만, 정의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이 책에서 평화주의자로 묘사하는 상당수의 국가들은 당시에 이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독일과 맞먹을 가혹한 수탈과 파괴행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벨기에를 묘사하는 방식이야, 레오폴드가 콩고에서 저지른 만행과는 별개로 독일과의 관계에서 벨기에는 확실한 피해자의 위치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음 인용문을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그대로 인용해 사용한 것들을 보면 말이다.
영국은 고대 로마가 그랬듯이 자국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우정을 얻는 기술을 갖고 있다. 이것이 로마가 한니발의 이탈리아 침공 때 의기양양하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고, 오늘날 영국 제국이 단합하고 있는 이유이다. <p.353> |
당시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중립국이나 미국 등 여러 국가는 독일에 우호적이었다. 현재 (사실 2차 대전의 지분이 더 크긴 하지만) 1차, 2차 대전의 추축국이자 전범으로 독일이 유럽이나 미국 등의 빈축을 사고 있으며 온갖 헐리웃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나치 독일이 계속해서 악역으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나치 독일이 '비인도적인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 큰 피해를 끼쳐서'가 아닐까?
정의는 굉장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잣대가 아닐까?
독일이 저런 정신나간 주장을 한 건 고작 100여 년 전이다. 과연 문명이란 무엇인가. 교육과 이성의 고삐가 조금만 느슨해져도, 혹은 조금만 엇나가도 사람들은 언제든 약육강식의 세계로 돌아가게 될 수 있다는 방증을 보는 것 같아 오싹함마저 느꼈다. 문명이란 정말 실체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어 왔던 모든 것이 언제고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운 합의를 기반으로 아슬아슬하게 평화를 지키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강자들의 시혜적인 배려 속에 살고 있는가? 사실상 강자들이 법과 규칙을 무시하고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겠다고 나서면, 약자들에게 그들을 막을 수단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약간의 아득함과 함께 무력감이 들게 된다.
그 밖에 기억에 남는 문장들
삶의 속도가 느려졌을 뿐이지, 삶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p.345> |
요즘같은 코로나 시국에도 걸맞는 말이다. 아마 모든 비일상적 순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 아닐까.
열정과 감정이 서로 결합하면 어느 한 순간에 재앙이 발발할 수 있다. <p.169>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