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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명정정대지(明定靜大旨)
무릇 수양을 하는 사람은 그 망념을 닦고 그 진성을 기르는 것이니, 성품을 기르는 공부는 정정으로써 본을 삼아야 하리라. 정정(定靜)의 공부법은 지극히 넓고 지극히 큰 서원을 품음으로서,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믿음을 발하여 생각과 생각을 잊어버리지 아니한즉 정하고 고요함을 가히 얻으리라.

 

정(定)이란 것은 하나로 이에 정하여 모든 다른 도리가 나의 짓는 바에 더함이 없고, 저 허다한 법술(法術)이 세상을 의혹케 하는 데에 빠지지 아니할 뿐이다. 정(靜)이란 것은 하나로 정(定)한데 돌아와서 다시 다른 데로 움직이지 아니하여, 부귀영화도 능히 마음을 달래어 가지 못하고 금옥 보패도 가히 뜻을 뺏어가지 못할지니, 한 뜻이 정하는 데에 서 있음에 다섯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한 즉 맹자(孟子)의??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한 것??과, 노자(老子)의??근본에 돌아와 고요하다??함이 다 이 정정(定靜)을 이름이니라.

 

위로 색지경(色至境)이 없고 아래로 욕심 바다가 없어서, 한 생각으로 일만 년이 가면 귀와 눈이 한가지로 맑고, 몸과 마음이 한가지로 잊어버리고, 정신과 기운이 한가지로 서늘하고, 안과 밖이 한가지로 공(空)하여〔적적(寂寂)하고 고요한데 깊이 빠져 정(定)하고 담연(湛然)함이 하나에 이르러서, 먼저 나의 한 마음 하늘을 온전히 한 뒤에〕정신 기운이 냉랭(冷冷)하여 맑고, 정신 빛이 형형(炯炯)하게 밝아서 비치지 아니한 땅이 없고 통하지 아니한 이치가 없느니라. 그러나 만약 시끄럽게 움직인즉 정신 기운이 몽몽(??)하게 어둡고 정신 빛이 암암하게 어둡나니, 어찌 생각하고 생각 두는 바에 유익이 있으리오.

 

정정(定靜)함이 오직 면면하고 밀밀해서 생각이 잊어버리지 아니한즉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일백 맥이 근원에 돌아와서 자연히 불은 내리고 물은 오르며 기운이 정(定)하고 정신이 맑아져서 드디어 큰 광명이 나타남에, 위로 하늘 지경을 통하고 아래로 땅 지경을 달하여 공공(空空)하고 통통(洞洞)함에 광명이 갓이 없고 동하여도 사이가 없어서, 귀신의 지경을 통하여 보고 하늘 문을 사무쳐 여느니라.

 

 

제2장 명금기(明禁忌)

 

그러나 공부하는 데에 다섯 가지 꺼리는 것이 있으니,

첫째는 무슨 일이든지 무슨 말이든지 이루기로 하는 곳에 믿지 아니함이요,(不信正法)

둘째는, 정당한 법과 상당(相當)한 일을 만홀(漫忽)히 하여 존중하지 아니함이요,(不謹嚴)

셋째는, 시비를 알지 못하고 자의로만 집착함이요,(執着自意, 不知是非固執自意)

넷째는, 가볍고 흔들려져서 과히 기뻐하고 과히 즐겨하는데 끌림이요,(輕發喜惡)

다섯째는,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속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니,(生欲速心) 이것이 다 큰 병이라 반드시 사도에 떨어지나니, 공경하고 삼가라.

만약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이 고요히 앉음에 반드시 나의 마음이 안정하지 못한 데에 괴로워서 번거하고 잡된 생각을 금하기로 한즉 도리어 잡된 생각이 더 나나니, 오직 너그럽고 부드러움을 주장하여 자연한데 돌아가고 보면 정하고 고요함을 스스로 얻으리라.

 

비하건대, 탁한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림에 급히 맑히고자하여 자주 상고하고 자주 살핀 즉 흙물이 더욱 일어나는지라, 그러므로『정관경(定觀經)』에 이르기를, 마음 묶기를 가장 급히 하므로 먼저 웃 경계를 하였느니라. 만약 혹 정하지 못하여 악한 경계가 나타나면 마음 돌리기를 민민(泯泯)하게 하고 뜻 구하기를 한한(閒閒)하게 하며, 선생의 가르침과 자기의 원하는 바를 밀밀(密密)하게 생각하면 자연히 정하고 고요하리라.

 

무릇 공부를 할 즈음에 일만 형상이 삼연(森然)하게 벌이나니, 가히 게을리 하지도 못하며 급히 하지도 못할 것이요 분운한 번화(繁華) 머리가 다 마음 머리를 좇아 나가나니, 일체 이 기이하고, 현수(現殊)하게 드러나고, 승(勝)하고자 하고, 좋아하고, 원망하고, 응(應)하고, 변(變)하는 일이 다 자기 마음 나는 대로 베풀며 자기 마음 구하는 대로 나타나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 가운데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이 있어서 도심이 인심으로 하여금 끌리고 잡혀서 사사(邪私)한 데에 떨어지게 되면, 바른 마음은 물러가고 간사한 마음이 차차 나나니 어찌 삼가지 아니 하리오. 또 유명(幽冥)한 경계는 다만 나의 한번 생각을 궁굴려 옮기는 곳에 있나니, 번화 머리 베푼 바에 삼가 마음을 부리지 말라. 만약 혹 보이는 것을 보아도 보지 아니한 것과 같이 하여 조금도 마음과 뜻에 걸지 아니 하고, 반드시 한 점 참마음으로써 도리어 현묘한 데에 돌아와서 정성이 지극히 한결같으면 철석이라도 가히 열리고 뼈와 살이 얼굴을 나눈지라.

 

마음은 일만(一萬) 신령의 주장이 되고 몸은 음양 조화의 집이 되나니, 음부경(陰符經)에 이르기를,??다섯 도적이 없으면 우주가 손에 있고, 일만(一萬) 화(化)가 몸에 난다.??는 것은 이것을 이름이니라. 근래 세상에 수련하는 사람이 왕왕이 외구화식(外具華飾)으로써 생각만 베풀고 주문을 읽으면서 욕심을 품고 공부한다고 일컬으나, 공연히 세월만 헛되이 지내나니 어찌 참 지경에 이르리오. 대개 지극한 도(道)가 깊고 깊으나 그 다른 데에 있지 아니 하느니라.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면 도가 사람에게 멀지 아니 하나니, 주자(朱子)는 이르기를,??도(道)란 자는 가히 잠깐도 몸에 버리지 못할 것.??이라 하셨고, 자사(子思)는 이르기를,??성품 거느리는 것을 일러 도(道)??라 하셨고, 증자(曾子)는 이르기를,??그칠 바를 안 뒤에 정(定)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다 스스로 그 밝은 덕(德)을 밝히는 일이니라. 내게 이미 밝은 덕이 있으니 어찌 수련하여 밝히지 아니 하리오. 이 일단사(一段事)는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히는 법이니라.

 

 

제3장 명련기방법(明鍊氣方法)

 

무릇 수도를 하는 사람이 만약 수화(水火)의 현묘한 이치와 오행(五行)의 나고 화하는 도를 알지 못하면 한갓 단장하고 꾸미는 아이의 희롱(戱弄)이니라.

 

대저(大抵) 정정(定靜)하고 수련하는 법은 이에 나의 몸 조화하는 도를 단련하여 진실로 힘써 행하면 마음 불이 아래로 내리고 신경(腎經) 물이 위로 오르나니, 진일(眞一)한 물이 입에 가득하여 달고 윤활하고 향기 나고 맛난 것은 곧 신경(腎經) 가운데 진수(眞水)가 위로 오르는 기별이니라.

 

감(坎)과 이(?)가 사귀어 통하고, 물과 불이 이미 건넨 뒤에 조화가 다 위로 니환(泥丸)에 조회(朝會)하나니, 나의 한 점 신령한 빛을 운전한즉 화하여 남창상궁(南昌上宮)에 불방울이 되어 위로 니환현궁(泥丸玄宮)을 뚫어서 이마 문(門)이 미미하게 움직이나니, 인(因)하여 정성으로 행한즉 이마 문이 활연하여 처음에는 일만(一萬) 개미가 모이고 모이는 형상과 같아서 심히 가렵고 가려워지나니, 삼가 긁고 만지지 말고 정신과 정신을 이마 위에 모인즉 홀연히 맑은 우뢰(雨雷) 한 소리에 이마 문이 큰 돌이 벌어진 것과 같아서, 한 몸에 일만 신령(神靈)이 다 이 문으로 출입하면 형모(形貌)의 광명이 보름달과 같고 삼계 천진(三界天眞)이 구름같이 니환(泥丸)에 모여, 기뻐하고 즐거워함이 한 몸 지친(至親)과 같나니, 이것은 이에 묵묵히 상제(上帝)님께 조회(朝會)하는 법으로 실상(實相)한 이치이니라.

 

이 법을 행하는 자는 마땅히 먼저 뜻을 아래 단전(丹田)에 머무르고 담연(湛然)히 오래 앉으매 물과 불이 사귀어 통하여 옥지(玉池)에 물이 나서 입안 가득히 삼켜 내리면 정령(精靈)이 이에 올라서 위로 니환 이마 문에 조회하느니라. 만약 옥지의 물을 삼켜 내리지 아니 하면 다만 불이 올라와서 육신과 정신을 태우느니라. 그러므로 행하고 수련하는 사람이 매일 밤 반(半) 맑은 새벽에 항상 안으로 수련함을 행하여 마음에 불은 내리고 물은 오르는 형상을 생각하고 뜻에 감(坎)과 이(?)가 사귀어 통함을 두면 자연히 물과 불이 서로 순환하여 생각을 오래 궁굴려 온전히 읽히면 정신이 니환에 모이고 불방울이 이마 문에 발하나니, 이것이 도전(道傳)하는 비밀(秘密)함이요, 도(道) 닦는 요긴함이요, 도 깨닫는 참 비결이니라.

 

먼저 정(定)하고 고요한 법을 행함이 대개 이 일에 말미암을 따름이니, 정하고 고요함이 아니면 물과 불이 오르고 내리지 아니 하므로 이것을 얻는 자는 가히 날을 한정하고 성공하리라.

 

제4장 명입문요법(明入門要法)

 

선요(禪要)에 이르기를??큰 요긴함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크게 믿음이요, 둘은 뜻을 크게 분(忿) 내는 것이요, 셋은 크게 의심(疑心) 내는 것이니, 의심이란 것은 신(信)으로써 체가 되나니, 신이 십 분(十分)이 있으면 의심이 십 분이 있고 깨달음이 십 분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곧 정하고 고요한 빠른 법을 말함이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큰 원(願)이 없으면 지극한 정성이 나지 아니 하고, 큰 의심이 없으면 죽기로써 하는 분이 나지 아니 하고, 큰 신이 없으면 참 의심이 나지 아니 하느니라.

 

여쭙기를,??어찌하여 원하는 가운데에서 신이 나고 분이 나고 의심이 나고 정성이 나는 것입니까??? 답하여 가로되,??한 하늘 아래에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보패(寶貝)되고 지극히 착하고 지극히 높은 법은 오직 한 영보진국(靈寶眞局)이라, 영보국(靈寶局)은 사람사람이 각각 몸 안에 품부(稟賦)하여 있나니, 곧 하늘이 명하신 나의 본래성품(本來性品)??이라고 말씀하셨다.

 

성품을 거느려서 도를 닦고 덕을 밝혀 빛을 발하면 가히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平)하며, 가히 억조(億兆)의 군(君)과 스승이 되며, 가히 한량없이 수(壽)하는 신선(神仙)이 되느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가로되,??하늘이 명하신 덕이 품부(稟賦)가, 사람 될 처음에 머리는 위에 삼청진궁(三淸眞宮)의 기운으로 화하고, 배는 아래 산림천택(山林川澤)의 얼굴을 받고, 가슴은 일월성신(日月星辰)과 풍운우뢰(風雲雨雷)와 음양조화의 부락을 품었나니, 이는 바로 나의 몸에 천진제군(天眞帝君)과 구령삼정(九靈三精)과 오신진군(五神眞君)과 내외장군(內外將軍)과 좌우관속(左右官屬)과 제부공조(諸府工曹)와 및 팔만사천원군(八萬四千元君)이 각각 부락을 의지하여 나뉘었으니, 이것이 이에 영보도국(靈寶道局)이니라.

 

닦아서 밝은 자는 신선이 되고 성현이 되며, 그 마음을 놓아 버린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느니라. 닦아서 밝히고자 하는 자는 큰 원이 아니고 보면 무엇을 하리오. 또 사람사람이 각각 이 영보국이 있으니, 어떠한 사람은 얻으며 어떠한 사람은 얻지 못하는 것인가? 라고 큰 분이 나게 되면??일만 이치가 나에게 갖추고 일만 법이 여기에 갖추었나니, 오직 하나 뿐이거늘 도가 어찌 문이 많으며 오직 하나 뿐이거늘 법이 어찌 길이 많으며, 오직 하나 뿐이거늘 사람이 어찌 많이 구하며 오직 하나 뿐이거늘 내가 어찌 다시 의심하리오.??하고 생각하면 의심이 없어지고 바란 즉 의심이 있나니, 의심이 가고 의심이 옴에 의심할 바가 없거늘 공연히 무엇을 의심하리오. 홀연히 마음 생각을 태워 밝히면 이것이 이에 참 의심이니라. 이 의심 아래에 일만 의심이 고요하고 적적하여 주야를 분간 못하여 꿈도 같고 참도 같아서 텅 비고 적적한 천지에 오직 한 의심뿐이거늘 이것이 큰 의심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대개 의심 의(疑)자의 공부가 가장 알아 얻기가 어려우니, 만약 크게 믿는 마음이 없으면 참 의심이 나지 아니하므로 선요(禪要)에 이르기를,??신(信)이 십 분이 있으면 의심이 십 분이 있고 깨달음이 십 분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가르쳐 이름이니라. 신(信)함을 가히 신할 것이요 정성함을 가히 정성할 것이니, 신으로써 정(定)하고 고요하며 신으로써 분 내고 의심 내나니, 크게 믿음이 아니면 신이 어찌 장구(長久)하리오. 한 번 정함이 변하지 아니하여 시(始)와 종(終)이 한결같으면 이것을 일러 정성이라 하느니라.

 

옥경(玉經)에 이르기를,??정성으로써 도에 들어가며, 묵묵함으로써 도를 지키며, 부드러움으로써 도를 쓴 즉, 자타가 한 가지로 잊어버리고 밝은 빛이 이에 나며 성인의 지혜가 스스로 온전하다.??하였고, 또 음부경(陰符經)은 전부 영보(靈寶)의 시와 종을 발하여 가르침이라, 그러므로 이 영보를 수련하는 사람이 음부(陰符)로써 정정(定靜)의 원경(元經)을 삼아서 밖으로 외우고 생각하며, 안으로 정하고 고요하면 이것이 영보의 시와 종이 다 음부 三편에 있으므로 옛 법을 영보에 전함이니라.

 

본래 문자(文字)가 없고 다만 구결(口訣)로만 음부를 줄 뿐이라, 그러므로 영보의 참 도를 아는 자가 드문지라, 이제 이미 문자가 있고 또 가령(?令)을 기록하였으니 어찌 화창하게 밝히지 아니하리오. 다시 선현의 수련하는 지도(指導) 문자(文字)에 더하여 앞으로 오는 학도(學徒)의 도 배우는 마음을 열리게 하나니, 또한 가히 이르되 수련하는 공부에 일조가 되니 마음을 씻고 새로이 읽을 것이니라.

 

옛적에 서봉도사(西峰道師)가 학도에게 이르시기를,??천하에 주인 없는 한 집이 있으니 이것이 영보국이라, 그 가운데 천하 무궁한 묘함과 무궁한 보패와 무궁한 재물을 감추어 놓고 팔만 사천 문로(門路)를 통하여 열어 놓고, 담과 담을 둘러쌓고 욕심 있는 자와 게으른 자와 어리석은 자와 불신하는 자로써 각각 여러 문로를 지키라.??하고 명령하기를,??탐하고 욕심 있고 게으르고 어리석고 불신하는 자가 와서 이르면 너희 등이 각각 지켜서 단단히 막고, 비록 아무라도 정성 있고 믿음 있고 온전하고 한결 된 자가 와서 이르면 문을 열어 들이어서 빈집 주인을 삼아 무궁한 재물과 보패를 허락하여주라.??이르니, 세상 사람이 다 이 말을 듣고 웃으면서 버리고 취하지 아니하며 말하기를,??이러한 재물과 보패를 내가 어찌 감히 취하리오. 이것은 복 있고 인연 있는 자가 마땅히 취할 바이라.??하여 감히 가서 구하지 아니 하니, 석가(釋迦)가 말을 전하시고 노자(老子)는 길을 가르치시고 공자(孔子)는 권하여 보냈으나 또한 나아가 취하지 아니 하고, 혹 가는 자는 불신이 있어서 막아 받지 아니 하고, 또한 탐욕 있고 나태하고 어리석은 자도 막아서 안으로 들이지 아니 하나니, 그 사이에 능히 들어가 취하는 자는 오직 천만 사람 가운데에 한 두 사람뿐이요, 그 나머지는 불신하고 욕심 있고 게으르고 어리석은 자이라.

 

슬프다! 이 세상 사람들이여! 넓고 편안한 집을 거하지 아니 하고, 바른 길을 놓고 가지 아니 하고, 모두들 사람의 재산을 도적질하고, 혹 부자의 남은 재물을 빌고, 혹 길가는 사람의 로비(路費)를 빼앗고, 혹 벽을 뚫고, 혹 속여 취하고, 혹 기한(飢寒)하고, 혹 다투고 싸움하여 다섯 도적이 아울러 일어나고 세 도적이 쉬지 아니하여 천하가 크게 요란하니, 법관이 형벌을 쓰고 친한 벗이라도 또한 비방하고 사람의 유(類)에 들지 못하게 하나니 가히 일러 한심할 곳이라.

 

그 사람의 하는 바는 마땅히 취하지 아니할 바를 취하여 말하기를,??내가 빠른 법을 행하여 쉽게 취하고 쉽게 얻는다.??하여 혹 죽고 혹 패함에 괴로움을 받아도 후회할 줄 모르고 도리어 지리(支離)함을 보니, 이것이 어리석은 것인가 게으른 것인가? 공자의 이른바 분토(糞土)의 담장이요, 맹자의 이른바 하우(下愚)에 옮기지 아니한 자가 이것이 그 무리들이니라.

 

선서(禪書)에 이르기를,??능히 여러 문 가운데에 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무궁하게 갊은 보패를 취하여 써도 다함이 없고 취하여도 금하는 자가 없으니, 이 보패가 밖으로부터 오는 물건이 아니요 이것이 집안에서 나고 나는 무궁한 물건이니라.

 

능히 당(堂)에 오른 자는 정성이요 능히 문을 여는 자는 의심이요 능히 물건을 주장하는 자는 신이요 의리에 다른 사람의 재물과 보패를 취하지 아니 하고 마땅히 취할 물건을 취하는 자는 분(忿)이니라. 만약 신과 분과 의 세 글자가 없다면 담 밖에 반환(盤桓)하고 처마 앞에 두류(逗?)하여 세월을 만연(挽連)하여 지냄에 공연히 기운 힘을 허비하다가 한심하고 물러가서 이에 돌아다니며 얻어먹는 사람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비유하여 이르기를,??돌 가운데 갊은 옥은 철정(鐵釘)이 아니면 캐지 못하고, 여석(礪石)이 아니면 갈지 못한다.??하였고, 또 이르기를??범의 소굴에 들어가지 아니 하면 어찌 범의 자식을 얻으리오.??하였으니, 철정은 신심을 말함이요 여석은 의심을 말함이요, 범의 소굴에 들어가는 것은 분심을 말함이니, 캐고 갈고 범의 자식을 얻고자 하는 자는 큰 분을 용맹 있게 발하여 금강리(金剛利)같은 예리한 칼로 세상 모든 인연을 끊고 큰 의심을 발하여 요망한 마음과 번거한 뜻을 곧 죽여 없애고 큰 신을 품어서 능히 이 문에 들어온 연후에야 철주(鐵柱)의 중심이 되고 석벽(石壁)의 외면이 되어, 천만 스승의 말이라도 다시 이 말보다 더 묘함이 없고, 묘한 도와 현현(玄玄)한 이치가 또 이 도에 더함이 없으며, 또 눈에 좋게 보이는 바가 없으며, 귀에 기꺼이 들리는 바가 없으며, 묘함이 다른 묘함이 없으며, 보패가 다른 보패가 없으니, 한 마음이 정하고 고요함에 탕탕(蕩蕩)하고 활활(豁豁)하여 작은 먼지만한 것도 어리고 막힘이 없으니, 사람이 처음 태어난 것과 같아서 차(茶)를 마셔도 차인지 알지 못하고 밥을 먹어도 밥인지 알지 못하고 행하여도 행하는 줄 알지 못하고 앉아도 앉았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정의(情意)와 식심(識心)이 돈연(頓然)히 끊어지고 계교가 도무지 잊어 버려서 기운과 호흡은 있으나 죽은 사람과 같고 또는 허수아비나 흙으로 만든 사람 형상과 같나니 이것은 정(靜)에 잠겼을 때를 이름이요, 정에 잠겼다가 홀연히 기운이 발하여 정신이 동한즉 잠을 곤히 자다가 잠을 깬 것과 같아서, 모든 일에 종(宗)이 없고 차서를 차리지 못하므로 무엇이나 대질리는 곳이 서로 어긋나고 어긋나나니 이것은 정에 잠겼다가 정을 깨쳐 나오는 형상을 이름이요, 정을 깨쳐 마음이 차차 밝아진즉 마음 빛이 돈연히 발하여 시방에 통연(洞然)함에 태양빛이 하늘에 밝은 것과 같고 명경(明鏡)이 대(臺)에 당한 것과 같아서 무엇이든지 한 생각에 넘지 아니하여 동연히 밝게 깨달음을 이루나니, 이 지경에 이른 자는 불가의 부처요 영보국의 성현이요 선가의 신령한 단(丹)이니라.

 

그러나 만약 신분의성이 지극하지 못하면 팔만 사천 마희(魔戱)군사가 육근 문머리에 엿보고 있다가 기틀을 따라 마음을 달래어가고 백방으로 조화를 지어서 사면(四面)의 번화(繁華) 머리에 심신(心神)을 괴롭게 하고 시끄럽게 하나니, 그럴 때에는 곧 성현의 가르침과 자기 공부하는 본의를 생각하며, 또 요긴한 방법은 무심하기를 주장하고 정력을 더하여 날을 한정한 공부에 나아가며, 비하건대 나의 몸으로 하여금 천척정저(千尺井底)와에 떨어진 형상과 같이 하여, 아침으로부터 저녁때에 이르고 저녁때로부터 아침에 이르기까지 일천 번 생각하고 일만 번 생각하는 것이 결단코 오직 빠져나오기를 구하는 마음이요 결단코 두 마음이 없어서 진실로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공부 베풀기를 날을 한정하고 가히 기약하리라.

 

이 말은 곧 상화(相火)와 허화(虛火)가 있고 강기(强氣) 있고 건장한 사람이라야 마땅히 취할 바이요, 또 만약 유온(柔溫)하고 기약(氣弱)한 사람인즉 나의 몸이 죽을 죄에 당함으로 깊이 옥(獄) 가운데에 갇혀서 날을 한정하고 베이어 죽을 차(次)에, 사면을 수직(守直)하다가 홀연히 옥졸(獄卒)이 취하여 잠들 때를 당하니 때에 밤이 적적하고 고요할 때에 수갑을 풀고 잠긴 쇠를 부수고 옥을 넘어 몸을 벗어난즉 동서를 분간하지 못하고 곧 도망하여 지경을 나갈 즈음에, 독한 룡(龍)과 모진 짐승이 앞에 당하여도 두려운 마음이 없고 화살과 돌과 칼과 창도 또한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없어서 빨리 달아나기를 무릅쓰고 기구(崎嶇)히 험한 길을 평지같이 밟으며 가시덤불을 초개같이 보나니, 이것이 어떠한 연고인가 하면, 차라리 다른 데에서 죽을지언정 이 옥 가운데에서는 죽지 아니할 뜻이니라. 이것은 이에 극절한 마음이니 공부할 즈음에 이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날을 한정하고 할 공부요 일백 번이라도 마치는 공부니라.

 

그러나 이 극절한 말은 공부해 나가는 길과 큰 취미를 얻은 사람이 자연히 행하는 법이요, 사람마다 취하고 사람마다 행하는 법은 아니니라. 누구를 물론하고 공부의 길을 자상히 알며 큰 취미를 얻는 사람은 자연히 그리 되나니, 그 길과 맛을 알기로 하면 위태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선인(先人)의 가르침을 잊어버리지 말고 생각이 전일하면 정정(定靜)을 가히 얻을 것이요 극절한 공부에 나아가느니라.

 

 

제5장 명풍토이화지공(明風土移化之功)

 

정정을 얻은 후에는 미미하게 피어나는 광명이 날로 돋우나니, 오직 정(精)하고 오직 하나라야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을 것이요, 반드시 가운데에 떳떳하면 중용(中庸)이요 대체를 배우면 대학(大學)이요 도리를 의논하면 논어(論語)라, 원형이정(元亨利貞)과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성품을 따라 느껴 나타나나니 혹 성인과 현인이 곧 풍토의 품수(稟受)는 스스로 다르나 기운 바탕은 같은 자이니라.

 

그러나 이 나의 영보 참 비결은 사람을 잘 화하게 하는 자이니, 많이 정정편(定靜篇)을 외우고 음부의 뜻을 보존하여 생각하고, 기운을 수련하여 물과 불을 운전하면 풍토를 가히 옮길 것이요 참된 데에 돌아와 착한 데에 밝아서 삼재(三才)에 참예하고 일만 번 화하는 데에 남에 성인과 내가 더불어 같으리라. 성현의 수련하는 법이 다시 이 외에 더 요긴함이 없고 부처와 보살도 다 이와 같이 수련하였으니 이와 같이 수련하는 자는 서로 같으리라.

 

공부하는 사람마다 이대로 어긋남이 없으면 별로 더디고 속할 것도 없고 먼저 하고 뒤에 함도 없으므로 공부의 대기한은 10년을 한정하면 무불관통(無不貫通)인데 10년 내에 매년 입선기한은 혹 90일로 정하여 2회도 하고, 혹 50일로 정하여 4회도 하는 가운데, 도를 깨는 때에는 정에 잠긴 3일 후에 깨기도 하고 혹 5일 후에 깨기도 하고 혹 7일 후에 깨기도 하고 혹 반시 내에 깨기도 하나니, 공부 한정이 빠르기로 하면 빠르고 멀기로 하면 먼 것이 다 지극히 정성하는 데에 있느니라.

 

공부하는 사람이 도 깨치기가 더디고 어려운 데로 보면 천년 눈먼 거북이 만리성에 몸을 벗어나기와 같고 3일이나 굽은 바늘로 작은 겨자씨를 던져 뚫기와 같고, 쉬운 데로 보면 지속(遲速)은 물론하고 공부하는데 다른 수고가 더 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순숙되도록 몸과 마음이 점점 한가해지며, 천척정저에 떨어졌던 사람이 평지에 나온 것과 같고 옥에 갇혔던 사람이 옥 밖에 나온 것과 같은데, 무엇을 인하여 지속을 말하며 되고 안 되는 말을 하리오.

 

도를 배워 가는 사람이 급속하고 위태한 마음을 차차 경계하여 천인(天人)을 원하여 배우고 다른 사사한 도에 뜻을 망령되게 말고, 하나로 나의 영보국 중에 나아가서 스스로 밝히면 가히 신선도 되고 가히 부처도 되고 진인도 될 것이니, 도문의 모든 학도는 많이 이 책을 외우면 기운이 화하고 정신이 화하여 가히 정하고 고요함을 얻으리니 닦아 밝혀서 이에 그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 가할지니라.

 

 

제6장 명정정차제(明定靜次第)

 

세존이 좌현진인(左玄眞人)에게 말씀하시기를,??대범 도를 닦고자 할진대 먼저 능히 번거한 일을 놓아버릴 것이니라. 밖으로 번거한 일이 모두 다 끊어지고 마음에 젖은 바가 없는 연후에 편히 앉아서 안으로 마음 일어남을 보는 자가 한 생각 일어남을 깨워서, 이에 세속 인연과 좋은 낙을 제거하고 멸한 후에 안정하기를 힘쓸 것이니라.

