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바쁜 나머지 농사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두달 넘게 옥상을 올라가지 않았고, 우연히 오늘 올라가보니 고추는 새빨갛게 변했고, 깻잎은 훌쩍 커버렸다. 그동안 비가 여러차례 왔기에 물 주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무엇보다 고추에 탄저병 같은 썩어가는 병이 발생한 것도 몰랐다. 중간에 약을 한 번이라도 뿌려주었어야 하는 데...너무 안일하게 행동해 농사의 즐거움을 잊고 지냈다. 올 농사는 이걸로 땡이다.
자연을 벗삼으려는 노력이 허사가 된 듯 싶어 아쉽다. 너무 오랫동안 가정사 때문에 정신을 다른 곳에 쓰다보니 정작 먹거리에도 신경쓰지 못했다. 가을 농사도 여의치 않아 그냥 방치해야 할 것 같다. 마음의 수양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는 내 이럴 줄 알았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생겼다. 아무리 바빠도 마음 한 켠은 비워두고 살아야겠다. 특히 가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