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기간 : 6월21일 까지
모집 인원 : 5명
발표 :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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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고 풍부한 시적 감수성과 대담하고 독창적인 악상으로
피아노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쓴 쇼팽의 길을 따라가다
쇼팽을 호젓하게 만날 수 있는 젤라조바볼라에서부터
그가 음악적 지향점을 형성해 간 바르샤바와
상드와의 사랑을 간직한 발데모사와 노앙을 거쳐
예술가로서의 꽃을 활짝 피운 파리까지
“그는 이 시대의 누구보다도 대담하고 자신만만한 시인이자 살아 있는 영혼이다. 그의 음악은 꽃 속에 파묻혀 있는 대포다.”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음악가이자 평론가인 로베르트 슈만은 자신과 동갑내기인 프레데리크 쇼팽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프렐류드, 에튀드, 녹턴, 왈츠, 폴로네즈, 즉흥곡, 발라드 등 일평생 거의 피아노를 위한 곡만을 쓰면서 이 악기가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깨우고 발전시킨 한편, 특유의 섬세한 서정과 우수, 교묘한 화성 진행을 통한 격정의 표출 등으로 낭만적 피아니즘의 정수를 보여 준 그를 사람들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렀다.
39년간 지상에 머물다 간 쇼팽의 짧은 인생은 크게 폴란드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음악적 자아와 지향점을 형성해 간 전기와, 프랑스 파리를 주무대로 주요 작품들을 쏟아 낸 후기로 나뉜다. 1810년, 폴란드의 작은 마을인 젤라조바볼라에서 반은 프랑스인, 반은 폴란드인으로 태어난 쇼팽은 생후 7개월가량 되었을 때 바르샤바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그는 아달베르트 지브니와 요제프 엘스너로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면서 요한 제바스타안 바흐의 평균율을 성경처럼 신봉하고 볼프강 아메데우스 모차르트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등을 친근하게 느끼는 ‘고전적’ 음악가로 성장했다. 무엇보다도 이 시절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폴란드 시골 사람들의 춤과 노랫가락이었고, 이는 훗날 그의 작품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평생에 걸쳐 소중한 예술적 자산이 되어 주었다.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한 1831년, 슬픈 조국의 현실을 뒤로 하고 파리로 건너간 쇼팽은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사교계를 드나들며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교유하는 가운데 천재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특히 약 9년간 파리와 노앙을 오가며 이어진 상드와의 사랑은 그의 걸작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예술가로서 한결같이 정진한 것과는 반대로 그의 육신은 너무 일찍 쇠하고 말았다. 그러나 육체적 빈약함을 넘어서 그가 남긴 음악은 19세기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어떤 음악보다도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안식을 찾지 못한 채 마무리된 그의 방황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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