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민음사/2018.5.22.
sanbaram
해마다 신년이 되면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법시험이나 국가 공무원 시험, 대기업 공채 시험을 보는 날이 그렇고, 제일 큰 관심을 받는 것은 수학능력시험 날이다. 나라 전체가 시험 열기에 휩싸이며 출퇴근 시간까지도 조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험 열기가 생긴 원인과 그 결과로 생기는 문제점과 그 해결방법을 집중 탐구한 책이 <당선, 합격, 계급>이다. 저자는 <동아일보>에서 11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정치, 사회, 산업분야을 취재하며 이달의 기자상, 과훈언론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등을 받았다.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 <호모도미난스>, <한국이 싫어서> 등이 있으며 뮤지션 요조와 독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한다.
“내가 이 취재를 통해 보려 하는 것은 한국 사회였다. 공채라는 특이한 제도, ‘간판’에 대한 집착, 서열 문화, 그리고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시스템이 어떻게 새로운 좌절을 낳게 되는 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p.22)” 이렇게 말하는 저자는 대규모 동시 시험으로 합격자 또는 당선자를 선발하는 방식이 문학계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어떻게 해서 서열구조와 관료주의를 불러왔는가. 이걸 어떻게 깨트려야 할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그 대안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문학과 출판에 관한 내용은 자연수 차례에 모아 설명하고, 문학과 출판계가 아닌, 각종 시험으로 뽑는 수능시험, 회사 공채, 사법시험, 공무원 시험 등의 내용은 0.5의 숫자에 정리해서 한 눈에 자기가 알고 싶은 영역을 파악하여 읽을 수 있게 구성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로스쿨, 대학 총장 추천제,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따져 보면 다 같은 내용이다. 첫째로는 ‘못 믿겠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가진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스쿨과 학생종합전형은 모두 각종 부정 의혹을 사고 있다. 그 두 제도에 붙는 명칭도 같다. ‘현대판 음서제’이다.(p.233)” 장편소설공모전이든, 공채 제도든, 대학 입시든, 시험의 형식만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다. 그 시험은 많은 부조리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과이자 타협점이기도 하며, 여러 주체들과 거의 한 몸처럼 묶여있다. 이 점을 무시하고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기기묘묘한 편법과 부작용만 잔뜩 낳기 일쑤라고 저자는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국 사회에 시험을 통해 획득하는 간판이 존재하며, 그 간판이 곧 신분이 되고, 그로 인해 계급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듯하다. 인터넷에서 ‘대학 순위’, ‘직업 서열’ 등의 검색어를 치면 다양한 도표들을 볼 수 있다. 누리꾼들은 그런 계급 구조를 카스트나 골품제에 빗대기도 한다.(p.294)” 한국에서 간판이 만드는 차별과 서열의 구조는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유지 된다. 그런 ‘합의’는 여러 각도에서 공고히 맞물려 있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실제로 그 간판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간판을 믿고 선택하는 것이 각자에게 최선의 선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간판 외에 달리 더 좋은 선택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독서 생태계나 노동시장은 너무 깜깜하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 간판들만 빛나는 어두운 거리 같다. 안내소에 있는 지도는 부정확하거나 누락된 정보가 많다. 얼마간은 그런 지도를 그리는 일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다. 부분적으로는 간판으로 득을 보는 이들이 정확한 지도 제작과 보급을 반대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나는 모험을 하게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믿을 수 있는 정보는 그중 하나다. 다른 두 가지는 충분한 보상과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 세 가지가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과 기업들은 모험을 극히 꺼린다, 그 결과 역동성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 공동체가 계급사회 같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중이다. 상속, 혼인, 시험과 같은 이벤트가 아니면 신분을 바꾸기 어려운.(p.429)” 이런 문제점을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우선 쉽게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실행해 나가면 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알릴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정보를 공개해 나간다면 취업준비생이나 중소기업 등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험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중소기업의 특허를 빼내는 대기업이나, 납품단가를 후려쳐서 중소기업이 설자리가 없게 한다든지, 골목상권까지 대기업이 차지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또한 충분히 생각하고 실패했을 때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 마련 등이 꼭 필요하다.
“대체로 어떤 시험을 치고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그 신비로운 권위를 얻는다. 그 집단은 주류 문단일 수도 있고, 명문대일 수도 있고, 대기업일 수도 있다. 시험에 합격해서 그 단체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만 한번 들어가고 나면 쉽게 퇴출되지 않는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 단체 구성원이 되는 입시에 통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자격증처럼 작동한다. 이 신비로운 권위를 ‘간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p.289)” 왜 중견, 중소기업에 잘 다니고 있는 젊은 회사원이 삼성과 LG신입사원 공채에 입사 지원서를 내는가? 내부 사다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채에 한번 합격한 뒤에도 다른 공채에 재도전 한다. 채용 담당자들도 그 트랜드를 받아들이고, 신입사원 공채를 통해 경력자를 뽑으려 한다. 공채 시험이 바로 과거제도의 잔재라 할 수 있다. 수시 채용을 못하게 막는 사회의식이 문제다. 대학 입시처럼 채용시장도 다변화 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취업준비생이나 수능시험을 앞둔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살펴볼 여유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이 읽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