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고' 이미지
805. 영화 ‘토고’...썰매견 토고, 폭풍우를 뚫고 어린 생명을 구하다.
요즘 애견, 반려견 키우는 게 대유행이다. 그런 가운데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 한 편을 접했다. 간간이 인간을 구한 동물들의 이야기는 인구에 회자되긴 했지만 이처럼 감동을 더한 건 오랜만이다. 특히 애견을 숭상하는 듯한 상전? 모시듯 하는 분위기에서 나온 헌신과 숭고한 희생정신이 만들어낸 위대한 여정이 빛을 발하는 이유다.
알래스카 하면 흔히 눈이 일반화된 명사이다. 설원과 자연풍광은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비상사태에 직면하면 재앙에 가까운 양면성을 띠고 있다. 1925년이란 시대를 떠올려 영화에서처럼 전염병이 돌기라도 한다면 상상 이상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기상악화로 항공수단이나 배, 기차등 대중교통을 활용할 수 없다면 한 마디로 고립무원이 되기 쉽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구조견, 썰매견이다. 이들은 운송수단이자 긴급시 유용한 방편으로 생존에 직결될 수도 있는 일을 감당한다.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실화에 근거한 영화가 ‘토고’이다.
이 영화가 12월 세밑을 강타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항상 연말이 되면 떠올리는 다사다난. 한 해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리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표현. 올해 역시 변함이 없는 그런 해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국내외경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를 반영하듯 정치 역시 난맥상이 이어지고 급기야 전국대학 교수들이 2019년을 한마디로 요약한 촌철살인의 한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꼽았다. 무언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전투구하다 공멸을 자초한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그런 점에서 어둠을 극복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토고’야 말로 적격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막막한 가운데 일말의 희망도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알래스카의 외딴 마을 노움(Nome), 오직 기댈 건 썰매견 밖에 없다.
그런데 결과론적으로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포상은 가리진 채 단지 공명심이든 마지막 주자였던 간에 혈청 릴레이를 끝낸 군나르 카센(숀 벤슨)과 발토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최근 새롭게 진실이 밝혀진다. 진정한 영웅은 1925년 1월 31일 146킬로미터를 질주한 바로 레온하드 세팔라(윌렘 데포)와 시베리안 허스키인 ‘토고’였다고. 단지 군나르는 85킬로미터를 달렸고, 또한 마지막 주자인 에드 론에게 바통을 넘기지 않은 채 질주한 것이다. 어떻든 실화 내용은 그렇고, 영화에선 ‘토고’의 성장 스토리와 영웅이 되기까지의 12년의 일대기를 그린다. 그리고 남은 생애 또한 다루고 있다.
서론이 다소 길었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우리 사회에 밝은 빛을 선사하고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알래스카의 극단에 위치한 노움에 디프테리아 전염병이 돌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두가 암울하게 그려진다. 특히 그 대상이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동네 분위기는 초상집 같다. 미래가 없어질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구원을 요청한 항공편은 기상이 나빠 움직일 수 없고, 그 외 교통수단은 신통치 않았기에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세팔라가 이끄는 썰매견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1,085킬로미터의 대장정에 들어간 세팔라. 폭풍과 빙하, 절벽은 긴장의 연속이다.
세팔라가 출발한 뒤 주지사의 지시로 만들어진 19개의 썰매팀은 각자 51.5킬로(32마일)씩 분담한 혈청 릴레이(Serum run)를 펼친다. 하지만 세팔라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달렸고, 심지어 150킬로를 돌아가는 코스를 선택하지 않고 30킬로로 단축되는 빙하를 선택한다. 사운드 해협 관통으로 하루를 벌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얼음이 얼기 시작한 시점이라 위험부담이 그만큼 컸다. 전문가인 세팔라가 이를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만큼 긴박한 사안이었고, 결국 그는 선택했고, 사활을 건 질주였으며 덕분에 왕복 300킬로를 60킬로로 단축할 수 있었다. 그는 146킬로를 달려 마침내 다른 주자(군나르)에게 넘길 수 있었고, 군다르 카센이 화려한 팡파르를 울릴 수 있었다.
암울한 마을이 축제 분위기로 돌변한다. 세상은 순식간에 발토 이야기로 꽃을 피우지만, 마을 사람들은 진정한 영웅이 누군지를 안다. 바로 세팔라와 토고란 것을. 주민들이 하나둘씩 선물을 들고 세팔라 집으로 모여든다. 이를 아는 지 모르는 지 토고는 쥐죽은 듯이 누워있다. 그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다. 빙하를 뚫고, 폭풍우를 헤치고 달렸던 죽음의 코스였기에, 특히 환갑의 노쇠한 나이인 12살 몸으로 리더가 되어 썰매견을 이끌었으니. 이는 세팔라와의 유대감과 사랑이 숭고한 헌신으로 나타났고, 이로 인해 마을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맞는다.
바로 이런 점이 열광하는 이유이다. 어두운 상황에서 일순간 반전의 희망을 보여준 실화이기에. 우리 역시 그렇게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까.
배우 윌렘 데포는 사실 악역도 곧잘 나오고, 연기의 폭이 넓다. 인상에서 카리스마가 넘쳐난다. 그런 그조차도 아내인 콘스탄스 세팔라(줄리안 니콜슨)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병약하게 태어난 토고를 보살폈고, 끊임없는 남편의 토고 버리기 작업에 찬성하지 않으며 끝까지 토고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세팔라 역시 토고에게 기회를 주었고, 토고는 그 기회를 통해 철저히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그리고 당당히 선도견이 되어 12년을 세팔라와 함께 한다. 이후엔 4년을 더 세팔라와 보내며 남은 여생을 토고 후계자 양성과 세팔라 부부와의 가족 일원으로 살아간다.
토고는 썰매견의 생존본능이 너무도 강했기에 비록 약하고 구박받는 처지로 태어났으나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만들었고 드디어 리더로 선택되어 마지막까지 세팔라와 마을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란 말이 있다. 비춰지는 건 발토였고, 뉴욕엔 발토 동상이 설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지만 정작 토고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2세가 인기리에 분양되는 등 말년에 평탄한 삶을 영위한다. 이름없는 영웅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사람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조작된 영웅의 실체와 진정한 영웅 사이에서 언제나 감동이 오가는 법임을...
CG와 어우러져 설원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위기 속에서도 초롱초롱한 토고의 눈망울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리고 교훈도 발견한다. 보인 것으로 판단하는 건 위험하며, 반드시 검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충성심과 헌신에 대한 숭고한 정신에 비록 동물일지라도 인간은 애정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