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아버지, 히스테리 엄마...강남 중산층 우울가정 딸 생존기...남의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서평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제가 조금은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책을 서평하고자 하는 의도는 바로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원인 제공자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크게 확대해석한다고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일조한 건만은 기정사실이다. 명분이야 잘되라고 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부모의 욕심이 들어간 것도 확실하다. 자식 덕분에 대리만족을 꿈꿨던 것도 맞고, 청출어람을 기대한 것도 또한 명확하다. 결과적으로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사후약방문’일 뿐. 그나마 돌이켜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지난 몇 년간 자숙의 시간을 보낸 결과 호전되어 표면상으론 봉합이 되어간다. ‘팔부능선’을 넘어섰으니 안심해도 좋은 단계로 진행되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어 대견하고 다행이다 싶다.
이제 이 책과 결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강남’ 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권력 집단이 거주하는 ‘난공불락의 요새’ 정도로 인식된다. 너무 거창한가. 어떻든 내로라하는 대한민국의 유명인은 거의 강남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보면 맞다. 그 정도로 강남의 중산층은 권력의 핵심이자 부의 상징,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례로 JTBC 드라마《SKY 캐슬》은 모든 걸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들만의 왕국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발버둥친다. 조기유학, 조기교육 본산지이기도 하며 모든 유행, 첨단은 이곳에서 비롯된다. 자본과 보수, 가진 자의 상징, 성지처럼 여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보여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비단 강남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지 강남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경고일 뿐이다. 세대차는 기본적인 인식의 문제이므로 부모 세대와의 소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 군사독재 잔재인 우민화, 후진적 인권문제와 낮은 아동인권은 경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효사상에 근거한 유교문화는 여전히 압박과 선입견을 갖게 만든다. 특히 무한경쟁에 내몰린 강남 대치동등 교육열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은 질적 수준의 저하를 가져오고 남녀 성차별과 여성을 성적 대상화시켜 더욱 입지를 좁게 만든다. 결국, 강남은 허세와 허위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야말로 과시적 성취 및 성공 본위 사고 집단의 표본인 셈이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모든 과정을 감내하거나 훌쩍 뛰어넘을 경지에 다다르거나 아님 도피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도피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살아낼 수가 없단 얘기.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가장 첨단의 강남에서 밀려난다는 건 소위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 이상의 무슨 해석이 필요하랴.
‘자식 때문에 참고 살았다는 어미는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다. 자식을 잘 키우겠다는 마음이 한국 사회에서 성적 위주 성취 주의로 변질되며 또 다른 학대로 발전하는 것은 그리 낯선 일도 아니다’(P.15)
보수적이며 남성본위적 과시형 가부장제의 전형인 주인공의 부친은 그야말로 폭군의 대명사다. 그것도 경제권을 잡고서 아내를 괴롭히고 딸까지 폭력의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로 인해 엄마 역시 가부장적 폭군 남편의 영향으로 매사 수동적이며 피해자로 전락한 반면, 딸에겐 가해자로 돌변하여 대리만족과 화풀이 대상인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는다. 이래저래 치여 사는 딸의 상태는 상상이 갈까. 오랜 시간 방치되어 그야말로 도피처가 없는 상황, 결국 그녀는 모든 걸 감내한 결과 온몸이 그 영향을 받아 평생 ‘종합병동’ 신세가 된다.
강남 부자를 흔히 ‘졸부’라고 한다. 이유는 삶의 양식이나 인생관은 서구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시신기증동의’, ‘유산분배’ 같은 합리적 사고를 따라잡지 못한 채 외형적인 성공 지향성으로 껍데기 흉내내기에 그쳐 독선적인 자기애와 열등감을 표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 희생양이 누굴까. 군사독재 폭력과 외형적 성장제일주의는 잔혹성을 드러내며 자기합리화에 급급한 나머지 가족에게 전이된다. 그리고 가족에게 폭군으로 돌변, 아내와 자식들은 전전긍긍 가장의 눈치보기에 바쁜 긴장된 삶을 살아야 했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가지는 장남의 권위와 허용된 체벌의 권한 등은 지배층이 행한 국가 폭력의 가정 버전이다’(P.23). 따라서 폭군 남편의 영향으로 ‘엄마는 한 번도 주체적 사고나 삶을 영위해보지 못했고, 그저 ’아녀자‘ 범위에 묶인 부수적 존재로만 살아왔다’(P.25). 이는 아주 가까운 지인도 마찬가지여서 볼 때마다 안타깝게 여기는 대목이다.
물질우위 속물사고와 비인간적 천민자본주의 수혜자인 아버지는 ‘결혼 전에는 동생들을 때리고 결혼 후에는 처자식을 구타하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돈, 물질에는 전전긍긍하는 태도가 평생을 지배하고 있다’(P.29).
