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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10주년 특별판)

[도서] 작은 것들의 신 (10주년 특별판)

아룬다티 로이 저/박찬원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낯선 제목, 낯선 이름. 새해를 시작하는 책으로 딱이다, 했다. 내용조차 아예 몰라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기분이 2021년을 바라보는 나와 똑같았으니까. 지금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과거의 나는 이런 내용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두 개의 결말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책의 줄거리조차 모르고 있으니 결말 또한 모르는 걸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1969년, 인도의 아예메넴. 이야기는 ‘육체적으로는 분리되었지만 정체성은 잇닿은 희귀한’ 이란성 쌍둥이 에스타와 라헬, 그리고 그들을 홀로 키우는 암무가 등장하며 시작된다. 그들은 영국에서 온 사촌 소피 몰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경찰서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쌍둥이 오빠 에스타는 친아버지에게 ‘보내진다.’ 라헬은 암무와 남는다. 그렇게 23년이 흐른 뒤, 말을 잃은 에스타가 아예메넴에 돌아오자 라헬은 그를 보며 과거를 기억한다. 현재와 23년 전을 오가며 진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되고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시절이었다. 23년 전은, 그랬다. 

 

모두 법을 어겼다.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정해놓은 법칙을. 그리고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를 정해놓은. 암무는 인도 신분 제도 중 가장 낮은 계급인 불가촉천민, 즉 파라반 계급의 벨루타와 사랑에 빠진다. 시작해서도 안 되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 그들은 그 미래를 알았다. 그래서일까. 본능적으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큰 것들’은 안에 도사리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것에 집착했다. 그렇게 벨루타는 암무와 그의 쌍둥이에게 ‘작은 것들의 신’이 되었다. 

 

배경이 ‘인도’라고 했을 때 바로 눈치챘어야 했다. 불가촉천민과 가촉민의 갈등, 종교 갈등, 여성 차별 등의 이야기가 라헬의 입을 빌려 다뤄진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책을 덮었어야 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갈등 이야기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니까. 23년 만에 만난 에스타와 라헬 역시 마찬가지였다. 23년 동안 가족 구성원 그 누구도 꺼내지 않은 암무와 벨루타의 이야기. 고향에 돌아왔다는 에스타를 만나러 아예메넴으로 향한 뒤, 라헬은 비로소 ‘작은 것들의 신’을 떠올린다. 그는, 외팔이 남자는 누구였을까? 누구일 수 있었을까?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무언가 땅 밑에 묻혀 있다. 23년간 내린 6월의 비 아래. 잊힌 작은 것. 세상이 전혀 그리워하지 않을 것. 

 

<작은 것들의 신>은 결말을 알려주며 시작된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국에서 온 한 소녀는 죽었고, 쌍둥이의 어머니인 암무는 경찰서에 꼭 가야만 했고,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쌍둥이는 이별했고, 그렇게 성장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라헬의 기억을 빌려 사건을 재구성한다. 현재와 과거의 시점을 오가면서 진실에 다다르게 되면 자연스레 분노하게 된다. 인도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작은 것들의 신’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을까? 그의 계급이 불가촉천민이 아니었다면 ‘작은 것들의 신’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작은 것들의 신’이 원하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비극적인 결말을 알면서도 <작은 것들의 신>을 결국 포기하지 못했다. ‘작은 것들의 신’이 사랑한 그 가족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왜 그러한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안타까워 두 번 다시는 못 읽을 것 같다는 느낌에 꼼꼼히 읽고 또 읽었다. ‘위대한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누가 살고, 누가 죽고, 누가 사랑을 찾고, 누가 사랑을 찾지 못하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알고 싶어한다. 그것이 ‘위대한 이야기들’의 신비이자 마법이다. 분명히 ‘위대한 이야기들’ 중 하나를 읽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완독할 수 있었다. <작은 것들의 신>이 내게 부린 마법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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