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앞에서 문장을 논하지 말라.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평론가
그의 평을 얻으려 작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형국이랄까(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어쨌든 그가 해설을 하거나 추천하는 시집은 꼭 사는 편인데 그렇게 샀던 시집이 실패였던 적은 없다.
유독 책 중에서도 시나 소설을 좋아하고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데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니 말할 필요가 없다. 씨네21 구독 중에 연재되었던 터라 망설였는데, 결국은 곁에 왔다.
그의 글은 조금 어렵다. 그래서 그 문장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난 후 뭔가를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말할 줄, 몰랐던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된다.
희미하게 들었던, 설핏 들었다가 멀리 사라져버린, 감정이! 느낌이! 상태가! 너무나 명확한 문장으로 되살아난다. 그의 글은 정확하게 명중한다. 여지 없다.
영화에 나왔던 피아노 음악이 너무 좋아 다시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영화 '아무르'는 내게 멀게만 느껴졌던 늙음과 죽음, 오래 함께 해 온 부부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 평생 같이 살아 온 소중한 사람에게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을 때 나는 과연 선택할 수 있을까?
사랑때문에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맞지 않다고 틀렸다고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은 00라고 단정할 수 없다. 세계의 사랑들 모두가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서로의 사이에 존재하는 대단히 내부적인 일이다. 이 지독한 사랑을 인간의 윤리로 판단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라는 생각에 그 서늘함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다시 한번 보고 싶지만 한기가 싫어 쉽게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르' 그래 이것도 사랑일 수 밖에 없다.
(책 내용 중)
사랑에 대한 대개의 정의는 시도하는 순간 실패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랑은 전칭명제로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매번 개별적인 사례로 존재한다. 그래서 '사랑은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나 역시 그 어리석은 사람들 중 하나다) 다만 '무엇도 사랑이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어떤 것이 사랑인 지 아닌 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그 내부에 있을 때가 많다.
......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이 영화에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것도 사랑이다'라고 말하려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