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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도서]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신상규,이상욱,이영의,김애령,구본권,김재희,하대청,송은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우리는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는가? 나는 미래에 대해 얼마만큼 생각하고 있나?  

당장 먹고 살기 바쁘고 나이도 꽤 먹어버린 나에게, 미래는 영 쓸모 없는 말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있어 미래란 기껏 몇년 후의 계획이고 내 생활과 관련있는 일 일뿐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과학자, 기술자, 정치가, 학자에게만 맡겨놓으면 될 까? 그들이 설계하고 상상하는 미래 세계에 대한 전망, 가치관을 덥썩 받으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미래는 지구에 살고 있는 개별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미래에 대한 고민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는 철학자, 과학자 8명이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협업한 결과물이다. 우리가 왜 미래에 대해 상상해야 하는 지를 설명하고 현재의 삶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후의 미래, 인류 그 이후를 질문하고 고민하라고 한다.

 

포스트휴먼은 인간을 벗어나거나 넘어선다는 의미인데 포스트휴먼이 도래한다는 것은 근대가 끝났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근대의 핵심은 휴머니즘인데 인간중심주의 또는 인간종족주의를 의미한다. 인간은 이성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자율적 행위자, 인간은 역사를 만드는 주체이자 만물의 보편적 척도로서 세계의 중심이었다. 인간을 다른 생명체의 존재와 차별짓는 결정적 기준은 인간이 지닌 정신, 이성 혹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정보기술이나 디지털기술이 야기하는 인간본질 및 삶의 방식 변화가 인간학의 4차 혁명을 추동한다.

 

 '포스트휴먼'은 기존의 인간관에 대한 도전이자 '인간'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 및 삶의 방식에 대한 재발명을 요구한다. '포스트휴먼'으로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결정적 요인은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이다. 첨단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생명/기계/물질의 본성을 재존화하고 디지털/물리/생물 사이의 경계를 해체한다. 결국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산업성장이나 경제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과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근본적인 조건이나 구조를 새롭게 상상하는 인문학의 문제가 된다.

 

이 책에 언급된 기계지능, 사이보그, 소셜로봇, 인공지능, 마이크로워크, 인류세(世) 등에 관해서는 생각해본적이 없다(특히 인류세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그 미래가 내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치부해버렸기 때문이다. 근시안적인 미래만을 생각하고 살았던 나에게 이 책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과 영화에서 그리는 인류의 미래는 지옥이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게 지배당하거나 오염된 지구에서 살 수 없어 다른 행성을 찾아 지구를 떠난다. 과연 영화에서 상상한 대로 우리의 미래는 디스토피아일 것인가?  미래에 대한 예측은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틀릴 것이다. 전문가들 또한 인공지능에 대해 두려워하면 안된다고 한다.

(3만년만에 만나는 낯선 지능 - 이상욱)

인공지능은 3만년 네안데르탈인 이후 인간과 가장 비슷하지만 낯선 지능이다. 가장 다른 점은 자각없이 수행한다는 점이다. 

지능이 나타내는 방식은 여럿인데 인간의 방식이 있고 그 방식은 독특하게도 의식적 경험이라는 걸 동반한다. 이와 달리 기계에 구현될 수 있는 지능이 있고 이 지능은 의식적 경험을 못한다. 탁월한 수행능력은 보일수 있지만 말이다. 특정대상에 어떤 개념을 적용하는 지가 우리 사고의 흐름을 좌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공지능을 인간지능에 자꾸 빗대기보다는 자동화에 빗대는 편이 낫다. 인공지능은 아직 욕구도 없고 목적도 없다. 모두 인간이 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인간지능보다는 매우 뛰어난 자동기계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디스토피아적 절망에 매달리게 된다.

