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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도서] 은교

박범신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지인 중 영화<은교>를 본 후 여자 주인공에 대한 기억이 너무 오래 남아서 다른 드라마에 나오는 여배우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서 영화를 봤던 걸 후회한다던 분이 있었다. 난 그냥 별 기대가 없었기에 영화도 보지 않았고 책도 읽지 않았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 은교를 읽으신 분들의 극찬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다 이번 연인롤리타를 읽으니 그럼 은교도 살짝 맛보기만 해볼까 하다 너무 푹 빠져 오히려 읽던 롤리타를 미뤄두고 이 책부터 완독했다.

 

눈이 내리고, 그리고 또 바람이 부는가.

소나무숲 그늘이 성에가 낀 창유리를 더듬고 있다.

 

관능적이다. (p.13)

 

존경받던 시인 이적요의 사망 1주기를 맞아 그가 남기 노트 한 권을 통해 충격적인 이야기의 서막이 열린다. 70대 노시인과 그의 제자 서지우 앞에 나타난 여고생 은교. 이 은교를 통해 모르고 살았던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느끼게 되는 두 남자는 애정과 증오를 오가며 서로에 대한 불신을 쌓아가며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아주 섬세히 그려낸다.

 

내가 평생 구도하듯이 혼자 살았다는 것도, 잡문 한 번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물론 회자됐다. 나의 입장에서 그런 평가들은 나의 전략에 머리 좋은 자들이 놀아난 결과에 불과했다. 나는 그래서 혼자 앉아 속으로 말하곤 했다.

 

"엿 먹어라!" (p.143)

 

누구보다 올곧아 보이던 노시인은 은교에 대한 욕망 그리고 제자에 대한 증오를 점점 키워가고 이와 반대로 제자 서지우는 은교에 대한 욕망을 넘어 스승에 대한 존경과 애틋함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은교의 등장은 결국 그럭저럭 평온함을 지켜가던 이 두 남자에겐 독처럼 은밀히 퍼져나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나의 사랑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명사였다. (p.203)

 

은교를 사이에 둔 노작가와 제자 간의 삼각관계가 아니라 실상은 노작가와 제자의 브로맨스였다고 말하고 싶다. 서로를 너무 의지하고 아끼던 사이라 은교가 불러온 변화에 혼란스러운 감정이 앞서 서로에 대한 진심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의 깊은 애정을 알아본 건 은교뿐이라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다.

 

"할아부지와 선생님, 서로가 너무 많이 사랑했다는 거예요. 절 사랑한 게 아니에요. 두 분하고 함께 있을 때마다 버림받은 기분은 제가 가져야 했다구요. 진짜로요. 끼어들 틈도 없었는걸요. (p.217)

 

은교를 늙은이로부터 지키는 것이 '늙은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길이 전혀 없을 땐 아, 당신을 죽여서라도, 당신의 명예를 지키고 싶은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p.330)

 

아름다운 시와 더불어 더 아름다웠던 문체에 흠뻑 빠지면서도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에 충격을 연타로 받으며 쫄깃쫄깃한 긴장감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읽었다. 영화 때문에 굳어졌던 이미지와 정말 다른 원작 소설은 여러 가지 색깔을 띤 다양한 카멜레온 같아 매력적이고 묘한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이제 영화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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