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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http://m.ch.yes24.com/Article/View/40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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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파비안느’는 대배우다. 여든이 넘은 현역으로 촬영 현장에서도 집에서도 최상급 대우를 받는다. 오랫동안 일한 매니저는 섬세하게 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배려하고, 집사이자 요리사인 남편은 다정하다. 그런 파비안느에게 “공주님 행세 좀 그만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딸 ‘뤼미르’는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많다. 자신도 배우였지만 복잡한 이유로 연기를 접고 뉴욕으로 떠나 작가가 되었다.
 
엄마의 회고록 출간을 축하하려고 뉴욕에서 남편과 딸과 함께 집으로 건너온 딸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오만하고 거짓된 엄마의 모습에 여전히 환멸을 느낀다. 사랑이 없으면 증오도 없는 법. 이 모녀는 화해할 수 있을까.
 
가족 이야기라면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태풍이 지나간 뒤> <어느 가족>까지, 가족의 숨겨진 비밀과 미세한 균열을 일상을 통해 기록하고 표현하는 데 탁월한 칸영화제 수상 감독이 이번에는 프랑스 배우들과 작업했다.
 
카트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등 세계적인 배우들은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회고록에는 딸에게 소홀했던 모습은 반대로 묘사되어 있고 배우 생활에 결정적인 지원자였던 40년 된 자상한 매니저 이야기는 없으며, 경쟁자이면서 자신의 딸에게 상냥했던 여배우,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라 몽다방에 대한 언급도 없다. 정작 사라의 중요한 배역을 야비한 방식으로 빼앗은 후 세자르상을 수상해 딸에게 의아심과 상처를 준 것인데도. 오로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다. 딸은 너무도 못마땅하다. 회고록은 가짜라며, 엄마에게 진실해질 것을 추궁한다.
 
그러나 파비안느는 평범한 엄마는 아니다. “배우는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도 돼”라고 자신있게 대꾸하는 고약한 사람이다. 진실은 연기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와 진실은 추구하고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딸은 내내 서걱거리고 부딪친다.
 
파비안느는 회고록을 펴내는 사이에 SF 영화 <내 어머니의 추억>에서 조연을 맡았다. 몸이 아파 지구를 떠나 우주에 살며 몇 년에 한 번씩 떠났을 때 젊은 모습 그대로 찾아오는 엄마와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딸의 이야기다. 주연을 맡은 ‘마농’은 제2의 사라라고 불리면서 환호받고 있는 청춘 배우다. 파비안느는 73세의 늙은 딸을 연기한다. 누구보다 자기애가 강한 파비안느는 사람들이 마농을 추켜세우고 인정하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사실 질투라기보다는 연기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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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대신 촬영장에서 엄마 파비안느를 돌보게 된 딸은 엄마를 새롭게 발견한다. 예술가로서 여전히 위력 있는 존재감과 연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치려는 늙은 여성으로서 이율배반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파비안느는 경쟁자인 배우 사라에게 딸을 빼앗긴 심정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사라에게 복잡한 심정이 되어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았노라고. 이 말은 진실일까, 연기일까. 의기소침한 딸에게 2쇄를 찍게 되면 전면적으로 수정하여 회고록에 진실을 담겠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파비안느는 조금 낯설지만 진실 가까이 다가간 모습이다.
 
<내 어머니의 추억> 촬영장에서 놀아본 손녀딸이 문득 파비안느에게 말한다. “할머니가 우주선을 타시면 좋겠어요.” “그건 왜?” “그럼 배우가 된 제 모습을 보실 수 있잖아요.” 환하게 웃는 파비안느 할머니. 그러나 이건 손녀딸의 연기다. 딸이 엄마 파비안느를 기쁘게 하려고 자신의 딸에게 대사 연습을 시킨 것이다. 할머니는 기뻐했다고 어린 딸은 전하면서 묻는다. “그런데 그건 진짜야?” 할머니가 기뻐하는 마음이 진짜였는지 궁금해하다니, 배우 집안의 혈통엔 무언가 남다른 것이 흐르는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진실을 다루지 않는다. 진실 탐구로 피곤해지고 예민해진 가족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지 보여준다. 가족은 어느 정도 연기가 필요한 관계가 아닐까 묻는 듯 보였다. 진실이 그렇게 중요한가. 가족이라면 평화를 위해서 연기를 하면 어떻단 말인가라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집을 나서는 온 가족이 문득 몸을 돌려 집을 향한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겨울의 운치 있는 정원에서. 마치 <태풍이 지나간 뒤>의 온 가족이 위를 올려다보듯이. 어떤 마음의 태풍이 지나간 뒤 각자의 집이며 각자의 하늘인 풍경을 바라본다.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유머와 위트, 피할 길 없는 가족의 위선과 균열의 봉합은 프랑스에서도 여전했다. 예술은, 아니 가족 문제는 국경을 이렇게 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가족은 진실 여부보다 더 큰 숙제를 안은 공동체라는 듯이.

 

* 이번 편으로 <정은숙의 나홀로 극장>은 막을 내립니다. 오랫동안 이 코너를 사랑해주신 독자분 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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