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말러
나는 이 말러라는 거장에겐 보이지 않는 진입 장벽을 느낀다. 이름은 친숙하지만, 그가 작곡한 교향곡은 일반 교향곡들과는 다른 느낌과 긴 연주 시간 때문인지 쉽게 다가서기 힘들었다. 한동안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OST로 삽입된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의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그 너머 말러의 음악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기에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를 통해 말러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1860년 체코에서 태어난 말러는 자라면서 14명의 형제자매 중 그 절반의 죽음을 경험한다. 아버지가 술집을 운영했고 가족 모두 한 방에 다 같이 생활해서인지 그는 유독 혼자만의 시간과 사색을 즐겼다. 열다섯 살에 빈 음악원으로 유학을 갔다 중퇴 이후 지휘자로 전향한 그는 라이바흐, 라이프치히 등을 거쳐 부다페스트와 함부르크시립극장의 최고 자리에 오른다. 철저하고 완벽함의 추구로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하며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이며 청중은 열광했지만, 단원들에겐 그만큼의 반감도 사게 된다. 말러의 작곡에 대한 끝없는 열정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은 그의 음악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작곡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열정은 위대한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기 위해 오두막까지 지어 작곡할 정도였다.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지휘자로 명성을 쌓으면서도 작곡을 위해선 다시 유럽의 오두막을 찾았다.
19살 연하의 빈 사교계의 최고의 팜므 파탈이었던 알마와의 결혼으로 평온한 날들이 지속될 것 같았지만 첫째 딸 마리아의 죽음으로 알마는 조강지처의 옷을 벗고 남성 편력이 다시 시작된다. 아내의 지속된 외도로 프로이트에게 상담을 받을 정도였으나 헤어질 수 없었던 말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말러가 아무리 가부장적인 남편이라 할지라도 알마의 반복된 외도 패턴을 보면 병적일 정도이다. 인간의 삶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음을 몸소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음악에 세상 모든 것을 담고 싶었나 보다.
단원들과의 불화, 나태한 분위기의 오페라 문화, 유대인에 대한 멸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난, 작곡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자괴감에 그는 고통을 겪었다. 이 교향곡들은 말러가 겪은 상처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 상처를 말리는 패배자처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략) 말러의 음악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저항 정신 때문이다. 그는 고상함의 최고봉을 달리는 오케스트라 무대 위에 감히 길거리 집시들이나 쓰는 깽깽이 피들(fiddle)을 초대한다. 평민의 선술집에서나 들을 수 있는 저속한 선율을 노래하고, 심지어 악보에 '최대한 천박하게 연주하라"라고 지시한다. (p.219~220)
번스타인이 말했듯 말러의 모든 음악은 근본적으로 모두 그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삶은 온통 갈등투성이였다. 잘나가는 지휘자이자 삼류 작곡가였고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딱 한 번 교회에 나간 유대인이었으며, 보헤미아 시골뜨기 출신의 빈 유명 인사였고, 아내를 사랑하는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편이었다. 그가 지닌 개인적 모순은 사회가 부여한 것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는 음악으로 자신의 모순을 똑바로 마주하려고 노력한 용자였다. (p.313)
주변 평가에 휘둘리기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지켜나가는 것임을 평생 온몸으로 실천한 말러는 외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어디서나 이방인으로 환영받지 못했다고 스스로 느낀 말러가 선택한 길은 이방인으로 느껴지던 이 세상에 자신은 결코 주눅 들지 않고 온 세상을 음악에 담아 외쳤다. 오히려 말러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이 클래식 클라우드가 안내해준 말러의 일생, 그가 사랑했던 알프스의 풍광 그리고 말러가 새로운 역사를 썼던 오페라 극장들이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한때 사심을 담아 좋아했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말러 음악의 부활에 앞장섰다는 점 또한 내가 말러를 더 친밀하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클래식 클라우드를 왜 읽게 되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 『말러』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