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와 『키르케』의 저자 매들린 밀러는 신화 속 스치듯 지나가는 인물에게 즉, 관심 밖의 인물에게 특별한 서사를 부여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저자는 2013년 아주 짧은 소설 『갈라테이아』를 발표했고 이번에 번역되어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갈라테이아』는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중 [피그말리온의 사랑]을 소재로 한다. 『변신 이야기』에서는 대사 한마디 없고 이름조차 없이 그냥 ‘여자’로 불린 갈라테이아를 현대적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살아나라. 살아나라. 내 생명, 내 사랑이여. 살아나라."
나는 바로 이 순간, 이슬을 머금은 새끼 사슴처럼 눈을 떠 마치 태양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그를 보고 경외와 감사가 담긴 탄성을 조그맣게 터뜨려야 한다. 그러면 그가 나를 따먹는다. (p.19)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에서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여성을 그려놓은 갈라테이아의 삶에서 여전히 갈 길이 먼 대등한 남녀 관계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착한 여자는 남자를 만족시키는 것 말고는 존재 이유가 전혀 없다는 발상, 여성의 성적 순결에 대한 집착, '새하얀' 상앗빛 피부가 완벽하다는 통념, 여성의 현실보다 우선시되는 남성의 환상.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 p.53)
얼마 전 읽은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마지막 이야기가 피그말리온이였는데 피그말리온에 대한 또 다른 관점으로 풀어낸 『갈라테이아』를 읽고 저자의 관점이 너무 놀라웠다.
이야기가 너무 짧아 아쉽다. 하지만, 짧음 속에 긴 생각의 꼬리의 꼬리를 물게 된다. 작가가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의외의 인물을 통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려낼지 기대를 가득 안고 기다리는 중이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