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여러 장으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 서문이나 작가 소개를 읽지 않고 바로 첫 장을 읽기도 합니다. 책이 읽을 만한지, 아닌 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1장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헤아려보려는 셈이지요. 이 책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잘 읽히는지? 재미있는지 아니면 지루한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지 아니면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지? 어느 정도 밑그림을 나름대로 그려본다고 할까요.
이 책은 우선 잘 읽히네요. 읽어 내려가는 데, 지루함이나 걸림돌이 없습니다. 별 생각 없이 이 책을 들고 읽어나갔다 줄곧 읽게 되는 그런 ‘가독성’이 있더군요. 역시나 이 책의 저자인 나카노 쿄코 교수는 <무서운 그림>이라는 책으로 이미 명화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블랙 유머로 풀어내 인기를 끌었더군요. ‘예술을 감상한다’ 며 격식을 갖추기 보다는 옛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락’으로 즐기면 된다는 사견을 가진 만큼, <명화 감상>이 주는 거부감은 현저하게 줄어드네요.
명화가 있으면, 우리는 아무래도 명화의 주인공에게 시선이 머무르기 마련입니다. 헌데 이 책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엑스트라 1, 2, 3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저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화가는 그저 점 하나를 찍지는 않더군요. 남들이 잘 보지 않고, 남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닌 부분을 파헤치는 건, 일종의 ‘추리’와도 연관이 있어서, 재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 ‘그림’이 감상의 예술뿐만 아니라 ‘해석의 예술도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유머 또한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레다와 백조>라는 그림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백조의 눈빛이 꽤나 음험한데 그도 그럴 터, 이 백조는 제우스가 변한 모습인 것이다. 이봐요, 이봐. 제우스 씨, 또 이러깁니까?> 이런 식으로 다양한 유머를 구사합니다. 진지한 설명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런 표현들로 극복하네요.
다만 아쉬운 점은 너무나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상세하게 설명한 점이었습니다. 제우스의 연애담이나 트로이 전쟁의 헬레나, 판도라 등등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어서,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이건 그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겠습니다. 좀 더 많은 그림의 수수께끼를 듣고 싶어 하는 앙탈<?>입니다.
명화를 보면 ‘우와’ 내지는 ‘어?’ 이런 감정밖에 떠오르지 않는 저로서는 이렇게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울 뿐입니다. 다만 이렇게 한점 한점의 의미까지도 세세하게 자세히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명화’를 그리는 일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까지 헤아려보게 됩니다. 그저 보는 것과 그들의 땀을 헤아려보는 일, 아직까지는 누군가가 그들의 땀을 헤아려 놓은 걸 보는 즐거움도 좋군요.