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취재를 통해 보려 하는 것은 한국 사회였다. 공채라는 특이한 제도, ‘간판’에 대한 집착, 서열 문화, 그리고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시스템이 어떻게 새로운 좌절을 낳게 되는 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p.22)” 이렇게 말하는 저자는 대규모 동시 시험으로 합격자 또는 당선자를 선발하는 방식이 문학계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어떻게 해서 서열구조와 관료주의를 불러왔는가. 이걸 어떻게 깨트려야 할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그 대안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문학과 출판에 관한 내용은 자연수 차례에 모아 설명하고, 문학과 출판계가 아닌, 각종 시험으로 뽑는 수능시험, 회사 공채, 사법시험, 공무원 시험 등의 내용은 0.5의 숫자에 정리해서 한 눈에 자기가 알고 싶은 영역을 파악하여 읽을 수 있게 구성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로스쿨, 대학 총장 추천제,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따져 보면 다 같은 내용이다. 첫째로는 ‘못 믿겠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가진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스쿨과 학생종합전형은 모두 각종 부정 의혹을 사고 있다. 그 두 제도에 붙는 명칭도 같다. ‘현대판 음서제’이다.(p.233)” 장편소설공모전이든, 공채 제도든, 대학 입시든, 시험의 형식만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다. 그 시험은 많은 부조리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과이자 타협점이기도 하며, 여러 주체들과 거의 한 몸처럼 묶여있다. 이 점을 무시하고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기기묘묘한 편법과 부작용만 잔뜩 낳기 일쑤라고 저자는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국 사회에 시험을 통해 획득하는 간판이 존재하며, 그 간판이 곧 신분이 되고, 그로 인해 계급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듯하다. 인터넷에서 ‘대학 순위’, ‘직업 서열’ 등의 검색어를 치면 다양한 도표들을 볼 수 있다. 누리꾼들은 그런 계급 구조를 카스트나 골품제에 빗대기도 한다.(p.294)” 한국에서 간판이 만드는 차별과 서열의 구조는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유지 된다. 그런 ‘합의’는 여러 각도에서 공고히 맞물려 있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실제로 그 간판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간판을 믿고 선택하는 것이 각자에게 최선의 선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간판 외에 달리 더 좋은 선택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독서 생태계나 노동시장은 너무 깜깜하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 간판들만 빛나는 어두운 거리 같다. 안내소에 있는 지도는 부정확하거나 누락된 정보가 많다. 얼마간은 그런 지도를 그리는 일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다. 부분적으로는 간판으로 득을 보는 이들이 정확한 지도 제작과 보급을 반대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