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 재혼의 기술...재혼에 필요한 기술은 사랑이다.
결혼 생활 20년을 훌쩍 넘기면서 드는 생각은 너무도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게 어렵다는 것. 남들이 보기에 잉꼬부부로 살아온 결혼 60년 차를 앞둔 부모님조차도 티격태격하시면서 목청을 높이기 일쑤다. 그런데 결혼 몇 년 만에 헤어지는 요즘 세태를 보면서 과연 결혼이던, 재혼이던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 정도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않다는 반증이다.
조성규 감독의 단편 영화 ‘재혼의 기술’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혼에 실패한 이유는 다양하다. 남 탓, 네 탓은 기본이고 내용도 불륜부터 시작해서 성격 차이, 시부모, 처가 식구들의 간섭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이유가 불거져 갈라선다. 그리고 제 갈 길을 간다. 독신을 고집하든가 아니면 다시 재혼이라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바로 결혼 생활이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파탄이 난 가운데 아픔을 딛고 다시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다룬다. 과연 파랑새는 존재할까. 밀고 당기는 가운데 포주 노릇도 필요하고 옆구리 찔러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찌 되었든 인연이 된다면 반드시 만나고 부부의 연을 맺기 마련이지만 그리 쉽게 맺어지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도 그러하다. 소심하고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토로하지 못하는 남자, 그런 그를 지켜보는 후배가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고 이리저리 탐색전을 펼치며 두 사람의 결합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작 자신은 용기가 없어 나서지도 못한 채 주위만 빙빙 돌고, 작은 움직임에도 긴장하고 불안해하면서...
하지만 둘은 공통분모가 있다. 그 매개체가 있기에 만남도 성사될 수 있다. 그건 바로 같은 동류의식이다. 이들은 상대의 불성실한 결혼 생활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된 것. 따라서 결혼에 대한 환상보다는 현실이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가슴 한편에 저미는 아픔이 쉽게 사라질 수 없었던 것.
이에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파랑새의 도움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 파랑새로 자처한 영화감독 현수(김강현), 특유의 친화력과 오지랖으로 선배 경호(임원희)의 재혼을 적극 주선한다. 물론 자신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면서. 한 마디로 일거양득을 취하고 있다.
한편, 경호와 마찬가지로 한의사인 남편 황원장(신정윤)의 불륜으로 이혼한 미경(윤진서)은 서울에서 벗어나 한적한 강릉으로 내려와 성산포 식당을 운영한다. 바로 그곳에 나타난 경호 역시 그런 아픔을 지닌 화가다. 강릉에서 화가가 아닌 문화원 강사로, 카페 운영자로, 개인 교습으로 활동하며 그녀의 주위를 맴돈다. 그녀가 만들어주는 밥에 매료되어 출근 도장을 찍는다. 그런 경호를 살갑게 대해주는 미경 역시 경호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혼의 아픔이 워낙 컸던지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문화원 직원인 은정(박해빛나)은 경호에게 관심을 보인다. 어쩌면 화가에 대한 환상이기보다 듬직하고 매너있는 신사로 비춰졌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림 개인 강습을 받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보면 삼각관계로 보일 수 있으나 표면적으로는 미경과 은정은 아주 친한 사이다. 그건 오빠인 황원장이 이혼의 원인 제공자이기에 언니 미경에 대한 미안함과 오빠에 대한 배신감이 작용하여 더욱 사이가 돈독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경호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닌 미경은 무심한 듯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은정은 적극적인 모양새를 취한다.
현수는 경호의 적극적인 재혼 프로젝트 성공을 위하여 황원장과 미경, 은정을 심층 분석하며 경호에게 맞는 처방을 제시한다. 과연 프로젝트는 성공할지 지켜보자.
저예산 영화로 흥행작은 아니다. 내용도 지루하고 독립영화라는 특성상 시간도 짧다. 극장 개봉관 역시 많지 않다. 어떻든 손익분기 같은 건 그리 의미를 두기 어렵다. 하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영화의 흐름이 재혼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기보다는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실패한 결혼이기에 얼마나 조심스러우며 재혼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가를 잘 보여준다. 결혼은 환상이 아니지만 깨어진 결혼을 다시 일으켜 세워 재혼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반드시 갖춰야 할 게 있음을 이 영화는 충분히 보여준다.
한 사람과 평생을 사는 건 복 받은 일이다. 티격태격, 아웅다웅하면서도 함께 같은 길을 간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도 같다. 그러나 중도에 깨어진다면 좌절하지 말고 다시 남은 인생을 함께할 인연을 위해 노력하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수많은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청춘남녀에게 권면하고 있다. 다시금 도전해 보라고...
대신 재혼의 특별한 기술 따위에 기대지 말고 상대를 배려하고 솔직하게 다가서며, 집밥을 같이 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함께 할 동료를 찾는 심정으로 다가갈 것과 기교의 사랑이 아닌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할 것을 주문한다. ‘성산포에선 사랑도, 이별도 바다가 한다’는 메시지가 와닿은 이유다.
영화의 배경인 강릉의 이모저모를 잘 보여주고 있어 한편의 강릉 홍보물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꽃집부터 횟집, 시장, 문화원, 남대천 다리, 허난설헌 생가, 빵집, 양복점, 한의원, 바다까지 지역 홍보는 제대로 한 작품이다. 아쉽다면 좀 더 스토리의 긴장감이나 재미를 더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추천보다는 재혼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상대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 공통분모를 공유하면서 같은 길을 걷고자 한다면 기꺼이 보셔도 좋은 작품임을 밝혀둔다. 그리고 맺어진 인연에 감사하고 살아생전에 힘껏 사랑하며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