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를 보고 나서 마음에 파도가 일렁거렸다. 나의 소녀 시절과는 다른 시기, 장소의 이야기지만 나의 근본을 들킨 것 같은 마음, 영지선생님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나의 세계는 더 나아졌을까?
그나마 은희보다는 부모의 관심을 받았고 훨씬 더 나은 환경이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아이들 교육을 위해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지만 떡방앗간한다고 무시당하는 은희의 삶은 힘겹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 그런 엄마를 두고 춤바람난 아빠, 강북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해 부모의 관심밖인 언니 수희, 공부를 잘해 가족의 희망이지만 은희를 마구 때리는 오빠 대환, 단짝 친구 지숙, 남자친구 지완, 후배 유리와 함께 하는 중학시절은 잠깐 즐겁다 오래 쓸쓸하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날라리로 찍혀버린 딱 보통의 중학생 김은희
단짝의 배신도, 남자친구의 곁눈질도, 오빠의 폭력에도, 부모의 무관심에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다 한문학원 강사 영지를 만난다. 서울대에 다니는 선생님도 자기가 싫을 때가 있냐고 묻는다.
(은희)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 있으세요"
두 여자의 눈 마주침
이 아이에게 무엇을 말할까, 스산한 얼굴의 영지, 그 침묵을 힘겹게 깨고 영지가 말한다.
(영지)...응. 많이. 아주 많이. 나도 똑같아.
은희, 영지의 말에 놀라서 묻는다.
(은희) 선생님은, 그렇게 좋은 대학에 다니는데도요?
영지, 아이의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영지)...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 은희.
(영지)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얼굴에 혹이 자라 수술을 하고 혼자 퇴원하는 은희,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진 자리를 확인하러 간 은희, 은희의 상처는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모두 좋다. 시나리오는 영화에서 생략되었던 장면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고 남다은은 영화를 지지하면서도 약한 점을 이야기하고 김원영의 글은 은희의 마음을 예민하게 포착한다.(그의 책을 사놓고 못 읽었는데 어서 읽어야겠다)
나도 힘들 때 가만 가만 손가락을 움직여봐야 겠다. 그래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