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 마운틴 맨...우공이산의 실화, 인도 영웅 다쉬라트 만지, 수적천석(水滴穿石)을 이루다.
언뜻 영화 제목에서 시사하는 건 ‘산 사나이’에 관한 스토리라는 것.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다소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IT첨단을 걷는 나라이자 발리우드로 세계를 주름잡으며, 비록 영국의 식민지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힌두교와 타지마할등 인더스 문명의 화려한 발상지이기도 한 문화대국 인도에서 이런 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건 보편적이고 세계적일 수밖에 없다고 치부해도 큰 무리가 없다. 그런데 정작 영화 ‘마운틴 맨’에서 다뤄지는 내용을 보면 전근대적이고 낙후된 모습의 전형이다. 이는 마치 우리식으로 말하면 일제 강점기 상황 정도로 인식될 수준이다.
물론 1960년대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문제는 없다. 엄격한 신분제인 카스트제도의 한계로 말미암아 사회적인 이질감은 극도에 달했고 지주, 농노계급 간에 펼쳐지는 삶의 고리는 주인과 종의 개념에 지나지 않아 인간적인 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또한, 배경인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 겔호르 마을은 수도 델리완 1,300킬로미터나 떨어진 그야말로 오지이다. 더욱이 마을은 산으로 둘러쌓여 시내로 가려면 40마일(64킬로미터)을 돌아가야 한다. 물론 산을 넘어가면 4마일(6킬로미터)에 불과했으나 돌산이어서 사람들이 넘다가 죽거나 다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이 지역은 외부와는 차단된 채 문명의 혜택이 미치지 않았고, 파급효과 역시 미흡했다. 심지어 불가촉천민, 다시 말해 ‘만져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란 카스트제도 밖의 존재들로 제도권과도 격리된 최악의 천민인 무사하르(쥐를 잡아먹고 사는 농노계급)였다. 지주들의 횡포는 극에 달하고 선거 때만 찾아오는 정치인들의 놀이터였던 셈.
이야기는 바로 국회의원인 슈클라(자가드 라윗)의 참모인 기자 알록 자(가루라브 드위베디)에 의해 펼쳐지고 있다. 주제는 끈기와 인간 승리, 사랑이 곁들여져 숭고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흔히,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하면 어리석고 우매함을 일컫지만 실은 불가능해 보여도 끊임없는 도전 끝에 쟁취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알려주는 고사이다. 그런데 이미 중국에선 17년에 걸쳐 우공이산의 신화를 이룬 사내가 있었다. 바로 바훠 마을의 탕밍위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이룬 업적을 능가하는 이가 바로 영화 주인공인 만지다. 그는 22년에 걸쳐 달성했기 때문이다. 동기는 조금씩 달랐으나 목적은 동일했다. 산을 옮기거나 뚫거나 깎아 길을 내자는 것. 이와 동시에 문명 세계로의 도약을 의미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 흔히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종식을 고하는 과정으로 봐도 무방하다.
만지의 출발은 사랑하는 아내 파구니아(라디카 압테)가 돌산을 넘다가 그만 실족해 사경을 헤매다 죽으면서 원인을 험한 돌산에 돌리고 복수 차원에서 산을 부숴버리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어찌보면 지극히 우매한 ‘우공’과 다름이 없다. 미친 사람 취급하는 건 물론이고 동네 사람 누구도 도와주는 이 없이 오직 외로이 싸워야 했다. 분노, 적개심에서 시작한 돌산 부수기는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그라들어 사랑으로 승화되고 드디어는 숭고한 결실을 본다. 산과의 싸움은 신념과 끈기의 표상이자, 인간이 신에 도전한, 신이 인간에게 굴복한 모양새로 비춰지기까지 한다. 거대한 자연에 맨손으로 도전장을 내민 인간 승리의 과정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길을 내기까지 십수 년 동안 마을엔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만지 자신도 농노 출신이라 지주에게 팔려야 하는 운명을 거역하고 도시로 도망친 경력이 있다. 7년이 지난 후에 고향에 돌아와 신부 파구니아를 찾아오기까지 힘든 싸움을 치러야 했고, 이어서 지주 무키야(티그만슈 두리아)의 횡포로 농노의 발에 편자를 박는 것도 보게된다. 이어 자신의 아내를 성희롱하는 장면을 보고서 지주 아들 루압(판카지 트리파티)을 폭행했다가 오히려 친구 주므루의 아내 라우키가 죽음을 당하는 걸 보기도 한다. 이어 세상이 변해 공산당에 들어간 주므루의 복수가 이어지고, 세상이 변해 불가촉천민법이 없어지는 것도 목격하지만 오히려 형식만 바뀔 뿐 여전히 군림하는 지주들의 악행은 없어지지 않는다. 문맹인 주인공을 이용하여 정부로부터 돈을 갈취하는 루압의 행태를 비롯, 인디라 간디(디파 사히) 총리의 인기 발언등 풍자하는 것 역시 빼놓지 않는다. 만지의 무모함은 총리를 만나기 위해 1,300킬로미터의 여정을 떠나는 것 역시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산을 깎는 만지에게 있어 도보로 델리까지 가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까지 보인다. 알게 모르게 그를 따르는 신봉자들에 둘러 쌓인 모습은 어디서 많이 봐온 그림이다.
이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오지마을에서 외로운 투쟁을 벌인 소리 없는 작은 움직임이 마침내 인도 전역을 흥분케 하는 나비효과를 가져온다. 급기야 그가 죽은 후에 정부에 의해 그토록 염원하던 도로가 만들어진다. 지금도 그는 국민 영웅으로 불린다. 위대한 인간 승리의 순간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 것이다.
신이 창조한 자연을 바꾸는 무모한 도전을 거침없이 일구어낸 만지, 우공, 탕밍위의 집념은 고행길이자 하나의 수행이었고, 끝내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어낸다. 내 안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이자 치유의 현장이었으며, ‘인간이 신에 의지한 게 아닌 신이 인간에 의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고백을 듣노라면 남다른 공감을 자아낸다.
발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보는 군무, 춤, 노래가 변형된 색다른 형식의 ‘맛살라신’을 선보인 마운틴 맨은 ‘다르마’(깨달음)의 또다른 인도철학을 보여준다. 간디의 비폭력 정신과 자연 순응의 또 다른 형태에서 접근한 산 깎기는 비춰지는 건 자연에 도전하는 거친 인간의 욕망이지만 결국은 자연과 대화하고 순응하며 인간의 편협된 마음을 열어 하나되는 심오한 신앙으로 다가온다. 분노가 변해 해탈의 모습, 치유의 모습, 혼연일체의 모습을 그려내는 감동의 도가니다.
다만 아쉬운 건 관객 수 집계가 터무니없어 알고보니 개봉하는 극장이 태반 부족하단 것. 우리 문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급에 인색하고 할리우드에 찌든 전형적인 논리에 갇혀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폭넓은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아무튼, 우연히 본 영화지만 만족감은 그 어느 영화보다 크게 다가온다. 꼭 만나길 소망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