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의 신...전철에 얽힌 삶의 다양한 애환
요즘이야 차를 끌고 다니니 만원전철에 시달릴 일이 없지만 예전엔 만원버스에, 지옥전철로 출퇴근을 십수년을 다니다보니 이 책의 장면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교차되면서 절로 그때의 아련함이 묻어났다.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함은 여전했지만 옵니버스식으로 막차 혹은 전철 주변에서 일어나는 삶의 현장을 담아낸 7편의 단편을 묶은 건데 내용은 평이하지만 저마다의 사연이 때로는 답답하게 한편으론 살아가는 게 참으로 쉽지않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K역의 인사사고로 이어지고 그 전역을 통과하던 승객들의 삶 속으로 요동치며 그로 인해 그들이 향하던 목적지는 긴박함을 더해준다. 특히 제4화 오므려지지 않는 가위편에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촌각을 다투는 전철이 멈춰서자 아연 긴장하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 부친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든다. 어떻든 각각의 단편을 통해 삶의 정서를 그려내는 작가의 상상력은 그저 창의력에 의존한 게 아닌 진한 삶의 애환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체험으로 진솔하게 다가온다.
제1화 파우치
여장 남자의 전철 내 치한 만남은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낸다. 너무도 스릴과 긴장이 이어지지만 반전은 그 재미를 더해준다. 국문과를 졸업한 나는 평범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여성처럼 꾸미고 거리로 나가는 취미만큼은 각별하다. 그런데 내가 탄 만원전철 안에서 치한을 만난 것이다. 진한 화장에 전형적인 여성차림에 만면에 훈련된 웃음까지 띠고 있으니 치한조차 호감을 가질 수 밖에. 바로 전 역의 인사사고로 전철이 멈춰서자 치한과의 숨막히는 공방전이 리얼하게 그려지고 마침내 치한의 공략은 미수에 그치고 오히려 내게 협공을 당한다. 그리고 전철 바깥까지 쫓아온 치한에게 관심없음을 표명하는 순간 치한이 느꼈을 수모는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다급히 아내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미처 화장을 지우지 못한 여장남자, 이를 본 사람들의 표정 역시 어땠을까 싶다. 아내의 파우치를 받아들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는 여장 남자의 이야기는 촌철살인과도 같은 제목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제2화 브레이크 포인트
가타야마 다카시는 벤처기업의 프로젝트 리더인 컴퓨터 엔지니어. 납기일을 앞두고 작업이 예정까진 불가능해지자 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기간 연장을 구한다. 하지만 사장과의 면담은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 사장 역시 너무도 일을 사랑하고 기업을 위해 헌신하지만 모르는 아픔이 있었던 것. 이에 둘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작전을 벌인다. 이름하여 ‘브레이크 포인트’로 프로젝트를 정지시키고 임시휴무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왕 늦은 것에 연연해 하지않고 오히려 휴식을 목표로 총력전을 펼치자는 아이디어. 직원들 역시 휴일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다카시는 전철 사고로 전철이 끊기자 걷기로 작정하고 집을 향해 걸다가 불이 켜진 권투체육관을 보게되고 자신과의 3분 스파링을 벌인다. ‘쓰러지지 않으면 공은 반드시 울린다’(P.91)는 교훈을 습득한다. 권투 1라운드를 버티는 동안 자신의 브레이크 포인트를 돌이켜 본다.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제3화 운동바보
자랑할 거라곤 뼈와 근육 밖에 없는 신도 데쓰오는 허벅지 근육 부상으로 2군으로 추락한다. 육체노동자로 오직 운동 빼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소위 운동바보 연인에게 향하는 시오타 도모코는 애널리스트로 전철 타고 그를 만나러 가다가 전철 사고를 만난다. 한편, 연인과 헤어지려고 이별 편지를 보낸 도모코, 우체국 화재를 목도하며, 자신이 보낸 편지가 소실되었음에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아직은 운동 바보와 헤어질 때가 아니며 더 사랑하고 더 녹아들고 싶은 자신을 발견한 것.
제4화 오므려지지 않는 가위
이발사로 가업을 이어온 아버지의 치매와 임종을 앞두고 심기가 병원을 향하던 평범한 직장인 아들 시바야마 도시카즈는 선술집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던 손님 다카하시를 만난다. 그를 통해 아저지가 운영하던 이발소의 단골이었음을 알게된다. 그를 통해 아버지의 실력과 엄마의 애환, 그리고 사라져가는 이발소의 미래를 생각하고 돌이킨다. 아버지의 유언을 임종 직전에 보게되면서. 도중에 전철이 멈춰 임종을 보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아들의 심경이 오롯이 전해온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업을 잇기로 결심하는 아들의 결심을 목도한 채 조용히 숨을 거두는 아버지의 미소가 떠오른다.
제5화 고가 밑의 다쓰코
전철이 다니는 고가 밑에서 일하는 여장남자 다쓰고는 본명이 류조인 콩트 대본작가이다. 한때는 스트립쇼 극장에서 여장을 한 채 리스코와 콤비로 콩트 연기도 펼쳤다. 그러다 리스코가 각성제 복용으로 교도소로 떠나자 전업한다. 그게 바로 개그 연기 대본을 쓰는 작가다. 그는 인생의 쓰라린 경험을 하게된다. 가정폭력의 희생양이던 자신이 아버지의 투신 자살과 공연 파트너였던 리스코의 전철로 뛰어드는 자살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터. 동창인 아티스트 다카오카 쇼지가 탄 전철이 멈춘 곳이 하필이면 다쓰코 가게 위였던 것. 그의 연인 사야가 먼저 도착해 다쓰코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알게된 그의 삶의 어두운 과거사가 바로 전철을 둘러싼 이야기와 연관되면서 또 한편의 작품이 탄생한다.
제6화 빨간 물감
각설하고 사가노 히토미의 손목자해로 인해 평소 괴롭히던 도미타 히로미치가 희생양이 되는 다소 어처구니 없지만 환상적인 그림몰입과 함께 혈액을 빨간물감 대용으로 쓴다는 발상이 그럴 듯하게 다가온다.
제7화 스크린도어
역 매점 직원의 애환을 그린 작품으로 감동이다. 젊은 시절 임신중에 당한 전철 낙마사고, 이를 구해준 은인을 못잊어 평생 찾기 위해 역 매점 일을 지원한 히로타 기미코의 삶과 스크린도어 설치 직전 극적인 만남이 이뤄지는 장면은 영화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 진한 감동이 우러난다.
짧지만 감성적인 일존 소설의 전형성을 고스란히 그려낸 작품이다. ‘공중그네’를 소개한 이영미 번역가가 아가와 다이주의 ‘막차의 신’을 진솔하게 담아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