 

휴머니즘의 재정의는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인공지능의 등장은 우리로 하여금 휴머니즘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  12세기 르네상스시기부터 휴머니즘, 즉 인문주의와 인본주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놓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적 가치란 무엇인가, 인간적 가치와 범위와 내용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사회적으로 얼마만큼 보장해주어야 하는가, 인간적 가치의 고려대상에 포함될 존재자는 어디까지인가를 두고 800년 넘게 거듭된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주에는 우리보다 더 높은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이 강조하는 휴머니즘가치의 재검토는 이런 가능성까지 내다보며 우리가 당연시하는 여러 전제들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사회제도적 견화를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인공자궁은 신재생기술이 모든 커플과 개인이 자유롭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자녀의 수, 더욱, 시기를 결정하고 그들이 원하는대로 가족을 가질 수 있도록 정보와 수단을 획득할 기본권을 준다는데 있다

 

(로봇과의 사랑? 관계의 재구성 - 신상규)

제러미 벤담은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라면서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인간과 다른지를 묻는다. 고통을 느끼고 지능이 있는 존재를 먹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동물이나 로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진짜 감정이 있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학기술이나 기술적 대상의 성격에 대해 항상 도구라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기술적 대상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이며 필요하면 쓰고 필요없으면 폐기하는 것이지 무슨 도덕적 지위타령이냐는 것이 보통의 상식적 판단이다.

 

도덕적 지위 문제에서 실제로 우리가 대상과 어떻게 관계맺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봇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를 따지는 일보다 일상적 경험행위 속에서 우리가 그들과 관계맺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봇이 진짜 감정이 있는 지를 묻기보다 그것이 우리에게 감정이 있는 존재로 보이는 지, 우리는 그것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지를 물어야 한다.

이런 입장을 관계론적 접근이라고 한다. 객관적 속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맺고 있는 다양한 일상적 관게의 방식 속에서 정해지는 문제이다. 말하자면 어떤 존재의 도덕적 지위는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는 관계에 대한 문화적 태도나 습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도덕적 지위는 누군가가 억지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 태도, 습관을 통해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다. 대상이 우리에게 보이는 방식이나 우리가 그것과 관계하는 방식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문화속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로봇의 도덕적 지위라는 것도 실제로 그것들이 처해 있는 맥락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관계를 통해서 보아야 한다.

 

데카르트의 오류를 쓴 안토니오 디마지오라는 유명한 학자가 있다. 과거에는 항상 이성과 감정이 대비되었다. 이성은 인간의 신적인 능력이고 감정은 동물적 능력에 가까웠다. 지금도 우리는 감정적이면 안돼, 감정을 억눌러, 이런 말을 곧잘하곤 한다. 감정 연구에서 디마지오는 특히 인간의 이성과 감정에 주목했다. 뇌졸중이라든지 사고를 통해 뇌의 특정부분이 망가진 사람의 경우에 수학적인 계산이나 논리와 관련된 추론 혹은 언어능력은 거의 손상이 없는데 감정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감정에 문제가 생기면 기본적 의사결정이나 합리적 판단능력에 문제가 생겼다. 다마지오는 감정이 합리적인 판단이나 의사결정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라고 보았다.

감정은 이성의 반대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변화에 알맞은 대응전략을 구축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감정을 로봇에게 어떻게 구현하는 지는 소셜로봇 공학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근대이후 신의 존재가 사라지고 인간만이 이성과 책임의 주체가 되었다. 인간만이 이성을 통해 자아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자유와 책임의 주체로 간주되었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은 자율성과의 의식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이지만 인지적 능력을 통해 비인격적주체로의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인터넷, 앱 등을 사용하면서 편리를 위해 현재 위치 등을 별 생각없이 허용한다. 그것들이 우리의 정보를 모아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신뢰없는 믿음이라고나 할까? 내가 어디에 자주 가고 무엇을 사는 지 특정한 정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제공하는 것이다.

(디지털 사회와 보이지 않는 권력 - 구본권 )

이스북의 감정실험과 정밀 맞춤형 광고,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을 인터넷 환경에서 개인 등의 인식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조종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알고리즘은 신뢰하고 위임하기에 너무 위험하다는 게 우리가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정도가 깊어지면서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인공지능은 다른 기술들처럼 개발자의 가치를 반영한다. 누가 중요한 자리에 앉아 결정하고 윤리적 관점을 제시하는 지 따지지 않으면 소수 특정세력의 편협하고 편향적인 관점을 반영하게 된다"(케이트크로퍼드)

