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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도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성복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아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

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라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法도 없는 동네냐 法도 없어 法도 그러나

나의 팔은 罪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市場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門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이성복 / 어떤 싸움의 記錄




 그의 초기 시들을 좋아한다. 어떤 닿음의 직전까지만 바래다놓고 훌쩍 도망가버려 어쩐지 배신감이 들게 만드는 그의 근작 (래여애반다라, 2013, 문학과 지성사) 과 달리 초기 시들은 상처와 슬픔이 이만큼 구체적이다. 시와 시인들에게서 간혹 '이건 아주 정확히 나의 것이다.' 라는 인상을 받곤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시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성복의 시가 때로 무섭다. '이건 아주 정확히 나의 것이다.' 차원 이상의 것,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오래전 바로 내가 쓴 시다.' 라는 확신이 든다. 가령 위의 시는 어떤가.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바로 나의 경험, 혹은 당시의 오감이 이 한 편의 시를 통해 현현한다. 나는 다시 아파지는 것이 마땅하나 그 상처가 이제는 오랜 것이어서 흉터를 바라보는 것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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