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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습관

[도서] 건축가의 습관

김선동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정림건축을 그만두고 나는 의식적으로 건축 쪽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관심을 그쪽으로 돌릴 수 없었다. 막연하게나마 다시 그쪽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면 공부를 하면서 다음을 기다릴 수 있었겠지만, 아이 둘을 낳고는 다시는 그쪽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포기가 먼저 다가왔다. 나라고 무작정 포기를 먼저 생각했을까? 아이들이 자라 유치원에 갈 무렵에 건축사 시험을 공부했던 적이 있었지만, 3개월 정도 공부했었나? 두 아이가 같이 아프면서 나도 넉다운이 되어 버린 적이 있다. 폐렴이 걸려 병원에 입원해야 했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통원치료를 하는 바람에 오랜 시간 몸이 좋지 않았다. 다시 몸을 추슬러 공부를 시작할까 싶었을 때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더 바빠졌다. 유치원과 다르게 초등학교는 뒤돌면 집에 오니, 어떻게 공부다운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이것도 핑계일 것이다. 하지만 10년 이상 현업에서 물러나 있으니 공부를 한다고 해서 나를 써줄까 싶기도 했다. 간혹 같이 일했던 분들이 일하자고 하셨지만, 그분들께 민폐가 될까 거절했다.)

 

의식적으로 읽지 않았고 무시했던 건축 관련 책. 이제는 기회가 된다면 읽으려고 한다.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제 사장이나 소장 이사급이다. 나도 계속 일했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계속 일했다고 내가 잘했을지, 결국엔 아이들 일로 회사를 그만뒀을지.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이런 저런 상상을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책을 읽다 보면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작가는 나와 같은 정림건축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나보다 10년 정도 후에 입사했으니 내가 다닐 때와는 달랐을 것 같다. 그리고 작가의 글을 보면서 만약 나도 계속 일을 했다면 이런 고민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내가 처음 건축을 전공하고 싶었을 때 가졌던 마음이다.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그쪽으로 가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고, 그러면서도 예술적인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 대학의 낭만을 누리기에는 엄청난 과제량에 허걱 했던.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지 모르면서 겉멋에만 치중했던 일.

 

그때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단순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설계 과제를 할 때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눈에 띄는, 예쁜 것을 모조리 넣으려고 하는. 욕심 아닌 욕심이 과했던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평소에 스케치 연습을 많이 해 두면 공간과 조형에 대한 아이디어가 풍부해집니다. (45)

앞으로 건축 일을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이 문장에는 깊이 공감했다. 어떤 곳은 보기에는 좋지만, 그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불편한 곳이 있고, 어떤 곳은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생활하기 편한 곳도 있다. 이슈가 되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도 건축가에게는 중요한 일이지만, 있을수록 편안하고 기분 좋은 곳을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건축가의 습관을 스케치, 글쓰기, 독서, 디테일, 관찰, 재료, 장소, 사람, 루틴, 신뢰, 경청, 조율, 겸손, 순서, 전략, 공부, 홍보, 일기 이렇게 꼭지를 나눠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만약 조금 더, 일을 했다면 분명 고민하고 행동했을 것들을 작가는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싶거나, 전공하고 있는 사람. 설계 쪽 일을 하면서 고민이 있는 사람.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갖지 못한 건축가가 있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특별히 좋은 건물을 방문할 때에는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모아 공부를 하고 갑니다. 제일 좋은 것은 평면을 한 번쯤 베껴보고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행학습이 되면 건물을 방문했을 때 이 도면이 실제로는 이렇게 구현되는구나라는 식의 통찰이 생기기 때문에 답사의 효과를 훨씬 더 높일 수 있습니다. (86~87)

건축가가 세상의 흐름을 기민하게 좇아가야 하는 것들이 또 무엇이 더 있을까요? 첫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법규입니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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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건축은 거기에 살 사람이나 거기에 가는 사람을 생각하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하기는 하겠지만... 자연과 함께 하는 거면 더 좋을 텐데 싶기도 해요 둘레와도 조화를 이뤄야 하고... 이것저것 많이 생각해야 하는 거네요


    희선

    2022.12.26 03:06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건축을 아직까지 했다면 저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네요. 살 사람을 위한 건축이 되어야 하지요

      2023.01.06 15:19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아름다우면서 편리한 건축을 한다면 길이 길이 남겠지요.

    2022.12.27 22:23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어떤 것이든 쉬운게 없지만. 그래서 건축도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2023.01.06 15:20
  • 스타블로거 매니짱

    이 책이 더 반가우셨을 듯해요~ 같은 정림건축 출신이시니. 건축가의 습관 "스케치, 글쓰기,독서 등"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입해도 될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듯요. 혹시나 건축일을 계속 하셨으면, 저자보다 먼저 건축관련 책을 내셨을 수도 있지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2023.01.03 09:0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네 정말 반가웠지요. 아직 정림건축에 계신 분들이 있으니 물어보면 아실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도 했고요. ^^ 아직 그쪽 일을 했다면 책까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2023.01.0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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