 

그 다음에는 비록 적실히 탐하고 착(着)함이 없다고 하나, 부유난상이라도 또한 다 멸하여 제거하고 주야 근행하여 잠깐이라도 떠나지 아니할 것이니라. 오직 번뇌와 망상은 멸할 것이요 대중 잡는 마음은 멸하지 아니하며 다만 비우는 데에 마음을 어릴 것이요 주착하는 데에 마음을 어리지 아니할 것이니라. 또는 하나라고 하는 데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마음의 떳떳한 것이니라. 만일 주하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다투고 다투며 번거한 생각이 더 일어나느니라. 또는 처음으로 배움에 마음 붙잡기가 심히 어려우니 혹 붙잡아도 붙잡지 못하여서 잠깐 머물렀다가 도로 잃어버리느니라.

 

그러나 마음 붙잡을 때에 가고 머무는 것이 사귀어 싸움에 백체(百?)가 유행(流行)하여 오래 오래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 하면 바야흐로 이에 조숙(調熟)하나니, 잠깐도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고 근심하지 말고 다만 일천 가지 일 생기는 근원을 없앨 것이라, 차차 마음이 밝아진즉 행하고 서고 앉고 누울 때와 일을 건넬 곳과 시끄럽고 고요한 곳에 다만 편안하기만 주장하며, 일이 있든지 일이 없든지 항상 무심하기를 주장하며, 고요한 데에 처하든지 시끄러운 데에 처하든지 다만 뜻만 오직 한결같이 할 것이니라. 만일 마음 정(定)하기를 가장 급히 하면 곧 병이 생겨서 기운이 발하여 미쳐 엎어지나니, 이것이 그 급한 마음으로 일어난 병이니 그리 알라.

 

학도자(學徒者)가 만일 마음을 붙잡아서 동하지 아니 하면 또한 희로애락에 놓아 맡겨볼 것이니라. 그리하면 넉넉하고 급함이 곳을 얻어서 자연히 항상 골라 맞으며, 마음을 써도 착함이 없으며, 놓아도 동하지 않으며, 시끄러운 데에 처해도 악한 마음이 없으며, 일을 건네도 번뇌심이 없는 자가 이것이 참 진정(眞定)이라, 일을 건네지 아니 하면 번뇌가 일어나지 아니 하므로 일이 많음을 구하며, 시끄러운 처소를 당하지 아니 하면 악한 마음이 나지 않으므로 강연히 시끄러운 처소에 가보느니라.

 

일 없는 것으로써 참 성정(性靜)을 삼고, 일 있는 것으로써 응하는 자취를 삼느니라. 이대로 하면 물과 명경으로 햇빛을 대한 것과 같아서 물건을 따라 얼굴을 나타내느니라.

 

선하고 교교한 방편이 오직 능히 정에만 들어가게 하는 것이요, 지혜 발함의 더디고 속함이라 하는 것이 사람에게 말미암지 아니 하나니, 정 가운데 혜를 구하지 말라. 급히 구하면 성정을 상함이요 성정을 상하면 혜가 없어지느니라. 마음 밝아지는 이치가 정 가운데 혜를 구하지 않아도 혜가 자연히 나나니, 이것을 일러 참 혜라고 이름 하느니라.

 

혜를 얻은 후에 혜가 있어도 쓰지 아니하며, 안으로는 지혜가 밝되 밖으로는 어리석은 것과 같이 하여 더욱 정과 혜를 온전히 하면 쌍으로 아름다움이 한량이 없으리라.

 

만일 정 가운데 생각과 생각이 많이 일어나면 뭇 사사가 정신을 요망하게 하며 일백 마취가 마음을 따라서 보는 바를 응하여 따르느니라.

 

세존과 제불 진인의 법을 이에 밝히노라. 학도자가 만일 마음을 붙잡아서 참 정이 된 마음으로 하여금 위로 활연(豁然)히 덮은 바가 없으며 아래로 광연(曠然)히 걸린 바가 없게 되면, 구업은 날로 사라지고 신업은 다시 짓지 아니하며 얽히고 얽힌 바가 없어서 진롱(塵籠)을 멀리 벗어나나니, 그리 되는 자는 행하기를 오래하면 자연히 도를 얻느니라.

 

대범 도를 얻는 사람이 무릇 일곱 가지 통함이 있으니,

 

첫째는 마음을 얻어 정을 본 후에 모든 진루(塵漏)를 깨친 것이요,

 

둘째는 이목구비로 행하는 병이 여러 가지로 몸에 얽히고 얽힘이 모두 다 사라짐에 몸과 마음이 가볍고 서늘함이요,

 

셋째는 위태하고 요손(夭損)한 법을 안보(安保)하여 평탄한데 돌아와 성명(性命)을 회복함이요,

 

넷째는 수(壽)를 일천 년에 연하였으니, 이름 하여 선인(仙人)이라 하며,

 

다섯째는 형체를 단련하여 기운을 만들었으니, 이름 하여 진인(眞人)이라 하며,

 

여섯째는 기운을 단련하여 귀신을 만들었으니, 이름 하여 신인(神人)이라 하며,

 

일곱째는 귀신을 단련하여 도에 합하였으니, 이름 하여 지인(至人)이라 하느니라.

 

공부하는 사람이 그 기틀을 보아 기운을 따라서 더욱 밝음을 얻고 도에 이르러 혜를 이루면 이에 두렷이 갖추느니라. 만일 이에 오래 배워 마음을 정하면 몸과 마음에 한 통(通 ; 착심)도 없어야 분명한 불인(佛人)이니라.

 

또는 공부하는 사람이 날과 해를 재촉하며 풍속을 떠나 부모처자를 이별하여야 도를 얻는다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혜각(慧覺)이라 하니, 실은 도를 구하는 이치가 처소는 고사하고 이상과 같은 해설을 열람한 후에 선인의 가르침만 어긋나게 않으면 도를 얻느니라.

 

 

제7장 명진상지도(明眞常之道)

 

세존이 말씀하시기를,??큰 도가 형상이 없으나 천지를 낳고 기르며, 큰 도가 정(情)이 없으나 일월을 운전해 행하며, 큰 도가 이름이 없으나 만물을 장양하느니라. 내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되 강연히 말하면 도라고 하노라.??하셨느니라.

 

대범 도의 행하는 것은 맑은 것도 있고 탁한 것도 있으며, 동한 것도 있고 정한 것도 있으니, 하늘은 맑고 땅은 탁하며 하늘은 동하고 땅은 정하며, 남자는 맑고 여자는 탁하며 남자는 동하고 여자는 정하나니, 근본이 내리고 끝이 흘러서 만물을 내는지라, 그러므로 맑은 것은 탁함의 근원이요 동하는 것은 정하는 바탕이라, 사람이 능히 도를 알아 항상 청정하면 천지가 이에 돌아오느니라.

 

대범 사람의 정신은 맑은 것을 좋아하되 마음이 들어서 흔들어 탁하게 하며, 사람의 마음이 고요한 것을 좋아하되 욕심이 들어서 운전해 요란하게 하나니, 항상 능히 그 욕심이 마음을 운전해가는 것을 없애고 보면 마음이 스스로 고요해지느니라.

 

그 마음을 맑히고 보면 정신이 스스로 맑아져서 자연히 여섯 욕심(안이비설신의 육근)이 나지 아니하여 세 독(탐진치 삼독)함이 소멸하나니, 능히 도를 얻지 못한 자는 마음을 맑히지 못하고 욕심을 멸하지 못한 연고라, 능히 욕심을 멸한 자는 안으로 그 마음을 봄에 마음이 그 마음이 없으며 밖으로 그 얼굴을 봄에 얼굴이 그 얼굴이 없으며 멀리 그 물건을 봄에 물건이 그 물건이 없나니, 이 세 가지를 이미 깨달으면 오직 공한 것만 보나니 공한 것을 보는 것 또한 공해서 공이 공이라고 한 바도 없어지며, 공이라고 한 바가 이미 없어지면 없다 하는 것도 또한 없어지며, 없다한 것이 이미 없고 보면 담연히 항상 적적해서 적적함이 적적한 바가 없어지면 욕심이 어찌 능히 생기리오.

 

욕심이 이미 생기지 아니하면 곧 이것이 참 진정(眞靜)이라, 참되고 떳떳하게 물건을 응하며 참되고 떳떳하게 성정을 얻어서 항상 응하여도 항상 고요하면 항상 청정하느니라.

 

이와 같이 청정하면 점점 참 도에 들어갈 것이요 점점 참 도에 들어가면 이름 하여 도를 얻었다고 하나니, 비록 도를 얻었다고 이름 하나 실상은 얻은 바가 없고 중생을 위해서 교화하는 것을 도를 얻었다고 이름 하나니, 이것을 능히 깨달은 자는 가히 성현의 도를 전하리라.

 

또 말씀하시기를,??상등 사람은 자타의 마음이 없으므로 다투고 다툼이 없으며 하등 사람은 자타의 마음이 있으므로 다투고 다투며, 상덕(上德)은 덕을 써도 덕이라는 상이 없으며 하덕(下德)은 덕을 쓰면 덕이라는 상에 집착하나니, 집착하는 자는 도라고 이름 하지 않느니라.

 

중생이 참 도를 얻지 못하는 것은 망령된 마음이 있는 연고이니, 이미 망령된 마음이 있으면 곧 정신이 놀라며 그 정신 이미 놀라면 곧 만물에 집착함이 있으며, 만물에 집착함이 있고 보면 곧 탐한 욕심이 나며 탐한 욕심이 나고 보면 이것이 번뇌라, 번뇌와 망상이 몸과 마음을 근심하게 하고 해롭게 해서 문득 탁하고 욕된 데에 만나게 해서 생사에 흐르고 고해에 항상 잠기어 길이 참 도를 잃어버리느니라. 참되고 떳떳한 도를 깨달은 자는 스스로 얻을 것이요 얻어 깨달은 자는 항상 청정 하느니라.??

 

대범 움직임이 있어서 동한 것이 동하지 아니한 데에서 나며, 함이 있어서 하는 것이 하지 않는 데에서 나나니, 하는 것이 없으면 귀신이 돌아가고 귀신이 돌아가면 만물이 적적하다고 이르며, 움직이지 아니하면 기운이 정하고 기운이 정하면 만물이 생함이 없나니, 귀신과 귀신이 서로 지키며 물건과 물건이 서로 바탕 해서 그 근원과 그 뿌리를 묵묵히 깨달음에 나를 스스로 알아서 무간(無間)한데 돌아가면 죽지고 않고 나지도 않아서 천지로부터 하나가 되느니라.

 

또는 눈에 보는 것을 잊어버리면 광명 넘침이 한량이 없으며, 귀에 듣는 것을 없애면 마음 지식이 항상 깊나니, 두 기틀을 한 가지로 잊어버려서 뭇 묘한 문에 떨쳐남에 순순(純純)하고 순순하며 온전하고 온전해서 만물과 산하대지에 합하며 원만하고 원만하며 밝고 밝아서 낱 없는 데에 합하면 천지에 큰 물건을 내가 벼루 줄잡은 바요 만물의 여러 가지를 내가 가진 바이니, 어찌 다하고 마침이 있어서 떨어지고 부족함을 말하리오.

 

또 그 상 없는 것을 기르는 것이 상이 짐짓 떳떳이 있는 것이요 그 체 없는 것을 간직하는 것이 체가 짐짓 온전히 참되는 것이라, 온전하고 참된 것이 서로 건네면 가히 장구(長久)하나니, 하늘이 그 참됨을 얻었으므로 길고 땅이 그 참됨을 얻었으므로 오래하고 사람이 그 참됨을 얻었으므로 수(壽)하나니, 세상 사람이 능히 장구(長久)하지 못한 것은 그 상 없는 것을 잃어버리며 그 체 없는 것을 흩어서 능히 백해(百骸)와 구규(九竅)로 하여금 참 체로 더불어 아울러 보존하지 못하므로 죽느니라.

 

또는 선인(先人)이 생(生)하되 생함이 얼굴이 없으며, 후천이 존(存)하되 존함이 체(體)가 없느니라. 그러나 체가 없고 보면 일찍이 있지를 않나니, 그러므로 가히 사의로써 생각하고 의논하지 못하느니라.

 

고요한 것이 성정이 됨에 마음이 그 가운데 있으며 움직인 것이 마음이 됨에 성정이 그 가운데 있으니, 마음이 생하면 성정이 멸하고 성정이 나타나면 마음이 멸하나니, 성정이 나타나면 허공과 같이 형상이 없어서 담연히 원만 하느니라.

 

큰 도가 형상이 없으므로 밖으로 그 마음이 나지 않아서 여여자연하고 넓어서 갓과 지음이 없으므로 경계를 대하여도 경계를 잊어버려서, 여섯 도적(盜賊)마(魔)에 잠기지 않으며 티끌에 거(居)해도 티끌을 벗어나서 일만 인연 화하는 데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정(靜)한데 이르러 동하지 아니하며 화한데 이르러 옮기지 아니하면, 지혜가 시방에 비쳐서 허(虛)한 변화가 한량없으리라.

 

 

제8장 총명강요(總明綱要)

 

대범 수양 입정의 공부는 그 법이 하나가 아니니, 외수양법(外修養法)이 있고 내수양법(內修養法)이 있으며, 외정정법(外定靜法)이 있고 내정정법(內定靜法)이 있나니, 공부하는 사람은 능히 여러 법을 통관(洞觀)하여 방편에 맞게 쓴 후에 가히 결함 없는 것으로 시작하여 큰 성공을 얻을 것이니라.

 

또한 자성의 정과 소승의 정과 대승의 정이 있으니, 이에 역시 밝게 판단하여 잘 고찰한 후에 가히 그릇됨이 없는 것으로 시작하여 바른 정(定)을 얻으라. 이것이 이 수양의 도이니라. 이치가 법이 많으니, 말은 비록 다르나 뜻은 모두 같은 것이라 만약 그 강요를 잘 알지 못하면 집착에 빠질까 우려하노라. 편벽된 수행이 병통이므로 다시 이 책의 전편의 모든 뜻을 별도로 간단하게 밝힌 것이다.

 

외수양(外修養)이라고 하는 것은, 그 수양의 의지가 외경(外境)을 대치(對治)하는 데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외경을 대치한다는 것은,

 

첫째는 피경(避境)공부이니, 처음 공부를 할 때에 마땅히 밖에서 유혹하는 경계를 멀리 피해야 하는 것이요,

 

둘째는 사사(捨事)공부이니, 긴요하지 않은 일과 너무 번잡한 일은 마땅히 놓아버리고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요,

 

셋째는 의법(依法)공부이니, 상승 해탈의 법을 믿어 받들어 진리로 안심을 구하는 것이요,

 

넷째는 다문(多聞)공부이니, 위인들의 관대한 실화를 많이 들어 항상 국량을 크게 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공부를 하여갈 즈음에 이 네 가지 일을 행하면 자연히 외경이 평정(平定)하여져서 방해하는 마음의 폐단이 없으리라.

 

옛 말에 이르기를,??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하였으니, 바람은 곧 외경이니라. 바람이 그친 즉 나무가 고요하고, 경계를 다스린즉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니라.

 

내수양(內修養)이라고 하는 것은, 수양의 뜻이 안으로 닦아 쉬어버리는 데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안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닦는 것은,

 

첫째, 집심(執心)공부이니, 염불 좌선을 할 때와 일체의 때 가운데 항상 마음을 잘 붙잡아 동하지 아니하고 나의 마음과 정신으로 하여금 밖의 경계에 흐르지 않게 놓아버리지 않는 것이니, 소를 길들이는 사람이 고삐를 단단히 잡고 놓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둘째, 관심(觀心)공부이니, 집심공부가 점차 익숙해지면 혹은 방임 자적(自適)하면서 다만 마음이 가는 것을 보아 그 망념만을 제재(制裁)하는 것이니, 마치 소를 길들이는 사람이 고삐를 놓고 소를 보되 다만 어지럽게 다니는 것을 제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요,

 

셋째, 무심(無心)공부이니, 관심공부가 이미 순숙되면 혹은 본다는 상도 놓아서 서로 밝고 고요하게 자재함에 맡겨보는 것이니, 마치 소를 길들이는 사람이 사람과 소가 둘이 아닌 지경에 처음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동과 정이 한가지로 참되느니라.

 

경에 이르시기를,??마음이 청정(淸淨)하면 일체가 다 청정하여, 마음이란 것이 허공과 만상을 포함하였다.??고 하셨거니와, 한 마음이 청정하면 백 천 외경이 다 청정하여 경계와 내가 사이가 없이 한가지로 정토(淨土)를 이루리라.

 

외정정(外定靜)이라고 하는 것은, 정정(定靜)의 뜻이 입지(立志)가 흔들리지 아니한 데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입지가 부동하다는 것은,

 

첫째는 큰 서원을 발하는 것이니, 서원이 지극하면 천만 가지 세상의 인연이 앞에 가로 놓여 있어도 보되 보이지 않고 마음에 조금도 걸림이 없는 것이니, 마치 석가세존께서 대도에 발심하여 왕궁의 쾌락과 설산(雪山)의 고(苦)가 마음과 사상(思想)에 머물지 않음과 같은 것이요,

 

둘째는 큰 신심을 발하는 것이니, 신심이 지극하면 천만 세간의 법이 비록 분운(紛?)한 곳에 아울러 처하여도 다시 사량과 취사하는 분별심이 없는 것이니, 마치 혜가(慧可)가 달마에게 한번 믿고 뜻을 결정하여 몸을 잊고 법을 구하는 사상과 같은 것이요,

 

셋째는 큰 분심을 발하는 것이니, 분심이 지극하면 천만 장애가 비록 포위 중첩하여도 두려워하고 물러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마치 예수의 십이사도가 위험을 무릅쓰고 도를 지키며 죽어도 마지않는 사상과 같은 것이니라.

 

그러므로 공부를 할 즈음에 이 세 가지 사상이 있으면 자연히 입지가 태산 같아서 흔들림이 없으리라.(특별히 세존과 혜가와 십이사도를 드는 것은 다만 한 예를 들어 말한 것이고, 모든 성현들의 능히 도문에 들어간 것은 모두 다 이러한 심사(心思)이며, 또한 표현은 서로 다르지만 실행의 결과는 하나이며 근본 사상도 하나로 같으니라.)

 

내정정(內定靜)이라 하는 것은, 정정의 뜻이 안으로 마음에 요란함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염불과 좌선을 할 때에나 또는 일체 일이 없을 때에 요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분별에 일어나는 때에 이르러 분별이 그쳐서 적요(寂寥)하게 한 생각도 없어서 맛도 잊고 형체도 잊어 일념을 기르는 것이요,

 

둘째는 행주 동작과 내지 일체 일이 있을 때에 그 뜻이 올발라서 비록 찰라 간이라도 망념이 동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옛 성인이 말씀하신??일직심一直心??이 이것이요,

 

셋째는 사상(四相)이 공하고 육진(六塵)이 몰록 정결하여 경계를 대하되 경계를 잊고 착도 없고 물듦도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마땅히 행하여도 행하는 바가 없고 동하여도 동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니라.

 

그러므로 공부를 할 즈음에 이 세 가지 힘을 얻으면 자연히 마음 바다가 평정하여지고 번뇌가 영원히 끊어지느니라. 또는 밖에서 도를 구하는 자는 그자성이 원래 정(淨)하고 정혜(定慧) 인연을 알지 못하고 혹 삿된 생각으로 원을 일으키고 혹 기이한데 의지하여 법을 믿고 혹 밖으로 꾸미는 것으로써 도를 구하며, 안으로 닦지 아니하고 밖으로 신통에 마음을 두어 주문을 외고 명상에 고집 불변하여 오래오래 성숙(成熟)하면 또한 정의 도에 들어가기 어려우니라.

 

그러나 만약 정(定)을 닦는 가운데 이적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마음이 황홀(?惚)하여지고 혜가 조금 발하면 더욱 번창하여 정(定)이 다시 요란해지고 또한 삿된 행동으로 죄를 짓는 자가 매우 많으니, 자성의 정은 먼저 자성이 원래 고요함을 알아 정혜인연으로 이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공과 색이 둘이 아니고 동과 정이 하나이고 원망과 친함이 평등하고 선악의 성이 공하며 생로병사와 일체의 인과에 조금도 걸리고 막힘이 없이 여여 자연하여 망념을 영원히 멸하여 성품의 체가 항상 나타나나니, 비하건대 풀을 뽑는 사람이 풀의 뿌리를 제거하여 다시는 싹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으니라.

 

소승의 정(定)은 독선적이어서 중생을 제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편벽되이 작은 법을 구하고 다만 무사안일만을 취하며 혹은 세속과 처자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종신토록 보고 듣는 것이 없는 것으로 스스로 정결한 것을 삼으며, 혹은 경계를 피하고 홀로 처하여 종신토록 일 없이 지내며 이렇게 스스로 생각 생각이 부지런히 닦고 세속에 물들지 않으며 참 정을 이루고자 하지만, 그러나 만약 세속을 떠나 사물을 응하고 순역간의 모든 경계를 포위하고 공격하면 창황(愴惶) 간에 바름을 잃고 마나니, 비유하면 작은 그릇의 물을 비록 맑히고자 하나 도리어 오염시키는 격이니라.

 

대승의 정은 대도를 믿고 받들며 중생을 제도하기로 서원하여, 정을 시끄러운 데에서 익히고 고에서 편안함을 구하며 일이 있는 가운데에서 일 없음을 취하고 욕심 경계에서 무욕을 구하며 인욕 정진하여 화하되 흐르지 않는 데에 이르러, 희로애락과 사랑하고 미워함과 좋고 나쁨을 임의로 자재하여, 동하되 고요함을 떠나지 아니하고 정하되 동을 떠나지 아니하면 동과 정이 항상 편안하리니, 비유하여 말하면 대해의 물이 크고 넓어서 맑히고자 하나 맑힐 수 없고 탁하게 하고자 하나 탁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수도하는 사람은 능히 모든 법을 잘 이해하고 근기를 따라 밝게 통찰하여 매하지 않으면 수행하는 가운데 비록 미혹과 장애가 있더라도 벌어지지 않으리라.

 

이 책의 모든 편의 말씀을 종횡으로 흐르도록 통하여 비록 여러 가지 방편이 있으나, 그 본의는 다만 수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라. 수양의 수(修)는 덕을 왕성하게 기르는 것이니라. 지혜와 총명은 이로 말미암아 기초가 되고, 솔성과 실행은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며, 신통과 묘술이 이로 말미암아 생기고, 생사 해탈이 이로 말미암아 얻어지고, 육도를 자유함도 이로 말미암아 근원이 되느니라. 대범 수행하는 사람은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할 지어다.

 

 

정정의 큰뜻

明定靜大旨

 

夫修養者는 修基忘念하고 養基眞性이니 養性之工은 以定靜으로 僞本이니라

대범 수양이라 함은 그 망령된 생각을 닦아 없애고 참된 성품을 양성함이라 양성하는

공부는 정하고 고요함으로 근본을 삼을 것이니라.

 

定靜之法은 懷至廣至大之願하고 發至誠至信之心하여 念念不忘 則定靜을 可得이니라

정하고 고요히 하는 법은 지극히 넓고 지극히 큰 발원을 품고 또한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신심을 발해서 생각 생각이 그 발원한 바를 잊지 아니하여야 정하고 고요함을

가히 얻을 것이니라.

 

定者는 一定於此而諸他道理가 無加於吾之所做요

정이라 함은 한번 이에 결정한 바에는 다른 도리가 나의 공부하는 바에 더함이 없을것이요,

 

許多法術이 不出於渠之惑世而已며

허다한 법과 술수가 모두 다 세상을 미혹케 하는 데에 지나지 아니할 뿐이며,

 

靜者는 歸於一定而不復動於他하여 富貴營華가 不能誘心라고 金玉寶貝도 無可奪志니

고요하다 함은 한번 결정함에 돌아가서는 다시는 다른 데에 움직이지 아니해서 부귀

영화도 능히 내 마음을 유혹하지 못하며 금옥보패도 가히 뜻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니

 

一志立定에 五心不動이면 則孟子之不動心과 老子之歸根靜이 皆是也니라

한번 뜻을 세워 정함에 다섯 가지 마음으로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맹자의 부동심과

노자의 근본에 돌아가고요 하다 함이 다 이를 두고 이름이니라

 

上無色界하고 下無慾海하여 一念萬年에 耳目이 俱淸하고 身心이 俱忘하여

위로 색의 경계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아래로 욕심의 바다에 물들지 아니하여서 오직 한

생각으로 만년을 지낸다면 이목이 한가지로 청정하고 심신을 다같이 잊어버려서

 

神氣俱爽하고 內外俱空하여 泯於深定寂靜하여 湛然至一이라 先全我太一之天而後에

정신과기운이 한가지로 상쾌하고 안과 밖이 다같이 공해서 깊이 정해 적정한 데에 빠져 들어가

서 담담하게 지극히 한결 됨이라 먼저 내 자신이 가장 하나인 천성을 온전히 한 뒤에

 

神氣冷冷然而淸하고 神光炯炯然而明하여 無地不燭하고 無理不通이나 然이나

정신과 기운이 서늘하게 맑고 싱그러운 광명이 초롱초롱하게 밝혀서

빛이지 아니한 땅이 없고 통하지 아니한 이치가 없을 것이나,

 

若有喧動이면 則神氣??然而昏하고 神光??然而晦하리니 何益於思想之所存哉아

그러나 만일에 복잡하게 동함이 있으면 정신과 기운이 몽롱하게

어두워지고 싱그러운 광명이 멍하게 어두워지리니

어찌 생각하고 생각하는 바를 존속함이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唯綿綿密密하여 念而不忘則 自然一心不動하고 百?이 歸源하여 火降水昇에

오직 간단이 없이 지속하여서 일념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여야

자연히 한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일백 맥이 근원에 돌아가 불은 내리고 물은 올라서

 

氣定神淸하여 上通天界하고 下達地府하여 空空洞洞에 光明이 無邊하고

기운은 하나에 정하고 정신은 맑아서 위로는 천상계를 통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사무쳐서

비고비어 맑고 맑아서 그 광명이 갓이 없고

 

動而無間하여 一切玄妙之境을 洞撤開悟하리라

동하되 사이기 없어서 일체 현묘한 경지를 맑고 밝게 깨우쳐서 열릴 것이니라.

 

==================心 丹連 工夫 =======================

 

明禁忌

 

做工之際에 有五忌一曰不信(不信正法)이요

공부를 할 때에 다섯 가지로 금기 힘이 있으니, 하나는 믿지 아니함이요

 

二曰 泄瀆(不謹嚴)이요

둘은 거만하게세여 나아감이니 근엄치 아니함이요

 

三曰 執着自意(不知是非 固執自意)이요

셋은 자기 자의에 집착함이니 고집 불통함이요

 

四曰 輕發喜惡이요

넷은경망스럽게 선악간 경계에 동요됨이요

五曰 生欲速之心이니

다섯은 성질이 급해서 무엇이든지 속히 하고자 함이니

 

皆爲定靜之病이라 必落邪道矣리니 敬之愼之하라.

모두가 다 정정 공부를 하는 데에는 병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사도에 떨어지게 되나니 공경하고 조심할 것이니라.

 

 

若初學靜坐에 必苦於自心不定이면

만일에 초학자로서 고요히 좌정 함에 있어서 반드시 자기의 마음이 정하지 못함의 괴로움에 얽매이면,

煩雜之念이 反生하여

번잡한 마음이 도로 생기나니

 

禁忌則心惱益亂하느니 惟在寬寬漫漫하여

금기하기로 하면 오직 마음을 너그럽고 넉넉하게 하는 데에 힘을 모아

 

任之自然이면 定靜을 自得이리니

자연 한데 맡기고 보면 정정을 스스로 얻게 되나니,

 

譬濁水待淸에 急欲澄淸하여

비하 건데 탁한 물이 맑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아서 급히 맑히고저 하여

 

頻考數察하면 則泥濁尤起也라

조급히 자주 살피고 보면 진흙에서 일어나는 탁한물이 일어남과 다름이 없느니라,

 

故로 定觀經에 以東心太急으로 先爲上戒하여

그러므로 정관경에 말씀하시기를 ??마음 묶기를 급히 함을 제일 먼저 경계를 하여서

 

若或未定에 惡境이 出現이면

만일에 마음이 정하지 못하는 데에 있어서 좋지 못한 경계가 나타나면

 

則回心泯泯하여 求意閒閒하며

마음 돌리기를 민첩하게 하고 뜻 구하기를 한가롭게 하며

 

亦密念師門聖訓하여

또한 스승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늘 생각하여

 

自心本願을 轉轉返思하면 自然定而靜矣니라.

