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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비

[도서] 사탕비

청예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4점

  가끔 아주 랜덤한 책을 읽고 싶을 때 나는 리뷰어 클럽의 서평단 모집란을 가볍게 훑는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만나는 건 재미가 있다. 달 착륙이 현실이 되었을 때 '크레이터 위를 처음으로 밟는 사람'이란 타이틀이 아주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처럼. 책 또한 하나의 우주이고 어떻게 보면 실재하는 우주보다도 더욱 광활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라 나는 내가 발을 디딜 행성을 고르는 것처럼 신중히 책을 골랐다. 최근에 긴 여행을 다녀온 터라 여행 에세이 하나와, 내가 꾸준히 좋아한 SF 장르 소설 하나에 표를 던지고 나니 마음이 가볍게 두근거렸다. 일주일 뒤, 서평단 발표 목록을 꼼꼼히 훑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게는 청예 작가의 [사탕비]라는 달콤한 소설이 던져졌다. 짧은 줄거리에서부터 흥미를 느꼈던 이야기라 여행 에세이를 잃은 아쉬움이 금세 증발했다.

 

 

 

  이야기는 핵 전쟁으로 인해 기묘하게 뒤틀려버린 지구를 무대로 한다. 우리가 여태껏 마주해 온 전쟁 후의 지구는 무너진 도시, 사라져버린 녹색 지대, 그리고 미친 듯한 빈곤 등 회색 풍경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탕비]의 풍경은 그보다 아름답다. 방사능으로 인해 바뀐 이상 기후는 방사능을 뿜어 내며 사람을 짓뭉개는 '사탕비'를 탄생시켰고, 이런 인공재해를 피하기 위해 생존자들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청백성에 모여 살아간다. 사탕비가 내리는 풍경을 상상하면 오색빛깔의 아름다운 그림이 떠오르는데, 그런 그림 속에 망가져가는 지구와 잔혹하게 찢겨나가는 인간의 삶을 숨겨두어 더욱 매력적이다. 이처럼 아주 우아한 대비 효과를 나는 매우 좋아한다.

 

  우리는 주인공 시안을 따라 인간 대신 사탕비를 온몸으로 받아 생존을 돕는 존재인 '캔디 인간'을 색출하는 투표에 참여한다. 그 과정에서 우린 '인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된다. 캔디 인간은 인조적으로 만들어진 기계이기 때문에 인간과 필연적으로 구분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캔디 인간을 그저 존재로, 인간을 인간다운 생명체로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 캔디 인간을 차출하더라도 인간 속에 숨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를 피비린내 나는 사탕비 속으로 내몰 권한이, 우리 인간에게 있을까.

 

  몇 가지 아쉬웠던 점은 매력적이고 잔혹한 세계를 두고 펼쳐지는 이야기가 살짝 허술하다는 부분에서 나온다. 의도적으로 독자에게까지 많은 정보를 숨기고 주인공과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게 하려면 세계관이 탄탄하거나 서사가 긴박해야 한다. 반짝이는 소재만으로는 중간중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 캔디 인간을 골라내기 위한 투표는 독자의 흥미를 끌지만 그것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캔디 인간이 정확히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고 어떤 원리로 동작하기에 투표만으로 구별하려 하는지, 특정 기술을 사용해 구분을 할 수는 없었는지 등등. 이런 신비주의는 전개에 있어 더 나은 방향 - 이를테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보았는지 - 을 고려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똑같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헝거게임'만큼 강렬한 긴장감을 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야기가 살짝 작위적인 느낌이 있다. 모든 인물이 각자의 특징을 과하게 부각하는 느낌이 들어 연극을 보는 것도 같았다. 그 속에서 영리하게 행동해야 할 주인공은 타인의 말에 쉽게 휘둘리고 금세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읽는데 조금 답답했다고 할까. 물론 소설의 마지막에 도달하고 나서는 내심 감탄했다. 여러 겹의 장치가 연달아 풀리는 마지막 장에서는 그동안 예상할 수 있던 것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것도 있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완성도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조금 더 느린 호흡과 구체적인 묘사로 이 좋은 소재를 더욱 탄탄히 쌓아나갔다면, 하는 씁쓸한 아쉬움이 남는다.

 

 

 

  색다른 SF를 원한다면 [사탕비]를 추천한다. 우주와 비행선과 로봇이 나오는 고전적인 SF도 재미있지만 가끔은 판타지 호러스러운 밝은 색상의 SF가 당기는 순간도 있다. 내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유로운 장르 특성을 빌려 무한한 상상력을 펼친다는 것에 있다. 그 무한한 상상력 속에서는 현실에서 쉬이 던질 수 없는 의문도 오래도록 남을 수 있다. 인공지능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질문은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 답은 아직도 여러 갈래로 이어져 끝나지 않는다. 그중 알록달록한 길 하나가 바로 이 [사탕비]라고 할 수 있으리라.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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