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탑승자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아무튼, 택시>를 읽고
누군가 내게 언제 택시를 타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급하고 시간이 없을 때라고 답할 것이다. 여유있게 준비해서 두 다리로 걸어가거나 버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좋겠으나, 어쩐 일인지 약속한 시간에 쫓겨 종종 택시를 불러 타곤 한다. 그럴때면 늘 타는 위치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자가용을 운전하면 여러 이유로 택시를 요주의 차량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막상 택시를 타면 마치 날개 달린 자동차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튼, 택시>를 쓴 금정연 작가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언제나'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에게 다리와 같거나 혹은 다리보다 더 좋은 게 바로 택시이기 때문이다. 책날개에 쓰여진 인터넷 서점MD 출신이자 서평가이기도 한 작가 소개가 눈길을 끌었는데,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물음표가 마구 떠올랐다. 운전하기가 서울보다 더 어렵다고 소문난 부산의 시민으로서, 택시 기사들이 강남으로 헷갈리거나 종종 화를 내는 곳이 서울 은평구 신사동인 까닭이 몹시 궁금하여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택시를 타는 이유는 자신에게 약간의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다. 약간의 자유를 허락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어정쩡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고 즐겁게 택시를 타자! (29쪽)
한 인터뷰에서 세상에 책이 사라진다면 무슨 일을 하겠냐는 물음에 저자는 택시 기사가 되겠다고 대답했다. 택시 타는 거랑 택시 모는 건 다르지 않냐는 거듭된 기자의 질문에 저자는 말했다. 책을 읽는 것과 책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다르지 않냐고. 가끔은 오로지 택시를 타기 위해 원고를 쓸 만큼 택시에 진심인 저자는 2017년 3월부터 택시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택시비로 얼마나 돈을 쓰는지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때때로 스스로를 얼마나 편안하고 자유롭게 대할 수 있는지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강사는 내게 시동을 걸어보라고 했다. 나는 기어를 P에 놓고 브레이크를 밟으며 키를 돌렸다. 강사가 내 오른쪽 허벅지를 쳤다. "브레이크 브레이크. 거기는 액셀." 나는 내가 브레이크와 액셀을 헷갈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강사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72쪽)
차를 사는 것보다 타고 싶을 때마다 택시를 타는 게 더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환경과 사회를 위해서라도 차를 사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그가 어쩔 수 없이 (중고)차를 사야하는 일이 벌어진다. 15년간 장롱에 묵혀뒀던 면허증을 부활키시키기 위해 자동차운전전문학원을 찾아 운전 연수를 받는다. 도로를 달린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녹록지 않은 운전 실력과 도로 상황에 그는 자신이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를 다시 기억해낸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긴장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자기 안의 어두운 본성과도 마주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택시가 있는데 굳이 힘들게 운전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순탄하지 않았던 운전 연수를 끝낸 뒤 과연 그는 차를 샀을까?
매순간 우리는 원하지도 않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점들을 지난다.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기를 희망하면서······ 그것이 기본적으로 내가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내 생각에, 택시도 비슷하다. 그러니 요금 얼마 더 내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심지어 목적지에 늘 데려다주는데.(85쪽)
택시는 버스나 지하철과 달리 정해진 노선이 없다. 그래서 때때로 그것이 택시를 타는 승객에게는 장점이자 단점으로 다가온다. 면접이나 출장으로 (외국을 포함한) 타 지역을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택시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척하며 길을 돌아가지 않고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걱정이 들곤 했다. 저자 또한 평소 자주 가는 곳임에도 택시 기사마다 선택하는 길이 다르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것마저도 택시 예찬론으로 승화시키는 마음의 경지를 보여주며 택시의 세계에 가성비는 필요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택시 일지에 요금을 적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우리 집이 북가좌동이거든. 수색, 증산 이쪽으로 가는 손님을 받으면 괜히 반가워요. 나도 집에 가는 것 같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고. 그래서 이쪽은 무조건 받아요."(121쪽)
우리나라 택시 운전석에는 대부분 남자가 앉아 있다. 만약에 승객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개인사에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까지 다양한 소재가 등장할 공산이 크다. 간혹 처음 만난 승객에게 선을 넘는 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짧게는 10~20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에 달하는 거리를 달리면서 같은 공간에 온기를, 때로는 열기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반면,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여성 택시 기사들은 승객이 먼저 말을 걸기 전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단순히 기사와 승객이라는 입장을 넘어, 택시라는 같은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을 공유하는 사이에 지켜야할 예의와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이것은 남들이 뭐라 하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다. 노동의 가치와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다. 꼭 이렇게 딱딱한 이야기만은 아니겠지만······(59~60쪽, 지상의 밤 중에서)
책 뒷표지에는 택시를 얼만큼 애정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적혀있다. 그 가운데 택시가 나오는 노래와 영화 그리고 책에 관한 문항이 보인다. 정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택시가 나오는 노래 열 곡은 알 수 없었으나, 택시에 관한 영화와 책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가 퍽 흥미롭게 읽혀졌다. 그 중 영화 두 편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본다.
하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성인 애니메이션 시리즈 『보잭 홀스맨(Bojack Horseman)』이다. '카브라카다브라'는 여성을 위한 카카오택시와 같은 사업을 벌여 안전한 공간을 원하는 여성의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대성공을 거둔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남성을 위한 안전한 공간도 만들어내는데, 주인공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은 여성을 위한 안전할 것 같은 공간이자 남성이 여성을 쳐다보기에 매우 안전한 공간'으로 다시 수정하여 사업을 운영한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택시라는 소재를 통해 아이러니하고도 참신한 리얼리즘을 느낄 수 있다고 평한다.
다른 하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택시 영화로 짐 자무쉬 감독의 『지상의 밤』이다. LA,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 등 다섯 개의 도시와 다섯 대의 택시가 나오는 옴니버스 영화이다. LA공항에서 택시를 탄 할리우드 캐스팅 담당자가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라이더'라는 이름부터가 기사 역할로 안성맞춤인 듯한) 여성 택시 기사를 보고 한 눈에 반해 무비스타가 될 수 있다고 관심을 보이며 정녕 택시 기사가 꿈이냐고 묻는다. 기사의 꿈은 정비사이며 현재하는 일과도 연결되어 있기에 지금 하는 일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당당하고 정중하게 거절을 표한다.
인생이 택시를 타는 것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속도와······ 추울 땐 따뜻하고······ 더울 땐 시원하며······ 충분히 안락한······ (153쪽)
목적지에 도착하면 택시에서 내려야 하듯이 <아무튼, 택시>를 다 읽고 책을 내려놓으며 내일도 어김없이 어딘가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탄 저자를 상상해본다. 어쩌면 목적지 없이 무작정 택시를 타고서는 내리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바라는 택시를 타는 것과 같은 인생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니 그만한 인생도 없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그의 삶에서 적당함을 유지하는 데 (경제적으로) 필요한 이 책의 인세 수익 대부분이 택시요금으로 쓰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쓰일 것이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에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