자심에 근본 발원함을 끊임없이 생각코 생각하면 정하고 고요하여 지나리라?? 하였느니라.

 

凡行事之際에 萬像森列하느니

대범 모든 일을 행할 때에 일만 형상이 나타나느니

 

不可怠急이라

가히 급하게 생각하지 말 것이요,

 

粉?華頭가 悉從心頭所出하리니

분운하고 번화한 생각머리가 다 마음머리로 쫓아 생겨나는 것이니

 

一切奇異殊勝善怨應變之事가 隨汝心設하며

일체기이하고 수승한 착하고 원망함이 경계를 따라 응해서 변화됨이 너의 마음을 따라 만들어지며

 

隨汝心生이며 隨汝心求며 隨汝心現하느니

너의 마음을 따라 생겨나며 너의 마음을 따라 구하게 되며 너의 마음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니

 

若使道心으로 爲人心所牽이면

만일 도심으로 하여금 인심에 끌리는 바가 되고 보면

 

便墮他圈中하여 正退邪進하리니

문득 다른 권내로 떨어지게 되어서 바른길은 멀어지고 삿된 길로 나아가게 되나니

 

豈不愼哉아

어찌 삼가지 아니하겠는가.

 

且幽冥境界는 一念轉移之間에

또한 깊숙하고 현묘한 경계는 한 생각 옳게 돌리는 데에

 

便現無量塵劫하리니

문득 헤아릴 수 없는 생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니,

 

愼勿役心于華頭所施하라.

조심하고 삼가 해서 변화머리 베푸는 데에 미음을 부리지 말지니라.

 

若或示之에 視若不見이니

만일 혹 보임에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할 것이니

 

?不掛心於心意하면

잠깐 이라도 미음의 뜻에 마음을 걸어두지 아니하면

 

必以一點眞心이 反歸玄妙하여 精誠極一하면

반듯이 한 점 참마음이 현묘한 경계에 돌아와서 정성이 지극히 한결 되면

 

鐵石이 俱開하고 骨肉分形하여

쇠와 돌이라도 함께 열리며 뼈와 살이 얼굴로 나누워져

 

心爲萬靈主요 身爲陰陽造化之宅이라

마음은 일만 신령의 주인이 되고 몸은 음양 조화의 집이 되느니라.

 

陰符經云 五賊이 息하면

음부경에 말씀하기를 ??다섯 도적이 쉬게 되면

 

宇宙在乎手하고 萬化生於身者此也라.

우주가 손바닥 가운데 있고 일만 변화가 몸으로부터 생긴다??는 말이 곧 이를 이름이니라.

 

近世鍛煉之士가 往往以外俱華飾으로 宣念科呪하고

근세에 마음을 단련하는 선비가 간혹 밖으로 형식만을 꾸밈으로써 주문이나 베풀어 암송하고

 

懷慾稱修하여 空度歲月하느니

수도를 한다고 생각해서 공연히 세월만 보내나니

 

豈入於眞境哉아

어찌 진경에 들겠느냐,

 

蓋夫至道는 深窈나 不在其他라

대개 지극한 대도는 심요하나 그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人能弘道하면 道不遠人이니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면 도가 사람에게 멀지 아니하나니

 

朱子曰 道也者는 不可須臾去身이라 하시고

주자 말씀하기를 ??도란 가히 모름지기 몸을 떠나지 아니한다?? 하시고,

 

子思曰 率性之謂道라 하시고

자사 말씀하시기를 ??성품을 거느리는 것이 도라?? 하시고,

 

孔子曰 知止而後에 有定하고 定而後能靜하고

공자 말씀하시기를 ??그칠 줄을 안 뒤에 정함이 있고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靜而後에 能安하고 安而後에 能慮하고 慮而後에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밝은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난 뒤에 능히 얻는다:

 

能得이라 하시니 此皆自明其明德之事也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다 그 자성자리를 밝히는 일이라.

 

我旣有此明德하니 豈不修煉而明之乎아

나에게 이미 이 자성자리가 있으니 어찌 수련을 하지 아니하고 밝힐 것이리요

 

旣知明德之稟我하고 知修煉之在我하면

이미 성품자리가 나에게 있는 줄을 알고 또한 수련함도 나에게 있는 줄을 알면

 

則修而得之가 惟在我一心이니

곧 닦아서 얻어감이 오직 나의 일심 가운데 있는 것이니

 

豈區區於外物하고 孜孜於外飾하여

어찌 감히 외물에 간절히 바라며 외물 하는데 자자해서 써 정하고 고요하고자 하여

以慾定靜而得眞道哉아.

참 도를 얻으리요.

 

==================== 明鍊氣方法 ========================

 

夫以修鍊之士가 不知水火玄妙之理와 五行生化之道하면

대범 수련하는 선비가 수화의 현묘한 이치와 오행의 변화로 생기는 도를 알지 못하면

 

則徒是粧點兒?耳니라

즉 한갓 이 단장한 아해들의 희롱함이라.

 

大抵定靜煉磨之法은 乃煉自己造化道하여

대저 정정을 연마하는 법은 이에 자기의 조화하는 도를 단련하여

 

苟力行之하면

착실히 힘을 다해 행하면,

 

心火下降하고 腎水上昇하느니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은 아래로 내려가고 신수는 위로 오르게 되는 것이니

 

水昇火降者가 乃定靜之捷徑이요

수승화강 함이 이에 정하고 고요함을 얻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요,

 

亦延年之一道也니라.

또한 연수를 연장케 하는 도가 되는 것이니라.

 

夫人이 思慮多煩하여 心氣悖戾하면

대범 사람이 생각 생각이 많아 번잡하여 심기가 거슬리게 되면

 

則口味苦而操하고 頭腦熱而亂하리니

구미가 씁쓸하며 조급하고 머리가 더워서 어지러워 질 것이니

 

此火昇之故也요 思慮安靜하여 心氣平順하면

이는 화가 위로 오르는 연고라, 생각 생각이 안정되어서 심기가 평순 하면

 

則口味甘而潤하고 頭腦夾而淨하느니 此水昇之故也라

구미가 달며 윤활하고 머리가 시원 상쾌하고 조촐해지나니, 이는 물이 위로 오르는 연고라

 

水昇則火降하고 火昇則水不潤液하여

물이 오르면 불은 내리고 불이 오르면 물이 윤액하지 아니하여

 

而但日夜作淡燃하여 ?其靜氣而已니

다만 일야로 불꽂을 짓게 되어 그 정기만을 태우게 할뿐이니

 

是故로 修煉之始에 當謹避外境하고 深戒多思하여

이런고로 수련할 처음에는 마땅히 외경을 피하고 깊이 생각 많음을 경계해서

 

亦切莫嗔?어다.

또 일체 성냄을 내지 말지어다.

 

使吾心身으로 安閒自適하여 寬柔自治하고

나의 심신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한가해서 스스로 적중하여 관유하게 스스로 다스려

 

而無陜心熱腦之病이니 此外煉之法也이라.

협심열뇌의 병이 없을 것이니 이는 밖으로 단련하는 법이니라.

 

 

日用動作에 隨所專心하여 東不念西하고

일용 동작하는 데에 바를 따라 전심 전력해서 동에서는 서를 생각치 아니하고

 

西不念東하여 每日夜半淸晨이면

서에서는 동을 생각치 아니해서 매일 야반청신이 되면

 

則必坐禪으로 特加精進이니

반듯이 좌선함으로써 정진할 것이니

 

坐禪之法은 先正坐體하여

좌선하는 법은 먼저 좌체를 단정히 하여 기울어짐이 없어

 

無傾委不便之感然後에

바르게 앉아 불편한 감이 없이 앉은 뒤에

 

調息下氣而注 意於下丹田하여

쉬는 숨을 고르게 하고 기운을 아래로 내리며 마음을 하 단전에 주 하게 하여서

 

守心以定하고 寂照不昧니

마음을 지키어 정하고 고요한 가운데 조감함이 매하지 아니할 것이니

 

此內鍊之法也라.

이는 안으로 수련하는 공부법이 되는 것이다.

 

行此日久하여 久久成熟하면 自然五氣相生하고

이렇게 행하기를 오래 오래해서 오래 정숙하게 되면 자연히 다섯 기운이 서로 생기가 나서

 

水火循環하여 眞一之水가 滿口하여

수화가 서로 순환하여 참되고 한결 된 물이 입에 가득해서

 

以生甘潤香味하여 異於平時하리니

써 달고 윤활한 향기로운 맛이 생기어 평상시와 기분이 다를 것이니,

 

此卽腎中眞水上昇之實證也니

이것은 신장의 물이 위로 올라오는 실증이니

 

切莫唾液하고 滿口呑下하면

간절히 액체를 뱉지 말고 입에 가득히 모았다가 삼켜 내리면

 

則身潤神通하고 精氣益暢하리니

온몸이 윤활해서 정신이 통하고 정기가 더욱 창성할 것이니

 

古聖所謂飮甘露而得長養者亦指此謂也니라.

옛 성인들이 감로수를 마시어서 장수함을 기른다는 것은 이를 이름이니라.

 

坎?交?하여 水火旣濟之後에

음과 양이 서로 합해서 수화를 이미 보낸 뒤에

 

一身萬靈이

한 몸에 신령스러움이

 

能上朝於泥丸(泥丸頭腦也)하여 待其時宜(時宜淸晨禪定之時)하여 乃運我一點靈光이면

능히 두뇌에 올라 모아서 그 적당한 때를 기다려 이에 한 점 신령스럽게 빛남이나를 운전하면

 

則化爲火鈴於南昌上宮하여 上通於泥丸玄頂上이면 宮하리니

곧 불망울이 남창상궁에 화현해서 위로 이환현궁을 통하게 되리니,

 

其始也에 如萬蟻會集之狀하여 甚痒?之하리니 愼勿括摩하고

처음에는 일만 개미가 모이는 것 같아서 심히 가려울 것이나 삼가 긁지 말고

 

聚精會神于 이면 則忽然淸雷一聲에

정밀히 이마 머리에 정신 기운을 모으고 보면, 곧 홀연히 맑은 우레 소리에

 

頂門이 如巨石裂開하여 一身萬靈이 出入此門하리니

이마 문이 큰돌로 두들겨 열리어서 한 몸에 담긴 일만 신령함이 이 문에 출입해서

 

形貌光明이 如望夕之月하고

얼굴에 나타나는 광명이 보름달과 같고

 

三界天眞이 雲集泥丸하여 歡喜和悅함이 眞若同氣之親하리니

삼계의 천진이 이환에 운집해서 즐겁게 화열함이 참으로 동기의 친함과 같을지니,

 

此乃?朝上帝法으로

이는 묵묵히 옥황상제에게 조회하는 법으로

 

實同一理也이니라

실상에 있어서는 한 이치와 같은 것이니라

 

(此法은 自注意丹田하여 修煉成熟하여 任運靈氣

時工夫요 初學者强行工夫니 若欲强行此法이면 則反有上氣之病하리니 學者當愼之니라)

 

先行定靜之法이 蓋由此事라,

먼저 정하고 고요하게 하는 법이 모두 다 이러한 일로 말미암는 것이라.

 

非定靜이면 水火不濟하고

정하고 고요함이 아니면 수화가 고르지 못하고

 

水火不濟하면 則靈氣不會하며 靈氣不會하면 則慧門不能以開하리라.

수화가 고르지 아니하면 지혜의 문이 능히 열리지 못하는 것이니라.

 

是法은 乃傳道之秘요 修道之要며

이 법은 이에 도를 전하는 비결이요 도를 닦는 요긴함이며

 

覺道之眞訣也니 得此法하여 依此而行者는 可克日而成功也니라.

도를 깨닫는 비결이니 이 법을 얻어 이에 의해서 행하면 가히 날을 기약하고 성공하리라.

 

 

=================== 道門에 드는 요긴한 法(1) =======================

 

明入門要法(1)

 

禪要에 云 大要有三하니

선요에 이르기를 대요에 세 가지가 있으니,

 

一曰 大信根이요 二曰 大忿志요 三曰 大疑情이라.

하나는 대신의 뿌리요 둘은 뜻을 크게 분 냄이요 셋은 크게 의심을 가짐이라.

 

疑者는 以信爲體하느니 信有十分이면 疑有十分하여 悟得十分이라하니

의심은 신으로서 체를 삼나니 신이 십분 있으면 의심이 십분 있어서 깨달음이 십분 있다 하니

 

此說은 卽定靜之要法也라.

이 말은 곧 정정을 얻는데 요긴한 법이라.

 

何者오 無大願이면 至誠不生하고

어찌 그러한가 하면 큰 원이 없으면 지극한 정성이 나지 아니하고

 

無大疑면 死忿不生하고 無大信이면 眞疑不生하리라

큰 신심이 아니면 참 의심이 나지 아니하니라.

 

問何以立願하여서 且信忿疑誠之所出處乎아.

묻기를, 어떠한 원을 세워야 또한 신과 분과 의와 성의 출처가 되나이까.

 

曰一天之下에 至妙至寶至聖至尊之法이

말하기를 한 울 밑에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보배롭고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높은 법이

 

唯一靈寶眞局也라. 靈寶局은

오직 하나인 영보진국이라 영보국은

 

人人各有稟賦於身內하여 而天素命之하시니 卽我之本性이라.

사람마다 각각 몸 안에 타고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대단한 그대로 명함이니 곧 나의 본래 성품이라.

 

率性修道하여 明德發揮하여 可以治國而平天下하며

솔성 수도해서 자성 자리를 발휘해 가히 써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며

 

可以爲億兆之君師하고 可以爲無量之壽仙하나니

가히 써 억조 창생의 군사가 되며 가히 써 한량없이 수하는 신선이 되나니

 

何者오 天明之德을 稟賦爲人之初에

어찌해서 그런가 하면 하늘이 명한 덕을 사람에게 품부할 처음에

 

頭化天上의 三淸眞宮之氣하고

머리는 천상에 삼청진궁의 기운으로 화하고

 

腹受地下山林川澤之形하고

배는 지하에 삼림천택의 형상을 받고

 

胸懷日月星辰風雲雨雷陰陽造化之府하였느니

가슴에는 일월성신과 풍운우뢰와 음양조화의 부서를 품었느니,

 

所以 吾身에 有天眞帝君과 九靈三精과 五神眞君과 內外將軍과

바에 써 내 몸에 천진제군과 구영삼정과 오신진군과 내외장군과

 

左右官屬과 諸部工曺及八萬四千 元君이 各依部分하니

좌우관속과 제부공조 및 팔만사천 원군이 각 부분에 의해 있으니

 

是乃靈寶道局也라.

이것이 영보도국 이니라.

 

修而明之者는 爲仙爲聖이요

닦아서 밝힌 자는 신선이 되고 성인이 되며

 

失而放之者는 爲愚爲蠢이니라

잃어버리고 놓아버리는 자는 어리석고 우둔함이 되느니라.

 

欲修而明之者는 非大願而何오

닦아서 밝히고자 하는 자는 큰 원이 아니고 그 무엇이 있으리요.

 

且人人이 各有此局하니

또한 사람마다 각각 영보도국이 있으니

 

何人得之며 何人不得고?

어떠한 사람은 얻으며 어떠한 사람은 얻지 못 하리요.

 

大忿出焉이면 萬理가 具於我하고 萬法이 備於此하니

그래서 큰 분심을 내면 일만 이치가 나에게 갇추어 있고 일만 법이 이에 갖추어 있으니

 

惟一而已어늘 道何衆門이면

오직 하나 이거늘 도가 어찌 문이 많으며

 

惟一而已어늘法何多岐며 惟一而已어늘 人何多求며

오직 하나 이거늘 법이 어찌 길이 많으며 오직 하나 이거늘 사람들이 어찌 많이 구하는가 하면

 

惟一而已어늘 我何復疑하리요

오직 하나 이거늘 내가 어찌 다시 의심하리요

 

思則疑無하고 望則疑有하리니

하여 생각한 즉 의심이 없고 바란 즉 의심이 있나니

 

疑去疑來에 疑無所疑를 空然何疑리노

의심이 가고 의심이 옴에 의심하고 의심할 바가 없거늘 공연히 어찌 의심하리요

 

忽然燃心하면 是乃眞疑라.

홀연히 의심을 태워 버리면 이것이 참 의심이라.

 

是疑之下에 萬疑寂靜하면 不分晝夜함이 如夢若眞하여

이 참 의심아래 일만 의심이 적정하면 주야를 분별치 못함이 꿈도 같고 참도 같아서

 

空寂天地에 惟一疑而已거늘

공적한 천지에 오직 한 의심 뿐 이니,

 

此非大疑而何오

이것이 큰 의심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盖疑字之工은 最難得知니

대개 의심 의자의 공부는 가장 얻어 알기가 어려울 것이니

 

若無大信이면 是疑不生이라

만일 큰 신심이 아니면 이 의심이 나지 아니할 것이라.

 

故로 禪要에 云 信有十分이면 疑有十分하고

그럼으로 선요에 말하길 신이 십분 있으면 의심이 십분 있고

 

疑有十分하면 悟有十分이라하니 指此謂也니라

의심이 십분 있으면 깨달음이 십분 있다 하니 이를 가르켜 이름이니라.

 

信可信矣요 誠可誠矣니

신을 가히 신할 것이며 정성을 가히 정성할 것이니

 

以信定靜하고 以信忿疑하느니

신으로써 정정하면 써 신과 분과 의를 얻을 것이니

 

非大信이면 信何長久리요

큰 신심이 아니면 그 신심이 어찌 장구하리요.

 

一定不變하여 始終如一을 是謂誠也라하느니

한가지 정해서 변치 아니하여 시종이 여일 함을 이에 성이라 이르느니라.

 

五經에 云 以誠而入하며 以?而守하며

오경에 말하기를 성으로써 도에 들며 묵묵함으로써 도를 지키며

 

以柔而用이면 則物我俱忘하고 慧光乃生하여

부드러움으로써 도를 사용하면 곧 물과 내가 한가지로 잊어서 지혜의 광명이 이에 생기어

 

聖智自全하리니 此乃入之眞締也라.

성스러운 지혜가 스스로 온전하나니 이것이 도의 문에 드는 참다운 요체라.

===== 수심정경 1 끝 ======

 

道門에 드는 요긴한 法(2) .

 

明入門要法(2)

 

昔에 西峰道士가 爲其學徒曰 天下에 有一無主空舍하니

옛 적에 서봉도사가 그 학도에게 말하기를, 천하에 한 주인 없는 빈집이 있으니

 

是卽靈寶局也라.

이것이 곧 영보국이라,

 

其中에

그 가운데

 

儲天下無窮之妙하고 積天下無窮之寶하며

천하의 무궁한 묘함을 모아놓고 천하의 무궁한 보배를 쌓아놓고

 

藏天下無窮之財하여 通開八萬四千門路하여 圍繞垣墻하여

천하의 무궁한 재물을 갊아 두고 팔만 사천 문로를 통해 열어 두루 담장을 둘러놓고

 

使慾者 懶者 愚者 不信者로

욕심 있는 자와 게으른 자와 어리석은 자 믿지 아니하는 자로 하여금

 

各守諸門路하라 하고

각각 모든 문로를 지키게 하라 하고

 

命之曰 貪慾懶愚不信者來到면

명령하여 말하기를 탐욕자 라우자와 불신자가 와서 이르면

 

則爾等各守防禦하고 唯某誠信專一者來到면

곧 너희들은 각각 지키어 막고 어떠한 사람이든지 정성스럽고 믿음이 전일한 자가 외서 이르면

 

則開門納之하여 以爲空舍之主하여 用無窮之財寶云하니

곧 문을 열어 들여서 써 빈집의 주인을 삼아 무궁한 제보를 사용토록 하라고 이르니

 

世人聞此設하고 皆仰笑하여

세상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다 하늘을 우러러 비소하며

 

空棄不取曰 如許財寶를 我何敢取리오.

부질없이 버리고 취하지 아니하며 말하기를, 이와 같은 재물을 내가 어찌 감히 취하리요.

 

此有福有緣者之所當取之라 하고

이는 복이 있고 인연이 있는 사람이 마땅히 취할 바라 하고

 

敢不往求로새

감히 가서 구하지 아니 할세,

 

釋迦는 傳設하고 老子는 指路하고 孔子는 勸送하되

석가는 말을 전하고 노자는 길을 가르키고 공자는 권해 보냈으되

 

不知就取하고 往知者나 不信者는 防而不受하고

나아가서 취할 줄을 알지 못하고 가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막아서 받지 아니하고

 

貪慾者拒而不納하니

탐욕자는 또한 거절해서 들이지 아니하니

 

其間能入取者는 惟千萬人中一二人也라.

그 사이에 능히 들어 와서 취하는 자는 오직 천만인 가운데 한 두 사람이라.

 

 

其餘外道之輩는 曠安宅而不居하고

그 나머지의 외도의 무리들은 넓고 편안한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捨正路而不由하고 卽盜野人之財産하며

바른 길을 버리고 말미암지 아니하고 곧 야인들의 재산을 도적질하며

或乞富人之餘財하며 或奪行人之路費하고

혹 부자의 남은 재물을 구걸하며 혹 행인들의 노비를 탈취하고

 

或穿壁欺取하며 或飢寒 或爭鬪하니 五賊?起 하고

혹 벽을 뚫고 속여 취하며 혹은 기한에 떨며 혹은 투쟁해서 오적이 아울러 일어나고

 

三盜가 不息하여 天下大亂하며

삼도가 쉬지 아니해서 천하는 크게 어지러워지며

 

法官이 形名하고 親友誹謗하니 可謂寒心處也라.

법관들이 형극의 이름을 타고 친우들이 비방하니 가히 한심할 지도다

 

不取所當取하고

마땅히 취할 바를 취하지 아니하고

 

取其不當取하여 曰

마땅히 취하지 아니할 바를 취하지 말하기를

 

我行捷法하여 易取易得이라 하며

내가 빠른 법을 행하였다 해서 쉽게 취하고 쉽게 얻었다하며

 

或死或敗에 修苦不悔하고 反見支離하니

혹 죽고 혹 패하며 고를 받아도 후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지리 함을 보게 되나니

 

愚耶아 懶耶아 孔子所謂糞土之墻이요.

어리석음인가 게으름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분토의 장이요

 

孟子所謂下愚 不移者 是其徒乎저.

맹자가 말하기를 하우에 옮기지 아니함이라 함은 이런 무리들을 말함이로다

 

禪書에 曰 能開衆門中에 一門入하여

선서에 말하기를 능히 여러 문을 열고 한 문에 들어가서

 

取無盡藏寶하면 用之不竭하고 取之無禁하리니

다함이 없이 갊아 있는 보물을 취하면 써도 다함이 없고 취해도 금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此寶非外來之物이라. 是室內生生無窮之物이니

이 보물은 밖에서 오는 물건이 아니라 이 빈집에서 나오고 나오는 무궁한 보물이니

 

能昇當者는 誠也요 能開門者는 疑也요 能主物者는 信也라.

능히 집에 오르는 자는 성이요 능히 문을 여는 자는 의요 능히 물건을 주장하는 자는 신이라

 

義에 不取他人財寶하고

의리에 다른 사람의 재보를 취하지 아니하고

 

卽取此當取物者는 忿也이니

곧 마땅히 취할 물건을 취하는 자는 분심이니

 

若無信忿衣三字며 則盤桓墻外하고

만일에 신과 분과 의의 삼자가 없으면 곧 담 밖에서 반환하고

 

逗??端하여 漫然歲月타가

처마 끝에서 두류하며 공연히 세월만 보내다가

 

空費氣力하여

부질없이 기력만 허비해서

 

太息退歸에 乃爲行乞之人이라

종말에는 크게 한숨만 쉬고 물러가 돌아가매 이에 행걸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故로 比之曰

그러므로 비유하기를

 

石中藏玉은 非鐵釘이면 難琢이요

돌 가운데 갊아 있는 옥은 철정이 아니면 쪼아 내지를 못하고

 

無?石이면 不磨라하고

숫돌이 아니면 갈지를 못한다 하고

 

又曰 不入虎穴이면 焉得虎子리요 하니

또 말하기를 호랑이 굴에 들지 아니하면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을 것이리요 하니,

 

釘은 信也요 入虎穴은 忿也니

끌은 신을 말함이요 호랑이 굴은 분이니

 

欲琢磨得虎子者는 發大忿勇이니

쪼아내고 갈고 호랑이 새끼를 얻는 것은 크게 분내는 용기이니

 

金剛利刀로 割世緣一縷하고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세상에 얽힌 인연의 한 오라기도 다 베어버리고

 

引大疑하여 卽殺心猿意馬之奔馳하고

크게 의심을 당겨 이르켜서 곧 마음 원숭이와 뜻 망아지에 끌리고 달리는 마음을 몰아내고

 

懷大信하여 能入此門然後에 鐵柱中心이요 石壁外面이라

큰 믿음을 품어서 능히 이 문에 들어간 후에 철주와 같은 중심이 되고 외면 막기를 석벽이 됨이라.

 

川萬師設이 更不妙於此設하며

천만 스승의 말이라도 다시는 이 말씀 외에는 더 묘함이 없으며

妙道玄理가 且無加於此道라

묘한 도리와 현묘한 이치가 또한 이 도에 더함이 없음이라.

 

目無所好見하고 耳無所喜聞하며

눈으로 보되 좋게 보는 바가 없으며 귀로 듣되 즐겁게 들리는 바가 없으며

 

妙無他妙하고 寶無他寶면

묘함이 이에 더 묘함이 없고 보물이 이에 더 보물이 없으면

 

則一心靜에

곧 하나로 마음이 정함에

 

蕩蕩焉豁豁焉 無絲?纖鹿之?滯면

넓고 또 넓으며 걸림이 없고 또한 걸림이 없어서 털끝만큼이라도 걸리고 막힘이 없으면,

 

則若人初生無異하여 飮茶에 不知茶하고

곧 사람이 처음으로 남에 사람에는 다름이 없으나 차를 마셔도 차인 줄을 모르고

 

喫飯에 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밥을 먹어도 밥인 줄을 모르며 행하되 행하는 줄을 모르고

 

坐不知坐하여 情識頓淨하고

앉았으되 앉은 줄을 몰라서 모든 정과 식이 돈연히 조촐하고

 

計較都忘하여 恰似有氣底死人이요

모든 사량과 계교가 모두 다 없어서 기운은 있으되 죽은 사람과 흡사하고

 

且泥塑人相似라

또한 흙으로 만든 우상과 같음이라.

 

是名立定이니 其若氣發神動이면

이 지경에 이르르면 대정을 세웠다 이름할 것이니 이에 기운을 발하고 신령스럽게 움직이면

 

則初如??而不得編序나

곧 처음에는 어른어른 해서 차서를 잡지 못하나

 

然至於心華頓發이면

그러나 분별심이 갑자기 발하면

 

則洞然十方하여 如?日麗天하며 明鏡當臺라

즉 세계가 한 집같이 밝아져서 태양이 중천에 빛남과 같을 것이며 밝은 거울을 대함과 같음이라

 

不越一念에 頓成正覺하리니 是名得慧라

한 생각 넘지 아니하여 홀연히 정각을 이룰 것이니 이를 일러 혜를 얻었다 이름할 것이니라.

 

如此者는 乃禪家之佛이요 靈寶之聖이며 仙家之丹이니라.

이와 같은 이는 이에 선가에서 말하는 불이요 영보의 성인이며 선가에서 말하는 단이라 할 것이다.

