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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도서] 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저/권남희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2점

  앞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은 후, 동화같이 잔잔하고 가벼운 내용이라 할지라도 가끔 이런 이야기를 읽는 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책을 선물한 친구에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처음 들어보는 [숙명]이라는 제목을 알려주며 나미야 잡화점과는 다른 느낌의 추리 소설이라 말했다. 게이고가 본래 추리 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라는 건 잘 알고 있었고, 사람들이 그의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가 뭔지도 항상 궁금했던 터라 좋은 기회다 싶어 오랜만에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내가 익히 들어본 [용의자 X의 헌신]과 같은 제목이 아니라 호기심이 가기도 했다.

 

 

  내게 추리소설의 플롯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후루룩 읽고 그의 책을 전부 읽어볼까 생각하던 게 기억난다. 아마 [숙명]에서 쓰인 뇌과학과 인체실험이라는 소재가 익숙해서 그렇게 오싹한 느낌이 안 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위해 뻔한 길을 좇아가며 거짓을 느릿느릿 걷어내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지도.

 

  이 책이 추리소설의 기본 플롯을 있는 그대로 녹여내 책을 읽는 동안 비밀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어떤 큼직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을 하나씩 추궁해가며 보이지 않는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극적인 결말을 위해 길을 에둘러 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모든 것이 밝혀진 후, 그동안 쌓아둔 떡밥을 해소하기 위해 문답을 빙자한 지루한 해설이 다다다 나오는 식이다. 이 책은 유독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어 아쉬웠다. 인물들의 관계도나 사건의 해결 과정이나 그런 것들이 전부 짜인 듯한 느낌이 강해서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극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다. 제목이 주제 그 자체여서 그럴까. 하지만 나는 그런 작위적인 설정이 눈에 띄면 몰입이 안 된다.

 

 

  차라리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나 영화 '셔터 아일랜드(2010)'가 내게는 훨씬 재미있다. [종의 기원]은 정통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추리 소설 형식을 띤 미스터리 스릴러고, 도의적인 면에서 추천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숙명]보다 훨씬 촘촘하게 잘 쓰인 이야기이다. 책의 두께가 결코 얇다고 할 수 없음에도 전개 속도가 무척 빠르고 긴박하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어찌 보면 [숙명]과 비슷한 소재를 사용한 추리 스릴러라고 볼 수 있겠는데, 영화를 아우르는 장치가 더욱 기발해서 왜 명작으로 불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숙명]은 이들보다는 더 심심하고 잔잔한 데다, 단서와 근거를 어딘가 나열하는 듯한 느낌을 주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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