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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듣는 시간

[도서] 산책을 듣는 시간

정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산책을 듣는 시간...동정이 아닌 상호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는 유난히 심하다. 특수학교 설립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전형적인 님비현상의 단골메뉴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반인들이 그저 숨 쉬듯이 간단하게 여기는 것조차 그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할 정도다. 대체로 혐오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여전한 가운데 그나마 일말의 따스한 눈길은 동정심 수준이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미미하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실정이다. 여기 사계절 문학 대상을 수상한 작가 정은이 풀어낸 방식은 기존과는 조금 색다르게 접근한다. 청각 장애와 시각 장애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정수지, 그녀의 어린 시절은 평범한? 가정에서 생활한다. 하숙을 운영하는 엄마와 여대생 고모, 그리고 할머니. 결코 달동네 분위기는 아니다. 인심도 넉넉해 하숙생들의 신발 숫자대로 밥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 그리고 손 큰 엄마를 나무라지 않는 할머니. 자연스럽게 수지는 하숙생들이 사는 방을 누비는 헐렁이 꼬마유령으로 통할 정도로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그런데 수지에겐 아픔이 있다. 아빠가 누군지, 심지어 아빠라는 단어조차 금기시하는 싱글맘 밑에서 자랄 뿐만 아니라 어릴 때 고열로 제때 치료를 받지못해 청력을 잃었다. 수지는 자신의 귀가 들리지 않는 이유를 고래처럼 귀지가 많아서’(P.8)라고 한다. 그녀는 또래완 다른 삶을 살아간다. 특수학교를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다녀야 했다. 아빠를 표현하는 동심을 보면 안타깝다. 화성탐사선에 선발된 아빠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적응 훈련 중인 쌍둥이 아빠 중 하나와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 제조팀장으로 카리브해 잠수함에서 코카인을 제조중인 또 다른 아빠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불거진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멜로디언 시위를 벌인 결과 피아노 학원에 가지만 엄마와 원장간의 다툼으로 인해 수지는 피아노를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원장 아들 박한민과의 길고긴 인연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한민은 선천성 전색맹 시각장애인이다. 수지와 마찬가지로 특수학교 친구로 중학교 때 만나 친해진다. 한민은 수지보단 더 심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14살 때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등 지금까지 우울증 약을 달고 살고 자신의 운명을 27살로 못박고 있을 정도다. 맹인안내견 마르첼로가 그와 함께 한다. 수지와 한민, 그들은 유성우처럼 지낸다. 한민 주위를 맴도는 유성처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보는 관계다. 시간이 지나 수지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내가 사랑이란 걸 한다면 그 감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확실한 건 그저 함께 있는 시간이 좋고 가능하면 오래 함께 있고 싶은 사람’(P.59)이 한민이다.

 

수지는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일반학교로 전학한다. 그러나 달팽이관 대신 설치한 임플란트 기계장치는 거추장스럽고 소음에 가까워 불편을 느낀다.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 불완전한 소리의 세계로 옮겨졌지’(P.78)만 결과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가 된다. 일반인처럼 행동하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흉내낼 뿐이고 장애인과는 같이 호흡할 수도 없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자퇴한다.

 

한 동안의 방황을 거쳐 한민과 수지는 밴드 코스모스 사운드 트랙을 결성한다. 기타를 공동구매해 수지는 작사, 한민은 작곡을 하며 한 몸이 되어간다. ‘불완전한 소리의 세계일지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음악은 많아. 세상에 무한히 많은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그걸 모두 느낄 수는 없어도 적어도 하나는 느낄 수 있을 거야. 그걸 하나씩 하나씩 찾아 나가면 되지’(P.96). 수지는 그렇게 음악과 가까워진다.

 

할머니 및 엄마 이야기가 펼쳐진다. 명랑 소녀 할머니가 떠났다. 그리고 집안은 풍비박살이 난다. 엄마는 가출 아닌 자신의 삶을 위해 음향 공부하러 유학길에 올랐고, 고모 역시 해외여행. 졸지에 집마져 내놓고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신세가 된 수지. 그나마 할머니가 남긴 일부 돈으로 고시원을 거쳐 옥탑방을 얻어 생활하면서 스스로 살 길을 찾는다. 그것이 한민과 사업계획을 공유하며 만들어낸 산책을 듣는 시간이다. 신청자를 받아 산책을 함께 해주는 것.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대로 말해주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 치유에 도움이 되었다’(P.171)는 동병상련, 상생의 길을 찾은 것. 현대인들의 소외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차원에서 자신보다 더 열악한 환경의 장애인들과 삶을 공유하면서 스스로 치유됨을 느끼는 것.

 

함께 산책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성이 있다. ‘혼밥’, ‘혼술등 현대인의 외톨이 삶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생활에서 비롯되어 정신건강의 위협하기에 이른다.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치유의 시간을 갖는 건 의미심장하다. 청각장애에 대한 편견과 구시대적 발상을 과감히 깨뜨린 작가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신선함을 더해준다. 짧지만 결코 감동이 덜한 건 아님을 보여준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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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날이

    저도 행복하게 읽었어요. 타인을 자신의 잣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장애도 하나의 능력이란 말에 퍽이나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산책을 듣는다' 는 말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값진 일이라 생각했어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2018.09.17 20:1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서유당

      저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주변에 장애우들이 많아서 항상 동병상련의 심정만 가졌는 데 상생도 가능하단 걸 알게 되었습니다^^

      2018.09.17 20:24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아 수지가 신청을 한 그 누군가와 산책을 하네요, 산책은 같이 걷는 것인데 듣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멋진 것 같아요, 항상 말로는 약한자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소설이네요 수지와 한민이 만들어가는 세계가 아름다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만들어지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2018.09.17 22:0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서유당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꼭 그리될 줄 소망합니다^^

      2018.09.18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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