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의 신작 단편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총 7편의 단편 속에는 여성들의 서사가 담겨있다.
비정규직 여성이 겪는 부당대우와 용산 참사
여성 문제에 대해 지속해서 말하자 했던 자와 그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자들의 대비
죽은 오빠이자 삼촌과 지냈던 시절 각자의 기억과 추억을 가진 모녀
어린 시절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돌봐주던 이모와의 이야기 등
주인공이자 화자인 여자들의 깊이 있고 섬세한 사서를 만나볼 수 있다.
7편 모두 좋았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답신」이다.
여성,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굴레에 순응하며 불행한 삶을 사는 언니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동생이 형부를 죽이게 됨으로써 회복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속의 그 절절함이 가득했다. 부디 이 가족에게 서로를 위했던 마음을 다시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p.21)
내 마음 안에서 나는 판관이었으니까. 그게 내 직업이었으니까. 나는 언니를 내 마음의 피고인석에 자주 앉혔어. 언니를 내려다보며 언니의 죄를 묻고 언니를 내 마음에서 버리고자 했지. 그게 내 가나를 버리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p.175)
'우리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 이모?' 이모는 내가 여린 탓에 함부로 대우받고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이모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모는 자기 자신을 대하듯 나를 대했을 것이다. (p.261~262)
진경을 알기 전까지 기남이 만난 사람들은 그녀에게 값을 요구했다. 자신들이 준 작은 마음이나 호의까지도 모두 두 배 세 배로 돌려받길 원했다. 그래서 기남은 사람으로 사는 일이 원래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다. (p.309)
여성들의 깊이 있고 섬세한 감정선 그리고 상처, 상실, 갈등을 겪은 후 회복과 치유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기에 이야기 속 우울함을 넘어설 수 있다. 누군가는 저자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을 대부분 비호감으로 그려내 불편하다고 하지만 난 여전히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저자가 탁월한 감수성이 너무 좋다. 그리고 가정에서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계속해나갔으면 한다. 그렇게 나는 나와 또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공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