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p.313)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작가 김원영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해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다. 장애를 가진 이들을 ‘실격당한 자’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장애인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냉철하게 짚어 나가며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기본적인 권리와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도덕성을 지닌 탁월한 인물임을 과시하는데 수단이 되고, 결핍을 지닌 채 태어난 것,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결핍된 부분으로 인해 이 사회에서 다양한 인간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그냥 장애인이 되어버리는 사람들. 사고를 당하고 화를 입어 죽어가 자살을 하더라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장애를 가진 자가 그런 일을 겪은 것이 되어버리는 사람들.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생각을 한 개인의 역사를 지닌 사람이 아닌 앞뒤 전후가 잘려나가고 그냥 장애인이라는 것만 부각된다. 신체와 정신의 장애가 있지만 그들도 비장애인처럼 평범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장애인이 가진 특별한 시각과 사고를 하는 매력적인 존재이지만 이것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비장애인들만큼 가질 수 없다. 또한 법률과 제도의 수정과 보완으로 예전보다 더 나은 장애인의 인권이 보장되었지만 그 법률과 제도가 오히려 그들의 한계를 정하고 구속하는 경우들을 보면 여전히 그들을 위한 사회적 변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극명하게 빛나는 순간은 서로가 서로의 연기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때이다. 품격이 상대방을 적절하게 접대하는 연기에 의해 구성된다면, 존엄은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본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대우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존엄이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p.71)
작가는 당연히 이 책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를 원했겠지만, 장애인에게도 장애를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당부와 바램도 담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강인함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런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장애를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특히나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유주의 제도 아래 자연스럽게 생기는 계층 중 어느 곳에도 자리 잡을 수 없는 존재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더불어 사는 사회라고 하지만 장애를 가진 작가의 시선에서 전해지는 비장애인 위주로 만들어진 사회가 가진 모순에 맞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때로는 힘겹게 다가오기도 했고, 그들을 진정한 이웃으로 나의 곁을 내어준 적이 없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그들의 사회적 활동이 활발할 수 없어 내가 그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접할 수도 없었겠지만 나의 관심이 그만큼 크지 않았음도 인정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은 그들이 좀 더 사회에 당당히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을 비정상적인 것이 아닌 여러 인간상 중의 하나로 평범한 인물로 인식되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장애아를 키운 부모의 이야기. 형제자매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에서 소외된 채 돌봄노동을 전담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공유되지 않는 이상 장애인은 그저 사회와 가족의 짐으로만 여겨지고, 그 가족들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사람들로만 인식될 것이다. 이들이 경험한 공생을 위한 갈등과 협력, 때때로 찾아오는 경이로운 순간들, 장애인을 한 사람의 자녀로, 또래로 온전히 받아들인 시간은 그 자체로 고유할 뿐 아니라,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개별자로서의 이야기를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드러내줄 것이다. (p.204)
이 모든 실천은 자기를 표현하는 데 제약이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화가'들 앞에 자기 초상화를 맡길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렇게 그려진 초상화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와 신념, 성향, 몸의 질량과 부피 비율과 신체의 곡선, 색깔과 향기, 목소리를 모두 종합할 것이다. 아름다울 기회의 평등이 있다면 적어도 당신과 나의 신체도 얼마간은 아름다울 수 있다. 연예인 뺨칠 정도는 아닐 테지만. (P.285)
책을 읽는 내내 사실 이해가 쉽지 않아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던 부분들이 많았다. 아마도 김영하의 북클럽에 선정되지 않았다면 읽다가 포기했을 것이다. 섣불리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안일하게 장애인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나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완독하며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그들을 막연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던 관조적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들을 우리의 삶의 테두리 안에 두고 그들을 내 삶에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준비를 이 책을 통해 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