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이 나왔다고 하면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읽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나와 맞지 않는다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의 소설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현실과 환상의 묘한 조화라고나 할까?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그의 책에선 일어나고 그런 사건을 통해 성장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2권의 책. 이제 딱 반환점을 돌고 있다. 아직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2권을 다 읽고 나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삼십대 중반의 초상화가 ‘나‘. 나에게 어느 날 아내는 이혼을 통보한다. 이혼 통보와 함께 집을 나온 나는,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 속 아틀리에서 살게 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곳에서 나는 천장 위에 숨겨진 도모히코의 미발표작 ’기사단장 죽이기‘란 작품을 발견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을 일본화로 표현한 이 그림을 천장에서 가지고 내려온 이후 ’내‘주변에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골짜기 맞은편 호화로운 주택에 살고 있는 백발 신사 멘시키 와타루가 거액을 제시하며 초상화를 의뢰한다. 또한 한밤 중 이상한 소리에 홀린 듯 나가보니 집 뒤편 사당에서 방울 소리가 들린다. 멘시키의 도움으로 돌무덤을 파헤치지만 그곳엔 방울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이후 주인공 ’나‘ 앞에 기사단장의 모습을 한 영혼이 나타나게 되는데....
아직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의도를 찾지 못했다. 2권을 읽다보면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네 인생에 대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참 묘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괴롭힐지, 아님 순탄함을 선물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니까. 내가 오늘 하루 무사하게 지나왔던 그 길이 1시간 뒤에 혹은 하루 뒤에 혹은 한 달 뒤에 무서운 일이나 행운의 일이 올 수도 있으니까. 흔히들 그런 이야기를 한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를 포함하고 있다고. 때문에 하나의 우주가 또 하나의 우주와 인연을 맺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일이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 만큼 보람도 있는 거라고. 그래서 무엇을 원할 때 간절히 아주 간절히 빌라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온 우주가 나란 우주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는 거라고.
이 책의 주인공은 어느 날 이혼 통보를 받는다. 만약 조금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었다면 아내의 변화된 행동을 감지했을까? 만약 감지했다면 이혼 통보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까? 어쩜 감지했어도 막지 못했을까? 이혼 통보는 결정된 수순일 뿐.. 한 우주가 이별을 결심하게 되면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이 되는 것. 오늘 하루도 엄청난 우주의 기운들이 쉼 없이 흘러갔을 것이다. 나는 나의 기운을 가지고 별탈없이 순조롭게 시간이 흐르길 바랐을 것이고 평화롭게 하루를 보냈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사는 것. 그 사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 날 특별한 의미가 되는 순간이 오겠지?
문득 생각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힘들고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주인공을 부르기 위해 아마다 도모히코의 저택은 우주를 움직였을지도 모른다고. 그곳에서 주인공은 어떤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될지... 2권이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