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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망다랭 1

[도서] 레 망다랭 1

시몬 드 보부아르 저/이송이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시몬 드 보부아르. '제 2의 성'으로 현대 페미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자 장 폴 사르트르와 파격적인 계약 결혼으로 알려진 인물.

사상가이자 당대를 뒤흔든 셀럽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그녀는 많은 소설을 남겼다고 한다.

이번에 읽게 된 <레 망다랭>은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설의 제목인 <레 망다랭>은 중국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특권층 지식인들을 폄하하여 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1944년부터 전후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그녀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있지만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세상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지만 여러 이해관계로 침묵하는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유명한 소설가이자 좌파 신문 '레스푸아'의 편집장 앙리와 영향력 있는 좌파 사회단체 S.R.P의 지도자 뒤브뢰유의 아내 안의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읽는 내내 앙리는 젊은 시절 사르트르일까, 안은 늙어버린 시몬 드 보부아르일까 상상했는데 작품 해설을 보니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앙리를 알베르 카뮈로, 뒤브뢰유를 사르트르로, 그리고 안은 역시나 보부아르 자신으로 보았던 것 같다.


앙리의 관점에서는 좌파 신문 '레스푸아'가 그가 존경하는 지식인 뒤브뢰유의 권유로 S.R.P의 정론지가 되고 정치에 점차 발을 들여놓으면서 문학과 정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항상 약자의 편에서 정의와 옳음을 추구하는 그의 신념과 달리 그는 스스로 혐오하는 여러 사건- 독일군에 부역했던 자를 돕거나 살인을 서슴치 않는 과거 레지스탕스 동료의 범죄를 눈감아주는 등-에 휘말리게 된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노동자의 세상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수립한 소련을 이상적인 사회로 보고 있던 당대 좌파 지식인들은 스탈린 체제 하에 벌어진 강제 노역과 학살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외면하려 하기도 한다.


뒤브뢰유의 반대에도 앙리는 결국 소련에서 자행되는 만행을 폭로하지만 공산주의자들로부터는 반공주의자로,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버린다. 정치에 개입하며 더 이상 눈에 보이는 빈곤과 부조리함을 담지 않는 문학에 대해 의미를 상실해가던 그는 결국 '레스푸아' 편집장으로의 직책도 내려놓고 파리를 벗어나 오로지 자신의 시간과 소설을 집필하는 삶을 계획한다. 


작가의 자전적 캐릭터인 안 역시 남편인 뒤브뢰유의 그늘 아래 살아간다. 그녀의 과거는 뒤브뢰유의 과거이고, 그녀의 미래 역시 뒤브뢰유의 미래와 함께 한다. 뒤브뢰유는 글과 종이만 있으면 어떤 여자든 상관없지만 안에게 뒤브뢰유는 절대적이다.


자신의 늙음을 괴로워하며 아내와 엄마,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외에는 자아 정체성을 잃어가던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떠난 미국 여행에서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 주는 남자 루이스를 만난다. 그는 그녀 자체를 온전히 사랑해주는 남자로, 안은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고 사랑받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런 꿈 같은 순간도 잠시, 사랑의 짧은 희열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퇴색해간다. 안 스스로가 사랑의 열정과 자신의 안정된 생활 사이에서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기에, 루이스는 그녀를 단념해간다. 결국 루이스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은 절망하지만, 그녀는 결코 삶을 포기하진 않는다.


게다가 앙리의 주변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 앙리의 전 연인이자 그에 대한 집착으로 결국 미쳐버린 폴, 그를 자신의 성공에 이용했던 여배우 조세트, 아버지를 닮은 그를 존경하지만 죽은 옛 연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딘은 모두 앙리에게 의존하는 모습이다.


특히 폴은 정신과 치료를 통해 회복하며 앙리와의 과거를 '명성에 그늘에서 사는 것보다 더 해로운 건 없으니까'(2권 p419)로 회고하지만 끝내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상적인 여자의 역할을 연기할 뿐이다.


페미니스트 작가의 소설이라 꽤나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기대했는데, 자신과 함께하는 연인들의 명성에 가려진 여성 캐릭터라니. 


작품 해설을 보니 당시에도 여주인공들의 묘사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다는데, 오히려 보부아르는 이런 프랑스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제시하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지금도 많이 나아졌다지만 누군가의 아내라는 타이틀로 불리며 기대되어지는 역할을 강요받는 여성들이 숱하게 있지 않나.


소설을 읽는 내내 담배 연기가 희뿜한 바에서 당대 지식인들이 열띠게 토론을 벌이는 현장에 온 느낌이 들었다. 당대 프랑스의 분위기를 잘 알지 못해 그들의 대화를 겉핥기 수준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은 너무 아쉬웠다.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 시몬 드 보부아르에 대한 배경 지식이 좀 더 있었으면 훨씬 흥미로운 독서가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그들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문학의 역할', '지식인의 역할', '이상의 순수성과 현실의 괴리' 등은 곱씹어 생각할만한 주제였다.

게다가 안이 루이스와 사랑에 빠졌을 때 심리 묘사는 더 없이 현실적이고 섬세해서 연애할 때 가지는 불안과 두려움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넘쳐나는, 그래서 언젠가 다시금 읽고 싶은 책이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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