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인지 기억이 희미한데 아마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너무 좋아서 연작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을까』와 『그 남자네 집』을 연이어 읽었다. 그런데 이 연작들이 내가 반했던 그런 싱그러움과 상큼함이 아닌 비슷한 설정과 내가 가진 도덕적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로 인해 다시 다른 소설을 접하기 꺼려졌었다. 결국 에세이만 간간이 읽다가 그의 처녀작을 읽지 않고 박완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아서 『나목』을 읽었는데 역시나 문학을 문학으로 보지 못하는 내 편협함이 방해 아닌 방해가 되었었다. 그게 바로 1년 전쯤이고 다시 이렇게 『나목』을 읽기 전 이번엔 정말 작가를 작품에 대입시키지 말고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시작했다.
한밤중 떨어진 포탄에 두 오빠가 죽은 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 송상처럼 살아가는 엄마와 남겨진 딸 이경(李炅). 멀쩡한 아들 둘은 죽고 쓸모없는 딸만 살아남았다는 어머니의 한탄은 경이의 귓가에 계속 머물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어머니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과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 경은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동요에 휩쓸린다. 그녀는 오빠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앞서서인지 설에 만두를 먹고 싶다는 자신의 요구에도 변함없이 김칫국을 상에 올리는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회색빛 엄마와 오빠들의 죽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어두운 고가에서 이경은 밝고 고운 다양한 색을 꿈꾼다. 유일하게 밝음을 지닌 곱게 물든 노란 빛 은행나무의 낙엽 위를 뒹굴며 살고자 하는 의지를 키웠던 경은 그래서인지 푸른 빛이 감도는 태수의 면도한 턱을 보고 보며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오빠들보다 먼저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태수에게 느낀 싱그러움보다 더 컸던 건지 미군 PX 초상화부에 새로 온 화가 옥희도를 향한 마음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나는 미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내 속에 감추어진 삶의 기쁨에의 끈질긴 집념을 알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지치지 않고 깊이 도사려 있으면서 내가 죽지 못해 사는 시늉을 해야 하는 형벌 속에 있다는 것에 아랑곳없이 가끔 나와는 별개의 개체처럼 생동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p.182~183)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렇지만 은행나무는 너무도 곱게 물들었고 하늘은 어쩌면 저렇게 푸르고 이 마당의 공기는 샘물처럼 청량하기만 한 것일까.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p.304)
이처럼 불안정한 사회는 가족도 개인의 삶도 흔들어 버린다. 이경은 다채로운 빛깔의 생동감을 원했지만, 한편으로 혼자만의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유부남 옥희도와의 끝이 보이는 사랑을 향한 무모함도 보인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던 결국 태수와 평범한 가정을 꾸렸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보다는 이루지 못했던 옥희도씨와의 사랑을 내내 품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고(故) 옥희도 씨 유작전>을 관람하며 드디어 그와 자신의 관계를 나목과 그 곁을 잠깐 스쳐간 철없던 여인이었음 뿐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닳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p.376)
처절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서 그래도 살아 나가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애절하게 그리고 비유와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낸 작품이 바로 『나목』이라 생각된다. 이번에야말로 ‘고목’이 아닌 진정한 ‘나목’을 만난 것 같아 이 책을 읽는 내내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그 문장에 감탄하며 읽을 수 있었다. 도덕적 잣대라는 편견을 내려놓으니 드디어 내가 느끼지 못했던 슬픔과 암울함도 아름답게 살려내는 작가의 또 다른 진가를 알아낼 수 있었던 시간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