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드씨의 기묘한 저택’을 통해 하지은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이후 ‘얼음 나무숲’과 ‘언제나 밤인 세계’로 하지은 작가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던 만나게 된 ‘녹슨달’. 나는 ‘전작주의자’라서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감사하게도 ‘녹슨달’이 재출간되었다. 2010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때 찾아볼 생각을 못 했는지. 하지만 그 덕에 재출간된 ‘녹슨달’을 읽을 수 있어 감사했다. ^^
주인공은 파도 조르디. 소년의 아버지는 화가였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신은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재능을 감출 수 없었을까? 소년은 우연히 뒤벨 자작의 눈에 들어 라잔 경의 집에 심부름과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일하며 파도는 흙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걸 알게 된 뒤벨 자작에 의해 라잔 경 공방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곳에서 파도는 자신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모작만 하는 레오나드, 실력은 출중하지만, 파도를 싫어하는 시세로, 눈이 점점 보이지 않는 스승님 등, 모두에게 영향을 받는다. 파도는 이런 와중에 약혼자가 있는 귀족 아가씨, 라잔 경의 딸 사라사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사라사에게는 자비 없는 약혼자 블레이젝이 있다. 재능이 있는 파도는 예술가를 후원하는 왕세자비 이데아의 눈에 들고, 그러면서 파도의 인생도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데...
화가는 붓을 잡기 전에 빈 화폭을 보면서 무엇을 그릴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붓을 쥐고 나서는 그것을 어떻게 그릴지 더욱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화폭 위에 붓을 찍고 난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손이 가는 대로 그려야 하느니라. (87)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게 가능할까?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나는 과연 이게 가능할지 상상되지 않는다. 빈 캔버스를 보며 무엇을 그릴지 생각은 많이 한다. 답을 찾지 못하고 풍경을 그릴뿐. 그래서 뭐든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이 직업이 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수단이 된다면. 예술의 길을 그래서 멀고도 험한 것인지..
천재란 건 말이야, 태어나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완성된 채로 태어나는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걸 깨달았지. 그 아이에게는 가르칠 것이 없다는 걸. 아니 처음부터 배울 게 없었다는 걸. (267)
완성된 채 태어나는 건 어떤 걸까? 이런 천재성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이런 사람도 슬럼프는 있는 걸까?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천재성이 없기에 이런 느낌이 어떤 건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싶은 게 머릿속에 가득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천재가 과연 있기나 할까? 책을 읽으며 이런 천재성도 힘들겠구나 싶었다. 먹는 것도 잊은 채 그리고 또 그리는. 그리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그런 것. 천재로 태어나는 건 어떤 기분이고 그걸 지키고 이룰 수 있는 건 또 어떤 건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한 발, 한 발 똑바로 내려다보며 걷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멀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일단 나아가는 거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다라 있을 테니까. (356)
천재적인 예술가에게도 삶은 고행이고 고난인 것 같다. 자신의 길이 맞는 건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걸 보면. 그래서 인생은 어려운가 보다. 누가 봐도 대단한, 그럴 것 같지 않은, 재산과 명예가 있는 사람이 마약이나 다른 뭔가를 하는 걸 보면. 다 가졌기에 더 대단한 것을 얻고 싶은 것일까? 그래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높이 올라가봤기에 내려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래서 다른 뭔가를, 인생의 다른 뭔가를 찾으려했던 것일까? 위대하지만 평범하고, 뛰어나지만 불완전한. (책 띠지) 인생은 모두에게 그런 가보다. 위대한 사람은 평범한 것을 원할 수 있고, 뛰어나지만 뭔가 불완전한 뭔가가 있는. 우리는 불완전한 것을 인정하고 그 자체로 인생을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그게 불안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책을 쓴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참 재미있는 책이다. 하지은 작가가 다작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다른 책도 찾아봤는데 절판이다. 이 책들이 다시 재출간하면 좋겠다. 그럼 책을 읽는 즐거움이 엄청날 텐데. ^^ 파도와 시세로 그리고 레오나드의 이야기.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보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슬프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환경상 이뤄질 수 없는 사랑도 모두 안타깝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들은 예술로 승화 시킨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