도구적 인간이 끝없이 효율과 편리를 추구한 결과,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도구를 갖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통제는 소수에게 넘어갔고 도구적 인간은 도구의 지배를 받는 종속적 처지가 되고 있다. 포스트휴먼 시대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시대다. 기술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지적 본능과 능력은 단기간에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지적구두쇠(coynitivemiser) 속성을 지닌다는 것은 기술발전과 도구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보와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기 꺼리고 과거의 습관과 관념 위주로 수용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개인과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스트휴먼 사회에선 적극적인 시민적 감시와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고용없는 노동과 일의 재발명 - 김재희)

인간다운 활동의 고유성은 결국 노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넘어선 작업과 행위에 있다. 노동소외의 문제는 기술의 자동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성의 발달 수준에 맞추어 인간과 기술의 적합한 관계 방식을 찾아내는 것에 그 해법이 있다. 기술적 활동안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차별없는 상호 협력적 동반관계로 만난다.

 

고용의 종말은 오히려 고용에 종속되었던 진정한 일의 가치를 되찾고 잃어버렸던 일의 역량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자동기계들과 사라지는 일자리를 두고 정면 대결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지배하고 그들의 능력과 지성을 박탈하는, 기계는 물론 인간 존재와도 함께 잘 지낼 수 있게 해주는 진정한 일이 새로이 탄생할 수 있도록 고용의 점진적 소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과 앎의 능력을 키우고 무관심의 경제를 기여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정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단계 기술 자동화는 기계의 노동을 보조하는 비정규직 노동, 초단기 아르바이트, 플랫폼 배달노동을 넘어선 포스 트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 이하의 노동을 확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AI 뒤에 숨은 불평등의 알고리즘 - 하대청)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될 수 없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도와주고 있다.

기술에서 혁신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화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위해 마이크로워크를 하는 이들의 낮은 보상으로 이어진다. 기술혁신을 상찬하는 사회는 주위사람들의 다양한 돌봄노동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소득격차도 당연하게 여기도록 한다.

자동화의 진전이 기존일자리를 위협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일자리 감소 현실의 원인은 훨씬 복잡할 수 있다. 기술발전 외에도 세계화와 아웃소싱 산업정책, 노동정책, 노조조직력의 약화등도 원인이다. 기술 발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기술 발전에 대해 우리가 대응한 방식들의 결과일 수 있다. 기술의 오랜 역사가 보여주듯이 사실 기술 발전은 하나의 결과를 지시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지하고 설계하느냐에 따라 기술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포스트휴먼시대를 맞이하고 있기에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전문가의 고민과 대책에 더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야겠다. 먹고 살기 바쁜 나에게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줘서 참 좋았다. 당장 내 것이 아닌 고민을 하는 책 읽기는 분명 나를 성장하게 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앎은 언제나 나를 가슴뛰게 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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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찻잎향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앎은" 언제나 가슴 뛰게 하기도 하고.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습니다. 먼 미래에 대해 저도 고민해 본 적이 드문데. 이 책은 그런 근시안에서 벗어나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게 만들어 주겠군요.

    시골아낙님~~~ 건강하고.. 안녕하시지요?

    2020.04.02 21:0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네 미경님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책을 접하면 항상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 시간이 될런 지 모르겠습니다. 미경님 말씀처럼 더 젊게 사려면 나이먹을 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될 것 같아요~

      2020.04.03 08:50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우리가 미래를 걱정하는건 크게는 인류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좁게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에 걱정하고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포스트휴먼이 밀려오는 미래를 우리가 관심을 갖아야 하는 이유가 이 책에 잘 설명되어 있겠네요. 시골아낙님을 가슴뛰게 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발자국을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2020.04.03 12:4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개인적인 미래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우리 전체가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방님 말씀처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2020.04.06 12:51
  • 파워블로그 나난

    우리보다 더 뛰어난 생명체가 진짜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런걸 믿지는 않지만 어딘가 이티가 있고 친구할거라고 생각하면 웃기기도 재미나기도 합니다~~~^^

    2020.04.03 21:0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그러게요, 지금 우리보다 더 뛰어난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데 우주라는 곳이 광활하기에 다른 은하계에서 그런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20.04.0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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