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과연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평범하고 보수적이면서 가부장적으로 보이던 이발사 에드
그는 아내의 외도를 눈치채고 다른 사람인 척 외도하는 대상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려는 비열하고 기회주의적인 인간이었다.
아내와 바람피던 전직 참전용사를 자청하는 백화점사장 빅데이브
그는 알고보면 연필이나 굴리며 앉아서 군생활하던 사람이고 다시 그를 약골로 결론짓고 나면 자신을 협박하던 것으로 추정한 인물을 죽인 살인자다.
도리스는 자신이 용감무쌍한 참전용사로 알던 빅데이브가 외도를 근거로 협박하던 사람 손에 죽자 바보 같은 데이브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녀가 사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객인 우리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죽였다는 에드의 고백에 에드가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자신을 위해 남편이 죄를 뒤집어쓰려는 것인지 의심해 봤을 것이다. 다음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남편을 향해 반갑게 웃는 것으로 봐서는 남편의 말을 믿고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실을 밝히려 했다고 생각한 것일수도 아니면 자신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영화 속 모든 사건들과 인물들이 불명료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고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에드는 도리스가 에드가 빅 데이브를 죽인 것을 알고 자살했으리라 추정한다. 하지만 이후 검시관의 통보로 알게 되는 사실로는 아마도 도리스에게는 그녀 자신의 임신 사실이 자신이 처한 빠져 나갈 수 없어 보이는 미로 같은 상황과 윤리적 부담감등 복합적인 혼란을 유도한 것은 사실이나 무엇이 자살의 원인이었는지는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녀는 빅데이브를 너무 사랑해서 천국에서 아기까지 셋이 행복하자고 죽은 것일까? 남편인 에드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그래서 데이브를 죽인 것이라 판단하고 면목도 없고 복잡한 심정에 죽은 것일까? 아니면 사건이 해결된다해도 데이브의 아기를 임신한 사실때문에 에드와 순조롭지 못할거라 판단하고 죽은 것일까? 또 그녀는 도대체 임신 사실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것일까? 혹여 임신후 데이브와 에드를 죽이고 데이브의 아내까지 죽이고자 공모하고 있었는데 되려 에드가 아닌 데이브가 죽고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고 생각해 죽게 된 것일까?
이 영화의 주제라 할 '우리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실체를 알고 있다 말할 수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대변하는 한 축으로서 그녀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 쉽사리 판단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배경처럼 그녀 역시 그녀의 자살 이유를 그리고 그것을 자살이라 해야할지, 의도하진 않았지만 에드의 교묘한 살해라 해야할지 자살 원인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정의도 모호하게 만들며 전체 영화에서 중요한 함의로서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
빅데이브의 아내가 에드를 찾아와 데이브의 죽음에는 UFO 목격과 그 사실을 은폐하려는 미국정부의 음모가 있다는 음모론을 펼치던 대목 역시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현실을 판단하는 근거가 사실이기 보다는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필터로 이용하며 필터링하고 있는 것임을 강조하는 상징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변론을 준비하던 변호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현대인을 넘나드는 변론 준비와 변론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무엇이 실제인가 하느냐는 문제꺼리도 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세계가 만든 법정에선 사실 따윈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수긍할 만한 사실에 가까와 보이는 무엇인가만이 요구될뿐이지...
재능 있어보이던 레이첼은 그저 평범한 삶을 꿈꾸는 평범한 소녀일뿐이고 영화내내 무미건조한 인간으로만 비춰지는 것 같은 에드를 레이첼은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보고 있다. 달리는 차안에서 아빠친구인 그의 바지지퍼를 열정적으로 열어재치면서 말이다.
에드와 레이첼은 서로의 대극으로서 서로에게서 자신이 보려는 모습만을 보게 된 듯하다. 에드는 레이첼을 환하게 빛나는 순결하고 축복받은 소녀로 바라보았고 레이첼은 에드를 자신에게는 없는 열정이 불타는 인간으로 바라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감독은 레이첼이 에드의 바지 지퍼를 여는 바로 그 순간 직후의 사고처럼 우리는 다음 순간 우리 앞에 무슨 사건이 놓일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 앞의 누군가에 대해서도 알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빅데이브에게 죽은 그 드라이클리닝에 관한 사업 투자를 하라던 이가 도대체 사기꾼이었을지 정말 사업가였을지를 확신할 수 없고 영화 중반 이후에 이르러서는 그 사실이 더이상 중요한 것도 아니듯이 말이다.
우리가 현실이라는 것 속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도대체 그것은 무엇인걸까? 사실과 나란히 각자의 거리 그 너머에서 맴돌고 있는 이것은 무엇이라해야할까?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한 살인과는 전혀 다른 살인사건을 근거로 자신이 한 살인과 자신의 아내의 자살에까지 책임을 묻는 판결에 사형 언도를 받게 된다.
관찰자의 관찰행위가 관찰 대상을 인식하는데 영향을 미친다지만, 줄창 에드가 읊조려 대듯 이 세계의 미로 같은 과정을 따르다보면 결국 이르러야 할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 그것으로 위안 삼기라도 하라는 결론인 걸까? 아니면 삶이라는 미로가 끝나는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평안을 맛보게 될테니 끝에 다다를 그 날까지 그저 무력하게 닥치는 삶일랑 닥치고 다 감당하라는 것일까?
에드는 사형집행을 위해 전기 의자에 앉아 미지의 세계로 가지만 두렵기 보다는 안식을 느끼는듯 하다. 미로같던 삶이 끝나면 이 모든 것에 해답을 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가 빅데이브의 부름에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빅데이브에게 들었던 그 말 그리고 그의 재판 중 그의 처남에게 맞으며 들었던 그 말... 그 말을 그는 잊었던 모양이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야? 어떤 인간이냐고?" 이 세계만큼이나 또 타인만큼이나 우리 자신 역시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대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드가 사형을 당하는 날 밤 꿈 속에서 만난 UFO는 아마도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대상들과 사실이 아닌 가상의 것들이라고 믿는 것들 사이의 모호한 경계가 깨어지며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이루는 구성 요소로서 합일되는 것을 상징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 중 어느 것이 사실이고 가상인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우리 손에 들려진 신문의 기사로 실려있다해도 말이다.
사실이 무엇이건 그것이 우리 사이 어디쯤에서 떠다니건 우리는 어쨋건 이 미로 같은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에드가 그러했듯 언젠가 삶이 끝나는 순간 맞이할 평안이나 꿈꾸면서 말이다.
문득, 에드가 도리스의 다리를 면도해주던 장면과 전기의자에 앉은 에드가 다리면도를 당하는 장면이 생을 살며 마주친 모든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만 같다
다리에 차가운 금속이 쓸고 가는 한기가 느껴지면서 말이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The Man Who Wasn't There, 2001)
2007년 네이버 영화리뷰에 제가 남긴 리뷰를 다시 올려봅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3156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3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