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문 작가는 김초엽 작가의 강연을 듣던 중 알게 되었다. 추천받은 책은 자폐인의 시선을 담아낸 [어둠의 속도]였는데, 그 책을 사려고 앱을 뒤적이던 때 작가가 낸 신작 [잔류 인구]를 발견하는 바람에 두 책을 함께 사게 되었다. 함께 산 여러 얇은 책을 먼저 소화하다 보니 꽤 두꺼운 편인 두 작품은 마지막까지 내 작은 책장에 남아 있었는데, 가벼운 책이 이제 한두 권밖에 남지 않았을 즈음에서야 반짝이는 분홍색 표지가 내 눈에 띄었다. 책을 뒤집어 뒷면에 적힌 글귀를 살펴보니 '70대 노인의 행성 생존기'라는 특이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여태껏 많은 SF 소설의 주인공은 유연하고 날랜 젊은이들이 맡아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한 노인을 이야기의 구심점으로 끌어온 것이다. 재미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세상이 실제로 어떠한지는 알고 싶었다.
엘리자베스 문의 [잔류 인구]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거주지를 찾고 그곳에서 이주민의 삶을 가꾸는 것이 당연한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개척자 세대의 삶을 살다가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 - 사업과 돈 - 로 인해 자신이 살던 거주 행성을 강제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 70대 노인 오필리아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오랫동안 파묻혀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행성에 남으리란 발칙한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행성의 유일한 잔류 인구가 되는 것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가 행성에 남게 된 것은 무한히 뻗어나가는 이야기의 작은 발단일 뿐이었다.
책은 느릿느릿하게 오필리아의 삶을 그려낸다. 그가 대화할 상대도, 유의미한 교류를 나눌 상대도 하나 없는 버려진 행성에서 홀로 살아가는 모습은 자유롭지만 때로는 지독하게 고독해 보인다. 고독을 태우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삶에 매달리는지를 잔잔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그러다가 외계 생명체, 즉 괴동물을 만나고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조용하고 외로웠던 그의 세상은 새로운 세상과 닿으며 정신없이 돌아간다. 길고 세심한 문장은 우리가 오필리아가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준다. 덕분에 우리는 오필리아가 느끼는 감정의 곡예에 푹 빠져들게 된다. 미지에의 두려움을 거쳐 진심에서 우러나온 포용에 도달하고, 결국 진실한 공감에 손을 드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쓸모없는 인력, 비용만 축내는 무가치한 삶, 언제나 변두리에 서서 빛나는 것들을 보조해야 하는 위치. 책은 오필리아의 시선에서 이러한 불합리한 처사를 그려냄으로써 사회의 또 다른 소수자들이 처한 어둠을 비춘다. 심지어 오필리아는 여자 노인이다. 사회의 주류가 되기에는 취약한 부분이 두 개 - 성별과 나이 - 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새로이 맞이한 외계 사회에서는 중심인물이 된다. 그 과정이 오필리아가 스스로를 남들의 입맛에 맞추는 방식을 통해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이 무척 중요하다. 그는 그가 살아가던 대로 살아갈 뿐이다. 달라진 건 취급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의 가치란 고유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규정하는 대로 결정되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개인이 바뀌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개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무리의 시선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어디에선가 잔류를 감행하는 오필리아를 계속해서 낳을 수밖에 없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사람인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최근에 읽은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떠올랐다. 외계 생명체가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 건너와 항성의 빛을 깎아먹는 바람에 지구의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 쏘아 올린 거대한 프로젝트 이야기. 그곳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동일한 위험에 처한 외계 생명체와 힘을 합쳐 각자의 항성을 살려낸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테드 창의 [컨택트]가 있다.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낸 이야기. 지구에 내려온 외계 생명체가 위협이 되는지 아닌지를 파악하고자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언어를 연구한다.
이 넓디넓은 우주에서 우리 외의 외계 생명체는 분명히 있다. 어딘가에는 존재할 그 외계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기술의 발전으로 그들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더욱 활발해진 것 같다. 옛날에는 몸보다 머리가 더 크고 눈이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형광 연두색이나 하얀색의 외계인이 대표적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상상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을 만큼 다양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서로 다른 책에서 서로 다른 외계 생명체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살펴보면 참 재미있다. 그들의 생김새, 그들이 의사소통하는 방식, 그리고 인류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과정 등이 전부 달라 어떤 외계 생명체를 먼저 만나게 될지 상상해 보며 읽어도 즐겁다. 하지만 언젠가 외계 생명체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 사회가 더욱 발전해 있었으면 한다. 다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더 이상 누군가를 쓸모에 따라 가르지 않는 그런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