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8. 포드 v 페라리...진정한 승자는 켄에 있다.
질주본능, 자동차 경주를 다룬 영화는 속도감이 긴장을 불러온다. 그리고 질주 관련해선 영화(예 :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충분히 보여주었다. 범죄에 이용되던 불법 경주를 펼치던 언제나 자동차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가 보여주고자 했던 건 무얼까.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의도한 연출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단순히 포드 선전을 위한 영화는 아니란 생각이 퍼뜩 스친다. 자국이 승리한 경기인데 씁쓸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이나 팍스 아메리카, 미국식 영웅주의, 혹은 대자본을 앞세운 미국식 국가주의가 주된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철저히 이를 배격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정작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진정한 승자는 포드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각인시킨다. 그 이면에서 땀과 열정으로 승리를 일군 인간 승리에 초점을 맞춘 이유다. 바로 이점이 레이싱 영화의 우승을 바라보는 즐거움보다는 어려움을 뚫고 그들 앞에 우뚝 설 수 있었다는 장인정신이 바로 감독이 노린 주제다.
돈으로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의 전형으로 치닫는 영화였다면 사람들은 식상하고 고개를 돌렸을 터, 그러나 이 영화는 철저히 돈의 더러운 속성을 배격한다. 심지어 비록 돈이 없어 궁색하지만 결코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던 두 사람,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가 주인공이다. 이들의 전형성은 이곳에서도 통한다. 괴팍하고 고집스럽고 타협을 모르는, 그래서 언제나 왕따 당하고 불이익을 받는, 그럼에도 열정과 기술은 최고였기에 마냥 무시할 수 만은 없어 궁여지책으로 그들을 끌어들여 조종하려 들다보니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오고 이를 조정해 가는 과정이 경기와 맞물리면서 각자 처한 입장을 주입시키거나 강요하는 패턴이다. 그러나 결국은 관리차원 그 이상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오로지 주인공의 강요든 자발적인 의도에서건 그의 결정이 결정적일 수 밖에 없는 귀결점이 된다. 그리고 열광하는 관중을 뒤로하고 유유히 무대를 빠져나가는 영웅의 여유로움에서 이를 알아주는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게된다.
페라리 회장이 비록 우승을 빼앗겼지만 진정한 승자로 인정한 켄 마일스를 향해 경의를 표하는 장면은 유독 크게 와닿는 이유다. 포드 회장이 한 끼 식사를 위해 헬기에 의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것과 대비되어 우리의 현실이 교차된다. 선전용 혹은 과시용 얼굴 비추기 정도로 보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도입부에 자본력을 앞세워 페라리 인수에 나서는 장면에선 기고만장한 포드사에 일침을 가한 페라리 회장의 쓴소리가 그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파괴력을 지녔고, 이후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는 모욕감을 설욕하고자 스포츠카 생산에 물량 공세를 퍼부으며 단기간에 어떤 가시적인 효과를 보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캐롤과 켄. 전자는 이미 지옥의 레이스를 경험한 베테랑 선수 출신으로 심장병으로 은퇴한 자동차 세일즈맨이며, 후자는 가난한 자동차 정비공이자 카 레이서로 외고집으로 똘똘 뭉친 타협이 어려운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이다. 둘 다 기본 질서 속으로 들어가길 거부하는 타입이라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런 그들이 손을 잡고 포드를 위해, 아니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포드와 잠시 전략적 제휴를 한다. 상당한 불이익이 예견되는 가운데. 직접적인 마찰은 자본주의 말을 순종하지 않는 돌직구를 날려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 특히 포드 부사장인 리오 비비(조쉬 루카스)의 입김은 절대적인 것 이었기에 보이지 않는 불협화음이 컸을 터이다. 영화에선 이들의 갈등이 고조되는 광경과 결과적으로 켄이 경기(데이토나 레이싱)에 배제되면서 경기 도중 차량 고장으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는 예견된 일이자 전화위복의 기회이자 경영진의 탁상행정이 보여주는 한계였고, 실무진이 결과적으로 오롯이 레이싱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회장과의 독대와 시스템상의 어려움을 간소화해 직보 형태로 난관을 극복한다.
이제 대망의 무대인 르망 경기에 참여하는 날만 기다린다. 르망이 어떤 곳이기에 그토록 열광할까. 심지어 포드 회장까지 열을 올리는 걸까. 그건 바로 페라리가 독식하고 있는 자동차 경기가 열리는 프랑스의 지명으로 24시간 동안 13,629KM의 트랙을 3명의 레이서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빠르게 돌아야 하는 경기이며 일명 죽음의 경기로 불리우는 이유다.
자동차의 안전과 관련해 7,000RPM이 공공연히 보여지고, 이는 한계 속도를 의미하는 아무도 도달한 적이 없는 꿈의 속도이자 그 너머에 어떤 위험이 상존하는 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다. 이를 도전하는 건 곧 죽음을 넘어선다는 의미이자 넘어선 자가 우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무대에서 우승한다는 건 자동차에겐 더 없는 영광이자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좋은 홍보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승자 역시 넘볼 수 없는 영웅 대우를 받기에 충분하다. 꿈의 무대인 르망을 향한 그 동안의 인고의 세월을 감내한 두 사람이 경기 목전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각자의 이상을 향해 나아간다.
지난 6년을 내리 우승한 페라리에 맞서 포드가 내민 GT40 스포츠카에 오른 켄,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벅차오르다 못해 감격의 눈물이라도 쏟지 않았을까. 이미 한 차례 우승 전력이 있는 캐롤 입장에선 켄이 자신과 같은 입장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느새 두 사람에겐 깊은 우정이 숨쉬고 있었으며, 오랜 맞수이자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친구였던 셈이다.
끝으로 영화에서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며 영화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미국은 대자본을 앞세워 단기간에 경주용 차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이어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여 독주하던 페라리를 단숨에 제끼고 우승하는 귀염을 토한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단기간의 승부에선 강했지만 장인정신이 부족한 터에 일회성 자본으로 기술축적이 부족한 상태에서 연이어 승리를 이어간다는 건 사실상 어려운 얘기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포드는 이후 우승에서 멀어진다. 단지 일회성 잔치에 머문 종이호랑이였던 셈.
반면, 페라리의 우승 이면엔 유럽 특유의 장인정신이 살아숨쉰다. 천부적인 재능의 켄이 있어 포드가 우승할 수 있었으나 켄 사후 대체 인력이 없는 상태에선 시스템의 난맥상이 그대로 노정될 터, 사람에 포인트를 둔 페라리에게 패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후 진행되는 레이스에서는 다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는 페라리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시사하는 바는 자명하다. 미국 감독의 입으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거대 공룡으로 몸집만 불리지 말고 허세보다는 내실, 시스템 중심이 아닌 포드 철학인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얘기. 언제나 중심엔 돈이 아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논리. 그렇기에 대자본의 힘도 장인정신 앞에서는 무용지물임을 이 영화는 경고하고 있다.
우리 자동차 시장을 독점하는 H사 역시 반면교사로 삼을 주제다. 잡아놓은 물고기라서 먹이를 주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건 자멸을 의미한다. 길거리로 나가보라.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외제차 일색이다. 국산차는 이미 고급차 시장에서 꼬리 내린 지 오래다. 그리고 다시 주머니 얕은 소시민의 주머니를 털어 대자본가의 입을 채우고 있는 현실을 냉혹하게 꾸짖고 있다.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