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의' 철학자다
<하루 10분 인문학>을 읽고

[들어가며] 서른 즈음에 사내 인문학 강연에서 들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한밤중에 나그네의 길을 인도해주는 건 밤하늘에 떠 있는 별입니다. 그 별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그동안 깊게 고민해보지 않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해준 말이기도 하다. 한편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부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사람으로서 , '인문학이란 무엇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 비록 정답은 아닐지언정 그 답 언저리에 이르는 길이 곧 자신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그것이 다름아닌 나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계속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인문학에 대해 가까워지기는커녕 인문학이 심오하고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 끝내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게 된다. 그러던 중 책제목부터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인문학을 접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 같은 책을 만났다. 바로 <하루 10분 인문학>이라는 책이다. 책표지에서 적혀있는 "하루 한 줄, 인문학에게 나를 묻는다!"라는 이 한 줄은 지금껏 내가 생각해온 인문학의 의미를 다시금 묻게 만들었다. 일생 동안 스스로에게 던진 수많은 질문과 그에 답하는 순간만큼은 나도 철학자가 되는 것이라는 저자들의 메시지는 나에게 응원가처럼 들리기도 했다.
철학은 대단한 진리를 알려주는 학문이 아닙니다. 저마다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각자의 삶과 세계에 대한 최선의 답을 내놓은 것뿐이죠.(9쪽, 프롤로그 中)


[책속으로] <하루 10분 인문학>이라는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0분 내외의 독서시간을 들여 차례에 적혀있는 순서대로 또는 각자 마음에 와닿는 주제나 질문을 선택해서 그 장부터 읽어나가면 된다. 책은 총 5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세 가지 단계를 밟아나가며 인문학에 한발짝 더 가까워지도록 이끌어주는 워크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인간', '생각', '윤리', '정치와 권리', '과학과 예술' 등 다섯 가지 큰 주제 아래, 첫번째 단계로 프랑스의 논술형 대입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기출 문항이 각 장을 연다. 바칼로레아에서 다루는 문제가 다름아닌 평소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보았거나 혹은 생각해봄직한 질문의 수준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한 이 점이 인문학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결 수훨하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다음 단계에서는 제시된 질문과 관련된 동서양 철학과 역사, 인물 등 다양한 인문학 지식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학창시절 도덕이나 윤리 수업시간에 읽었던 교과서를 다시 접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시험을 위한 암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배경지식이라고 생 하니 금새 흥미롭게 읽혔다. 이렇게 여럿이 생각해볼 질문과 그에 관한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어느 정도 소화해냈다면, 마지막 단계로 나에게 묻고 또 내가 답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한 장을 마무리하게 된다. 책을 읽고나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질문과 인문학 이야기, 그리고 나의 문답을 옮겨본다.
이 질문("꿈은 필요할까?")과 관련해 우리는 꿈의 사회적 측면과 개인적 측면을 모두 살펴봐야 합니다. 꿈은 개인의 의지와 사회의 구조가 모두 충족되어야 실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26쪽, 인간에 대하여 中)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꿈이라고 부른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꿈과 희망을 '영혼의 영웅'이라고 부르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결코 이상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꿈'이 직업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는 오늘날, 나에게 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본다.
그림 이론이든 게임 이론이든 '언어는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반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두 주장 모두 언어는 세계를 그려내는 일종의 그림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까요.(139쪽, 생각에 대하여 中)
비트겐슈타인의 두 이론은 "언어는 상호 소통을 위한 수단일 뿐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 언어는 실제 세계를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며, 놀이처럼 인간의 사용에 따라 변화하고 다르게 규정될 수 있다고 본 그의 철학을 접하면서 언어의 다른 기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단순히 물리적 방식만이 아니라 심리적 방식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존재함을 이해합니다. 물리적 힘 또는 심리적 위해를 가하는 것이 반드시 폭력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한 이유와 근거에 의해 적정 수준의 힘이 가해진다면 이는 폭력보다는 힘의 사용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183쪽, 윤리에 대하여 中)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낸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아이히만, 표류중인 구명정 위에서 병든 동료를 죽여 목숨을 부지하여 끝내 구조된 선원들의 사례를 통해 "폭력은 어떤 상황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여기서 '폭력'보다는 '어떤 상황'에 방점을 찍는다면 폭력과 그동안 염두에 두지 않았던 '힘의 사용'이라는 개념을 동시에 생각해야함을 알게 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240쪽, 정치와 권리에 대하여 中)
"자유는 주어지는 것일까,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 등의 역사를 본다면 후자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또 다른 한 편에서는 타협과 양보를 통해 얻거나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자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지는 요즘이지만 정작 자유가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울러 자유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책임'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칸트의 미학에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통념을 깨는 것'뿐입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종래의 문법을 깨뜨리고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문법을 창조해내는 것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설명할 새로운 원리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것입니다.(347쪽, 과학과 예술에 대하여 中)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할까?"라는 질문에 칸트는 '반성적 판단'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아니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판사의 경우는 법률 지식을 근거로 판결을 내리는데 이를 '규정적 판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반면 기존의 법률 상식으로 판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도대체 법과 정의란 무엇인지 등을 거듭 묻고 반성하게 되는데 이를 반성적 판단으로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아름다움을 판단하기 보다는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아름다움의 척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 대목이다.
[나오며] 책을 읽는 내내 인문학을 제대로 하려면 꼭 거창한 질문에 유창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하루 10분의 습관으로 나와 내 삶을 지금보다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길을 찾은 것도 큰 수확 중 하나다. 일상의 어느 순간에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과 세상에게 문득 궁금한 것이 생긴다면, 그 때가 바로 인문학을 시작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10분 인문학>을 통해 이러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이제 인문학이 아닌, '내 자신'에게 나에 대해 묻고 싶다. 바로 51번째 질문을 던지고 그에 관한 인문학 이야기를 스스로 찾아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