한편, 부모로부터의 ‘아동학대는 완성되지 않은 개인에게 성장기 경험이 끼치는 영향력과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억압적 환경에 장기간 노출된다는 점에서 더 극복하기 힘든 사례가 될 수도 있다’(P.30).
괴물 아버지로 인해 엄마 역시 히스테리를 달고 살았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옷을 찢거나 공책 찢기, 연필로 찍기등 인격이 미성숙하고 모자란 사람의 전형으로 비춰질만큼 무대포였다. ‘자식이 자기 화풀이를 하거나 자기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한 부속물 같은 거라면 왜 낳아서 키우는지 모르겠다’(P.48). ‘전 우주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엄마는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겠다는 욕심만큼은 정말 사나웠다’(P.57).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만사에 불평불만과 짜증투성이인 엄마 밑에서 자라며 배운 건 미움과 증오뿐’(P.122).
‘겉은 최신식 삶을 지향하는 부모를 따라 번드르해 보이지만 속은 전근대적 삶의 양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비가 술 먹고 밥상이나 뒤집어엎으면 어미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삶에 지쳐 애들이나 패고 딸은 집 나가서 밑바닥 세상살이의 쓴맛을 모두 보는, 그런 소설이나 잡지에서 보던 인생처럼 흘러가고’(P.142).
결국 이 책의 저자는 ‘소아우울증’에 빠진다. 더불어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인 ‘트라우마’를 심하게 겪는다. 또한 갖가지 듣도 보도 못한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난치병 혹은 불치병으로 불리우는 ‘섬유근육통’이 대표적이다. ‘섬근통을 앓는 것은 3일 밤낮을 샌 채 사는 것과 같은 극한 피로’(P.193)에 해당할 정도로 무서운 병이다. ‘현대의 히스테리’ 혹은 ‘현대판 욥의 질환’이라 일컫는 이 병은 ‘어느 한쪽을 눌러주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오는 식으로 치료를 해도 몸 여기저기 증세가 끝없이 이어지는’(P.183) 그런 질환이다. 원인은 당연 부모의 폭력에 장기간 노출되어 극도의 긴장감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생겨난 질병이다. 폭력과 위협이 난무하는 가운데 성희롱까지 맞물려 섬유 근육통으로 발전한 것.
이 책의 후반부는 주인공의 질병과의 싸움을 다루고 있지만 너무 처절하여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 오십보백보, 가장의 횡포를 부린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백배사죄하는 길 만이 유일한 데 그게 쉽지않다. 저자는 심지어 가명으로 이 책을 출간했으니 심정이 오죽하랴 싶다.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이상지처럼 여겨지는 강남 중산층 가정의 허위와 가식을 들춰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자신을 낳아준 부모라는 금단의 성역을 건드리며 피해자, 약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자로 목소리를 낸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P.222)는 의도가 절절하게 와닿는다.
아마 우리 아이들도 가슴 한 켠 그런 두려움을 갖고 살아왔을 터,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 싶다. 끝내 주인공은 아버지와의 해묵은 감정 정리는 포기한 상태이지만 그나마 엄마와는 애증의 관계로 조금은 연민의 끈으로 이어보려고 한다. 용서라는 말이 차마 어울리지 않지만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면 상처 하나는 그나마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까. ‘생애 가장 오랜 애정을 품어온 혈육을 고발한다는 것은 나의 한 부분이 파괴되는 것 같은 고통을 야기한다’(P.220)는 작가의 처절함은 현재 고통중인 다양한 병명과 함께 치료든 안식이든 가야할 길이 버킷리스트와 맞먹는다. 급선무는 부모와의 대화인데 평행선을 달려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더불어 우울증을 비롯 섭식장애, 전신통증, 섬유근육통등 일일이 셀 수 없는 수 많은 병마와의 싸움에서 진일보한 진전을 기대해본다.
서평은 여기까지. 군더더기로 덧붙이자면 신조어 활용등 나름 세대 반영을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글에 있어서 표현이 좀 더 세련될 필요가 있다. 비속어나 저급한 표현이 눈에 거슬린다. ‘맛대가리’ 같은 경우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건 오탈자 천국이다. 보다 성의있는 교정이 필요하다. 이는 출판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탈자 문제는 최소한의 기본 아닌가. 물론 전신이 아픈 환자라는 걸 고려하면 이해는 가능하다.
페미니즘을 지향한 민낯을 보여주는 생경함에서 미투운동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하고 타성에 젖어있던 남성 중심의 성차별 의식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개인적으로 많은 반성의 기회가 되었다. 힘든 가운데서도 수기 형식의 처절한 기록을 보여준 작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