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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아이

[도서] 눈아이

안녕달 글그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눈+아이=겨울벗

<눈아이>를 보고 나서

 

 


 

 

  몇 해 전부터 여름이 오면 피서(避暑)를 위한 그림책 한 권을 꼭 챙긴다. 바로 안녕달 작가가 그리고 지은 <수박 수영장>이다. 시원한 수박의 질감을 표현한 책표지는 물론,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상상하다 보면 청량감이 물씬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여름의 반대편에 자리한 겨울하면 지금까지는 소시지 할아버지 연대기를 담은 <안녕>을 통해서 겨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안녕달 작가의 신작 <눈아이>의 출간 소식을 듣는 순간, 왠지 나만의 겨울 그림책이 되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책표지에는 함박눈이 내리는 들판 위에 겨울아이와 눈아이가 앉아서 눈을 뭉쳐 눈빵을 만들어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표지 그림의 정경을 글로 써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편에서 따뜻함과 다정함이 밀려오는 걸 보면 역시 안녕달 작가의 그림체와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장을 넘기려는데 표지에 적힌 '눈아이'라는 각 글자 위에도 눈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깨알같은 디테일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차갑지만 포근한 '눈'과 따뜻하지만 차가운 것을 금새 녹게 만드는 '온기'는 두 아이가 서로 세상 하나뿐인 친구가 되어가는 여정을 가득 채워준다. 그림책 속 한 장면 한 장면마다 작가가 얼마나 세심한 공을 들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데, 내 시선을 얼려버린 뒤 이내 녹아내리게 만들었던 몇 장면을 떠올려본다.

 

  그렇게 겨울의 한가운대에서 눈아이를 만났다.  

 

  장면 하나, 이름없는 눈덩이는 겨울아이가 팔과 다리를 만들어주고 눈,코,입을 그려준 뒤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자 "우아, 우아"하며 반응한다. 이제 눈덩이는 더이상 눈사람이 아니라 김춘수 시인의 시「꽃」처럼 겨울아이만의 '눈아이'가 되어 교감하며 눈처럼 소복하게 우정을 쌓아간다.

 

  눈아이는 어느새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커다래졌다.  

 

  장면 둘, 배부르게 먹은 눈빵 때문인지 아니면 쉼없이 내리는 눈 때문인지는 몰라도 겨울아이와 장갑 한 짝씩을 나눠 끼고 눈밭을 걸어가는 작은 '눈아이'가 점점 커다래진다. 눈아이의 후속작으로 <눈어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도 좋겠단 생각과 함께, 문득 예스블로그의 이웃님(소라향기님)이 보내주신 '책등만 없는' 가제본과 '책등이 있는' 완성본이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참 이상한 말이었다.  

 

  장면 셋, 두 아이는 책가방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꽈당하고 넘어진다. 겨울아이가 눈아이 몸에 묻은 낙엽을 털어주고 "괜찮아?"라고 물으며 눈아이의 눈에 호하고 입김을 분다. "왜 울어?"라고 묻는 겨울아이와 "따뜻해서"라고 답하는 눈아이의 대화에서 왠지 모를 뭉클함이 피어난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당연한 이치지만 과학 너머에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아이에게서 동심과 천진난만함이 느껴진다.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장면 넷, '눈의 계절 끝에 다다른' 두 아이는 마치 겨울과 봄의 경계와도 같은 나무 아래에 선다. 직감적으로 눈아이는 겨울아이를 떠나야할 때임을 알기라도 하듯이 숨바꼭질을 하자고 말한다. 과연 술래가 된 겨울아이는 눈아이를 찾아낼 수 있을까? 옆에서 이 장면을 함께 보던 아이는 "아빠, 우리 '눈아이'(놀이)하자!"며 연신 외친다. 그림책을 읽어달라는 소리인지, 아니면 숨바꼭질을 하자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그럴 땐 망설일 필요없이 둘 다 하면 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아빠와 딸은 어쩌다 보니 숨바꼭질이 아니라 숨은 '비행기' 찾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윗 지방에서 올해 첫 눈 소식이 들렸다. 남쪽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올해도 눈 구경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눈아이> 덕분에 실망하기는커녕 기꺼운 마음으로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든지 그림책을 펼치면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을 수 있고, 뽀득뽀득 눈을 밟을 수 있으며, 새하얀 눈길 위에서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 아니, 눈아이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과 아이가 만나면 친구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눈아이>와 안녕달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올 겨울을 한 결 더 따뜻하게 보내는 데 월동책(越冬冊), 즉 '겨울나기 그림책'으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눈아이>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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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Joy

    앗, 이 책은 지난 주말 제 장바구니에 담긴 바로 그 책이 아닌가요!!! ㅎㅎ
    '겨울나기 그림책'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책 같네요. 그림만 보고 있어도 이 겨울이 따뜻하게 느껴지네요(앗, 그러면 눈아이가 녹는 건가요? ㅠㅠ).

    2021.12.24 22:06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엽이님 장바구니에도 담겨 있는 그림책이군요! 장바구니 안이 따뜻해서 눈아이가 녹지는 않을런지 괜한 걱정을 해보게 됩니다.ㅎㅎ;; 올 겨울이 가기 전에 꼭 한 번 만나보시면 참 괜찮을 듯합니다.^^

      2021.12.30 16:12
  • 스타블로거 삶의미소

    눈사람과 우정을 쌓는다는 설정도 좋은데 이렇게 눈아이가 점점 더 커진다는 상상력에다 흙바람님의 따뜻한 글이 겨울나기용으로 참 좋은 그림책이네요. 낙엽수집가를 위해서라도 부산에 눈이 내리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눈은 안오지만 흙바람님 댁의 크리스마스는 다른 어는 곳보다도 행복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
    메리 크리스마스요 ^^

    2021.12.24 22:41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삶의미소님께서도 성탄연휴 잘 보내셨지요? 주말 내내 너무 추웠지만 역시나 눈 소식은 없었네요.ㅎㅎ;; 올 겨울을 책임져 줄 그림책을 만났고, 그림책을 통해서라도 아이와 함께 눈과 겨울 정취를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은 연말 따스한 시간 이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삶의미소님.^^

      2021.12.30 16:12
  • 스타블로거 이하라

    어릴 때는 눈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기를 바랬던 적도 있었는데 그랬으면 큰일 날뻔했어요. 철이 지나면 녹아서 사라질 운명이니까요.
    흙속에저바람속에님 건강과 평온함 함께하는 사랑 많은 성탄연휴 되세요^^

    2021.12.24 23:56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성탄연휴 잘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이하라님 말씀을 보면서 어릴 적 만들었던 작은 눈사람을 집 밖에서 두고 오기가 너무 아쉬워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아도 아실 것 같아요.ㅎㅎ;;

      2021.12.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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