 

 

 

=================== 道門에 드는 요긴한 法(3) =====================

 

明入門要法(3)

 

然若信忿疑之誠이 未極에

그러나 만일에 신과 분과 의와 성이 지극하지 못함에

 

八萬四千魔兵이 ?在六根門頭하여

팔만 사천 마군이 육근문 머리에 엿보고 있어서

 

隨機誘心하여 百方作亂하매

기틀을 따라 마음을 유혹해서 백방으로 작 난을 하여

 

四面華頭勞碌心神하리니

사면에서 변화머리가 심신을 어지럽게 흔들어 낼 것이니,

 

卽念聖訓하여 要取無心하고 更加精力하면

곧 성인의 교훈을 생각해서 요긴히 무심함을 취하여 다시 정력을 더하면

 

剋日就工而使吾一身에

반드시 날을 정해 놓고 공부를 성취해서 나란 몸으로 하여금

 

如墮千尺井?相似하여 從朝至暮와

천 척이나 되는 우물 속에 떨어짐과 같아서 아침으로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從暮至朝에 千思想萬思量으로

또는 저녁으로부터 아침에 이르기까지 천가지 생각과 만가지 생각으로

 

單只是救出之心이요 決無二心이니

다만 이에 구출할 마음 뿐이요 결단코 다른 마음이 없을 것이니

 

誠能如是하면 施工을 剋日可矣리라.

정성이 이와 같으면 공부해 나아감이 반드시 날을 가히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니라.

 

此段은 卽有相火虛火하니

이 단계에 있어서 곧 실상의 불과 허령의 불이 있나니

 

康健之人이라야 所取也요

강하고 건전한 사람이라야 취할 바이요

 

又若柔溫氣弱之人이면

또한 만일에 유온하고 기가 약한 사람은

 

則譬如自身得當死之罪하여

곧 자신이 죽을죄를 당함과 같아서

 

深囚獄中하여 剋日斬殺次로

깊은 옥중에 수감이 되어 날을 정해 놓고 참살할 차례로

 

四面守直타가 忽遇獄卒醉倒하여 時夜寂廖하매

사면을 수직 하다가 문득 옥졸들이 잠에 취해 엎드러짐을 보고, 때에 밖이 적적하매

 

乃?枷打鎖越獄脫身에 不分東西하고

이에 자물쇠를 두들겨 부수고 옥문을 넘어 몸이 빠져 나오매 동서를 분간할 겨를이 없이

 

卽逃出境之際에 毒龍猛獸가 一無懼心이요

곧 옥 경계를 도망해 나올 때에 독룡과 맹수가 있다 하여도 두려울 마음이 없고

 

卽面當前矢石도戟이라도 亦無怖畏하며

곧 면전에 시석과 도극이 날아온다 할지라도 또한 두려움이 없으며

 

蒙被奔迅하여 崎嶇險路를

옥중에 몽피된 몸만이 분주히 풀려나감이 빠를 것이니 기구한 험로라도

 

如踏平地하고 ?棘?藜를 視若草芥하시니

평지와 같이 밟아가며 가시 숲 얽히고 얽힘이 있다 할지라도 초개와 같이 보일지니

 

此何故也오.

이 무슨 연고인고.

 

寧死他死언정 不死此死니

차라리 다른 곳에서 죽을지언정 이 곳에서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마음뿐이니

 

是乃極切之心이라

이것은 지극히 간절한 마음이라,

 

用工之際에 有此切心하면

공부를 할 때에 이러한 절실한 마음이 있으면

 

剋日之工을 管取百中이라

날을 한정하고 공부함은 과녁을 취하니 다 맞을 것이니라.

 

然이나 如此極切之心은 修煉成熟하여

그러나 이와 같은 지극히 간절한 마음은 닦고 연마함이 성숙해서

 

得其眞趣者에 最後實行之法이요

그의 진취를 얻은 사람의 최후에 실행하는 법이요

 

非初學凡想에 易取易行者也라

초 학자의 범상한 근기에 있어서는 쉽게 취하고 쉽게 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故로 初行之工은 務在安其危니

고로 처음으로 행하는 공부 는 힘쓰는 것이 위태로움에 있어서 먼저 편안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心安이면 則定力이 益增하며

마음이 편안하면 곧 정력이 더욱 더 하는 것이며

 

定力益增하면 則極切之心을 亦不勞而自得이니라.

정력이 더욱 더 하면 곧 지극히 간절한 마음을 또한 힘들이지 아니하고도 스스로 얻을 것이니라.

 

 

 

=================== 자성으로 돌아가는 공부 =======================

 

明風土移化之功

 

人之心體는 本自虛明이라

사람의 마음 본체는 본래 텅 비어서 밝음이라.

 

元無染汚나 然이나 及其應物遂境에

원래 더럽힘이 없으나 그러나 그의 물체를 응하고 경계를 따라서

 

情私感疑하여 遂成風土之習故로

인정이 사사로이 느끼어 얼켜서 마침내 풍토의 익힌 바 습성이 되는 고로,

 

做工之始에

그러므로 공부를 할 처음에는

 

當明察自心上習氣所染하여

마땅히 자심에 습기의 물든 바를 맑게 살펴

 

修煉精治然後에 定靜始得이라

닦아 단련해서 정밀히 다스린 후에 정하고 고요함을 비로소 얻을 것이라.

 

定靜之後에 微暢之光明이 乃發이며

정하고 고요함을 얻은 후에 미미하고 화창한 광명이 이에 발할 것이니,

 

則亦留心於定慧等持하여

곧 또한 정과 혜를 고루 가짐을 마음 가운데 머물러 두어

 

一絲不亂而各得其正하리니 是明精一執中이라.

일사불란해서 각각 그 바름을 얻을 것이니, 이를 이름해서 정일 집중이라 하니라

 

執中必庸은 中庸이요 學大는 大學이요

중도를 잡아서 반드시 떳떳함을 이름이 중용이요 대 자리를 배움은 대학이요,

 

論道語는 論語라.

도리에 대한 말을 논함은 논어라.

 

元亨利貞과 仁義禮智를 隨性感現하여 或聖或賢이니

원형이정과 인의예지를 개성에 따라 느끼어 발현됨이 혹 성인도 되고 혹 현인도 되나니,

 

雖風土稟受之有異나

비록 풍토에 따라 개성을 받음이 다름이 있으나

 

氣質則齊也라.

기운 바탕은 품수함이라.

故로 此我靈寶眞訣로 能善化而歸一者也니라.(言性之齊也)

그러므로 이 나의 영보의 참 비결로 능히 잘 융화해서 하나에 돌아감이라.

 

多誦定靜編하고 勤行坐禪之法하여

많이 정정편을 달통하고 붙들어서 좌선하는 법을 행하여

 

嚥津煉氣하고 運水火風土를 可移로되

단 침을 삼키고 기운을 단련해 물과 불을 운전해서 풍토를 옮기게 되나

 

氣質卽齊也라 朝眞禮聖하여

기질인 즉 다름이 없음이라. 아침 일찍이 진심으로 체성에게 예를 올리어

 

參三才出萬化하며

천지인 삼재에 혹됨이 없이 참례해서 일만 변화를 나타내면

 

聖與我가 相似焉이라

聖과 더불어 내가 서로 相이 없을 것이니라.

 

修煉正法은 元無二學이니

수련하는 바른 법은 원래 두 가지로 배움이 없으니

 

學皆然修요 前聖後聖이 其修相同이라.

배워서 다 수련함은 전성 후성이 그 수련함이 서로 같음이라.

 

故로 做工之人은 依此而行이라.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이에 의해서 행함이라.

 

別無遲速이요 且無先後而皆得定靜이니라

별로 지속이 없음이요, 또한 선후가 없이 다 정과 고요함을 얻을 것이니라.

 

定靜之期는 大限은 十年專一하면 無不貫通이요

정정의 기한은 크면 십년이 될 것이니 십년 동안 계속하면 관통치 아니함이 없을 것이요,

 

小限은 九旬이니(亦有五旬之限 皆言禪期也) 九旬專一이면 外定可得이요

적게 잡으면 구순(3개월)이니 구순 동안 전일 하면 외정을 가히 얻을 것이요,

 

剋日之期는 大限은 七日로(亦有五日或三日之限 皆言入定之期也) 七日精進이면 可入眞忘이요

날을 한정한 기한은 대한 칠일이니 칠일을 정진하면 가히 진 마저 잊어버리는 데로 이를 것이요,

 

小限은 半時니(亦日刹那) 半時 燃燒心이면 能成正覺하리라.

소한은 반시이니 반시 동안 모든 분별심을 놓아 버리면 능히 정각을 이룰 것이니라.

 

定靜之有遲速이 不在於人이요 在乎誠與不誠이니

정정의 지속이 있음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정성이 있고 없는 데에 있는 것이니

 

不誠而以難行으로 見之하면

성심이 없이 행하기가 어려우므로 볼 진데

 

則如千年盲龜脫身萬里之樹城이요

천년이나 눈 먼 거북이 만리나 되는 나무 성으로 몸을 벗어나려 함과 같을 것이요,

 

三日曲針으로 投穿半片之纖芥요

삼일이나 굽은 바늘로 반쪽이나 되는 겨자씨를 던져 뚫기와 같을 것이요,

 

誠之而以能行으로 見之하면

성심으로 능히 행함으로 볼 진데

 

則如千尺井底之人이 出乎平地하며

곧 천 척이나 되는 우물 밑에 빠진 사람이 평지에 나옴과 같으며,

 

深寓牢獄之人이니 出乎獄外하여 身晏心閒하여

깊은 뇌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옥외로 나감과 같아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서

 

更無他勞니 因何而更說遲速及爲不爲乎아.

다시는 괴롭고 수고로움이 없을 것이니 무엇을 인해서 다시 지속되고 안 된다는 말을 하리요.

 

戒乎我願學天人하고

경계하기를, 나 자신이 천인 배움을 발원할 뿐이요

 

莫妄意於異道하여 一就我靈寶局中하여

다른 도에 뜻을 두지 말아서 한결같이 나의 영보도국 가운데 나아가서

 

自修自明이면 可仙可佛이며 爲聖爲眞乎고저

스스로 닦고 스스로 밝히면 신선이 되고 가히 부처가 되며 성인도 되고 진인도 될 것이니라.

 

學徒者는 能信行此法하여 念念勤修하면

도를 배우는 무리들은 능히 이 법을 믿고 배워서 생각 생각이 부지런히 수행하면

 

則氣和神化하여 可得定靜하리니

기운이 화하고 정신이 화현해서 가히 정과 고요함을 얻을 것이니

 

修之明之하여 乃復其性이 可也니라

수련하고 밝히어서 이에 그 자성 자리를 회복케 함이 가할 것이니라.

 

======================수심정경 2 끝===========================

定靜에 이르는 方法

 

明定靜次第

 

夫欲修煉인데 當先捨外事之紛撓하라

대범 수련코자 할진데 마땅히 먼저 밖의 일의 분요함을 놓아버려라

 

外事平定하여 無有?心然後에 安坐而內觀이

밖의 일이 평정해져서 마음을 더렵혀지지 않은 연후에 편안히 앉아서 안의 마음을 관할 것이니

 

心起에 若觀一念便起면

마음이 일어나매 만일 한 생각이 일어남을 관할 때에

 

卽須除滅하여 務令安靜이니라

곧 모름지기 제거해 없애고 하여금 안정하기를 힘쓸 것이니라

 

其次는 雖非的有貪着이나

그 다음은 비록 탐 착 심으로 일어남은 아니나

 

浮遊亂想이라도 亦盡滅除하고

근거 없는 부유란상 이라도 또한 다 멸해서 제거하고

 

晝夜勤行하여 須臾不潛이니라

주야로 부지런히 수행해서 잠깐 사이라도 머물러 두지 말 것이니라

 

唯滅動心이요 不滅照心이니

오직 움직이는 마음을 멸할 것이요 자성으로 비치는 마음은 멸하지 아니할 것이며

 

但凝空心이요 不凝住心이라

다만 공심에 얼켜 둘 것이요 주심에 얼켜 두지 아니할 것이니라.

 

不依一其爲心之常이니라

한갓 그 마음이 떳떳함에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若住則凡心이 躁競하여

만일 마음을 머물러두면 모든 마음이 조급히 다투워 일어나서

 

煩惱續起라

번뇌망상이 계속해서 일어남이라.

 

故로 定靜之門에 以無住로 爲上하니라

그러므로 정정의 문에는 주 함이 없음으로써 우위를 삼았느라.

且初學之人은 息心甚難하니

또한 처음 배우는 사람은 마음 쉬어버리기가 심히 어려우니

 

或息不得暫停還失이니

혹 마음 쉬어 버림을 얻지 못하고 잠깐 머물렀다가 또한 잃어버리게 되나니

 

然이나 去留交戰에 百體流하여

그러나 버렸다 머물렀다 서로 싸워감에 전신이 흘러 행해서

 

久久精思하면 方乃調熟하나니

오래오래 정밀히 생각하면 바야흐로 조숙케 되나니,

 

勿以暫收不得爲憂하고 遂廢千生之業源하라.

써 잠깐이라도 근심됨을 얻지 못함을 거두워 잡지 말고 뒤에 천생의 업원을 폐함이라.

 

其次는 小得淨己면 則於行住坐臥之時와

그 다음은 조금이라도 몸이 정화되어 가면 곧 행주좌와 하는 때와

 

涉事之慮와 喧鬧之所에 皆作意安하며

모든 일을 간섭하는 곧 다 번화한 거리에 모두 다 뜻 편안함을 지어서

 

有事無事에 常若無心하며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에 항사무심함과 같이해서

 

處喧處鬧에 其之唯一이니라.

시끄러운 처소에서도 그 뜻만 오직 하나로 만들 것이니라.

 

若束心太急하면 又卽成病하여 氣發狂顚하리니

만일 마음 묶기를 조급히 하면 또한 병이 되어서 기운에 광전이 발할 것이니

 

戒之愼之하라.

경계하고 삼갈지니라.

 

 

心若不動하면 又須放任하라.

마음이 만일 동하지 아니하면 또한 모름지기 방임해 보아라.

 

如此則寬急이 得所하여 自恒調適하며

이와 같이 하면 너그럽고 급함이 바를 얻어 스스로 항상 고루 적중하여

 

制而不着하며 放而不動하며 處喧無惡하며

제재해서 착하지 아니하고 방심하되 동치 아니하며 복잡한데 있으나 싫어함이 없으며

 

涉事無惱者此是眞定이니라.

일에 나아가서 마음 어지러움이 없어야 이것이참으로 정함이로다.

 

不以涉事無惱라.

써 일을 간섭함에 있어 마음이 수고스럽지 아니함이라.

 

故로 求多事하며 不以慮喧無惡이라.

그러므로 일을 많이 구하지 아니하며 써 번화함을 싫어하지 아니함이라.

 

故로 來就喧이니라.

그러므로 번화한데 나아가되 시끄러움이 오지 아니하니라.

 

以無事로 爲眞性하고 以有事로 爲應跡이니라(應跡應物通明也)

일없는 것으로 써 진성을 삼고 일이 있음으로 써 적응해서 막힘이 없음이라.

 

若水鏡之爲鑑이면 則隨物而現形하느니라.

만일 물과 거울로 귀감을 삼으면 곧 물체를 따라 형상을 나타낼 것이니라.

 

善巧方便이 惟能入定이요

가장 좋은 방편은 오직 능히 정에 들어감이니

 

慧發遲速이면 則不由於人이니(不分强求)

지혜 발함이 지속이었음은 사람에 말미암음이 아니니,

 

?令定中急急球慧하라.

하여금 정 가운데에서 급히 지혜를 구하지 말아라.

 

急則傷性이요

급하게 서두르면 자성자리를 상하게 될 것이요

 

傷性則無慧하느니라.

자성자리를 상하고 보면 지혜가 발하지 아니하느니라.

 

若定不求慧而慧自生하나니

만일 정하는 데에서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느니

 

此名眞慧라.

지혜가 자연히 생 하게 되느니 이를 일러 참 지혜라 하느니라.

 

慧而不用하면 實智若愚하며

지혜를 사용치 아니하면 실상 된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으며

 

益實定慧면 雙美無極하리라.

실상 된 정과 혜가 더하면 쌍으로 아름다움이 다함이 없을 것이니라.

若定中에 念想多感하면

만일 정 가운데 생각 생각이 많이 감응되면

 

衆邪妖精하며 百魅隨心하고

뭇 사사첩념의 요정이 더하며 일백의 매 망령이 마음을 따를 것이요

 

奇蹟異相하여 應現所見하나니

기적과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는 바에 응해서 보일 것이니

 

却須堅立正念하여 反求心常하면 自然妖魔盡滅하느니라.

모름지기 굳게 바른 생각을 세워서 마음에 떳떳함을 구하면 자연히 요마가 다 멸할 것이니라.

 

 

定靜之心이 惟虛明淡寂하여 上而豁然無覆하고

정하고 고요한 마음이 오직 비고 밝아서 담하게 고요해서 위로 활연해서 덮임이 없으며,

 

下而曠然無基하면 則舊業日銷하고

아래로 광연해서 기틀(자리)이 없으면 곧 구업이 날로 녹여지고

 

新業不造하며 無所??하여 逈脫塵籠하나니

신 업을 다시 짓지 아니해서 걸리고 막힘이 없이 모든 진롱을 벗어날 것이니

行而久之하여 自然得道하느니라.

행해서 오래가면 자연히 도를 얻을 것이니라.

 

夫得道之人有七候하니(候通也)

대범 도를 얻은 사람이 일곱 가지 징후가 있으니

 

一者는 心得定見하여 覺諸塵漏이요

하나는 마음에 정한 소견을 얻어서 모든 진루를 깨달음이요

 

二者는 宿疾(宿疾宿習之病)普銷하여 心身輕爽이요

둘은 오래된 병이 널리 녹아버려서 몸과 마음이 경상 함이요

 

三者는 塡補夭損하여 還平復命이요

셋은 요손 함을 도와서 평상심에 돌아와 천명에 회복함이요

 

四者는 延壽無量하니 明曰仙人이요

넷은 수명을 무량함에 연장하니 신선이라 이름하고

 

五者는 鍊形爲氣하니 名曰眞人이요

다섯은 얼굴을 단련해서 기운을 만들었으니 진인이라 이름하고

 

六者는 鍊氣成神이니 名曰神人이요

여섯은 기운을 단련해서 귀신을 만들었으니 신인이라 이름하고

 

七者는 鍊神合道니 名曰至人이니라.

일곱은 귀신을 단련하여 도에 합하였으니 지인 이라 이름 하였나니라.

 

 

其於鑑力하여 隨候益進하면 得名慧乃圓備하라

그의 힘을 거울해서 징후를 따라 더욱 나아가면 지혜를 이에 원만히 갖추었다 이름할 것이니라.

 

若久學定靜하여 心無一候라사

만일 오래오래 정정하는 공부를 해서 마음 가운데 한 징후라도 없어야

 

是乃圓通修鍊之士라.

이에 원만히 통달한 수련하는 선비라.

 

但依此法하여 操縱得宜하면 則無日不工이며

다만 이 법에 의해서 표준의 종을 잡아 편안함을 얻으면 날로 공부를 아니함이 없으며

 

無處非禪이니

선 아닌 곳이 없으니,

 

若促齡離俗하면 索隱行怪然後에

만일에 나이를 재촉하여 속세를 떠나서 자취를 숨기고 괴이함을 행한 뒤에

 

始可得通云이니 則此未達定靜之法者也라.

비로소 가히 도를 얻는다고 하니 곧 이는 정하고 고요한 법을 달통하지 못함이라.

 

定靜之法在易하고 不在乎難이며

정정의 법은 쉬운 곳에 있고 어려운 곳에 있지 아니하며

 

在內不在乎外니라.

마음 안에 있고 마음밖에 있지 아니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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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되고 떳떳한 道 =============

 

明眞常之道

 

大道는 無形이나 生育天地하고

대도는 형상이 없으나 천지를 생육해 내고

 

大道는 無情이나 運行日月하고

대도는 정이 없으나 일월을 운행하고

 

大道는 武名이나 長養萬物하나니 吾不知其名이라.

대도는 이름이 없으나 만물을 장양케 하나니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함이라.

 

强名曰道니라. 夫道之行也에 有淸有濁 하고

강연히 이름하기를 도라 하였느니라. 대범 도를 행함에 맑음이 있고 탁함이 있으며

 

有動有靜하니 天淸地濁하고

동함이 있고 정함이 있나니, 하늘은 맑고 땅은 탁하며

天動地靜하며 男淸女濁하고 男動女靜하나니

하늘은 동하고 땅은 정하며 남자는 청하고 여자는 탁하며 남자는 동하고 여자는 정하나니

 

降本流末而生萬物하나니라.

근본으로부터 내려와 끝으로 흘러서 만물을 생 하게 하느니라.

 

淸者濁之源이요 靜者는 動之基라.

맑은 자는 탁함의 근원이 되고 고요한 자는 동자의 기본이라.

 

故로 人能常淸靜하면 天地悉皆歸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청정하면 천지가 다 한가지로 돌아가느니라.

 

夫人神은 好淸而心撓之하고

대범 사람의 정신은 맑음을 좋아하되 마음이 흔들리고

 

人心은 好靜而慾牽之하나니

사람의 마음은 정하기를 좋아하되 욕심에 끌리게 되느니

 

常能遣基慾而心自靜하고 證其心而神自淸하면

항상 능히 그 욕심을 보내 버리면 마음이 스스로 정하고 마음이 맑으면

 

自然六慾이 不生하고 三毒消滅 하리니

정신이 스스로 밝아져서 자연히 육욕이 생기지 아니하고 삼독이 소멸하리니

 

所以不能者는 爲心未證이라.

바에 써 능치 못한 자는 마음이 맑지 못함이라.

 

慾未遣也니 能遣之者는 內觀其心에

욕심을 보내지 못 함이니 능히 보내는 자는 안으로 그 마음 일어남을 관 하되

 

心無其心하며 外觀其形에 形無其形하며

마음이 그 마음이 없으며 밖으로 그의 형상을 관 하되 형상이 그 형상이 없으며

 

遠觀其物에 物無其物하느니 三者旣悟하면

멀리 그 만물을 관 하되 물건이 그 물건이 없나니 삼자를 이미 깨닫고 보면

 

惟見於空이니 觀空亦空여 空無所空하며

오직 공 함만이 나타날 것이니 공을 관 하되 또한 공해서 공 함이 공 한바가 없으며

 

所空旣無하면 無無亦無하며

공 한바가 이미 없으면 없는 것이 없다 함이 또한 없으며

 

無無旣無하여 湛然常寂하며

없는 것이 없다 함이 이미 없어서 담연히 항상 고요하며

 

寂無所寂하면 慾豈能生이리요

고요함도 또한 고요한 바가 없으면 욕심이 어찌 능히 생기리요.

 

慾旣不生하면 卽是眞定眞常이라

하고자 함이 이미 생기지 아니하면 곧 이것이 참 정이요 참으로 떳떳함이니라.

 

眞常應物하며

참으로 떳떳함으로 물건을 응하면

 

眞常得性하여 常應常淸靜矣니라.

참으로 떳떳한 성품을 얻어서 항상 응용되는 데에 항상 청정하리로다

 

如此淸靜하면 漸入眞道라.

이와 같이 청정하면 점차 참 도에 들어가게 됨이라.

 

旣入眞道를 名爲得道니

이미 참 도에 들어감을 이름하기를 도를 얻었다 하리니

 

雖名得道나 實無所得이요

비록 이름이 도를 얻었다 하나 실상에 있어서는 얻은 바가 없고

 

爲化衆生을 名爲得道니

중생을 화도 함을 이룸으로서 도를 얻었다 하나니

 

能悟之者는 可傳聖道하리라.

능히 깨달은 자는 가히 성인의 도를 전하리로다.

 

 

且上士는 無自他라. 故로 不爭하고 下士는 執自他라.

또한 상사는 자타가 없음이라. 그러므로 다툼이 없고, 하사는 자타에 집착함이라.

 

故로 有爭하며 上德은 處無相이라.

그러므로 다툼이 있으며, 상 덕은 무상에 처함이라.

 

故로 不德하고 下德은 執有相이라.

그러므로 덕이라 하지 아니하고, 하 덕은 유상에 집착함이라.

 

故로 執德하느니 執着之者는 不名道德이라.

그러므로 덕에 집착하느니 덕에 집착하는 자는 도덕이라 이름하지 아니함이라.

 

衆生所以不得眞道者는 爲有妄心이라.

중생이 바에 써 참 도를 얻지 못하는 자는 망령된 마음이 있음이라.

 

旣有忘心하면 卽驚其神이요

이미 망령된 마음이 있으면 곧 정신이 놀랄 것이요

 

旣驚其神하면 卽着萬物이요

그 정신이 놀라면 곧 만물에, 착심이 생길 것이요

 

旣着萬物하면 卽生貪求요

이미 만물에 착심이 생기면 곧 탐심이라서 구하려는 욕심이 생길 것이요

 

旣生貪求면 卽是煩惱라.

이미 탐내서 구하려는 욕심이 생기면 곧 이것이 번뇌가 되느니라.

 

煩惱妄想이 憂苦身心하여 便遭濁辱하면

번뇌망상이 몸과 마음을 근심케 하고 괴롭게 해서 문득 탁하고 욕됨을 만나게 되면

 

 

流浪生死에 常沈苦海하고 永失眞道라.

생사에 유랑해서 항상 고해에 잠기게 되고 기리 참 도를 잃게 됨이라.

 

眞常之道는 悟者自得하느니 得悟者常淸靜矣니라.

참으로 항상 떳떳한 도는 깨달은 사람이 스스로 얻게되느니 깨달음을 얻은 자는 항상 청정하리라.

 

 

有動之動은 出於不動하고

동함에 있어서 동함은 동하지 아니함으로부터 나게 되고

 

有爲之爲는 出於無爲하느니

함에 있어서 함은 함이 없는 곳으로부터 나오니

 

無爲則神(體性)歸하고 神歸則萬物云寂이라.

함이 없으면 본심에 돌아가고 본심에 돌아간 즉 만물이 적적하다 이르느니라.

 

不動則氣泯하고 氣泯則萬物無生하느니

동하지 아니하면 기운이 민민하고 기운이 민민하면 만물이 생함이 없느니

 

神神相守하고 物物相資하여 厥本其根이라.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움이 서로 지키고 만물과 만물이 서로 바탕해서 궐 하느니라.

 

?而悟之하면 我自識之하고

그 근본을 묵묵한 가운데 깨달으면 내 스스로가 알고,

 

入乎無間하면 不死不生하여

사이가 없는 곳에 들어가고 보면 죽지도 아니하고 낳지도 아니해서

 

與天地爲一이니라. 忘於目則光溢無極하고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되느니라. 눈을 잃어버리면 빛이 넘침이 다함이 없고,

 

泯於耳則心識常淵하느니

귀가 민민하면 마음 알음알이가 항상 연연하느니

 

兩機俱忘하면 絶衆妙之門이라.

두 기틀을 잊어버리면 중묘의 문이 끊기게 되느니라.

 

純純全全合乎大萬하고 溟溟행행하여 合乎無綸하느니

순순하고 전전해서 대만에 합하고 명명하고 행행해서 무륜에 합하느니,

 

天地之大我之所維요

천지의 큼이 나의 벼루 줄이요

 

萬物之衆이 我之所持니

만물의 중생이 나의 가진 바이니

 

竭有窮終以語其蔽哉아.

어찌 다 끝이 있어서 써 그 가리움을 말할 수 있으리요.

 

養其無相하니 相故로 常存이요 守其無體하니

그 상이 없음을 기를 것이니 상이 짐짓 보존함이요 그 체가 없음을 지키나니

 

體故로 全眞이라 全眞相濟면 可以長久하니

체가 짐짓 온전한 참이라. 온전한 참됨을 서로 구제하고 보면 가히 써 장구할 것이니

 

天得其眞故長이요 地得其眞故久요 人得其眞故壽하느니

하늘이 그 참을 얻음으로 길고 땅이 그 참을 얻음으로 오래고 사람이 그 참을 얻음으로 수 하느니

 

世人所以不能長久者는 爲喪其無相하고 散其無體하여

세상 사람이 바에 써 능히 장구치 못함은 그 상이 없는 자리를 상실하고 그 체가 없음을 해산해서

 

不能使百骸九竅與眞體?存 故로 死矣니라.

능히 백해구규로 하여금 참 체성으로 더불어 아울러 존속케 함이라. 그러므로 사 하느니라.

 

先天而生하되 生而無形하고 後天而存하되

하늘 먼저 낳으되 생 함이 그 형상이 없고 하늘 후에까지 존속해 있으되

 

存而無體라 然而無體나

존속함이 그 체성이 없음이니라. 그러나 체가 없어서

 

未嘗存也 故不可思議로다

일찍이 존속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가히 사의할 수가 없도다.

