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2주 전에 시작했을까? 왜 다른 교수를 6개월 전, 아니 6년 전에 죽이지 않고? 자꾸 그런 생각이 드네. 왜 하필 지금이냐고. 오스틴 그랜트는 런던 경찰청의 총경으로 수십 년간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한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삶의 유일한 행복이던 아내는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하나뿐인 딸과는 그 이후 완전히 어긋나서 남보다도 못하게 되었다. 날마다 슬픔에 젖어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랜트가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이십삼일 후 있을 그의 은퇴식이다. 새해가 되자마자 경찰 배지를 반납하고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범죄 사건과 영원히 안녕을 고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랜트의 계획에 갑작스레 차질이 생긴다. 살인이, 그것도 연쇄 살인이 세 건이나 일어난 것이다.
세 구의 시체에는 이마에 로마 숫자가 괴기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랜트는 동생 에버렛과 대화를 나누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십계명‘과관련이 있음을 깨닫는다. 접점 하나 찾을 수 없는 피해자들. 단서라고는 로마 숫자일 뿐. 사건들이 십계명이랑 상관 있다고? 그럼 셋 죽었고. 이제 일곱 남은 거네.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속적인 사망 사건. 앞으로 더 많은 수가 죽임을 당할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언제 어디서누가 어떻게 죽게 될지는 미궁으로 빠진다. 그때 그랜트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그리고 그 발신지는 뜻밖에도 미국이었다. 자신의 다음 살인도 은연중에 예고한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그랜트는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 뉴욕의 젊은 형사 프랭클과 함께 영국과 미국을 누비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십계명 살인마를 찾다가 그랜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혹시 총경님에게 미리 건네는 은퇴 선물 같은 건아닐까요? 이 살인마는 그에게 일련의 살인들로 그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살인자의 숫자>를 읽으며 왠지 모르게 아, 이 사람이 범인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딱 왔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고 대부분 틀리는데 이책에서는 내 감이 맞았다. 그래도 여기저기 흩어진 떡밥들과 조각이 한 순간에 딱, 맞춰질 때는 소름이 돋았다. 십계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 색채가 짙어서, 혹은 관련된 종교에 괜히 반감을 품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 스콧 셰퍼드는 그랜트형사를 통해 종교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 믿음과 잘못된 가치관이 야기하는 끔찍한 현상을 기독교의 십계명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예상했고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만든 <살인자의 숫자>. 여름엔 역시 스릴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