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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도서] 0 영 ZERO 零

김사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 소설은 알리스 청의 식인기록이라고 불리울 수 있겠다.

이쁘고 반짝거리고 재능이 보이는 것은 싹트기 전에 망가뜨려야 한다. 자신의 조그만 편리를 위해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부모든, 친구든, 연인이든,,앨리스는 명문대 독어과를 나와 대학 시간강사를 하고 있고 독립문예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이는 선망으로 그녀에게 접근하고 그녀의 호의에 기댄다.

 

하지만 호의를 가지고 접근한 이들에게 절대 틈과 곁을 주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그녀는 무지막지한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다. 행복을 믿지 않기에 고통도 불행도 없다. 그런 인생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성연우 : 한 때 그녀의 연인이었던,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인줄 알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스스로 파괴되어 버린다.

박세영  : 빛나는 원석같은 그녀를 그녀가 가진 재능과 정반대의 길로 향하게 안내해 망쳐놓는다.

김지영 :  가진 것이 많고 멋진 외국인 남편까지 둔 그녀, 한 때 다른 여자를 배신해서 그녀를 행복하게 했던 남편은 그때처럼 그녀 또한 배신한다.

 

재능을 가진 인간들의 가장 큰 약점은 허영심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만큼, 딱 그만큼의 거품에 둘러싸여 있다. 그 거품, 즉 허영심은 재능의 부산물이자 함정, 허영심은 눈을 멀게 하고 신경을 둔하게 한다. 한마디로 마비시키는 쾌락이다. 재능을 가진 인간들은 쾌락에 취약하다.

아름다운 종달새가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광경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강력한 자극과 산만함은 유혹의 정석 그리고 인간사의 모든 것은 유혹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말이 틀린가?

 

인간들에게 감정이라는 이상한 것이 있어 예측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니 예측한대로 흘러간다. 길목에 미리 덫을 놓은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힐 수 밖에 없다. 세상은 악의로 가득차 있고 생각보다 좋은 사람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사랑을 하고 증오를 하고 질투를 그리움을 갖기도 하고, 야망을 갖기도 하며 그에 따른 일련의 좌절을 겪는다.

 

세상에는 누군가를 잡아억어야 하는 그런 운명에 처한 그런 욕망으로 채워진 괴로운 피조물이 있다. 그렇다면 분명 반대편에는 기어코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기를 원하는 강자를 위해 희생되기를 사냥꾼들을 위해 자기몸을 내어주고 싶은 그런 희생적인 가득한 피조물이 존재하지 않을까?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둘은 그렇게 먹고 먹히는 관계로써 세상을 유지한다. 즉, 이쪽과 저쪽 모두 미쳐있는 것이다. 잡아먹고자 하는 눈이 뻘개진 사냥꾼들과 잡아먹히고자 기를 쓰고 사냥터로 뛰어드는 양떼, 하지만 언제나 희생자들만이 고결하게 그려진다.

 

오! 가엷은 희생자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가해자들도 가엷기는 마찬가지다. 상어는 상어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겠는가?

 

세상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김지영선배는 미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했다.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인간이라는 종족의 선의에 기대어 강을 건넌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그런 작은 희망으로 하루를 버틸 것이다. 상어로 태어났어도 고래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는 말을

인간은 식인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잡아먹거나 잡아먹히거나 두가지 로 나뉘어져 있다고 그렇다면 세상은 너무 불행하다.

난 선의의 손을 잡고 가녀린 어깨에 기대어, 좁은 어깨를 내어주면서 이 세상을 건너고 싶다.  배신당하더라도, 다시 손을 잡고,,, 맘은 이렇게 지고지순한데,

 

다른 사람의 행운을 질투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각별한 사람의 불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다름 사람의 행운을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던가? 김사과의 말이 틀렸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이고 너그러운 사람이고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데 나는 가차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슬프다. 그렇지만 나의 본질은 제쳐두고 마음만은 좋은 사람이고픈 희망을 갖고 싶은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난 빅뱅 이후의 138억 광년의 나이테를 새긴 인간이라는 종족이니까..

 

나는 앞으로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내 인생은 앞으로도 잘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하여, 세간의 소문과 달리 인생에 교훈 따위 없다는 것.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 빈 공간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 있다.

 

김사과의 소설은 처음인데 악마같은 주인공, 포식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먹고 먹히는 피라미드 같은 모습이 현재의 우리 사회 모습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알리스 청은 승리자가 되었을까?  승리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식인이 되어버린 삶이 결코 행복하지는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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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난

    식인이라는 것을 인간을 먹는다는 것으로 정의해버리면 절대 이 현대사회에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지만 서로의 자리를 뺏고 서로의 존재감을 먹어치운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전 재능이 없어서 허영심도 없는 걸까요.ㅋㅋㅋ

    2020.03.16 15:0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재능에는 허영심이 따른다는 말은 저자의 생각일뿐인 것도 같은데 어쨌든 주인공같은 식인족이 존재할 것 같은 생각은 들어요, 사촌이 논을사면 배아프다는 말도 있듯이 각별한 사람의 행운이나 행복을 순수한 맘으로 축하하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

      2020.03.16 18:14
  • 파워블로그 책찾사

    '식인'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인간 자체는 물론 사회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심각한 경쟁이 당연시되는 사회를 '식인'이라는 용어를 통하여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시골아낙님처럼 인간의 선의에 기대보고 싶네요. 그렇지 않다면 저도 아마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

    2020.03.16 16:0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지난번 팩트풀니스에서 말했던 것처럼 언론은 공포본능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각 국의 사재기 현장이랄지, 마스크 사려고 골프채를 휘두르는 등 선행보다는 악행이 많이 보도되죠. 하지만 선의를 가지고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사회도 유지될 수 있겠죠!!

      2020.03.16 18:17
  • 스타블로거 ne518


    먹으려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먹히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어쩌면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더 편한 사람... 소설은 좀 비정해도 세상이 다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기에 아직 괜찮잖아요 그렇게 먹고 먹히는 관계는 많지 않다고 믿고 싶습니다


    희선

    2020.03.17 02:0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먹히려는 사람들이라기보다 그냥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포식자들의 요구에 그대로 따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말하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희망을 갖는 사람들이 있어 이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2020.03.1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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