 

靜爲之性이나 心在其中이요

정하면 성이라 하나 마음이 그 가운데에 있고

 

動爲之心이나 性在其中矣니로다

동하면 마음이라고 하나 성품이 그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心生性滅하고 心滅性現하느니

마음이 생기면 성품이 멸하고 마음이 멸하면 성품이 나타나느니

 

性現則如空無相하여 湛然圓滿이라

성품이 나타나면 공해서 상이 없어 담연히 원만 하도다.

 

大道는 無相故로 內其攝於有하고 眞性은 無爲故로

대도는 상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안으로 모든 있음을 끼워 안고 있으며 참 성품은 함이 없음이라.

 

外不生其心하느니 如如自然하여 廣無邊際로다

그러므로 밖으로 그 마음이 나타나지 아니하느니 여여히 자연 그대로 넓어서 끝과 끝이 없도다.

 

對境忘境하니 不沈於六賊之魔하고 居塵出塵하니

경계를 대하되 경계를 잊게 되느니 육적의 마에 잠기지 아니하고 진세에 거하되 진세를 떠나니

 

不落於萬緣之化로다

일만 인연 관계로 변화됨이 떨어지지 아니 하도다.

 

致靜不하고 致和不遷하면

정에 이르러서 동하지 아니하고 화한데 이르러서 옮기지 아니하면

 

慧明十方하여 虛變無爲하리라..

지혜광명이 시방세계에 비치어서 허하게 변화하되 함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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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修養으로 定力을 얻는 공부 ==========

 

 

總明綱要

 

不修養入定之工은 其法不一이라. .

대범 닦아 길러서 정력을 얻는 공부는 그 법이 한가지가 아니니라.

 

有外修養法하고 有內修養法하며 有外定靜法하고

외 수양 법이 있고 내 수양 법이 있으며 외정정법이 있고

 

有內定靜法하느니 學者能洞觀諸法하여

내정정법이 있으니 배우는 사람은 능히 모든 법을 밝게 살피고

 

合用方便然後에 始可無缺而得大成하리라.

합해서 모든 방편을 사용한 뒤에 비로소 가히 결함 없이 대성함을 얻을 것이니라.

 

且有外道之定과 自性之定과 小乘之定과 大乘之定하여

또한 외도의 정과 자성의 정과 소승의 정과 대승의 정이 있어서

 

於此에 亦明瓣而善察然後에 始可無謬而得正定하리라.

이에 또한 밝게 판단하고 잘 살핀 연후에 비로소 가히 그르침 없이 바르게 행함을 얻으리라.

 

是以로 修養之道는 理一而法多하고 言殊而義同하리니

이러므로 써 수양하는 도는 ,이치는 하나로되 그 법은 많으며 말은 다르나 뜻은 같을 것이니

 

若不善解綱要면 則恐有執着偏修之病 이라

만일 잘 강령과 요긴함을 해결치 못하면 곧 편벽 되이 수련하는 병에 집착될까 두려워함이라.

 

故로 更擧全篇之總義하여 別爲簡辦如左하노라.

그러므로 다시 전 편의 총 의를 들어서 분별해 간단히 좌와 같이 분별되었으니

 

外修養者는 修養之意는 在於對治外境이니

외 수양이라 함은 수양의 뜻이 주로 외경을 대해서 공부하는 데에 그 뜻이 있으니

對治外境者는 一 避境工夫니

의경을 대해서 다스리는 자는, 하나는 경계를 피하는 공부이니

 

初學之時에 當遠避外誘境界是也요.

처음으로 배울 때에 마땅히 멀리 모든 경계를 피하라 함이 될 것이요,

 

二 捨事工夫니 不緊之事와

둘은 일을 놓는 공부이니 긴급하지 아니한 일과

 

煩雜之段을 當捨而不作이 是也요.

번잡한 단계를 마땅히 놓아버림이니 다만 만들지 아니함일 것이요,

 

三 依法工夫니

셋은 법에 의거해서 하는 공부이니

 

信受上乘解脫之法하여 求安心於眞理가 是也요.

상승 해탈의 법문을 신봉해 가져서 안심 법을 진리에서 구함일 것이요,

 

四 多聞工夫니

넷은 많이 듣는 공부이니

 

多聞偉人寬大實話하여 常存心於大局이 是也니라.

많이 위인들의 관대한 실화를 들어서 항상 마음을 대국적인 면에 존속함일 것이니라.

 

做工之際에 行此四事하면 則自然外境平定하여

공부를 할 즈음에 이 네 가지의 일을 행하면, 곧 자연히 외경이 평정해저서

 

無有?心之段하리니

내 마음을 거스릴 단계가 없을 것이니,

 

古語에 云 樹欲靜而風不止라하니

고어에 말하기를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한다 하니

 

風者는 外境也라.

바람이 일어난다 함은 외경을 말함이요

 

風之則樹靜하고 境治則心安이니라.

그러므로 바람이 그치면 나무가 고요함과 같이 경계를 다스리면 마음이 편안 하느니라.

 

內修養者는 修養之意가 在於內修自心이니

내 수양자는 수양하는 뜻이 안으로 자심을 수련하는 데에 있나니

 

內修自心者는 一 執心工夫니

안으로 자심을 수련하는 자는, 하나는 집심 공부이니(마음 대중을 잡는 공부)

 

念佛坐禪과 及一切時中에 常念執心不動하여

염불 좌선과 및 일체 시중에 항상 생각하기를 마음 대중을 잡음이 동치 아니해서

 

使吾心神으로 不得流放外境이니

나의 마음과 정신으로 하여금 외경에 흘러 놓치지 아니함이나,

 

如馴牛人執?不捨 是也요

소를 길들이는 사람이 소 고삐를 놓지 아니함일 것이요,

 

二 觀心工夫니 執心稍可면

둘은 관심공부이니 마음 대중을 잡아감이 자못 숙달되어 가면

 

則又放任自適 而但觀心所之하여

곧 놓아서 스스로 적중하는데 맡겨 두고 다만 가는 곳만을 관해서

 

制其妄念而已니

그 망념이 일어남을 제재할 뿐이니,

 

如馴牛人의

비유컨데 소 길들이는 사람이 고삐를 놓아버리고

 

捨?觀牛하여 但制其錯行이 是也요

소만 관해서 다만 그릇 되이 행함을 제재함일 것이요

 

三 無心工夫니 觀心己熟이면

셋은 무심 공부이니 마음 관함이 이미 숙달이 되면

 

則又捨觀相 明寂自在 觀而無所觀이니

또한 상을 관함 마저 놓아버리고 밝고 적적함이 자유자재해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음이니

 

如馴牛人이

비유컨데 소 길들이는 사람이

 

始入人牛不二之境하여 動 靜一眞 是也니라.

비로소 사람과 소가 둘이 아닌 경지에 들어가서 동과 정이 한결같이 참됨일 것이니라

 

經云 心淨則一切淨하느니

경에 말하기를, 마음이 조촐하면 일체가 다 조촐하다 하니

 

心者는 包虛空萬相者也라.

마음이라 함은 허공만상을 다 싸고 있음이라.

 

心一淨이면 則百千外境이 一切淸淨하여

마음이 하나로 조촐하면 백천외경의 일체가 다 청정해서

 

境我無間하여 同成淨土니라.

경계와 내가 사이가 없어 한가지로 정토세계를 이루었음이라.

 

外定靜者는 定靜之義가 在於立志不動이니

외정정 이라 함은 정정한 뜻이 입지부동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立志不動者는 一 發大願心이니 願心이 己極하면

입지부동하는 것은, 하나는 대원에 마음을 발함이니 원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則千萬世緣이 雖當面橫在라도

곧 천만세상의 얼킨 바 인연이 모름지기 마땅히 면전에 비껴 있을지라도

 

視若不見하여 小不掛心이니

보아도 보이지 아니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지 아니할 것이니

 

如釋迦世尊이 發心大道하여 王宮之樂과 雪山之苦를

석가세존이 대도에 발심해서 왕궁의 즐거움과 설산의 모든 고통을 마음 가운데

 

無留心內底思想이 是也요

머물러 두지 아니하는 사상일 것이요,

 

二 發大信心이니 信心己極이면

둘은 대 신심을 발함이니 신심이 이미 지극하면

則千萬世法이 雖紛??處라도

천만세상의 법이 비록 분운한 곳에 아울러 있을지 라도

 

更無思量取捨之心에 如慧可之於達磨也니

다시는 사량으로 취사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니 혜가 달마에게 나아감과 같음이니

 

一信決志에 忘軀求法底思想이 是也요

한번 믿음으로 뜻을 결정함에 몸을 잊고 법을 구하는 사상일 것이요,

 

三 發大忿心이니 忿心己極이면 則千萬障?가

셋은 대분심을 발함이니 이미 분심이 지극하면 천만 장애가

 

包圍重疊이라도 無有恐怖退縮之心어니

중첩으로 포위했을지라도 공포의 마음과 퇴축하는 마음이 없음이니

 

如耶蘇之十二司徒가 冒險守道하여 死而不己底思想 是也니라.

야소의 십이사도와 같이 모험 가운데 도를 지켜서 죽어도 굽히지 아니함일 것이니라.

 

做工之際에 有此三思想則自然立志가 如山하여

공부할 때에 이 세가지 사상이 있으면 자연히 뜻 세움이 산과 같아서

 

無有動搖하리라

모든 경계에 동요됨이 없을 것임이라

(特擧世尊慧可十二司徒는

특히 세존과 혜가와 십이사도를 들어 보인 것은

 

但指一例而言 諸聖之能入道門者는 皆有若是底心思이니

다만 한 예를 말한 것이요, 모든 성인들의 도문에 들어감은 다 이와 같은 심사이오니,

 

且曰 非云實行之果有同一而但思想之同一也니라)

또한 말하기를 실행 결과가 동일함이 있음이 아니라 다만 사상의 동일함을 말함이니라.

 

====== 수심정경 3 수정 끝

 

 

<第一章 明定靜大旨>

 

1) 定靜 ---> 修養으로 활용

(修養이란 修其妄念 養其眞性, 특히 養性공부는 定靜이 근본임을 전제)

 

2) 定靜의 이해 - 至願을 세워 至信과 至誠의 마음을 내면 성취 가능.

 

孟子의 [不動心]({孟子} 公孫丑上)과 老子의 [歸根靜] ({道德經} 제16장 歸根復命)으로

논거지움.

 

불교의 三界사상(욕계, 색계, 무색계)와 화엄사상(一念萬年)

 

도교의 神氣론(精氣神의 대표 개념), 太一사상,

 

도덕경의 면면약존(제6장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水昇火降을 神氣론 입장에 맞춰 설명,

 

 

<第二章 明禁忌>

 

1) 定靜의 병 - 五忌 (不信, 泄瀆-不謹嚴-, 執着, 輕發喜惡, 欲速心)

 

2) {定觀經}의 [若束心太急 又則成病] 인용하여 마음묶기를 급히 함을 경계함.

 

3) 道心, 人心 - 유교 성리학자의 견해 인용됨

 

4) 性命雙修의 내용(自有와 造化) 출현 : - 以一點眞心 反歸玄妙하야 精誠極一하면 鐵石 俱開하고

 

骨肉分形하야 心爲萬靈主요 身爲陰陽造化之宅이라. (陰符經 참조)

 

5) 陰符經 인용 : 陰符經云 五賊이 息<=在乎心하면 宇宙在乎手 萬化生於身者此也.

 

6) 三敎 회통의 내용 : 蓋夫至道는 深窈나 不在其他라 人能弘道하면 道不遠人이니

 

朱子曰 [道也者는 不可須臾去身]이라 하고

 

子思曰 [率性之謂道]라 하고

曾子曰 [知止而後에 有定하고 定而後에 能靜하고 靜而後에 能安하고

 

安而後에 能慮하고 慮而後에 能得]이라 하니

 

此皆自明其[明德]之事也라 我旣有此 明德하니 豈不修煉而明之乎아.

 

<旣知明德之 稟我在하고 知修煉之在我하면 則修而得之가 惟在我一心이니

 

豈區區於 外物하고 孜孜於外飾하야 以欲定靜而得眞道哉아.>

 

=== 유교(주자,중용,대학)의 明德을 불교의 一心으로 이해하고 도교적 定靜 修煉

 

(도교적 내단수련)을 강조함.

 

 

<第三章 明煉氣方法>

 

  1) 정정을 닦는 법을 水昇火降과 五行生化로 설명 강조 - 이는 煉氣의 방법임.

 

2) 수승화강 - 정산종사가 이해한 실증체험에 바탕하여 다시 편술하였음.

 

* 腎水 상승, 心火(심장의 불) 하강, 定靜 첩경, 延年의 도.

 

(1) 外煉法 : 外境과 多思와 嗔喪를 피하여 安閒自適하고 협심증.두뇌열을 없앰.

 

(2) 內煉法 : 專心이 되면, 坐禪으로 調息下氣하여 丹田住로써 寂照不昧하는 것.

 

* 그리하면 五氣相生하고 精氣神이 유여함.

 

3) ?朝上帝({心印經}에 나옴) ; 傳道之秘, 修道之要, 覺道眞訣

 

(水昇火降) --> 坎離交 --> 水火旣濟 --> 一身萬靈 上朝泥丸 --> 一點靈光을 운전 -->

 

南昌上宮에 불방울(火鈴) --> 泥丸玄宮에 上通 --> 수많은 개미가 모인 모습 -->

 

(泥丸에 精氣神을 계속 모으면) --> 맑은우뢰소리와 함께 頂門이 열림 -->

 

一身萬靈 出入 : 이를 ?朝上帝라 함 : 形貌가 보름달같고 三界天眞이 泥丸에 운집 喜悅이 무궁

 

* 그러나 이는 수련이 성숙되어 靈氣를 임의로 운행할 때의 공부이지, 초학자가 강행할 공부는아님

 

* 수승화강 --> 靈氣 운집 --> 慧門이 열림

 

 

 

<第四章 明入門要法>

 

  1) [禪要]인용하여 : 三要(大信根, 大忿志, 大疑情)를 끌여들여 定靜을 닦는 요법으로

 

논거지움 - 信忿疑誠과 大願 등 5자간의 관계를 설명.

 

2) -. 靈寶道局(天命의 本性, 明德)을 만인이 一身에 갖추고 있으므로

 

率性修道하여 明德을 밝혀야 治國.平天下하여 億兆君師도 無量壽仙도 됨.

 

-.天命의 德을 사람이 처음 품부받을 때

 

(1) 머리 : 天의 三淸眞宮의 기운

 

(2) 배 : 地의 山林川澤의 형체

 

(3) 가슴 : 日月星辰과 風雲雨露와 陰陽造化의 집

 

=======> 天眞帝君, 九靈三精, 五神眞君, 內外將軍, 左右官屬, 諸部工曺,

 

八萬四千元君을 다 갖췄으므로 靈寶道局이라 한다.

 

-.大願과 信忿疑誠으로 이 靈寶道局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

 

3) [禪要] 인용하여 : 信有十分 --> 疑有十分 --> 悟有十分

 

4) {玉樞經} 인용 : [以誠而入하고 以?而守하며 以柔而用이면 則物我俱忘하고

 

慧光乃生하야 聖智自全]

 

5) 西峰道士의 말을 인용하여 [不信.貪慾.懶.愚]가 靈寶局의 보물 도둑을 방어하는

 

수문장임을 비유 --- 釋迦가 傳說, 老子가 指路, 孔子가 勸送 (삼교회통설).

 

* 五賊이 일어남에 三盜가 不息

= 孔子의 [糞土오之墻]({논어} 公冶長)과 맹자의 [下愚不移者](?)가 곧 不信貪慾懶愚라고 논거.

 

6) 禪書(?)를 인용 : 그 無盡藏寶는 用之不竭 取之無禁한데 信忿疑誠으로 가능함을 설명.

 

- 金剛利刀로 세속인연을 끊고 信忿疑誠으로 문에 들어간 후에 鐵柱中心, 石壁外面

 

7) 위와같음이 <入定>으로 능히 頓成正覺하면 이를 일러 得慧

 

===> 이같은 자는 禪家의 佛, 靈寶의 聖, 仙家의 丹 (삼교회통)

 

8) [극절한 공부](極切之心)는 相火, 虛火와 건장한 사람이라야 가능 = 이러한 極切之心은 修煉이

 

성숙하야 眞趣를 얻은 사람이 최후에 실행하는 법이므로 초학인은 먼저 心安에 힘쓰기를 가르침.

 

 

<第五章 明風土移化之功>

 

  1) 사람의 心體는 원래 물듦이 없으나 私情으로 인해 風土의 習氣가 되는데

 

自心상의 習氣를 살펴 수련이 단련이 된 후에야 定靜을 얻을 수 있다. (정산종사 추가글)

 

2) (定靜 후) --> 微光明이 發 --> 定慧等持 : 이것을 精一執中이라 하는데

 

中庸과 大學과 論語의 元亨利貞과 仁義禮智를 성품에 따라 나투면 聖賢이 된다.

 

* 정산 - [風土의 習氣를 받음은 다르나 氣質(기운바탕)은 같으므로

 

나의 靈寶 眞訣은 잘 화하여 하나에 돌아가는 것이다

 

(性之齊). 정정편을 다송하고 좌선법을 근행하면

 

수승화강이 잘되어 風土를 옮길 수 있어서 聖人과 같아진다.]

 

3) 前聖後聖의 學修가 모두 그와같다.

 

4) -. 定靜의 기간 ({수양연구요론}에는 [공부의 기한], 후에 入禪, 지금은 교무훈련.

 

(1) 大限 - 10년 (비교:9旬), 십년전일 無不貫通

 

(2) 小限 - 9旬 (비교:5旬), 구순전일 外定可得

 

-. 入定의 기간

 

(1) 대한 - 7일 (비교:3일), 칠일정진 可入眞忘

 

(2) 소한 - 半時(또는 때때로)

 

* 그러나 定靜의 빠르고 늦음은 誠과 不誠에 있다.

 

5) 靈寶局에 나아가 自修自明이면 신선, 부처, 성인, 진인이 될 수 있다.

 

---> 부지런히 닦으면 氣和神化하여 定靜을 얻어서 復其性할 수 있다.

 

 

<第六章 明定靜次第> : {定觀經}

 

1) 若束心太急하면 又卽成病, 心若不動하면 又須放任하라 如此則寬急이 得所하야 自恒調適하며

 

制而不着하며 放而不動하며 處喧無惡하며 涉事無惱者 此是眞定

 

2) [入定과 得慧] 곧 定慧雙修를 언급함

 

3) 得道人에 7징후, (1) 心得定見하야 覺諸塵漏, (2) 병이 없어져 心身輕爽,

 

(3) 塡補夭損하야 還平復命, (4) 延壽無量한 仙人, (5) 鍊形爲氣한 眞人,

 

(6) 鍊氣成神한 神人, (7) 鍊神合道의 至人 등 =======> 나아가 慧를 두루

 

갖추고 定靜을 오래 익히어 결국 마음에 一通도 없는 것 같아야

 

(8) 圓通修練之士(정산종사 표현)라 할 수 있다.

 

 

 

<第七章 明眞常之道> : {常淸靜經}, {洞古經}, {大通經} 등 3경으로 구분.

 

  ☆ 常淸靜經

1)

大道無形이나 生育天地하고 大道無情이나 運行日月하고 大道無名이나 長養萬物하나니

 

吾不知其名이라 强名曰道니라. 夫道之行也에 有淸有濁하고 有動有靜하니 天淸地濁하고

 

天動地靜하며 男淸女濁하고 男動女靜하나니 降本流末而生萬物하니라. 淸者濁之源이요

 

靜者는 動之基라 故로 人能常淸靜하면 天地悉皆歸니라.

 

2) 三者旣悟하면 惟見於空이니 觀空亦空하야 空無所空하며 所空旣無하면 無無亦無하며

 

無無旣無하야 湛然常寂하며 寂無所寂하면 欲豈能生이리요.

 

3) 上士 無自他라 故 不爭하고 下士 執自他라 故 有爭하며,

 

上德 處無相이라 故不德하고 下德 執有相이라 故 執德, 執着之者는 不名道德.

 

 

☆ 洞古經 : 생략

 

☆ 大通經

先天而生호대 生而無形하고 後天而存호대 存而無體라 然而無體나 未嘗存也라

 

故曰不可思議로되 靜爲之性이나 心在其中이요 動爲之心이나 性在其中矣로다.

 

心生性滅하고 心滅性現하나니 性現則如空無相하야 湛然圓滿이라.

 

大道는 無相故로 內其攝於有하고 眞性은 無爲故로 外不生其心하나니

 

如如自然하야 廣無邊際로다.

 

對境忘境하니 不沈於六賊之魔하고 居塵出塵하니 不落於萬緣之化로다

 

致靜不動하고 致和不遷하면 慧照十方하야 虛變無爲하리라.

 

 

 

<第八章 總明綱要>

 

  1)

 

夫修養入定之工은 其法不一이라 有外修養法하고 有內修養法하며

 

有外定靜法하고 有內定靜法하나니 學者能洞觀諸法하야 合用方便然後에 始可無缺而得大成하리라

 

且有外道之定과 自性之定과 小乘之定과 大乘之定하야 於此에 亦明辨而善察然後에

 

始可無誤而得定靜하리라 …… 8종류의 수양입정의 종류를 밝힘

 

2)

 

全篇之說이 縱橫穿流하야 雖有諸般方便이나 其本則但不過於修養而已니 修養之德이 其盛矣乎인저.

 

智慧聰明도 由此而基하고 率性實行도 由此而成하며 神通妙術도 由此而生하며 生死解脫도

 

由此而得하며 六道自由도 由此而源하니라.

 

수심정경 4 (내용분석) 끝

 

 

修丹之道

 

修丹之道 至簡至易 而今其爲書 汗牛馬充棟宇 且其言語太涉 恍惚難了 故 古今學者

 

不知下手之方 欲得長生 反致夭折者多矣 至於參同契一篇 實丹學之鼻祖

 

顧亦參天地 比卦爻 有非初學之所能 測今述其切於入門而易知者若干章

 

若能了悟則一言足矣 蓋下手之初 閉氣而已 今欲閉氣者 先須靜心 疊足端坐

 

垂簾下視 眼對鼻白 鼻對臍輪 入息綿綿 出息微微 常使神氣 相住於臍下一寸三分之中

 

念念以爲常 至於工夫稍熟 得其所謂玄牡一竅 百竅皆通矣 由是而胎息

 

由是而行周天火候 由是而結胎莫不權與於此矣 或者 以爲傍門小術 莫肯行之惜哉 變化飛昇之術

 

非愚所敢言 至於養神 千方百藥 莫之與比 行之彌月 百疾普消 可不爲之盡心乎 夫風邪之患

 

伏藏血脈之中 冥行暗走 不知爲殺身之斧斤 久矣傳經 深入膏  然後 尋醫服藥

 

亦已晩矣 正氣與風邪 如氷炭之不相容 正氣留則風邪自走 百脈 自然流通 三宮 自然升降 疾病

 

何由而作乎 稍加精勤則必至於延命却期 得其糟粕 亦未有不安怡令終者也 愛之欲其生 愚常以此]

 

爲諸君子贈 亦相愛之道也 觀乎此者恕其狂僭 幸甚 謹按 古人云順則爲人

 

逆則爲仙 蓋一生兩 兩生四 四生八 以至於六十四 分以爲萬事者 人道也 疊足端坐 垂簾塞兌

 

收拾萬事之紛擾 歸於一無之太極者 仙道也 契 所謂委志歸虛無 無念以爲常 證驗以推移

 

心專不縱橫 此修仙第一義也 但立志 貴早 鼎氣衰敗之後 雖百倍其功 難與於上仙之列也

 

단(丹)을 수련하는 길은 매우 간단하며 쉬운 것이나 이에 대한 글들은 소나 말에 가득 실고 집안을 채울 정도이다. 또 그 글이 황홀난료하여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행하는 이들이 알기 힘들고 손대기 어려워, 장생(長生)을 구하려다 반대로 요절하는 이가 많았다. 이중에서 참동계(參同契)라는 책은 참다운 단(丹)을 공부하는 것에 있어 비조라 할수 있다. 허나 천지를 돌아보고 괘효를 비교하여 설명하였기에 처음 공부를 하는 사람의 경우 그 내용을 헤아리기가 힘들다. 이에 입문자들이 단에 대해 쉽게 알수 있도록 장을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만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한마디 말로도 만족할 것이다.

 

수행인들이 처음 시작해야하는 것은 폐기(閉氣)이다. 폐기를 하고자 하는 이는 우선 마음을 고요히 하고 양발을 포개어 바르게 앉으며 눈은 수렴(살짝 감은 상태)하여 코끝을 내려다 보고 코끝은 배꼽을 근처를 대하도록 한다.

들이마시는 숨은 가늘고 길게 이어지도록 하고 내쉬는 숨은 조금 조금씩 내쉬도록 하여 신(神, 호흡으로 집중된 마음의 의식)과 기(氣, 호흡으로 단전에서 일어나는 기운)가 항상 서로 어울어져 배꼽아래 한치 세푼자리(하단전을 말함)에 있도록 한다.

항상 수련하고 수련하여 공부가 익숙해져서 현묘한 하나의 구멍(단전기혈로 일양이 초동하여 생명이 생성되는 곳)을 얻게되면 백개의 구멍(여러가지 뜻이 있으나, 전신의 혈穴이 열리고 피부호흡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도 통하게 된다.

이것으로 태식(胎息, 코와 입이 아닌 모공으로 이루어지는 호흡)이 이루어지고, 주천화후(周天火候, 단전의 기운이 저절로 움직여 전신을 훈훈히 맴도는것)가 이루는 것이며, 결태(結胎, 단전에서 이루어지는 선천의 기운으로 여러 의미가 있지만 한마디로 지극히 높은 수준의 觀이 이루어져 참다운 자신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한다.)가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옳지 못한 조그마한 술법이라 하여 늦도록 행하지 않으니 가여운 일이다. 변화하고 날아오르는 술법은 감히 어리석은 내가 말할바는 아니나, 신(神)을 기르는데(신을 기른다 함은 정신을 수련한다는뜻) 있어서는 천가지 방법이나 백가지 약들도 이에 비교할 수가 없다.

한 달이 가기전에 백가지 병이 없어지니, 어찌 의심할수 있겠는가. 풍사로 인한 병들은 오장의 혈맥속에 숨어들어 암암리 돌아다니는데 이것이 자신을 죽이는 도끼가 됨을 알지 못하면, 오래 되도록 경락을 타고 돌아다니다 고황(膏 , 명치 부근으로 이곳에 병이 들면 고치기 힘들다고한다. 오래된 위장의 병을 말하기도 한다.) 깊숙히 들어가게 된 연후에는 의사를 찾고 약을 먹어도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다.

정기와 풍사는 얼음과 불똥같아서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 정기가 머무르게 되면 풍사는 도망칠수밖에 없어, 백맥이 저절로 유통되고 삼궁이 저절로 오르내리니(삼궁이 오르내린 다는 것은 상,중,하 각각의 단전이 열리고 호응한다는 뜻으로, 다른 관점으로 충맥이라는 삼단전을 직선으로 이어주는 통로가 열린다는 뜻으로 볼수도 있다. 또한 이 충맥은 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충맥과 구분되기에 중맥中脈이라고 하기도 한다.) 질병이 어찌 생기겠는가.

조금만 더 부지런히 정진하면 수명을 늘이고 죽음을 물리칠 수 있으나, 그 밑바닥의 찌꺼기만 얻는다 하여도 평탄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릴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살리는 것이니, 어리석은 내가 이 글을 모든 군자들에게 보내는 것 또한 서로를 사랑하는 길인 것이다. 공손히 손을 모으고 옛사람의 말씀을 들어보면, 거스르지 않고 운행되면은 사람이 되고, 거슬러 올라가면 신선이 된다고 하였으니, 처음 하나에서 둘이 생기고 둘에서 넷이 되고, 넷에서 여덟이 되며, 그것이 육십사에 이르게 되면 만가지 일로 나누어지게 되어 인도(人道, 사람의 길)를 이룬다. 다리를 포개고 바르게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만가지 어지러운 일을 거두어들이고 생각을 멀리하면 아무것도 없는 하나로 돌아가게 되어 태극에 이르르게 되니 이를 선도(仙道, 신선의 길)라 한다.

