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책이 두꺼운 만큼 여러 인물의 시점이 쫀쫀하게 엮여드는 과정을 따라가는 맛이 있다. 하지만 [랑과 나의 사막]은 랑을 사랑하는 로봇 '고고'의 시점에서만 진행되는 이야기로, 우리는 짧은 호흡으로 끝나는 고고의 추상적 탐구를 따라가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적이 되는 서사는 이미 낡았기에 요즘의 추세는 인간의 창조물이 인간과 구분되는 지점이 어느 곳인지를 깊이 파고드는 쪽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이 추세도 이제는 뻔하다. [랑과 나의 사막] 또한 이 흐름을 따르기에 다른 SF 소설과 대비되어 두드러지는 부분이 없어 아쉽지만, 작가의 우아한 문체와 심금을 울리는 문장 사이 [천 개의 파랑]에 깔려 있던 따스한 시선을 발견하는 순간 랑과 고고의 사막은 개성을 지닌 실체가 되어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다. 인간과 로봇을 서로 다른 존재로 구분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지는 짧고 심심한 소설을 원한다면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