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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효과

[도서] 방관자 효과

캐서린 샌더슨 저/박준형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내게는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의 어떤 도덕 시간이 선명히 남아있다. 팀 단위의 경쟁 활동에서 대표로 나가 낮은 점수를 받아온 친구에게 같은 팀이었던 어떤 남자아이가 대뜸 날린 모욕적인 욕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것을 들은 친구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며, 내가 그 순간 느꼈던 폭력적인 분위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몸이 기억한다. 당시 그 아이는 나보다 힘이 셌고, 이미 반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다분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반박하는 순간 즉각적인 보복이 이루어질 것이 뻔했다. 그러나 그런 공포심에 깊이 빠질 틈 없이,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고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침묵하는 방관자에서 행동하는 도덕 저항자가 된 순간이었다.

 

  도덕 저항자는 옳지 못한 행동을 자행하는 자와 그를 둘러싼 방관의 시선에 대항하여 자신이 옳다고 믿는 도덕적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옳지 못함에 저항하는 올바른 사람이라 믿고 싶어 하는데, 실제로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 행동으로 나아가는 저항인은 너무나도 적다. 올바름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생각, 그리고 행동을 막는 요소가 매우 많고 심지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캐서린 샌더슨의 「방관자 효과」는 다양한 사회심리 실험을 통해 도덕적인 행동을 막는 수많은 요인을 파헤쳐 우리가 이상적인 저항인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실제로는 폭력의 풍경에 일조하게 되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짚어준다. 방관자의 대부분이 우리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행동해야 할 주체가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나'임을 의미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방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은 힘들다. 자신이 믿는 가치가 사실은 누군가를 공격하는 가시였음이 드러나거나, 익숙해진 환경은 사실 불편한 농담과 말에 무뎌진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그러나 그러한 괴리감이 주는 불편과 다시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충돌할 때야말로 침묵의 공명을 흔들어 흐름의 판도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기회다. 저자가 말했듯이 공감은 입 밖으로 낼수록 전염성이 강하고, 침묵은 작은 흔들림에게조차도 약하기 때문이다.

 

  다시 초등학교 도덕 시간으로 돌아온다. 나는 폭력적인 행동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였고 친구를 향했던 폭언은 곧바로 내게로 향했으며, 평소에도 무척이나 수업을 소중히 여기던 선생님은 도덕 시간이 엉망이 된 것에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가만히 있지 않고 목소리를 높인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수업이 끝난 후 친구에게 상처를 준 아이만을 남겼고, 내게는 격려하듯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 순간 마음에 울렁였던 감정은, 속에 아직도 남아 살아가는 동안 올바른 방향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 침묵하지 않는 어른에서 침묵하지 않는 아이로, 저항의 정신이 전염되는 순간이었다.

 

  방관자들의 무리는 하나의 거대한 도미노(Domino)를 형성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아슬아슬한 건축 과정을 넘어 하나의 정교한 작품을 만드는 협력 게임은 캐서린 샌더슨이 파헤치고자 하는 방관자 효과의 본질과도 같다. 폭력과 미움을 행하는 자가 있고, 그의 장단에 맞추어 입을 닫고 행동하지 않는 자들이 모여 만드는 고요한 작품. 하지만 도미노는 그만큼 불안정하다. 어느 줄에 서 있든, 하나의 구성원이 쓰러져 자그마한 파장을 만들어내면, 그의 앞뒤로 늘어선 조각 또한 흔들리다 중심을 잃게 된다. 견고해 보였던 줄이 무너져 보이게 된, 서로가 가리고 있던 풍경은 그 다음 도미노를 무너뜨릴 원동력이 된다. 모두가 오해하고 있던 집단의 기준을 폭로하고 주변의 참여를 격려할 작은 움직임 하나면 충분하다. 방관자가 되고자 하는 무의식의 중심을 건드려 폭력적인 사회가 늘어뜨린 거대한 도미노를 시원하게 무너뜨릴 사람은, 바로 우리임을 잊어선 안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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