계(참동계를 말함)에 이르기를 사심을 버리고 허무로 돌아가서 항상 무념으로 변화되어가는 스스로를 증험하여, 마음이 한길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것이 선(仙)을 수련하는데 처음의 길이라 하였다. 다만, 뜻을 세우는데 있어 귀한 것은 얼마나 빠른가 하는 것이니, 원기가 쇠해저 그 기틀이 깨트려졌을 때에는 높은 선의 경지에 오르기 어렵다.

 

閉氣

 

閉氣者 以眼 爲旗幟 氣之升降 左右前後 莫不如意之所之然 世人 皆上盛下虛 每患此氣之升 而上下不交 故 務要此氣之降 而在中宮 使脾胃 和暢 血脈 周流而已 能使血脈 周流 至於任督皆通則延命却期 豈不可必 故 修丹之道 必以閉氣 爲下手之方 疊足端手 舒顔和色 垂簾下視 必使神氣 相住於臍下丹田之中 則上部風邪 如雲委霧降 滾滾瀉下 先走於胸腹 得其傳送然後 身體和平 汗氣蒸潤 一身百脈 周流大遍則一意沖瀜 眼前白雪 紛紛而下 不知我之有形 形之有我 窈窈冥冥 恍恍惚惚 已在於太極未判之前矣 此所謂眞境界 眞道路 外此 皆邪說妄行耳

 

폐기.

 

폐기를 하고자 할때는 눈을 깃대로 삼아 기의 오르내림과 좌우전후, 뜻대로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도록 하여야 하나(시선에 의해 마음이가고 마음을 따라 기가 움직이는것. 그렇기에 수행이란 육안과 심안으로 단전을 관한다는 단순한 것인데.. 이 시선이라는 것은 신과 기가 단전에 머물게하는 선도의 비밀중 하나로 긴 설명이 필요하기에 나중에 기회가 닿을때 설명하도록 하겠다.), 세인은 대부분 위(상부)는 성하고 아래(하부)는 허하니 늘 기운이 위로 오르기만할뿐, 위아래의 기운이 교류하지 못한다. 그러니 본래대로 기운이 내려가 있게 힘써 중궁에 있도록 하면 비위가 화평해지고 혈맥이 미치는 곳이 없게된다. 혈맥(기와 혈)이 잘돌게 되면 임독(기경팔맥중 임맥과 독맥)이 크게 열리게 되어 수명을 연장하고 죽음을 물리칠수 있다. 본래 단을 수련하는 길은 반드시 폐기부터 시작하여야 하니, 다리를 포개고 손을 바르게 하며 얼굴을 펴서 화색이 돌게 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완전히 감는 것이 아니라 가늘게 뜨는 것을 말함. 반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신과 기로 하여금 단전에 머물게 하면, 상부의 풍사가 구름이나 안개처럼 아래로 흘러가게 된다. 이렇게 흘러간 연후에 몸이 화평해지고 땀에 젖게되는데, 일신의 백맥이 두루 흘러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게되며 하나로 모아진 마음이 텅비고 넓게 되어, 눈앞에 백설이 흩날리며 내몸이 있는지, 내몸이 나인지 알지 못하며 아득하고 황홀하여 태극의 이전에 있게 되니, 이것이 참된 경계이요, 참다운 길이다. 다른 것은 모두 사설이요 망행일 뿐이다.

 

胎息

閉氣稍熟 神氣稍定 然後 稍稍推氣 下至腹下毛際 細心推究此氣 息所從出處 隨出隨入 使一呼二吸 常在其中 而不出於口鼻之間 此 所謂在母胎之息 所謂歸根復命之道也 故 能胎息然後 此氣柔而和 和而定 至於無呼吸之息 經 云氣定則無呼吸 昔 葛仙翁 每於盛暑 入深淵中 十日乃出 其以閉氣胎息也

 

태식.

 

폐기가 익숙해져 신과 기가 점차 정하게 된 연후에 조금씩 기운을 밀어 복부밑에 털이난 곳까지 보내어 조심스럽게 기식이 들어오고 나오는 출처를 쫓으며,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으로 하여금 항상 그 가운데 있게 하여 입과 코사이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소위 모태에서 쉬는 숨이니 귀근복명의 길이다. 본래 태식이 능해진 연후에 기운이 부드럽고 순하여 정하게 되니, 이것으로 호흡이 없어지는 숨에 이르게되는 것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기가 정해지면 호흡이 사라진다 하였으니, 옛날 갈선옹이 매번 더운 여름에는 연못 깊숙히 들어가서 십일동안 있다 나왔다 하니, 이것이 폐기의 태식으로 가능한 것이다.(과학적으로도 피부는 호흡기와 달리 물속에서도 호흡이 가능하다고 한다. 태식을 이룬 이는 물에 빠져도 죽지 않아 '水仙' 이라고도 부른다.)

 

周天火候

 

周天火候者不過曰熱氣遍身也 神氣相住於臍腹之間 當此時 若能加意吹噓 則溫溫之氣 從微至著 自下達上 如花至漸開 所謂華池生蓮花也 保守稍久 熱漸生盛 腹中大開 如同無物 須臾 熱氣卽遍身 此所謂周天火候也 苟能運火如法則不至於不可忍耐

 

주천화후.

 

주천화후라 하는 것은 열기가 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도는 것이니 신과 기가 단전에 머물러 있을 때, 만일 의식을 가하여 바람을 부는 것이 능해지면(실제 바람을 부는 것이 아니라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느낌을 조심스럽게 키워나가는 것을 말한다) 따뜻한 기운이 미미한것에서 점차 들어나고 스스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임독이 절로 유통되는 것을 말한다) 꽃이 점차 개화하는 것과 같다. 소위 화지에 연꽃이 피어난다는 것으로 오래도록 평안히 이상태를 지켜나가면 열기가 점차 성해져서 뱃속이 텅빈 듯 크게 열리고 잠깐동안에 열기가 전신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되니 이것이 주천화후라는 것이다. 법도대로 열기를 운행하기만 한다면 인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臍腹之下一寸三分 卽所謂下丹田 與上丹田 相應如響 所謂玉爐 火溫溫 頂上 飛紫霞也 上下灌注 如環無端 苟能使此火 溫養不失 淸明之氣 上結於泥丸宮 仙家所謂玄珠 佛家所謂舍利 有必然之理 至於成道與否 在人誠如何耳 但早達爲貴 抑又聞之 所謂以火煉藥 以丹成道 不過以神御氣 以氣留形 不須相離 術則易知 道難愚 縱然愚了 不專行 所以 千人萬人學 畢竟 終無一二成 故 凡學者 以誠爲歸 又詩曰 正氣常盈腔裏 何妨燕處超然 達摩 得胎息法 故 能面壁觀心 黃庭經 曰 人皆飽食五穀精 我獨飽此陰陽氣 以此二詩 觀之則 穀 專由胎息 苟能 穀 獨飽此陰陽氣則地戶閉 天門 開 豈不可平路登仙乎 右三條 雖各立名 非今日 行一條 明日 又行一條 其工夫 專在於閉氣中 但工夫 有淺深 等級 有高下 雖變化飛昇之術 皆不外此三者 唯其誠耳

 

배꼽아래 한치 세푼은 곧 하단전이니 상단전과 상응하여 함께 울리게 되면, 옥로(단전을 지칭하는말)의 따뜻한 불이 아득한 하늘위로 올라가게 되어(상단전이 있는 뇌부를 말한다) 아래위가 물을 대듯 고리를 이루어 끊임없이 흘러가게 된다. 단전의 열기(火)로 하여금 따뜻함을 잃지 않게만 한다면 청명한 기운이 위로 올라 니환궁(상단전)에서 맺혀져, 선가에서 말하는 현주나, 불가에서 말하는 사리가 되는 것이니 필연적인 이치가 있다. 도를 완성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의 정성에 있는 것이다. 다만, 일찍 도달하는 것이 귀할 뿐이다. 또, 듣자하니 소위 불로 약을 달이고 단으로써 도를 이룬다 하는데, 이는 신으로써 기를 다스리고, 기가 형체에 머무르게 하여, 서로 떼어놓지 않게하는 것에 불과하다. 술은 알기 쉬우나 도는 어려우며 어쩌다 알게되었다 하더라도 정성으로 행하지 아니 하니, 천명, 만명이 배워도 필경 끝까지 성공하는이가 한두명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배우는 이들은 정성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시에서 말하기를 정기가 항상 가득하면 초연히 살아가는 것을 어찌 꺼리겠는가, 라 하였다. 달마는 태식을 얻게 되어 능히 면벽으로 관할수 있었고, 황청경에서 말하기를 사람은 오곡으로 배를 채우나, 나는 홀로 음양의 기운으로 배를 채운다 하였으니, 이 두 시로 보건데 벽곡(먹는 것을 끊는 것)은 오로지 태식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진실로 벽곡이 능해지고, 홀로 음양의 기로 포식할수 있다면 땅의 문(죽음)이 닫히고 천문이 열니니, 어찌 등선(신선이 되는 것)하는 것을 의심하겠는가. 위의 세조목은 비록 각기 이름은 다르나 오늘 한가지를 행하고 명일 또다른 한가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부가 오로지 폐기(신과 기가 단전에 머물도록 하는것, 다른 말로 '응신입기혈'이라고도 한다.)하는데 있는 것이다. 다만, 공부가 깊고 얕음이 있고, 등급이 높고 낮음이 있으니, 비록 변화하여 날아오르는 술법일지라도 모두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세가지(폐기, 태식, 주천화후)를 벗어나지 않으며 오직 그 정성에 달린 것이다.

 

 

修道八戒文

 

1. 수도에 방해되는 인연을 끊어라.

수도를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하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계가 나에게 주어 졌을때,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수도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한다. 우리는 수도인이다. 마음의 자유를, 생사의 자유를, 죄복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수도하는 사람들이다. 이 세가지 자유를 얻는데 방해되는 인연들은 모두 끊으라. 나의 마음의 힘과, 업력과 환경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2. 욕심을 조절하라.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 것이다. 그 욕심을 따라 다니다 보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욕심을 서원으로 돌리고,작은 욕심은 큰 욕심으로 없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번뇌는 다섯가지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내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욕심이 있다. 그 욕심을 알고 대치하는 방법에 따라 욕심을 극복하고 조절하여야 한다.

 

3. 대접 받는 때를 조심하라.

남에게 대접 받는 때가 내가 망할 수도 있는 때라는 것을 알아라. 대접 받는 때 아상이 나타나고, 대접 받는 때 명예욕이 생겨난다. 푸대접은 나를 분발하게 하는 분발심이 생겨날 수 있다. 대접 받는 때를 조심하여야 한다.

 

4. 나의 밖에서 나를 보라.

밖에서 나를 보아야 나의 잘 못이 보여진다. 등잔불 밑이 어두운 것은 불빛이 밖으로만 퍼지기 때문이다. 밖에서 나를 비춰 볼때 나의 그늘은 없어지고, 내 스스로 발광체가 되어 질때(자성의 혜광이 발할떄), 어둠은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허물을 보고, 남의 시비는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5. 정진이란 후회없는 노력이다.

필요 이상의 잠을 자지 말라. 소중한 시간들을 허송하지 말라. 필요없는 말을 삼가하라. 말하는데 정신 기운이 소모되며, 말이 씨가 된다. 좋은 씨를 심기에도 바쁜 사람이 되라. 지식꾼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지식은 활용할 수 있을떄 가치가 있지, 지식의 노예되면 곤란하다. 적당한 운동과 노동, 적당한 음식을 먹는 것이 정진하는데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6. 게으름이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알아라.

편안함이 게으름을 만든다. 수도하는데 가장 큰 병이 게으름이다. 처음부터 편안함을 취하면서 성불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과정을 지날때는 괴롭지마는 그 과정을 마치고 나면 편안함은 저절로 찾아 오는 것이다.

 

7. 참회는 수도하는데 약이 된다.

참회는 잘 못을 뉘우치는 것이며, 잘 못을 고쳐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으로 참회하라. 내가 지은 모든 죄업, 소멸될 때까지.

 

8. 가장 쉬운 수행은 봉공이다.

이타행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공의 입장에서 보면 삼학 수행 자체가 자기 불공이 된다. 수행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며, 생활속에서 할 수 있어야 참다운 수행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여덟가지 계문을 지키자는 것은 우리 스스로 계문을 정하고 그대로 실천하자는 것이며, 그 실천을 통해서 마음의 자유, 생사의 자유,죄복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며, 세 가지 자유를 얻는데 보탬이 되자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자는 것이다

 

五不誠

 

성부제중의 서원을 가지고, 주세불 회상에 참여하여 일원대도의 정법을 가지고도 삼대력이 날로 날로 쌓여지지 못하고 진급과 승급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정성심이 솟아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정성심이 솟아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고 정성심이 솟아나도록 다 함께 노력해보자는 뜻으로 정성이 되지 않는 이유라는 주제로 공부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믿음과 서원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확실해야 하고자 하는 분발심이 나오고, 분발심이 충분해야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의문이 제대로 풀려야 정성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철저하기 위해서 뚜렷한 목표인 서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법문에 믿음이 십분이면 분발심이 십분이 되고 분발심이 십분이 되어야 의심이 십분이 되며, 의심이 십분이 되어야 정성이 십분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정성심이 솟아나기 위해서는 믿음과 서원을 키워야 한다.

둘째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이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건강이 좋지 못해서 모든 일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의욕이 상실되고 정성심이 솟아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은이 주신 이 육신과 정신을 소중하게 알고 심신간 건강에 주의하여야 한다. 건강할 때 더욱 건강에 조심하고, 건강할 때 공부할 기회라고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정진하여 자력을 얻고 심신간 지쳐 있을때라도 정성심이 가라앉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셋째는 주위 인연들이 좋지 못해서 이다. 주위 인연인 부모. 형제.친척이나 친구들이 반대하며 마음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인연을 만들고, 악연은 멀리 피하는 피경공부를 하여야 한다. 어떤 인연이 좋은 인연인가? 성불제중하는데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되는 인연들이 좋은 인연이다. 나에게 아무리 잘해주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거나 나를 위하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성불을 하고 제중을 하는데 방해되는 인연들은 좋은 인연이 아니며, 나를 꾸짖고 나에게 물질적인 손해를 끼치더라도 성불제중하는데 도움이 되는 인연들은 좋은 인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력이 없는 경우에는 악연을 피하는 피경공부가 필요하며, 자력이 있을 경우에는 전회위복을 만드는 경우처럼 성불제중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활용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는 자기를 용서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쯤이야, 어떠한 이유라도 달아서 자기 홥리화를 시키고 자기를 용서하기 때문이다. 남은 용서해도 자기의 잘 못은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수행은 소승으로 하고, 대타관계는 대승행으로 하라. 한번 하기로 한 일은 진리와 나와의 약속이라 여기고 반드시 실천하며 잘 못이 있거나 아닌 마음이 날때에는 자기를 용서하지 말고 자기 반성을 통해 거듭나는 삶을 사는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다섯째는 육신의 명령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정신이 육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육신의 힘에 끌려 살며 육신의 명령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맛있는 것을 먹는 시간이다. 오늘은 실컷 잠이나 자야지! 오늘은 감기 기운이 있으니 내일로 미루어 일을 처리하자... 밥은 굶더라도 선과 염불과 기도를를 통하여 영육을 쌍전하는데 필요한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 정성심이 없도록 하는 원인들이다. 이러한 원인들을 알아서 미리 미리 준비하고 노력하여 믿음과 분발과 의심으로 정성이 솟아나오도록 노력하는데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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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의 큰뜻

明定靜大旨

 

夫修養者는 修基忘念하고 養基眞性이니 養性之工은 以定靜으로 僞本이니라

定靜之法은 懷至廣至大之願하고 發至誠至信之心하여 念念不忘 則定靜을 可得이니

라 定者는 一定於此而諸他道理가 無加於吾之所做요 許多法術이 不出於渠之惑世而已

며 靜者는 歸於一定而不復動於他하여 富貴營華가 不能誘心라고 金玉寶貝도

無可奪志니 一志立定에 五心不動이면 則孟子之不動心과 老子之歸根靜이 皆是也니라

 

대범 수양이라 함은 그 망령된 생각을 닦아 없애고 참된 성품을 양성함이라 양성하는 공부는 정하고 고요함으로 근본을 삼을 것이니라.

정하고 고요히 하는 법은 지극히 넓고 지극히 큰 발원을 품고 또한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신심을 발해서 생각 생각이 그 발원한 바를 잊지 아니하여야 정하고 고요함을 가히 얻을 것이니라.

정이라 함은 한번 이에 결정한 바에는 다른 도리가 나의 공부하는 바에 더함이 없을 것이요, 허다한 법과 술수가 모두 다 세상을 미혹케 하는 데에 지나지 아니할 뿐이며,

고요하다 함은 한번 결정함에 돌아가서는 다시는 다른 데에 움직이지 아니해서 부귀 영화도 능히 내 마음을 유혹하지 못하며 금옥보패도 가히 뜻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니 한번 뜻을 세워 정함에 다섯 가지 마음으로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맹자의 부동심과 노자의 근본에 돌아가고요 하다 함이 다 이를 두고 이름이니라



上無色界하고 下無慾海하여 一念萬年에 耳目이 俱淸하고 身心이 俱忘하여 神氣俱爽하고 內外俱空하여 泯於深定寂靜하여 湛然至一이라 先全我太一之天而後에 神氣冷冷然而淸하고 神光炯炯然而明하여 無地不燭하고 無理不通이나 然이나 若有喧動이면 則神氣??然而昏하고 神光??然而晦하리니 何益於思想之所存哉아 唯綿綿密密하여 念而不忘則自然一心不動하고 百?이 歸源하여 火降水昇에 氣定神淸하여 上通天界하고 下達地府하여 空空洞洞에 光明이 無邊하고 動而無間하여 一切玄妙之境을 洞撤開悟하리라

 

위로 색의 경계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아래로 욕심의 바다에 물들지 아니하여서 오직 한 생각으로 만년을 지낸다면 이목이 한가지로 청정하고 심신을 다같이 잊어버려서 정신과 기운이 한가지로 상쾌하고 안과 밖이 다같이 공해서 깊이 정해 적정한 데에 빠져 들어가 서 담담하게 지극히 한결 됨이라 먼저 내 자신이 가장 하나인 천성을 온전히 한 뒤에 정신과 기운이 서늘하게 맑고 싱그러운 광명이 초롱초롱하게 밝혀서 빛이지 아니한 땅이 없고 통하지 아니한 이치가 없을 것이나, 그러나 만일에 복잡하게 동함이 있으면 정신과 기운이 몽롱하게 어두워지고 싱그러운 광명이 멍하게 어두워지리니 어찌 생각하고 생각하는 바를 존속함이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오직 간단이 없이 지속하여서 일념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여야 자연히 한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일백 맥이 근원에 돌아가 불은 내리고 물은 올라서 기운은 하나에 정하고 정신은 맑아서 위로는 천상계를 통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사무쳐서 비고비어 맑고 맑아서 그 광명이 갓이 없고 동하되 사이기 없어서 일체 현묘한 경지를 맑고 밝게 깨우쳐서 열릴 것이니라.

 

 

마음을 단련하는 공부

明禁忌

 

做工之際에 有五忌一曰不信(不信正法)이요 二曰 泄瀆(不謹嚴)이요 三曰 執着自意(不知

是非 固執自意)이요 四曰 輕發喜惡이요 五曰 生欲速之心이니 皆爲定靜之病이라

必落邪道矣리니 敬之愼之하라.

 

공부를 할 때에 다섯 가지로 금기 힘이 있으니, 하나는 믿지 아니함이요 둘은 거만하게

세여 나아감이니 근엄치 아니함이요 셋은 자기 자의에 집착함이니 고집 불통함이요 넷은

경망스럽게 선악간 경계에 동요됨이요 다섯은 성질이 급해서 무엇이든지 속히 하고자 함

이니 모두가 다 정정 공부를 하는 데에는 병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사도에 떨어지게 되나니 공경하고 조심할 것이니라.

 

若初學靜坐에 必苦於自心不定이면 煩雜之念이 反生하여 禁忌則心惱益亂하느니

惟在寬寬漫漫하여 任之自然이면 定靜을 自得이리니 譬濁水待淸에 急欲澄淸하여

頻考數察하면 則泥濁尤起也라 故로 定觀經에 以東心太急으로 先爲上戒하여 若或

未定에 惡境이 出現이면 則回心泯泯하여 求意閒閒하며 亦密念師門聖訓하여

自心本願을 轉轉返思하면 自然定而靜矣니라.

 

만일에 초학자로서 고요히 좌정 함에 있어서 반드시 자기의 마음이 정하지 못함의 괴로움에 얽매이면, 번잡한 마음이 도로 생기나니 금기하기로 하면 오직 마음을 너그럽고 넉넉하게 하는 데에 힘을 모아 자연 한데 맡기고 보면 정정을 스스로 얻게 되나니, 비하 건데 탁한 물이 맑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아서 급히 맑히고저 하여 조급히 자주 살피고 보면 진흙에서 일어나는 탁한물이 일어남과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정관경에 말씀하시기를 ??마음 묶기를 급히 함을 제일 먼저 경계를 하여서 만일에 마음이 정하지 못하는 데에 있어서 좋지 못한 경계가 나타나면 마음 돌리기를 민첩하게 하고 뜻 구하기를 한가롭게 하며 또한 스승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늘 생각하여 자심에 근본 발원함을 끊임없이 생각코 생각하면 정하고 고요하여 지나리라?? 하였느니라.

 

凡行事之際에 萬像森列하느니 不可怠急이라 粉?華頭가 悉從心頭所出하리니 一切

奇異殊勝善怨應變之事가 隨汝心設하며 隨汝心生이며 隨汝心求며 隨汝心現하느니

若使道心으로 爲人心所牽이면 便墮他圈中하여 正退邪進하리니 豈不愼哉아 且幽冥

境界는 一念轉移之間에 便現無量塵劫하리니 愼勿役心于華頭所施하라.

 

대범 모든 일을 행할 때에 일만 형상이 나타나느니 가히 급하게 생각하지 말 것이요, 분운하고 번화한 생각머리가 다 마음머리로 쫓아 생겨나는 것이니 일체 기이하고 수승한 착하고 원망함이 경계를 따라 응해서 변화됨이 너의 마음을 따라 만들어지며 너의 마음을 따라 생겨나며 너의 마음을 따라 구하게 되며 너의 마음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니 만일 도심으로 하여금 인심에 끌리는 바가 되고 보면 문득 다른 권내로 떨어지게 되어서 바른길은 멀어지고 삿된 길로 나아가게 되나니 어찌 삼가지 아니하겠는가. 또한 깊숙하고 현묘한 경계는 한 생각 옳게 돌리는 데에 문득 헤아릴 수 없는 생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니, 조심하고 삼가 해서 변화머리 베푸는 데에 미음을 부리지 말지니라.

 

若或示之에 視若不見이니 ?不掛心於心意하면 必以一點眞心이 反歸玄妙하여 精誠

極一하면 鐵石이 俱開하고 骨肉分形하여 心爲萬靈主요 身爲陰陽造化之宅이라

陰符經云 五賊이 息하면 宇宙在乎手하고 萬化生於身者此也라.

 

만일 혹 보임에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할 것이니 잠깐 이라도 미음의 뜻에 마음을 걸어두지 아니하면 반듯이 한 점 참마음이 현묘한 경계에 돌아와서 정성이 지극히 한결 되면 쇠와 돌이라도 함께 열리며 뼈와 살이 얼굴로 나누워져 미음은 일만 신령의 주인이 되고 몸은 음양 조화의 집이 되느니라. 음부경에 말씀하기를 ??다섯 도적이 쉬게 되면 우주가 손바닥 가운데 있고 일만 변화가 몸으로부터 생긴다??는 말이 곧 이를 이름이니라.

 

近世鍛煉之士가 往往以外俱華飾으로 宣念科呪하고 懷慾稱修하여 空度歲月하느니

豈入於眞境哉아 蓋夫至道는 深窈나 不在其他라 人能弘道하면 道不遠人이니 朱

子曰 道也者는 不可須臾去身이라 하시고 子思曰 率性之謂道라 하시고 孔子曰 知止而

後에 有定하고 定而後能靜하고 靜而後에 能安하고 安而後에 能慮하고 慮而後

에 能得이라 하시니 此皆自明其明德之事也라 我旣有此明德하니 豈不修煉而明之乎아

旣知明德之稟我하고 知修煉之在我하면 則修而得之가 惟在我一心이니 豈區區於外物

하고 孜孜於外飾하여 以慾定靜而得眞道哉아.

 

근세에 마음을 단련하는 선비가 간혹 밖으로 형식만을 꾸밈으로써 주문이나 베풀어 암송하고 수도를 한다고 생각해서 공연히 세월만 보내나니 어찌 진경에 들겠느냐, 대개 지극한 대도는 심요하나 그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면 도가 사람에게 멀지 아니하나니 주자 말씀하기를 ??도란 가히 모름지기 몸을 떠나지 아니한다?? 하시고, 자사 말씀하시기를 ??성품을 거느리는 것이 도라?? 하시고, 공자 말씀하시기를 ??그칠 줄을 안 뒤에 정함이 있고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밝은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난 뒤에 능히 얻는다: 하였으니, 이는 모두 다 그 자성자리를 밝히는 일이라. 나에게 이미 이 자성자리가 있으니 어찌 수련을 하지 아니하고 밝힐 것이리요 이미 성품자리가 나에게 있는 줄을 알고 또한 수련함도 나에게 있는 줄을 알면 곧 닦아서 얻어감이 오직 나의 일심 가운데 있는 것이니 어찌 감히 외물에 간절히 바라며 외물 하는데 자자해서 써 정하고 고요하고자 하여 참 도를 얻으리요.

 

 

定靜을 연마하는法

明鍊氣方法

 

夫以修鍊之士가 不知水火玄妙之理와 五行生化之道하면 則徒是粧點兒?耳니라 大抵

定靜煉磨之法은 乃煉自己造化道하여 苟力行之하면 心火下降하고 腎水上昇하느니

水昇火降者가 乃定靜之捷徑이요 亦延年之一道也니라. 夫人이 思慮多煩하여 心氣悖

戾하면 則口味苦而操하고 頭腦熱而亂하리니 此火昇之故也요 思慮安靜하여 心氣平

順하면 則口味甘而潤하고 頭腦夾而淨하느니 此水昇之故也라 水昇則火降하고 火昇

則水不潤液하여 而但日夜作淡燃하여 ?其靜氣而已니 是故로 修煉之始에 當謹避外

境하고 深戒多思하여 亦切莫嗔?어다. 使吾心身으로 安閒自適하여 寬柔自治하고

而無陜心熱腦之病이니 此外煉之法也이라.

 

대범 수련하는 선비가 수화의 현묘한 이치와 오행의 변화로 생기는 도를 알지 못하면 곧

한갓 이 단장한 아해들의 희롱함이라. 대저 정정을 연마하는 법은 이에 자기의 조화하는 도를 단련하여 착실히 힘을 다해 행하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은 아래로 내려가고 신수는

위로 오르게 되는 것이니 수승화강 함이 이에 정하고 고요함을 얻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요,

또한 연수를 연장케 하는 도가 되는 것이니라. 대범 사람이 생각 생각이 많아 번잡하여 심기가 거슬리게 되면 구미가 씁쓸하며 조급하고 머리가 더워서 어지러워 질 것이니 이는 화가 위로 오르는 연고라, 생각 생각이 안정되어서 심기가 평순 하면 구미가 달며 윤활하고 머리가 시원 상쾌하고 조촐해지나니, 이는 물이 위로 오르는 연고라, 물이 오르면 불은 내리고 불이 오르면 물이 윤액하지 아니하여 다만 일야로 불꽂을 짓게 되어 그 정기만을 태우게 할뿐이니, 이런고로 수련할 처음에는 마땅히 외경을 피하고 깊이 생각 많음을 경계해서 또한 간절히 진심을 내지 말지니라. 나의 심신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한가해서 스스로 적중하여 관유하게 스스로 다스려 협심열뇌의 병이 없을 것이니 이는 밖으로 단련하는 법이니라.

 

日用動作에 隨所專心하여 東不念西하고 西不念東하여 每日夜半淸晨이면 則必坐禪

으로 特加精進이니 坐禪之法은 先正坐體하여 無傾委不便之感然後에 調息下氣而注

意於下丹田하여 守心以定하고 寂照不昧니 此內鍊之法也라.

