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능하면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맞는 것일까? 생각할 때가 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니. 그 죽음을 정리하면서 이런 모습이 내 부모님이 맞는가? 싶은. 그런 책을 만나면 다시 내 인생을 뒤돌아보게 된다. 생각했던 내 지인의 모습과 또 다른 사람들이 증언하는 지인의 모습. 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가족이 생각하는 내 모습과 내 지인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 그리고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 세상 사람 모두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확실히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는 것 같다. 괜찮은 사람으로 나이 먹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까.
칠년 동안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소설가‘나’가 있다. 어느 날 신문에서 광고를 발견한다.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소설 일부가 실려 있다. 이 광고를 읽던 중 나는 충격에 빠진다. 그 소설은 바로 내가 데뷔하기 전에 문예공모에 제출했던 작품으로 공모전에 낙선한 뒤 잊고 지낸 것이다. 신문에 광고를 더 이상 싣지 말라고 연락하자 나에게 전화가 온다. 육 개월 전 실종된 남편을 찾고 있는 여자는 ‘진’이었다. 진은 그녀의 남편이 광고 속 소설을 쓴 작가 행세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편은 거짓투성이의 사람이었다. 남편의 이름은 이유미. 서른여섯 살의 여자다. 진에게 알려준 이름은 이유상이었고, 그 전에는 이안나였다. 그리고 육 개월 전 이 책과 일기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설가인 줄 알았던 남편은 여자였고, 진을 만나기 전부터 거짓으로 살아왔다. 이유미는 대학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 교지 편집기자로, 피아노과 교수로, 자격증 없는 의사로 활동했다. 세 남자의 부인이자 한 여자의 남편을 산 이유미. 소설가 나는 이유미가 살아온 인생을 추적하며,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란 예감에 사로잡히는데...
내가 나를, 내가 타인을 전부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점점 그런 부분에 자신이 없어진다. 20년 넘게 제일 친한 친구로 알았던 그녀의 진짜 마음을 알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다. 그전까지는 적어도 내 친구는,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내 친구는 나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진짜 마음은 숨기고 아닌 척 곁에 있어 왔던 것이다. 이후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 당시 곁에 있던 다른 지인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사람을 오래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아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는 모양이다. 사람의 속마음이 다 보인다면 그 누구도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을 거라고. 적당한 하얀 거짓말이 그래서 필요한 거라고.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미를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왜 나는 그녀가 어리석게 느껴졌을까? 영원한 거짓말은 없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로 인해 더 큰 아픔이 찾아온다. 만약 거짓말을 해명하거나, 하게 된 동기를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이 적절했다면 이유미는 편안했을까? ‘그들과 나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모른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 머물고 있었다. (250)’나를 모른다는 것. 나를 모른다는 것에 안도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 글이 마음 안에 들어왔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그들도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그 공간이 편안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혹 우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인지 반성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