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도 가끔은 아이처럼 그런 말이 필요했다. 너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겠다는 말. 내가 책임져줄 테니까, 네가 만약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놓이면, 받아서는 안 되는 상처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되면, 참거나 애써 수긍하려 들며 스스로를 진창에 처박지 말고, 그냥 뻥 차버리라고. 뭔가 잘못되어도 내가 있으니까, 보험이 되어줄 테니까 일단 그렇게 해보라고. (221)
어른이 되고 나니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줄 사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해 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잔잔한 책을 만났다. 읽고 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책.
성주는 항만군이라는 곳에서 돌봄 교사로 일한다.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보는 성주는 퇴근 후에는 복싱 선수로 열심히 운동하는 원칙주의자다. 아이들에게 공평하고 공정하게 애정을 쏟으려 한다. 체중 감량을 위한 칼 같은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 성주의 하루는 그렇게 돌아간다. 새 학기. 방과 후 돌봄 반에 애린과 그의 삼촌 도연이 오면서 성주의 일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생각해 보면 나도 원칙주의자같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 하고, 예측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며, 무계획을 싫어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 그래서 성주라는 캐릭터가 귀엽다.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면 밀어내지 않았겠지. 결국엔 경로 이탈도 괜찮다는 것을 알아가는 성주의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애린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이자 엄마가 돌아가신, 방과 후 돌봄 교사 성주를 좋아하는 아이.
돌본다는 것은 솔직히 힘든 일이다. 내가 내 인생을 어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작고 어린아이들을 돌볼 수 있단 말인가. 할머니가 성주를 돌보고, 성주가 애린을 돌보고. 진짜 사랑하는 마음으로 곁에 있어 준 돌봄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살아갈 힘이 되는 것 같다. 자신의 친손녀도 아니면서 사랑과 정성을 다해 키운 종옥 할머니. 그 할머니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는지 성주는 건강하고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할머니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호상으로 죽었지만, 성주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귀신을 보는 애린이. 그리고 성주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종옥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도 그런 부모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인들의 전화를 받는다. 가끔은 짜증나는 일로, 또 때로는 화가 나는 일로, 어떤 날은 행복한 날로 다양한 전화를 받는다. 결국엔 ‘그래도 웃자’로 결론을 내며 전화를 끊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웃으려 한다. 내 이런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하루라는 것을 알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산다. 오늘 10% 웃었다면 내일 11% 웃는 나로 살고 싶다. 그래도 된다고, 그래야 한다고. 그렇게 살고 싶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아군이 되고 싶은 그런 날 읽으면 좋을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