行此日久하여 久久成熟하면 自然五氣相生하고 水火循環하여 眞一之水가 滿口하여

以生甘潤香味하여 異於平時하리니 此卽腎中眞水上昇之實證也니 切莫唾液하고 滿口

呑下하면 則身潤神通하고 精氣益暢하리니 古聖所謂飮甘露而得長養者亦指此謂也니라.

 

일용 동작하는 데에 바를 따라 전심 전력해서 동에서는 서를 생각치 아니하고 서에서는 동을 생각치 아니해서 매일 야반청신이 되면 반듯이 좌선함으로써 정진할 것이니 좌선하는 법은 먼저 좌체를 단정히 하여 기울어짐이 없어 바르게 앉아 불편한 감이 없이 앉은 뒤에 쉬는 숨을 고르게 하고 기운을 아래로 내리며 마음을 하 단전에 주 하게 하여서 마음을 지키어 정하고 고요한 가운데 조감함이 매하지 아니할 것이니 이는 안으로 수련하는 공부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행하기를 오래 오래해서 오래 정숙하게 되면 자연히 다섯 기운이 서로 생기가 나서 수화가 서로 순환하여 참되고 한결 된 물이 입에 가득해서 써 달고 윤활한 향기로운 맛이 생기어 평상시와 기분이 다를 것이니, 이것은 신장의 물이 위로 올라오는 실증이니 간절히 액체를 뱉지 말고 입에 가득히 모았다가 삼켜 내리면 온몸이 윤활해서 정신이 통하고 정기가 더욱 창성할 것이니 옛 성인들이 감로수를 마시어서 장수함을 기른다는 것은 이를 이름이니라.

 

坎?交?하여 水火旣濟之後에 一身萬靈이 能上朝於泥丸(泥丸頭腦也)하여 待其時宜

(時宜淸晨禪定之時)하여 乃運我一點靈光이면 則化爲火鈴於南昌上宮하여 上通於泥丸玄

宮하리니 其始也에 如萬蟻會集之狀하여 甚痒?之하리니 愼勿括摩하고 聚精會神于

頂上이면 則忽然淸雷一聲에 頂門이 如巨石裂開하여 一身萬靈이 出入此門하리니

形貌光明이 如望夕之月하고 三界天眞이 雲集泥丸하여 歡喜和悅함이 眞若同氣之親

하리니 此乃?朝上帝法으로 實同一理也(此法은 自注意丹田하여 修煉成熟하여 任運靈氣

時工夫요 初學者强行工夫니 若欲强行此法이면 則反有上氣之病하리니 學者當愼之니라) 先

行定靜之法이 蓋由此事라, 非定靜이면 水火不濟하고 水火不濟하면 則靈氣不會하

며 靈氣不會하면 則慧門不能以開하리라. 是法은 乃傳道之秘요 修道之要며 覺道

之眞訣也니 得此法하여 依此而行者는 可克日而成功也니라.

 

음과 양이 서로 합해서 수화를 이미 보낸 뒤에 한 몸에 신령스러움이 능히 두뇌에 올라 모아서 그 적당한 때를 기다려 이에 한 점 신령스럽게 빛남이나를 운전하면 곧 불망울이 남창상궁에 화현해서 위로 이환현궁을 통하게 되리니, 처음에는 일만 개미가 모이는 것 같아서 심히 가려울 것이나 삼가 긁지 말고 정밀히 이마 머리에 정신 기운을 모으고 보면, 곧 홀연히 맑은 우레 소리에 이마 문이 큰돌로 두들겨 열리어서 한 몸에 담긴 일만 신령함이 이 문에 출입해서 얼굴에 나타나는 광명이 보름달과 같고 삼계의 천진이 이환에 운집해서 즐겁게 화열함이 참으로 동기의 친함과 같을지니, 이는 묵묵히 옥황상제에게 조회하는 법으로 실상에 있어서는 한 이치와 같은 것이니라. 먼저 정하고 고요하게 하는 법이 모두 다 이러한 일로 말미암는 것이라. 정하고 고요함이 아니면 수화가 고르지 못하고 수화가 고르지 아니하면 지혜의 문이 능히 열리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 법은 이에 도를 전하는 비결이요 도를 닦는 요긴함이며 도를 깨닫는 비결이니 이 법을 얻어 이에 의해서 행하면 가히 날을 기약하고 성공하리라.

 

 

道門에 드는 요긴한 法(1)

明入門要法(1)

 

禪要에 云 大要有三하니 一曰 大信根이요 二曰 大忿志요 三曰 大疑情이라. 疑者

는 以信爲體하느니 信有十分이면 疑有十分하여 悟得十分이라하니 此說은 卽定靜

之要法也라. 何者오 無大願이면 至誠不生하고 無大疑면 死忿不生하고 無大信이

면 眞疑不生하리라 問何以立願하여서 且信忿疑誠之所出處乎아. 曰一天之下에 至

妙至寶至聖至尊之法이 唯一靈寶眞局也라. 靈寶局은 人人各有稟賦於身內하여 而天素

命之하시니 卽我之本性이라.

 

선요에 이르기를 대요에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대신의 뿌리요 둘은 뜻을 크게 분 냄이요 셋은 크게 의심을 가짐이라. 의심은 신으로서 체를 삼나니 신이 십분 있으면 의심이 십분 있어서 깨달음이 십분 있다 하니 이 말은 곧 정정을 얻는데 요긴한 법이라. 어찌 그러한가 하면 큰 원이 없으면 지극한 정성이 나지 아니하고 큰 신심이 아니면 참 의심이 나지 아니하니라. 묻기를, 어떠한 원을 세워야 또한 신과 분과 의와 성의 출처가 되나이까. 말하기를 한 울 밑에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보배롭고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높은 법이 오직 하나인 영보진국이라 영보국은 사람마다 각각 몸 안에 타고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대단한 그대로 명함이니 곧 나의 본래 성품이라.

 

率性修道하여 明德發揮하여 可以治國而平天下하며 可以爲億兆之君師하고 可以爲無

量之壽仙하나니 何者오 天明之德을 稟賦爲人之初에 頭化天上의 三淸眞宮之氣하고

腹受地下山林川澤之形하고 胸懷日月星辰風雲雨雷陰陽造化之府하였느니 所以 吾身에

有天眞帝君과 九靈三精과 五神眞君과 內外將軍과 左右官屬과 諸部工曺及八萬四千

元君이 各依部分하니 是乃靈寶道局也라.

 

솔성 수도해서 자성 자리를 발휘해 가히 써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며 가히 써 억조 창생의 군사가 되며 가히 써 한량없이 수하는 신선이 되나니, 어찌해서 그런가 하면 하늘이 명한 덕을 사람에게 품부할 처음에 머리는 천상에 삼청진궁의 기운으로 화하고 배는 지하에 삼림천택의 형상을 받고 가슴에는 일월성신과 풍운우뢰와 음양조화의 부서를 품었느니, 바에 써 내 몸에 천진제군과 구영삼정과 오신진군과 내외장군과 좌우관속과 제부공조 및 팔만사천 원군이 각 부분에 의해 있으니 이것이 영보도국 이니라.

 

修而明之者는 爲仙爲聖이요 失而放之者는 爲愚爲蠢이니라 欲修而明之者는 非大

願而何오 且人人이 各有此局하니 何人得之며 何人不得고하여 大忿出焉이면 萬

理가 具於我하고 萬法이 備於此하니 惟一而已어늘 道何衆門이면 惟一而已어늘

法何多岐며 惟一而已어늘 人何多求며 惟一而已어늘 我何復疑하리요 思則疑無하고

望則疑有하리니 疑去疑來에 疑無所疑를 空然何疑리노 忽然燃心하면 是乃眞疑라.

 

닦아서 밝힌 자는 신선이 되고 성인이 되며 잃어버리고 놓아버리는 자는 어리석고 우둔함이 되느니라. 닦아서 밝히고자 하는 자는 큰 원이 아니고 그 무엇이 있으리요. 또한 사람마다 각각 영보도국이 있으니 어떠한 사람은 얻으며 어떠한 사람은 얻지 못 하리요. 그래서 큰 분심을 내면 일만 이치가 나에게 갇추어 있고 일만 법이 이에 갖추어 있으니 오직 하나 이거늘 도가 어찌 문이 많으며 오직 하나 이거늘 법이 어찌 길이 많으며 오직 하나 이거늘 사람들이 어찌 많이 구하는가 하면 오직 하나 이거늘 내가 어찌 다시 의심하리요 하여 생각한 즉 의심이 없고 바란 즉 의심이 있나니 의심이 가고 의심이 옴에 의심하고 의심할 바가 없거늘 공연히 어찌 의심하리요 홀연히 의심을 태워 버리면 이것이 참 의심이라.

 

是疑之下에 萬疑寂靜하면 不分晝夜함이 如夢若眞하여 空寂天地에 惟一疑而已거늘

此非大疑而何오 盖疑字之工은 最難得知니 若無大信이면 是疑不生이라 故로 禪要

에 云 信有十分이면 疑有十分하고 疑有十分하면 悟有十分이라하니 指此謂也니라

信可信矣요 誠可誠矣니 以信定靜하고 以信忿疑하느니 非大信이면 信何長久리요

一定不變하여 始終如一을 是謂誠也라하느니 五經에 云 以誠而入하며 以?而守하

며 以柔而用이면 則物我俱忘하고 慧光乃生하여 聖智自全하리니 此乃入之眞締也라.

 

이 참 의심아래 일만 의심이 적정하면 주야를 분별치 못함이 꿈도 같고 참도 같아서 공적한 천지에 오직 한 의심 뿐 이니, 이것이 큰 의심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대개 의심 의자의 공부는 가장 얻어 알기가 어려울 것이니 만일 큰 신심이 아니면 이 의심이 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럼으로 선요에 말하길 신이 십분 있으면 의심이 십분 있고 의심이 십분 있으면 깨달음이 십분 있다 하니 이를 가르켜 이름이니라. 신을 가히 신할 것이며 정성을 가히 정성할 것이니 신으로써 정정하면 써 신과 분과 의를 얻을 것이니 큰 신심이 아니면 그 신심이 어찌 장구하리요. 한가지 정해서 변치 아니하여 시종이 여일 함을 이에 성이라 이르느니라. 오경에 말하기를 성으로써 도에 들며 묵묵함으로써 도를 지키며 부드러움으로써 도를 사용하면 곧 물과 내가 한가지로 잊어서 지혜의 광명이 이에 생기어 성스러운 지혜가 스스로 온전하나니 이것이 도의 문에 드는 참다운 요체라.

 

 

道門에 드는 요긴한 法(2) .

明入門要法(2)

 

昔에 西峰道士가 爲其學徒曰 天下에 有一無主空舍하니 是卽靈寶局也라. 其中에

儲天下無窮之妙하고 積天下無窮之寶하며 藏天下無窮之財하여 通開八萬四千門路하여

圍繞垣墻하여 使慾者 懶者 愚者 不信者로 各守諸門路하라 하고 命之曰 貪慾懶愚不信

者來到면 則爾等各守防禦하고 唯某誠信專一者來到면 則開門納之하여 以爲空舍之主

하여 用無窮之財寶云하니 世人聞此設하고 皆仰笑하여 空棄不取曰 如許財寶를 我

何敢取리오. 此有福有緣者之所當取之라 하고 敢不往求로새 釋迦는 傳設하고 老子

는 指路하고 孔子는 勸送하되 不知就取하고 往知者나 不信者는 防而不受하

고 貪慾者拒而不納하니 其間能入取者는 惟千萬人中一二人也라.

 

옛 적에 서봉도사가 그 학도에게 말하기를, 천하에 한 주인 없는 빈집이 있으니 이것이 곧 영보국이라, 그 가운데 천하의 무궁한 묘함을 모아놓고 천하의 무궁한 보배를 쌓아놓고 천하의 무궁한 재물을 갊아 두고 팔만 사천 문로를 통해 열어 두루 담장을 둘러놓고 욕심 있는 자와 게으른 자와 어리석은 자 믿지 아니하는 자로 하여금 각각 모든 문로를 지키게 하라 하고 명령하여 말하기를 탐욕자 라우자와 불신자가 와서 이르면 곧 너희들은 각각 지키어 막고 어떠한 사람이든지 정성스럽고 믿음이 전일한 자가 외서 이르면 곧 문을 열어 들여서 써 빈집의 주인을 삼아 무궁한 제보를 사용토록 하라고 이르니, 세상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다 하늘을 우러러 비소하며 부질없이 버리고 취하지 아니하며 말하기를, 이와 같은 재물을 내가 어찌 감히 취하리요. 이는 복이 있고 인연이 있는 사람이 마땅히 취할 바라 하고 감히 가서 구하지 아니 할세, 석가는 말을 전하고 노자는 길을 가르키고 공자는 권해 보냈으되 나아가서 취할 줄을 알지 못하고 가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막아서 받지 아니하고 탐욕자는 또한 거절해서 들이지 아니하니 그 사이에 능히 들어 와서 취하는 자는 오직 천만인 가운데 한 두 사람이라.

 

其餘外道之輩는 曠安宅而不居하고 捨正路而不由하고 卽盜野人之財産하며 或乞富人

之餘財하며 或奪行人之路費하고 或穿壁欺取하며 或飢寒 或爭鬪하니 五賊?起 하고

三盜가 不息하여 天下大亂하며 法官이 形名하고 親友誹謗하니 可謂寒心處也라.

不取所當取하고 取其不當取하여 曰 我行捷法하여 易取易得이라 하며 或死或敗에

修苦不悔하고 反見支離하니 愚耶아 懶耶아 孔子所謂糞土之墻이요. 孟子所謂下愚

不移者 是其徒乎저. 禪書에 曰 能開衆門中에 一門入하여 取無盡藏寶하면 用之不

竭하고 取之無禁하리니 此寶非外來之物이라. 是室內生生無窮之物이니 能昇當者는 誠

也요 能開門者는 疑也요 能主物者는 信也라.

 

그 나머지의 외도의 무리들은 넓고 편안한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바른 길을 버리고 말미암지 아니하고 곧 야인들의 재산을 도적질하며 혹 부자의 남은 재물을 구걸하며 혹 행인들의 노비를 탈취하고 혹 벽을 뚫고 속여 취하며 혹은 기한에 떨며 혹은 투쟁해서 오적이 아울러 일어나고 삼도가 쉬지 아니해서 천하는 크게 어지러워지며 법관들이 형극의 이름을 타고 친우들이 비방하니 가히 한심할 지도다 마땅히 취할 바를 취하지 아니하고 마땅히 취하지 아니할 바를 취하지 말하기를 내가 빠른 법을 행하였다 해서 쉽게 취하고 쉽게 얻었다하며 혹 죽고 혹 패하며 고를 받아도 후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지리 함을 보게 되나니 어리석음인가 게으름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분토의 장이요 맹자가 말하기를 하우에 옮기지 아니함이라 함은 이런 무리들을 말함이로다 선서에 말하기를 능히 여러 문을 열고 한 문에 들어가서 다함이 없이 갊아 있는 보물을 취하면 써도 다함이 없고 취해도 금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 보물은 밖에서 오는 물건이 아니라 이 빈집에서 나오고 나오는 무궁한 보물이니 능히 집에 오르는 자는 성이요 능히 문을 여는 자는 의요 능히 물건을 주장하는 자는 신이라

 

義에 不取他人財寶하고 卽取此當取物者는 忿也 若無信忿衣三字며 則盤桓墻外하고

逗??端하여 漫然歲月타가 空費氣力하여 太息退歸에 乃爲行乞之人이라 故로 比

之曰 石中藏玉은 非鐵釘이면 難琢이요 無?石이면 不磨라하고 又曰 不入虎穴이면 焉得虎子리요 하니 釘은 信也요 入虎穴은 忿也니 欲琢磨得虎子者는 發大忿

勇이니 金剛利刀로 割世緣一縷하고 引大疑하여 卽殺心猿意馬之奔馳하고 懷大信하

여 能入此門然後에 鐵柱中心이요 石壁外面이라

 

의리에 다른 사람의 재보를 취하지 아니하고 곧 마땅히 취할 물건을 취하는 자는 분심이니 만일에 신과 분과 의의 삼자가 없으면 곧 담 밖에서 반환하고 처마 끝에서 두류하며 공연히 세월만 보내다가 부질없이 기력만 허비해서 종말에는 크게 한숨만 쉬고 물러가 돌아가매 이에 행걸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유하기를 돌 가운데 갊아 있는 옥은 철정이 아니면 쪼아 내지를 못하고 숫돌이 아니면 갈지를 못한다 하고 또 말하기를 호랑이 굴에 들지 아니하면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을 것이리요 하니, 끌은 신을 말함이요 호랑이 굴은 분이니 쪼아내고 갈고 호랑이 새끼를 얻는 것은 크게 분내는 용기이니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세상에 얽힌 인연의 한 오라기도 다 베어버리고 크게 의심을 당겨 이르켜서 곧 마음 원숭이와 뜻 망아지에 끌리고 달리는 마음을 몰아내고 큰 믿음을 품어서 능히 이 문에 들어간 후에 철주와 같은 중심이 되고 외면 막기를 석벽이 됨이라.

 

川萬師設이 更不妙於此設하며 妙道玄理가 且無加於此道라 目無所好見하고 耳無所

喜聞하며 妙無他妙하고 寶無他寶면 則一心靜에 蕩蕩焉豁豁焉 無絲?纖鹿之?滯면

則若人初生無異하여 飮茶에 不知茶하고 喫飯에 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

知坐하여 情識頓淨하고 計較都忘하여 恰似有氣底死人이요 且泥塑人相似라 是名立

定이니 其若氣發神動이면 則初如??而不得編序나 然至於心華頓發이면 則洞然十方

하여 如?日麗天하며 明鏡當臺라 不越一念에 頓成正覺하리니 是名得慧라 如此

자는 乃禪家之佛이요 靈寶之聖이며 仙家之丹이니라.

 

천만 스승의 말이라도 다시는 이 말씀 외에는 더 묘함이 없으며 묘한 도리와 현묘한 이치가 또한 이 도에 더함이 없음이라. 눈으로 보되 좋게 보는 바가 없으며 귀로 듣되 즐겁게 들리는 바가 없으며 묘함이 이에 더 묘함이 없고 보물이 이에 더 보물이 없으면 곧 하나로 마음이 정함에 넓고 또 넓으며 걸림이 없고 또한 걸림이 없어서 털끝만큼이라도 걸리고 막힘이 없으면, 곧 사람이 처음으로 남에 사람에는 다름이 없으나 차를 마셔도 차인 줄을 모르며 밥을 먹어도 밥인 줄을 모르며 행하되 행하는 줄을 모르고 앉았으되 앉은 줄을 몰라서 모든 정과 식이 돈연히 조촐하고 모든 사량과 계교가 모두 다 없어서 기운은 있으되 죽은 사람과 흡사하고 또한 흙으로 만든 우상과 같음이라. 이 지경에 이르르면 대정을 세웠다 이름할 것이니 이에 기운을 발하고 신령스럽게 움직이면 곧 처음에는 어른어른 해서 차서를 잡지 못하나 그러나 분별심이 갑자기 발하면 곧 시방세계가 한 집같이 밝아져서 태양이 중천에 빛남과 같을 것이며 밝은 거울을 대함과 같음이라. 한 생각 넘지 아니하여 홀연히 정각을 이룰 것이니 이를 일러 혜를 얻었다 이름할 것이니라. 이와 같은 이는 이에 선가에서 말하는 불이요 영보의 성인이며 선가에서 말하는 단이라 할 것이다.

 

 

道門에 드는 요긴한 法(3)

明入門要法(3)

 

然若信忿疑之誠이 未極에 八萬四千魔兵이 ?在六根門頭하여 隨機誘心하여 百方作

亂하매 四面華頭勞碌心神하리니 卽念聖訓하여 要取無心하고 更加精力하면 剋日就

工而使吾一身 如墮千尺井?相似하여 從朝至暮와 從暮至朝에 千思想萬思量으로 單只

是救出之心이요 決無二心이니 誠能如是하면 施工을 剋日可矣리라.

 

그러나 만일에 신과 분과 의와 성이 지극하지 못함에 팔만 사천 마군이 육근문 머리에 엿보고 있어서 기틀을 따라 마음을 유혹해서 백방으로 작 난을 하여 사면에서 변화머리가 심신을 어지럽게 흔들어 낼 것이니, 곧 성인의 교훈을 생각해서 요긴히 무심함을 취하여 다시 정력을 더하면 반드시 날을 정해 놓고 공부를 성취해서 나란 몸으로 하여금 천 척이나 되는 우물 속에 떨어짐과 같아서 아침으로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또는 저녁으로부터 아침에 이르기까지 천가지 생각과 만가지 생각으로 다만 이에 구출할 마음 뿐이요 결단코 다른 마음이 없을 것이니 정성이 이와 같으면 공부해 나아감이 반드시 날을 가히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니라.

 

此段은 卽有相火虛火하니 康健之人이라야 所取也요 又若柔溫氣弱之人이면 則譬如自

身得當死之罪하여 深囚獄中하여 剋日斬殺次로 四面守直타가 忽遇獄卒醉倒하여 時

夜寂廖하매 乃?枷打鎖越獄脫身에 不分東西하고 卽逃出境之際에 毒龍猛獸가 一無

懼心이요 卽面當前矢石도戟이라도 亦無怖畏하며 蒙被奔迅하여 崎嶇險路를 如踏平

地하고 ?棘?藜를 視若草芥하시니 此何故也오.

 

이 단계에 있어서 곧 실상의 불과 허령의 불이 있나니 강하고 건전한 사람이라야 취할 바이요 또한 만일에 유온하고 기약한 사람은 곧 자신이 죽을죄를 당함과 같아서 깊은 옥중에 수감이 되어 날을 정해 놓고 참살할 차례로 사면을 수직 하다가 문득 옥졸들이 잠에 취해 엎드러짐을 보고, 때에 밖이 적적하매 이에 자물쇠를 두들겨 부수고 옥문을 넘어 몸이 빠져 나오매 동서를 분간할 겨를이 없이 곧 옥 경계를 도망해 나올 때에 독룡과 맹수가 있다 하여도 두려울 마음이 없고 곧 면전에 시석과 도극이 날아온다 할지라도 또한 두려움이 없으며 옥중에 몽피된 몸만이 분주히 풀려나감이 빠를 것이니 기구한 험로라도 평지와 같이 밟아가며 가시 숲 얽히고 얽힘이 있다 할지라도 초개와 같이 보일지니 이 무슨 연고인고.

 

寧死他死언정 不死此死니 是乃極切之心이라 用工之際에 有此切心하면 剋日之工을

管取百中이라 然이나 如此極切之心은 修煉成熟하여 得其眞趣者에 最後實行之法이

요 非初學凡想에 易取易行者也라 故로 初行之工은 務在安其危니 心安이면 則

定力이 益增하며 定力益增하면 則極切之心을 亦不勞而自得이니라.

 

차라리 다른 곳에서 죽을지언정 이 곳에서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마음뿐이니 이것은 지극히 간절한 마음이라, 공부를 할 때에 이러한 절실한 마음이 있으면 날을 한정하고 공부함은 과녁을 취하니 다 맞을 것이니라. 그러나 이와 같은 지극히 간절한 마음은 닦고 연마함이 성숙해서 그의 진취를 얻은 사람의 최후에 실행하는 법이요 초 학자의 범상한 근기에 있어서는 쉽게 취하고 쉽게 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처음으로 행하는 공부 인으로 서는 힘쓰는 것이 그 위태로움에 있어서 먼저 편안하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마음이 편안하면 곧 정력이 더욱 더 하는 것이며 정력이 더욱 더 하면 곧 지극히 간절한 마음을 또한 힘들이지 아니하고도 스스로 얻을 것이니라.

 

 

자성자리로 돌아가는 공부

明風土移化之功

 

人之心體는 本自虛明이라 元無染汚나 然이나 及其應物遂境에 情私感疑하여 遂

成風土之習故로 做工之始에 當明察自心上習氣所染하여 修煉精治然後에 定靜始得이

라 定靜之後에 微暢之光明이 乃發이며 則亦留心於定慧等持하여 一絲不亂而各得其

正하리니 是明精一執中이라. 執中必庸은 中庸이요 學大는 大學이요 論道語는 論

語라. 元亨利貞과 仁義禮智를 隨性感現하여 或聖或賢이니 雖風土稟受之有異나

氣質則齊也라. 故로 此我靈寶眞訣로 能善化而歸一者也니라.(言性之齊也)

 

사람의 마음 본체는 본래 텅 비어서 밝음이라. 원래 더럽힘이 없으나 그러나 그의 물체를 응하고 경계를 따라서 인정이 사사로이 느끼어 얼켜서 마침내 풍토의 익힌 바 습성이 되는 고로, 그러므로 공부를 할 처음에는 마땅히 자심에 습기의 물든 바를 맑게 살펴 닦아 단련해서 정밀히 다스린 후에 정하고 고요함을 비로소 얻을 것이라. 정하고 고요함을 얻은 후에 미미하고 화창한 광명이 이에 발할 것이니, 곧 또한 정과 혜를 고루 가짐을 마음 가운데 머물러 두어 일사불란해서 각각 그 바름을 얻을 것이니, 이를 이름해서 정일 집중이라 하니라 중도를 잡아서 반드시 떳떳함을 이름이 중용이요 대 자리를 배움은 대학이요, 도리에 대한 말을 논함은 논어라. 원형이정과 인의예지를 개성에 따라 느끼어 발현됨이 혹 성인도 되고 혹 현인도 되나니, 비록 풍토에 따라 개성을 받음이 다름이 있으나 기운 바탕은 품수함이라. 그러므로 이 나의 영보의 참 비결로 능히 잘 융화해서 하나에 돌아감이라.

 

多誦定靜編하고 勤行坐禪之法하여 嚥津煉氣하고 運水火風土를 可移로되 氣質卽齊

也라 朝眞禮聖하여 參三才出萬化하며 聖與我가 相似焉이라 修煉正法은 元無二

學이니 學皆然修요 前聖後聖이 其修相同이라. 故로 做工之人은 依此而行이라.

別無遲速이요 且無先後而皆得定靜이니라 定靜之期는 大限은 十年專一하면 無不貫

通이요 小限은 九旬이니(亦有五旬之限 皆言禪期也) 九旬專一이면 外定可得이요

剋日之期는 大限은 七日로(亦有五日或三日之限 皆言入定之期也) 七日精進이면 可入

眞忘이요 小限은 半時니(亦日刹那) 半時 燃燒心이면 能成正覺하리라.

 

많이 정정편을 달통하고 붙들어서 좌선하는 법을 행하여 단 침을 삼키고 기운을 단련해 물과 불을 운전해서 풍토를 옮기게 되나 기질인 즉 다름이 없음이라. 아침 일찍이 진심으로 체성에게 예를 올리어 천지인 삼재에 혹됨이 없이 참례해서 일만 변화를 나타내면 성과 더불어 내가 서로 상이 없을 것이니라. 수련하는 바른 법은 원래 두 가지로 배움이 없으니 배워서 다 수련함은 전성 후성이 그 수련함이 서로 같음이라.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이에 의해서 행함이라. 별로 지속이 없음이요, 또한 선후가 없이 다 정과 고요함을 얻을 것이니라. 정정의 기한은 크게 잡으면 십년이 될 것이니 십년 동안 한결 되이 전일 하면 관통치 아니함이 없을 것이요, 적게 잡으면 구순(3개월)이니 구순 동안 전일 하면 외정을 가히 얻을 것이요, 날을 한정한 기한은 대한 칠일이니 칠일을 정진하면 가히 진 마저 잊어버리는 데로 이를 것이요, 소한은 반시이니 반시 동안 모든 분별심을 놓아 버리면 능히 정각을 이룰 것이니라.

