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목하 작가는 [돌이킬 수 있는]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하나의 작품을 읽고 그 작가가 그리는 세계와 그 속에서 생동하는 인물이 마음에 들어 작가의 다음 작품을 찾아보는 것은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테드 창과 [숨]이 그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김초엽 작가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었으며, 한동안 정착할 만한 작가를 찾지 못하다가 문목하 작가를 만났다. [돌이킬 수 있는]은 얼핏 보면 가벼운 초능력물 소설 같은데, 읽다 보면 촘촘한 관계망과 사건의 그물망에 감탄하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작가가 그리는 세계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작가의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나 단 하나의 작품만을 발견했을 때의 슬픔이란. [유령해마]의 잘 짜인 매력적인 세계와 인물은 전작보다 훨씬 반짝였기 때문에 나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탐색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낙담했다.
[유령해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리송한 세계관과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거나 설명이 부족해서 그렇다기보다는, 개념은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것들인데 그들을 포장한 상상력이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작가의 상상력이 진짜로 참신하다는 말이다). '해마'와 해마가 사용하는 실재하는 몸체인 '해마체', 그리고 해마들의 현실 세상인 '함수'와 '중앙' 등.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모습일 텐데, 자유자재로 몸을 바꾸어가며 주어진 임무를 하는 해마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익숙하지 않음에서 발생하는 떨림과 불안은 오히려 작가가 그리는 세계에 묘한 끌림을 느끼게 한다. 모든 것이 파악된 일상의 세계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미지의 세계에 더욱 파고들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해마'의 비밀에 조금씩 다가가게 되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해마체의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해마 자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달아 간다.
그렇다면 그런 아리송한 세계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처음에는 단순히 해마가 인간을 닮아 가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최종적으로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휴머노이드를 생산하려는 실험 과정인가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와 닮아 간다는 것은 실험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을 표현한다'라는 문장을 보았을 때, 나는 비파와 비파의 백업이 경험하는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들이 전부 그런 종류의 것임을 깨달았다. 굳이 단어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을 뿐, 책을 읽으며 인물에게 몰입하는 동안 느낀 답답함과 통쾌함, 그리고 울렁거림이 가리키는 것은 전부 다양한 갈래의 사랑에서 촉발된 감정이었던 것이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동일한 무게를 가진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지만, 어떠한 사소한 계기 하나로도 마음을 아리게 하는 감정은 충분히 불씨를 일굴 수 있다고.
그런 여러 감정이 인물 속에서 왔다 갔다 하며 독자를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인물을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덕분이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전혀 밉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납득할 수밖에 없는 근사한 설명으로 덧칠한다. 인물은 이야기 속에서 여러 번의 기대하지 않은 변화 - 불쾌하거나, 놀랍거나, 혼란스럽거나 - 를 맞닥뜨리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변화한다. 그렇게 많은 굴곡에 부딪히는데도, 작가의 작품은 전부 포기를 모르는 인물들로 점철되어 있다. 수없이 많은 좌절에 마음이 바스러져도, 상상하지 못한 말과 상처를 감내하더라도, 중간에 길을 잃고 오랫동안 헤매더라도... 결말이 원하던 형태와 완벽히 닮아있지 않더라도. 그들의 사랑에 대한 집착과 끈기는 책장을 넘길 원동력이 되고 독자가 짧은 시간 내에 재미와 감동을 흡수하게 만든다.
적당히 읽은 책은 리뷰를 작성하면서 큰 힘을 들이지 않는데, 마음에 드는 책일수록 리뷰를 잘 쓰고 싶고 그 속에 책의 모든 내용을 담고 싶은 마음이 우글거린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칼이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마음에 드는 것에는 내 모든 걸 쏟아붓고 싶은 건 당연하니까. 그러니까, 리뷰가 길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지루함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을 뿐이다. 문목하 작가의 전작을 읽고 작가의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면 당연히 [유령해마]도 마음에 들 것이고, SF 러버로써 작가의 전 작품이 SF보다는 초능력물에 가까워 살짝 실망했다면 이 책은 훨씬 더 마음에 들 것이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근사한 변신을 엿보고 싶다면 딱 좋은 책이라 말하고 싶고, SF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손에 쥐여주고 싶다. 잔잔한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위기를 겪고 결국 어떤 끝을 맺는지 확인하고 싶어도, 이 책이 적당할 것이다. 다들 [유령해마]를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