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23년 2월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유대인 의사의 아들 한스 슈바르츠는 그날 가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으로 전학 온 그라프 폰 호엔펠스, 콘라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친구가 없던 한스는 자신의 세상과 다른 곳에서 온 듯한 그를 친구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수업 시간에 돋보이고자 애썼고 자신의 보물로 그 아이의 관심을 받는 데 성공한다.
다음 몇 달 동안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봄이 와서 온 천지가 벚꽃과 사과꽃, 배꽃과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어우러진 꽃들의 모임이 되었고 미루나무들은 그 나름의 은빛을, 버드나무들은 그 나름의 담황색을 뽐냈다. 슈바벤의 완만하고 평온하고 푸르른 언덕들은 포도밭과 과수원들로 덮이고 성채들로 왕관이 씌워졌다. (p.56)
우리는 그 모든 의문점들을 거의 매일같이 논의했다. 슈투트가르트의 거리들을 엄숙하게 오르내리거나 때로는 밤하늘에 떠 있는 베텔게우스"와 알데바란'을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그러면 그 별들은 수백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조롱하듯 차갑게 깜빡이는 뱀의 눈처럼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p.70~71)
둘의 우정은 날로 깊어지고 한스는 콘라딘을 집으로 초대해 부모님께 소개하지만, 콘라딘은 아주 가끔 그의 부모님이 부재중일 때 한스를 집으로 데려간다. 히틀러의 인기가 높아지고 그를 따르며 유대인을 혐오하는 호엔펠스의 어머니의 모습은 앞으로 이 둘의 우정이 예전 같지 않게 될 것을 예견한다. 독일 문화의 꽃을 피운 슈트가르트에서조차 홀로코스트라는 잔혹 범죄는 피해 가지 못하고 십 대들의 우정도 그렇게 끝을 향한다. 한스는 미국 친척 집으로 가게 되고 이곳에 남아 자신이 유대인이기보다 독일인으로 당당하게 살고자 했던 부모님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주었지만 차마 그의 눈을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우리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둘 다 울기 시작할 것 같아서였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겨우 열여섯 살짜리 아이들이었으니까. 천천히 콘라딘이 철 대문을, 그의 세상으로부터 나를 갈라놓는 문을 닫았다. 앞으로 내가 그 경계선을 다시는 넘지 못할 것이고 호엔펠스 가문의 저택은 영원히 내게 닫히리라는 것을 나도 알았고 그도 알았다. (p.121)
30년이 지난 후 변호사로 나름 성공한 삶을 산 한스에게 제2차 세계 대전 때 산화한 동창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에 기부를 요청하는 호소문과 인명부가 날아온다. 콘라딘의 생사를 확인하기를 주저하다 결국 H로 시작되는 페이지 속에 그의 이름을 마주한다.
마지막 한 문장의 그 강렬함은 이 책을 읽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짧은 한 문장을 통해 그들의 우정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충격과 감동을 담은 이 한 문장으로 프레드 울만은 아름다움과 고결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는다. 짧은 이야기에 강렬함을 담은 책이 무엇이지 보여주는 이 작은 책의 힘은 절대 적지 않다. 우정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역사의 아픔을 이 작은 책 속에 우아하고 간결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그 역사적 비극이 많이 알려져 있기에 더 구체적인 상황의 설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를 접하면 항상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의 우리 민족의 아픔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누군가는 그 시대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문학적으로 더 많은 접근을 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