 

定靜之有遲速이 不在於人이요 在乎誠與不誠이니 不誠而以難行으로 見之하면 則如

千年盲龜脫身萬里之樹城이요 三日曲針으로 投穿半片之纖芥요 誠之而以能行으로 見之

하면 則如千尺井底之人이 出乎平地하며 深寓牢獄之人이니 出乎獄外하여 身晏心閒

하여 更無他勞니 因何而更說遲速及爲不爲乎아. 戒乎我願學天人하고 莫妄意於異道하

여 一就我靈寶局中하여 自修自明이면 可仙可佛이며 爲聖爲眞乎고저 學徒者는

能信行此法하여 念念勤修하면 則氣和神化하여 可得定靜하리니 修之明之하여 乃復

其性이 可也니라

 

정정의 지속이 있음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안이요 정성이 있고 없는 데에 있는 것이니 성심이 없이 행하기가 어려우므로 볼 진데 천년이나 눈 먼 거북이 만리나 되는 나무 성으로 몸을 벗어나려 함과 같을 것이요, 삼일이나 굽은 바늘로 반쪽이나 되는 겨자씨를 던져 뚫기와 같을 것이요, 성심으로 능히 행함으로 볼 진데 곧 천 척이나 되는 우물 밑에 빠진 사람이 평지에 나옴과 같으며, 깊은 뇌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옥외로 나감과 같아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서 다시는 괴롭고 수고로움이 없을 것이니 무엇을 인해서 다시 지속되고 안 된다는 말을 하리요. 경계하기를, 나 자신이 천인 배움을 발원할 뿐이요 다른 도에 뜻을 두지 말아서 한결같이 나의 영보도국 가운데 나아가서 스스로 닦고 스스로 밝히면 신선이 되고 가히 부처가 되며 성인도 되고 진인도 될 것이니라. 도를 배우는 무리들은 능히 이 법을 믿고 배워서 생각 생각이 부지런히 수행하면 기운이 화하고 정신이 화현해서 가히 정과 고요함을 얻을 것이니 수련하고 밝히어서 이에 그 자성 자리를 회복케 함이 가할 것이니라.

 

 

定靜에 이르는 方法

明定靜次第

 

夫欲修煉인데 當先捨外事之紛撓하라 外事平定하여 無有?心然後에 安坐而內觀이 心

起에 若觀一念便起면 卽須除滅하여 務令安靜이니라 其次는 雖非的有貪着이나

浮遊亂想이라도 亦盡滅除하고 晝夜勤行하여 須臾不潛이니라 唯滅動心이요 不滅照

心이니 但凝空心이요 不凝住心이라 不依一其爲心之常이니라 若住則凡心이 躁競하

여 煩惱續起라 故로 定靜之門에 以無住로 爲上하니라

 

대범 수련코자 할진데 마땅히 먼저 밖의 일의 분요함을 놓아버려라. 밖의 일이 평정해져서 마음을 더렵혀지지 않은 연후에 편안히 앉아서 안의 마음을 관할 것이니 마음이 일어나매 만일 한 생각이 일어남을 관할 때에 곧 모름지기 제거해 없애고 하여금 안정하기를 힘쓸 것이니라. 그 다음은 비록 탐 착 심으로 일어남은 아니나 근거 없는 부유란상 이라도 또한 다 멸해서 제거하고 주야로 부지런히 수행해서 잠깐 사이라도 머물러 두지 말 것이니라. 오직 움직이는 마음을 멸할 것이요 자성으로 비치는 마음은 멸하지 아니할 것이며 다만 공심에 얼켜 둘 것이요 주심에 얼켜 두지 아니할 것이니라. 한갓 그 마음이 떳떳함에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만일 마음을 머물러두면 모든 마음이 조급히 다투워 일어나서 번뇌망상이 계속해서 일어남이라. 그러므로 정정의 문에는 주 함이 없음으로써 우위를 삼았느니라. 且初學之人은 息心甚難하니 或息不得暫停還失이니 然이나 去留交戰에 百體流하여 久

久精思하면 方乃調熟하나니 勿以暫收不得爲憂하고 遂廢千生之業源하라. 其次는 小得

淨己면 則於行住坐臥之時와 涉事之慮와 喧鬧之所에 皆作意安하며 有事無事에 常若

無心하며 處喧處鬧에 其之唯一이니라. 若束心太急하면 又卽成病하여 氣發狂顚하리니

戒之愼之하라.

 

또한 처음 배우는 사람은 마음 쉬어버리기가 심히 어려우니 혹 마음 쉬어 버림을 얻지 못하고 잠깐 머물렀다가 또한 잃어버리게 되나니 그러나 버렸다 머물렀다 서로 싸워감에 전신이 흘러 행해서 오래오래 정밀히 생각하면 바야흐로 조숙케 되나니, 써 잠깐이라도 근심됨을 얻지 못함을 거두워 잡지 말고 뒤에 천생의 업원을 폐함이라. 그 다음은 조금이라도 몸이 정화되어 가면 곧 행주좌와 하는 때와 모든 일을 간섭하는 곧 다 번화한 거리에 모두 다 뜻 편안함을 지어서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에 항사무심함과 같이해서 시끄러운 처소에서도 그 뜻만 오직 하나로 만들 것이니라. 만일 마음 묶기를 조급히 하면 또한 병이 되어서 기운에 광전이 발할 것이니 경계하고 삼갈지니라.

 

心若不動하면 又須放任하라. 如此則寬急이 得所하여 自恒調適하며 制而不着하

며 放而不動하며 處喧無惡하며 涉事無惱者此是眞定이니라. 不以涉事無惱라.

故로 求多事하며 不以慮喧無惡이라. 故로 來就喧이니라. 以無事로 爲眞性하고 以有事로 爲應跡이니라(應跡應物通明也) 若水鏡之爲鑑이면 則隨物而

現形하느니라. 善巧方便이 惟能入定이요 慧發遲速이면 則不由於人이니(不分强

求) ?令定中急急球慧하라. 急則傷性이요 傷性則無慧하느니라. 若定不求慧而慧自

生하나니 此名眞慧라. 慧而不用하면 實智若愚하며 益實定慧면 雙美無極하리

라. 若定中에 念想多感하면 衆邪妖精하며 百魅隨心하고 奇蹟異相하여 應

現所見하나니 却須堅立正念하여 反求心常하면 自然妖魔盡滅하느니라.

 

마음이 만일 동하지 아니하면 또한 모름지기 방임해 보아라. 이와 같이 하면 너그럽고 급함이 바를 얻어 스스로 항상 고루 적중하여 제재해서 착하지 아니하고 방심하되 동치 아니하며 복잡한데 있으나 싫어함이 없으며 일에 나아가서 마음 어지러움이 없어야 이것이참으로 정함이로다. 써 일을 간섭함에 있어 마음이 수고스럽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일을 많이 구하지 아니하며 써 번화함을 싫어하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번화한데 나아가되 시끄러움이 오지 아니하니라. 일없는 것으로 써 진성을 삼고 일이 있음으로 써 적응해서 막힘이 없음이라. 만일 물과 거울로 귀감을 삼으면 곧 물체를 따라 형상을 나타낼 것이니라. 가장 좋은 방편은 오직 능히 정에 들어감이니 지혜 발함이 지속이었음은 사람에 말미암음이 아니니, 하여금 정 가운데에서 급히 지혜를 구하지 말아라. 급하게 서두르면 자성자리를 상하게 될 것이요 자성자리를 상하고 보면 지혜가 발하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정하는 데에서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느니 지혜가 자연히 생 하게 되느니 이를 일러 참 지혜라 하느니라. 지혜를 사용치 아니하면 실상 된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으며 실상 된 정과 혜가 더하면 쌍으로 아름다움이 다함이 없을 것이니라. 만일 정 가운데 생각 생각이 많이 감응되면 뭇 사사첩념의 요정이 더하며 일백의 매 망령이 마음을 따를 것이요 기적과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는 바에 응해서 보일 것이니 모름지기 굳게 바른 생각을 세워서 마음에 떳떳함을 구하면 자연히 요마가 다 멸할 것이니라.

 

定靜之心이 惟虛明淡寂하여 上而豁然無覆하고 下而曠然無基하면 則舊業日銷하

고 新業不造하며 無所??하여 逈脫塵籠하나니 行而久之하여 自然得道하느

니라. 夫得道之人有七候하니(候通也) 一者는 心得定見하여 覺諸塵漏이요 二者

는 宿疾(宿疾宿習之病)普銷하여 心身輕爽이요 三者는 塡補夭損하여 還平復命이요

四者는 延壽無量하니 明曰仙人이요 五者는 鍊形爲氣하니 名曰眞人이요 六者는 鍊氣成神이니 名曰神人이요 七者는 鍊神合道니 名曰至人이니라.

 

정하고 고요한 마음이 오직 비고 밝아서 담하게 고요해서 위로 활연해서 덮임이 없으며, 아래로 광연해서 기틀(자리)이 없으면 곧 구업이 날로 녹여지고 신 업을 다시 짓지 아니해서 걸리고 막힘이 없이 모든 진롱을 벗어날 것이니 행해서 오래가면 자연히 도를 얻을 것이니라. 대범 도를 얻은 사람이 일곱 가지 징후가 있으니 하나는 마음에 정한 소견을 얻어서 모든 진루를 깨달음이요 둘은 오래된 병이 널리 녹아버려서 몸과 마음이 경상 함이요 셋은 요손 함을 도와서 평상심에 돌아와 천명에 회복함이요 넷은 수명을 무량함에 연장하니 신선이라 이름하고 다섯은 얼굴을 단련해서 기운을 만들었으니 진인이라 이름하고 여섯은 기운을 단련해서 귀신을 만들었으니 신인이라 이름하고 일곱은 귀신을 단련하여 도에 합하였으니 지인 이라 이름 하였나니라.

 

其於鑑力하여 隨候益進하면 得名慧乃圓備하라 若久學定靜하여 心無一候라사

是乃圓通修鍊之士라. 但依此法하여 操縱得宜하면 則無日不工이며 無處非禪이니

若促齡離俗하면 索隱行怪然後에 始可得通云이니 則此未達定靜之法者也라. 定靜

之法在易하고 不在乎難이며 在內不在乎外니라.

 

그의 힘을 거울해서 징후를 따라 더욱 나아가면 지혜를 이에 원만히 갖추었다 이름할 것이니라. 만일 오래오래 정정하는 공부를 해서 마음 가운데 한 징후라도 없어야 이에 원만히 통달한 수련하는 선비라. 다만 이 법에 의해서 표준의 종을 잡아 편안함을 얻으면 날로 공부를 아니함이 없으며 선 아닌 곳이 없으니, 만일에 나이를 재촉하여 속세를 떠나서 자취를 숨기고 괴이함을 행한 뒤에 비로소 가히 도를 얻는다고 하니 곧 이는 정하고 고요한 법을 달통하지 못함이라. 정정의 법은 쉬운 곳에 있고 어려운 곳에 있지 아니하며 마음 안에 있고 마음밖에 있지 아니함이라.

 

 

참되고 떳떳한 道

明眞常之道

 

大道는 無形이나 生育天地하고 大道는 無情이나 運行日月하고 大道는 武名

이나 長養萬物하나니 吾不知其名이라. 强名曰道니라. 夫道之行也에 有淸有濁하고 有動有靜하니 天淸地濁하고 天動地靜하며 男淸女濁하고 男動女靜하나니 降本流末而生萬物하나니라. 淸者濁之源이요 靜者는 動之基라. 故로 人能常淸靜하면 天地悉皆歸니라. 夫人神은 好淸而心撓之하고 人心은 好靜而慾牽之하나니 常能遣基慾而心自靜하고 證其心而神自淸하면 自然六慾이 不生하고 三毒消滅하리니 所以不能者는 爲心未證이라.

 

대도는 형상이 없으나 천지를 생육해 내고 대도는 정이 없으나 일월을 운행하고 대도는 이름이 없으나 만물을 장양케 하나니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함이라. 강연히 이름하기를 도라 하였느니라. 대범 도를 행함에 맑음이 있고 탁함이 있으며 동함이 있고 정함이 있나니, 하늘은 맑고 땅은 탁하며 하늘은 동하고 땅은 정하며 남자는 청하고 여자는 탁하며 남자는 동하고 여자는 정하나니 근본으로부터 내려와 끝으로 흘러서 만물을 생하게 하느니라. 맑은 자는 탁함의 근원이 되고 고요한 자는 동자의 기본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청정하면 천지가 다 한가지로 돌아가느니라. 대범 사람의 정신은 맑음을 좋아하되 마음이 흔들리고 사람의 마음은 정하기를 좋아하되 욕심에 끌리게 되느니 항상 능히 그 욕심을 보내 버리면 마음이 스스로 정하고 마음이 맑으면 정신이 스스로 밝아져서 자연히 육욕이 생기지 아니하고 삼독이 소멸하리니 바에 써 능치 못한 자는 마음이 맑지 못함이라.

 

慾未遣也니 能遣之者는 內觀其心에 心無其心하며 外觀其形에 形無其形하며 遠觀

其物에 物無其物하느니 三者旣悟하면 惟見於空이니 觀空亦空여 空無所空하며

所空旣無하면 無無亦無하며 無無旣無하여 湛然常寂하며 寂無所寂하면 慾豈能生

이리요 慾旣不生하면 卽是眞定眞常이라 眞常應物하며 眞常得性하여 常應常淸靜矣

니라. 如此淸靜하면 漸入眞道라. 旣入眞道를 名爲得道니 雖名得道나 實無所得이요 爲化衆生을 名爲得道니 能悟之者는 可傳聖道하리라.

 

욕심을 보내지 못 함이니 능히 보내는 자는 안으로 그 마음 일어남을 관 하되 마음이 그 마음이 없으며 밖으로 그의 형상을 관 하되 형상이 그 형상이 없으며 멀리 그 만물을 관 하되 물건이 그 물건이 없나니 삼자를 이미 깨닫고 보면 오직 공 함만이 나타날 것이니 공을 관 하되 또한 공해서 공 함이 공 한바가 없으며 공 한바가 이미 없으면 없는 것이 없다 함이 또한 없으며 없는 것이 없다 함이 이미 없어서 담연히 항상 고요하며 고요함도 또한 고요한 바가 없으면 욕심이 어찌 능히 생기리요. 하고자 함이 이미 생기지 아니하면 곧 이것이 참 정이요 참으로 떳떳함이니라. 참으로 떳떳함으로 물건을 응하면 참으로 떳떳한 성품을 얻어서 항상 응용되는 데에 항상 청정하리로다. 이와 같이 청정하면 점차 참 도에 들어가게 됨이라. 이미 참 도에 들어감을 이름하기를 도를 얻었다 하리니 비록 이름이 도를 얻었다 하나 실상에 있어서는 얻은 바가 없고 중생을 화도 함을 이룸으로서 도를 얻었다 하나니 능히 깨달은 자는 가히 성인의 도를 전하리로다.

 

且上士는 無自他라. 故로 不爭하고 下士는 執自他라. 故로 有爭하며 上德은 處無相이라. 故로 不德하고 下德은 執有相이라. 故로 執德하느니 執着之者는 不名道德이라. 衆生所以不得眞道者는 爲有妄心이라. 旣有忘心하면 卽驚其神이요 旣驚其神하면 卽着萬物이요 旣着萬物하면 卽生貪求요

旣生貪求면 卽是煩惱라. 煩惱妄想이 憂苦身心하여 便遭濁辱하면 流浪生死에

常沈苦海하고 永失眞道라. 眞常之道는 悟者自得하느니 得悟者常淸靜矣니라.

 

또한 상사는 자타가 없음이라. 그러므로 다툼이 없고, 하사는 자타에 집착함이라. 그러므로 다툼이 있으며, 상 덕은 무상에 처함이라. 그러므로 덕이라 하지 아니하고, 하 덕은 유상에 집착함이라. 그러므로 덕에 집착하느니 덕에 집착하는 자는 도덕이라 이름하지 아니함이라. 중생이 바에 써 참 도를 얻지 못하는 자는 망령된 마음이 있음이라. 이미 망령된 마음이 있으면 곧 정신이 놀랄 것이요 그 정신이 놀라면 곧 만물에, 착심이 생길 것이요 이미 만물에 착심이 생기면 곧 탐심이라서 구하려는 욕심이 생길 것이요 이미 탐내서 구하려는 욕심이 생기면 곧 이것이 번뇌가 되느니라. 번뇌망상이 몸과 마음을 근심케 하고 괴롭게 해서 문득 탁하고 욕됨을 만나게 되면 생사에 유랑해서 항상 고해에 잠기게 되고 기리 참 도를 잃게 됨이라. 참으로 항상 떳떳한 도는 깨달은 사람이 스스로 얻게되느니 깨달음을 얻은 자는 항상 청정하리라.

 

有動之動은 出於不動하고 有爲之爲는 出於無爲하느니 無爲則神(體性)歸하고

神歸則萬物云寂이라. 不動則氣泯하고 氣泯則萬物無生하느니 神神相守하고 物物

相資하여 厥本其根이라. ?而悟之하면 我自識之하고 入乎無間하면 不死不生하여 與天地爲一이니라. 忘於目則光溢無極하고 泯於耳則心識常淵하느니 兩機俱

忘하면 絶衆妙之門이라. 純純全全合乎大萬하고 溟溟??하여 合乎無綸하느니

天地之大我之所維요 萬物之衆이 我之所持니 竭有窮終以語其蔽哉아.

 

동함에 있어서 동함은 동하지 아니함으로부터 나게 되고 함에 있어서 함은 함이 없는 곳으로부터 나오니 함이 없으면 본심에 돌아가고 본심에 돌아간 즉 만물이 적적하다 이르느니라. 동하지 아니하면 기운이 민민하고 기운이 민민하면 만물이 생함이 없느니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움이 서로 지키고 만물과 만물이 서로 바탕해서 궐 하느니라. 그 근본을 묵묵한 가운데 깨달으면 내 스스로가 알고, 사이가 없는 곳에 들어가고 보면 죽지도 아니하고 낳지도 아니해서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되느니라. 눈을 잃어버리면 빛이 넘침이 다함이 없고, 귀가 민민하면 마음 알음알이가 항상 연연하느니 두 기틀을 잊어버리면 중묘의 문이 끊기게 되느니라. 순순하고 전전해서 대만에 합하고 명명하고 행행해서 무륜에 합하느니, 천지의 큼이 나의 벼루 줄이요 만물의 중생이 나의 가진 바이니 어찌 다 끝이 있어서 써 그 가리움을 말할 수 있으리요.

 

養其無相하니 相故로 常存이요 守其無體하니 體故로 全眞이라 全眞相濟면 可

以長久하니 天得其眞故長이요 地得其眞故久요 人得其眞故壽하느니 世人所以不能長

久者는 爲喪其無相하고 散其無體하여 不能使百骸九竅與眞體?存 故로 死矣니라.

 

그 상이 없음을 기를 것이니 상이 짐짓 보존함이요 그 체가 없음을 지키나니 체가 짐짓 온전한 참이라. 온전한 참됨을 서로 구제하고 보면 가히 써 장구할 것이니 하늘이 그 참을 얻음으로 길고 땅이 그 참을 얻음으로 오래고 사람이 그 참을 얻음으로 수 하느니 세상 사람이 바에 써 능히 장구치 못함은 그 상이 없는 자리를 상실하고 그 체가 없음을 해산해서 능히 백해구규로 하여금 참 체성으로 더불어 아울러 존속케 함이라. 그러므로 사 하느니라.

 

先天而生하되 生而無形하고 後天而存하되 存而無體라 然而無體나 未嘗存也 故不

可思議로다 靜爲之性이나 心在其中이요 動爲之心이나 性在其中矣니로다 心生性滅

하고 心滅性現하느니 性現則如空無相하여 湛然圓滿이라 大道는 無相故로 內其攝

於有하고 眞性은 無爲故로 外不生其心하느니 如如自然하여 廣無邊際로다 對境

忘境하니 不沈於六賊之魔하고 居塵出塵하니 不落於萬緣之化로다 致靜不하고 致和

不遷하면 慧明十方하여 虛變無爲하리라..

 

하늘 먼저 낳으되 생 함이 그 형상이 없고 하늘 후에까지 존속해 있으되 존속함이 그 체성이 없음이니라. 그러나 체가 없어서 일찍이 존속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가히 사의할 수가 없도다. 정하면 성이라 하나 마음이 그 가운데에 있고 동하면 마음이라고 하나 성품이 그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마음이 생기면 성품이 멸하고 마음이 멸하면 성품이 나타나느니 성품이 나타나면 공해서 상이 없어 담연히 원만 하도다. 대도는 상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안으로 모든 있음을 끼워 안고 있으며 참 성품은 함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밖으로 그 마음이 나타나지 아니하느니 여여히 자연 그대로 넓어서 끝과 끝이 없도다. 경계를 대하되 경계를 잊게 되느니 육적의 마에 잠기지 아니하고 진세에 거하되 진세를 떠나니 일만 인연 관계로 변화됨이 떨어지지 아니 하도다. 정에 이르러서 동하지 아니하고 화한데 이르러서 옮기지 아니하면 지혜광명이 시방세계에 비치어서 허하게 변화하되 함이 없느니라.

 

 

修養으로 定力을 얻는 공부

總明綱要

 

不修養入定之工은 其法不一이라. .有外修養法하고 有內修養法하며 有外定靜法하고 有內定靜法하느니 學者能洞觀諸法하여 合用方便然後에 始可無缺而得大成하리라.

且有外道之定과 自性之定과 小乘之定과 大乘之定하여 於此에 亦明瓣而善察

然後에 始可無謬而得正定하리라. 是以로 修養之道는 理一而法多하고 言殊而

義同하리니 若不善解綱要면 則恐有執着偏修之病 故로 更擧全篇之總義하여

別爲簡辦如左하노라. 外修養者는 修養之意는 在於對治外境이니 對治外境者는

一 避境工夫니 初學之時에 當遠避外誘境界是也요. 二 捨事工夫니 不緊之事와

煩雜之段을 當捨而不作이 是也요. 三 依法工夫니 信受上乘解脫之法하여 求安心於

眞理가 是也요. 四 多聞工夫니 多聞偉人寬大實話하여 常存心於大局이 是也니라.

 

대범 닦아 길러서 정력을 얻는 공부는 그 법이 한가지가 아니니라. 외 수양 법이 있고 내 수양 법이 있으며 외정정법이 있고 내정정법이 있으니 배우는 사람은 능히 모든 법을 밝게 살피고 합해서 모든 방편을 사용한 뒤에 비로소 가히 결함 없이 대성함을 얻을 것이니라.

또한 외도의 정과 자성의 정과 소승의 정과 대승의 정이 있어서 이에 또한 밝게 판단하고 잘 살핀 연후에 비로소 가히 그르침 없이 바르게 행함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써 수양하는 도는 ,이치는 하나로되 그 법은 많으며 말은 다르나 뜻은 같을 것이니 만일 잘 강령과 요긴함을 해결치 못하면 곧 편벽 되이 수련하는 병에 집착될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므로 다시 전 편의 총 의를 들어서 분별해 간단히 좌와 같이 분별되었으니 외 수양이라 함은 수양의 뜻이 주로 외경을 대해서 공부하는 데에 그 뜻이 있으니 의경을 대해서 다스리는 자는, 하나는 경계를 피하는 공부이니 처음으로 배울 때에 마땅히 멀리 모든 경계를 피하라 함이 될 것이요, 둘은 일을 놓는 공부이니 긴급하지 아니한 일과 번잡한 단계를 마땅히 놓아버림이니 다만 만들지 아니함일 것이요, 셋은 법에 의거해서 하는 공부이니 상승 해탈의 법문을 신봉해 가져서 안심 법을 진리에서 구함일 것이요, 넷은 많이 듣는 공부이니 많이 위인들의 관대한 실화를 들어서 항상 마음을 대국적인 면에 존속함일 것이니라.

 

做工之際에 行此四事하면 則自然外境平定하여 無有?心之段하리니 古語에 云

樹欲靜而風不止라하니 風者는 外境也라. 風之則樹靜하고 境治則心安이니라. 內修養者는 修養之意가 在於內修自心이니 內修自心者는 一 執心工夫니 念佛坐禪과 及一切時中에 常念執心不動하여 使吾心神으로 不得流放外境이니 如馴牛人執?不捨 是也요 二 觀心工夫니 執心稍可면 則又放任自適 而但觀心所之하여 制其妄念而已니 如馴牛人의 捨?觀牛하여 但制其錯行이 是也요 三 無心工夫니 觀心己熟이면 則又捨觀相 明寂自在 觀而無所觀이니 如馴牛人이 始入人牛不二之境하여 動靜一眞 是也니라.

 

공부를 할 즈음에 이 네 가지의 일을 행하면, 곧 자연히 외경이 평정해저서 내 마음을 거스릴 단계가 없을 것이니, 고어에 말하기를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한다 하니 바람이 일어난다 함은 외경을 말함이요 그러므로 바람이 그치면 나무가 고요함과 같이 경계를 다스리면 마음이 편안 하느니라. 내 수양자는 수양하는 뜻이 안으로 자심을 수련하는 데에 있나니 안으로 자심을 수련하는 자는, 하나는 집심 공부이니(마음 대중을 잡는 공부) 염불 좌선과 및 일체 시중에 항상 생각하기를 마음 대중을 잡음이 동치 아니해서 나의 마음과 정신으로 하여금 외경에 흘러 놓치지 아니함이나, 소를 길들이는 사람이 소 고삐를 놓지 아니함일 것이요, 둘은 관심공부이니 마음 대중을 잡아감이 자못 숙달되어 가면 곧 놓아서 스스로 적중하는데 맡겨 두고 다만 가는 곳만을 관해서 그 망념이 일어남을 제재할 뿐이니, 비유컨데 소 길들이는 사람이 고삐를 놓아버리고 소만 관해서 다만 그릇 되이 행함을 제재함일 것이요 셋은 무심 공부이니 마음 관함이 이미 숙달이 되면 또한 상을 관함 마저 놓아버리고 밝고 적적함이 자유자재해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음이니 비유컨데 소 길들이는 사람이 비로소 사람과 소가 둘이 아닌 경지에 들어가서 동과 정이 한결같이 참됨일 것이니라

 

經云 心淨則一切淨하느니 心者는 包虛空萬相者也라. 心一淨이면 則百千外境이

一切淸淨하여 境我無間하여 同成淨土니라. 外定靜者는 定靜之義가 在於立志不

動이니 立志不動者는 一 發大願心이니 願心이 己極하면 則千萬世緣이 雖

當面橫在라도 視若不見하여 小不掛心이니 如釋迦世尊이 發心大道하여 王宮

之樂과 雪山之苦를 無留心內底思想이 是也요 二 發大信心이니 信心己極이면

則千萬世法이 雖紛??處라도 更無思量取捨之心에 如慧可之於達磨也니 一信決

志에 忘軀求法底思想이 是也요 三 發大忿心이니 忿心己極이면 則千萬障?가

包圍重疊이라도 無有恐怖退縮之心어니 如耶蘇之十二司徒가 冒險守道하여 死而

不己底思想 是也니라. 做工之際에 有此三思想則自然立志가 如山하여 無有動搖하

리라(特擧世尊慧可十二司徒는 但指一例而言 諸聖之能入道門者는 皆有若是底心思이니 且曰

非云實行之果有同一而但思想之同一也니라)

 

경에 말하기를, 마음이 조촐하면 일체가 다 조촐하다 하니 마음이라 함은 허공만상을 다 싸고 있음이라. 마음이 하나로 조촐하면 백천외경의 일체가 다 청정해서 경계와 내가 사이가 없어 한가지로 정토세계를 이루었음이라. 외정정 이라 함은 정정한 뜻이 입지부동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입지부동하는 것은, 하나는 대원에 마음을 발함이니 원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곧 천만세상의 얼킨 바 인연이 모름지기 마땅히 면전에 비껴 있을지라도 보아도 보이지 아니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지 아니할 것이니 석가세존이 대도에 발심해서 왕궁의 즐거움과 설산의 모든 고통을 마음 가운데 머물러 두지 아니하는 사상일 것이요, 둘은 대 신심을 발함이니 신심이 이미 지극하면 천만세상의 법이 비록 분운한 곳에 아울러 있을지 라도 다시는 사량으로 취사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니 혜가 달마에게 나아감과 같음이니 한번 믿음으로 뜻을 결정함에 몸을 잊고 법을 구하는 사상일 것이요, 셋은 대분심을 발함이니 이미 분심이 지극하면 천만 장애가 중첩으로 포위했을지라도 공포의 마음과 퇴축하는 마음이 없음이니 야소의 십이사도와 같이 모험 가운데 도를 지켜서 죽어도 굽히지 아니함일 것이니라. 공부할 때에 이 세 가지 사상이 있으면 자연히 뜻 세움이 산과 같아서 모든 경계에 동요됨이 없을 것임이라(특히 세존과 혜가와 십이사도를 들어 보인 것은 다만 한 예를 말한 것이요, 모든 성인들의 도문에 들어감은 다 이와 같은 심사이오니, 또한 말하기를 실행 결과가 동일함이 있음이 아니라 다만 사상의 동일함을 말함이니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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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이하라

    정정요론(定靜要論)

    2019.10.11 15:24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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